[시승기] 제네시스, G90 5.0 HTR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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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사이즈 기함급 세단. 정말 어려운 분야다. 특히나 이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확실히 자리 잡은 영역이다. 폭스바겐도 페이톤으로 실패의 쓴맛을 봤다. 토요타도 자국 내에서만 기함급 세단을 판다. 캐딜락(CT6)이나 링컨(컨티넨탈)은 기함급이지만 모호하게 기함급이 아닌 위치를 공략하는 중이다. 볼보 같은 브랜드는 애초에 풀사이즈 세단을 운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차는 꽤 오래전부터 이 시장에 발을 담갔다. 에쿠스로 시작해 현재는 제네시스 G90, 기아차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시작해 K9까지 발전해 왔다. 그리고 제네시스 G90은 국산 최초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내놓은 풀사이즈 대형 세단이다.
1999 현대 에쿠스
에쿠스가 지난 1999년 등장했으니 현대차도 대형 세단을 만들어 온 역사가 20년에 이른다. 그리고 정점에 있는 것이 제네시스 G90이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명차’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정말 20년의 내공이 G90을 통해 표출될 수 있을까?
이번 G90은 에쿠스 후속인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제네시스 EQ900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갖췄다. 물론 지금도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디자인이 좋고 나쁨을 떠나 도로 위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해외 모델을 모방하지 않고 제네시스만의 디자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도 좋다. 물론 이 디자인이 멋진가 혹은 좋은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난해한 면도 있다. 진정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다.
특유의 그릴 디자인은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차기 G70과 G80, 새롭게 등장할 GV80도 이런 느낌의 그릴을 쓰게 된다.
지-매트릭스(G-Matrix)라는 이름의 패턴도 특징이다. 지-매트릭스는 다이아몬드를 빛에 비추었을 때 보이는 난반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이름은 그럴듯한데, 한마디로 ‘X’자 패턴이다. 무수히 많은 ‘X’자 패턴을 여기저기에 쓴 것. 헤드램프 내부에도 있고, 리어램프, 측면의 방향 지시등, 휠에도 쓰였다. 휠에는 공명음을 저감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자세히 보면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국산차 중 이렇게 세밀한 부분에 정성을 들인 모델은 흔치 않다.
측면부는 기존 EQ900과 크게 다르지 않다. 쿠페는 아니지만 쿠페 같은 느낌으로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특징이다. 후면부도 크게 달라졌는데, 일자로 연결된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트렁크 형상은 리어 스포일러 역할을 겸하도록 변경됐으며, 머플러를 전면 그릴과 비슷한 5각형 형상으로 꾸몄다.
외관 디자인과 달리 실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배치 구조도 동일하다. 심지어 계기판조차 변하지 않았다. 기아 K9은 물론 신형 쏘나타도 디스플레이 계기판을 쓰는데, 최상급 모델이 아날로그 계기판을 사용했다는 점이 아쉽다. 풀체인지를 위해 남겨둔 것 같다.
바뀐 부분을 확인해보자. 스티어링 휠 버튼 색상을 흰색으로 통일했다. 기존에는 통화 버튼이 녹색과 적색이었다. 오디오와 공조장치 버튼 개수도 줄었다. 그리고 크롬 마감 버튼을 확대 적용했다. 센터페시아 송풍구 면적도 키웠다.
센터페시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제네시스 전용 그래픽이 쓰인다. 완전히 새로운 UI를 기대했지만 배경화면이 제네시스를 상징하는 구릿빛으로 변경된 정도다.
고급차답게 고급 소재를 곳곳에 사용했다. 시트를 비롯해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 등에 나파 가죽을 쓰고 스티칭과 파이핑으로 멋을 냈다. 천장도 고급 소재로 덮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560은 고급차임에도 천장에 직물 소재를 쓰고 있다. 상급인 마이바흐, AMG 버전으로 가야 고급 소재가 사용된다. 눈에 띄는 것은 우드 트림을 실제 원목으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고급차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기존 EQ900은 90년대 차에서나 쓰였던 촌스러운 우드 트림이 옥에 티였다.
G90의 분위기를 단번에 망치는 부분이 있으니, 다름 아닌 방향지시등 레버다. 방향지시등 레버를 조작하는 순간 ‘철컥’하는 저렴한 감각과 소리를 낸다. 현재 현대차에서 가장 저렴한 세단인 엑센트가 떠오른다. 대중차부터 고급차까지 이렇게 저렴한 감각을 한결같이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G90은 현대차를 넘어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최고급 세단이다.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진정한 기함급 모델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시트 구성은 평범하다. 기본적으로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다. 운전석 시트는 22방향으로 제어된다. 운전자의 자세를 추천해 주는 스마트 자세제어 기능도 달리는데 과거와 달리 이상적인 운전자세를 잡아 준다. 과거에는 다소 누운 자세를 만들어 안전운전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마사지 기능이 없다. 뭐랄까 꼭 한 가지를 뺀 느낌? 이 차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쉽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여기에 독립식 2인 시트를 넣어 VIP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헤드레스트에 쿠션도 있고 뒷좌석 전동 조절 기능은 물론 별도 모니터를 활용해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즐길 수 있게 했다. 전동 선셰이드나 뒷좌석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도 갖췄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조수석이 최대한 앞으로 이동하며 접힌다. 이때 넉넉한 뒷좌석이 만들어진다. 조수석 시트가 접히면서 사이드미러를 가리는 차들이 있다. 뒷좌석 승객은 편해도 운전자 입장에서는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소인데, 운전석에서 바라볼 때 사이드미러를 가리지 않아 좋았다. 기아 K9은 조수석을 접는 각도가 부족해 헤드레스트를 한 번 더 접어 시야를 확보했는데, G90은 헤드레스트를 접지 않고도 넓은 시야를 만들어 냈다.
다만 앞좌석 뒤에 부착된 엔터테인먼트 모니터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편안하게 앉아있다가 모니터 각도 조절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뒤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만큼 모든 것이 편안함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기아 K9, G90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사운드 시스템은 17개의 스피커를 활용한 렉시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우리 팀은 청음 후 무난하다는 평가를 냈는데, 이상적이라는 평까지 끌어내지는 못했다. 1억 원대 초반에 있는 모델로는 무난한 성능이지만 음을 분리하는 능력, 특히 렉시콘이란 브랜드 밸류를 생각했을 때 소폭 부족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외에 소소한 기능들이 많이 담겼다. 내비게이션은 무선 인터넷으로 업데이트된다. 고스트 도어 클로징, 서라운드 뷰 모니터, 계기판에 후측방 정보를 보여주는 후측방 모니터, 터널 진입 전에 창문을 닫아주는 외부 공기 유입 방지 기능, 후진 때 도로에 조명을 비춰주는 후진 가이드 램프 등의 기능도 좋다.
당연한 얘기지만 최고급 세단답게 많은 안전장비도 갖추고 있다.
먼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하며 저속에서 앞차를 따르는 것도 지원한다. 내비게이션 정보를 활용해 과속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기능도 유용하다. 또, 곡선 구간 정보를 읽어 스스로 적절한 속도로 줄이는 기능도 있다. 물론 매번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G90에 담긴 다양한 안전장비의 기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기능은 소리, 진동, 스티어링 개입까지 모두 해준다. 차선 중앙을 유지해주는 레인 센터링 기능도 있다. 하지만 차선을 넘으려 할 때 브레이크까지 제어하는 타입은 아니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시스템은 소리와 계기판 경고는 물론 스스로 브레이크도 작동시킨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까지 인식하고 보행자는 물론 자전거나 오토바이까지 감지할 수 있다. 다만 볼보처럼 동물까지 인식하지는 못한다.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사각 및 후측방 경고는 소리를 비롯해 계기판이나 센터페시아 모니터, 혹은 사이드미러에서 경고 표시를 해줬다. 후측방 경고 기능은 자동으로 브레이크까지 작동시키지만, 사각지대 경고 기능은 순수 경고까지만 해준다.
혼다 레인 와치 기능처럼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판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혼다와 달리 좌우 모두 볼 수 있다. 특히 우측에 카메라를 띄울 때 태코미터 정보를 함께 넣었다는 점도 좋다.
사각 및 후측방 경고
헤드램프에 LED를 쓰지만 오토 하이빔 기능은 단순히 하향등과 상향등을 오가는 방식이다. 수십 개의 LED를 활용해 상향등을 유지하면서 상대방 쪽을 선택적으로 어둡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 물론 레이저나 LED를 활용해 600m 이상 밝혀주는 기능이 있으면 더더욱 좋다. 도심에서는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도 한적한 도로에서는 정말 유용한 기능이 바로 오토 하이빔이다. 수입 고급차들은 이미 이것들을 기본으로 쓴다.
오토 하이빔
이렇게 보면 G90은 좋은 기술적인 구성을 갖췄다. 하지만 해외 경쟁 모델들은 더 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먼저 아우디 A8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에는 라이다 센서가 추가돼 끼어드는 차량까지 인식한다.
벤츠 S-클래스와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은 차선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방향지시등만 작동하면 스스로 차선도 바꿔준다.
전방 추돌 경고 기능은 위험이 감지돼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차량 스스로 스티어링 시스템에 개입해 더 빠르게 위험 상황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미 BMW, 아우디, 렉서스, 볼보, 포드, 링컨 등 많은 모델에 쓰이는 기능이다.
물론 일부 기능은 국내에 출시될 때 빠지는 경우가 많다. 관련 법이 모호해 인증받기가 힘들다는 것이 이유다. 국산차가 동일한 기술을 내놓으면 그때부터는 기술이 퍼진다. 물론 수입차들이 개별적으로 인증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입사 담당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로 정부 관련 부처를 귀찮게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 가뜩이나 차량 인증에 수개월 이상이 지연되는 이때, 신기술까지 넣으려면 답답함이 커진다는 얘기다. 국내 관련 법도 시대 흐름에 맞춰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이제 G90에 대해 살펴봤으니 주행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시동 버튼을 누르면 고급 대형차다운 조용하고 차분한 소리를 낸다. 테스트 모델은 8기통 5.0리터 엔진을 쓰는데, 음색의 표출보다 소음 억제에 비중을 둔 모습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36.0 dBA. 이는 기존 EQ900 3.3 T-GDI 모델과 동일한 수치였다.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한 K9 퀀텀도 36.0 dBA을 기록한 바 있다. 이와 동일한 정숙성을 보인 차로는 메르세데스-벤츠 E300, 쉐보레 말리부 2.0 터보, 캐딜락 CT6 3.6 등이 있다.
시속 80km로 주행한다. 약간의 바람소리와 노면 소리 정도만 들리는 수준이다. 이때의 소음 수준은 약 57.0dBA. 꽤 조용하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감성적인 이점이 잘 살아난다. 특히나 V8 엔진이 보여주는 회전 질감이나 사운드는 다른 엔진이 흉내 내기 힘든 전매특허다. 다만 G90의 5.0리터 엔진은 음색을 많이 억제시켰다. V8 엔진음은 소음이 아닌 사운드다. 조금 더 멋스럽게 분출해도 좋을 것 같다. 특정 RPM 이상에서 사운드를 키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5.0리터 엔진은 425마력을 낸다. 53kgf · m라는 최대 토크도 갖췄다. 수치로는 수준급이다. 그러나 달릴 때 수치만큼의 성능이 구현되지는 않는다. 저속에서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큰데, 토크가 부족해 보인다. 5.0리터 급 엔진을 가진 차에서 힘 부족을 느낀다는 것이 아이러니한데, 저속에서 답답한 느낌이 크다. 마치 그랜저를 2.0급 자연흡기 엔진으로 끌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5.0 엔진은 그저 힘없는 엔진인가? 그렇지는 않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RPM을 높여보자. 서서히 힘이 증가하고, 5천 RPM 이상에 들어서면 꽤 좋은 가속감으로 차체를 밀어붙인다. 예전 기아 K9 때도 느꼈는데, 이 엔진은 세단용이 아니다. 세단이라면 고성능을 지향하는 모델, 또는 고급 쿠페와 더 궁합이 좋을 것 같다. 저속이나 엔진의 저회전 영역에서는 다소 밋밋하지만 고 RPM에서 시원스러운 힘을 내주기 때문.
이에 우리 팀은 5.0 모델이 아닌 3.3T 모델을 추천한다. 배기량은 적어도 두 개의 터보가 만드는 토크 덕분에 저속 및 저회전 영역에서 운전이 편하다. 차량 값도 저렴하다. 자동차세가 줄어드는 것도 덤이다. 여담이지만 국내 세법상 제네시스 G70, 스팅어 3.3T와 2배 이상의 가격을 가진 G90 3.3T는 동일한 세금을 낸다.
정리하자면 차량 후미에 붙은 5.0 이란 숫자를 위해 수백만 원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물론 가장 비싼 차를 구입해야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다. 그 수요층에겐 힘이 있든 없든 문제가 아니다.
5.0리터 엔진이 보여준 특성, 이는 3.8리터 엔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제네시스는 물론 팰리세이드도 저속 토크가 부족하다. 사실 나머지 차량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다기통 엔진이 제한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니까. 다만 G90 소비자라면, G90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라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은 3.3T 엔진을 구입하라 조언하고 싶다.
변속기 성능은 무난하다. 변속 때 반응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승차감을 지키며 변속해 나가는 타입이었다. 이는 G90의 성격과 잘 맞는다. 기어비에 대한 불만도 없다. 물론 성능 중심으로 기어비를 좁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지만 잦은 변속이 이차의 수요층에게 불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속력을 보자. 정지 상태부터 달린 G90은 6.28초라는 기록을 냈다.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EQ900 3.3T 모델이 6.11초 정도를 냈으니 소폭의 차이를 갖는 정도다. 물론 이 수치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빠른 차임에 분명하고 조금 더 빠르냐 소폭 느리냐 수준이기 때문. 다만 저속에서의 편안함으로 보면 3.3T가 낫다. 앞서 언급했지만 엔진 튜닝이 필요하다. G90의 소비자에게 425마력이란 수치는 의미 없다. 이것은 단지 카탈로그에 써넣을 숫자에 불과하다. 380마력이라도 미끄러지듯 여유 있는 가속을 만들어주는 유닛이 좋지 않을까?
이제 코너에 돌입해 보자. 수입 대형 세단들은 고급화된 장비는 물론, 달리기 성능도 좋다. 어떤 차들은 마치 컴팩트급 세단을 운전하는 것 같은 경쾌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G90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다. 무겁다는 의미가 아닌, 차량의 거동에서 중량감이 느껴진다고 보면 된다. 덩치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코너 출구를 바라보며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핸들링은 무난하다. 최근 현대차가 핸들링에 신경을 쓰는 모습인데, 현대차는 이 부분의 성능이 소폭 향상됐다. 다만 약간의 핸들링 성능을 위해 승차감을 크게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G90은 그래도 그 중간에서 타협하려 했다.
코너의 중심이다. 4륜 구동 시스템 HTRAC이 달린 만큼 가속페달을 밟는 시기를 당겼다. 그 순간 리어 휠이 미끄러진다. 조금 속도를 높여 코너에 진입해도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이차 4륜 구동 맞아?’
기아 K9 때도 그랬지만 G90도 쉽사리 리어 휠이 미끄러졌다. 구동방식 이슈보다 타이어가 차체를 붙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컨티넨탈의 프로컨텍 시리즈. 전형적인 4계절 타이어이자 컴포트한 성향의 제품이다.
세계적인 수입 대형 세단들을 보자. 대부분이 이런 타이어를 쓰지 않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다. 그렇다면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의 성격은 어떤가? 약간의 소음을 갖지만 가장 안정적인 성능을 내준다. 고속에서도 안전성이 뛰어나며 한계가 높아 긴급 대처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다.
단순히 소음이나 승차감을 살리고 싶었다면 수입 모델들도 컴포트 성향의 타이어를 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최고급 세단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긴급상황, 고속 주행.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사의 최고급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구해야 한다. 다양한 안전장비? 그것도 같은 이유로 채용된다. 아울러 G90의 정숙성이 좋긴 하나, 수입 대형 세단들은 소음에서 불리한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를 끼우고 G90과 유사한, 또는 더 나은 성능을 내고 있다. 물론 뒷좌석 이용자들이 이 부분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겠지만, G90은 해외 시장에서도 싸워야 하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다.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꾸준한 시도를 해주면 좋겠다.
지금이야 현대차를 지지하는 해외 언론들이 있지만, 그들은 언제든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내실을 키워야 한다. 특히나 지금 남양 연구소는 과거와 다른 분위기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의 취향에 맞춰 차를 개발해야 했지만, 지금은 유럽 엔지니어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사실 유럽 엔지니어들이 왔다고 극적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도 각 파트별 최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사가 몸담았던 브랜드의 흐름이란 것을 알고 있다. 큰 틀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 연구진들이 그들을 이용하길 바란다.
정리하자면 코너링, 이런 환경에서 약점이 많으며 긴급 대처 상황에서 능력도 타사 대비 아쉬움이 컸다. 차기 모델에서는 정말 제네시스의 최고급 모델 다운 성능마저도 나왔으면 좋겠다.
코너링 때 시트벨트가 조여지는 기능이 있다. 이는 충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조여진 이후 풀어지는 시간이 조금 당겨지면 좋겠다. 물론 단점은 아니다. 특히나 G90의 소비자가 스포티한 운전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단순히 긴급 상황 이후 벨트가 조여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기에 하는 얘기다.
G90도 여러 가지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대부분 주행 환경에 잘 맞다. 하지만 스포트 모드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모드 변경에 따른 큰 변화는 스티어링에서 전해져 온다. 확실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다. 피드백을 전하는 능력도 노멀 모드보다 아쉽다. 뭔가 뭉툭하게 뭉개진 감각이 전해지는 것 같다. 댐핑 값 조정이 되긴 하나 그렇다고 극적인 성능을 내지는 못한다. 무엇을 해도 타이어가 성능을 다 잃게 한다. 그저 ‘남들 다 있으니 우리도 만들어 봤어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G90 출고 이후 이 모드를 한 번도 안 쓰고 차량을 매각할 소비자가 90%를 넘을 테니까.
제동력은 어떨까? 대형급 세단들은 저마다 안정적인 제동성능을 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사 차를 구입해주는 VIP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G90은 최단거리 38.9m를 기록했다. 총 5회의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가장 긴 거리는 42m를 전후했다. 3m의 편차라면 조금 큰 편이다.
지난해 테스트한 기아 K9 5.0 퀀텀은 최단거리 42.14m를 기록했다. 사실 제동 시스템의 하드웨어 스펙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성능이 꽤 안 나왔다. 컨디션 관리가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자주 느끼는 것인데, 요즘 기자들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시승한 모 차량은 4천 km가 넘는 주행거리를 가졌지만 제동 시스템이 새것과 같았다. 기회가 되면 K9도 재테스트 해봐야겠다.
다시 G90 얘기를 하자. G90의 성능을 감안할 때 제동력 자체가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타이어도 한몫한다. 그저 부드럽게만, 이를 위해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참고로 브레이크도 열에 의해 성능을 잃지만 타이어도 열의 축적에 따라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
승차감은 적정 수준이다. 다만 차를 처음 받았을 때 놀랐다. 승차감이 너무 나빴기 때문. 너무 튀는 모습이 이상했다. 현대차 엔지니어들이 개념을 잃었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어 공기압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냉간 기준 44psi 수준. 권장이 되는 기본 공기압은 35psi다. 즉, 냉간 수치로 44psi 정도를 맞춰두면 차가 달리면서 공기압이 늘어 일반 주행 때 48~50psi를 전후하는 수치를 갖게 된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공기압을 확인하지 않고 G90을 시승한 운전자라면 분명 승차감을 욕할 것이다. 만약 이것을 타며 승차감이 좋다고 말했다면? 직업을 바꾸길 추천한다.
공기압을 낮추니 정상적인 승차감이 나온다. 물론 이 승차감이 업계 최고는 아니다. 과거의 현대차는 안정감은 떨어졌어도 물렁거리는 서스펜션이 승차감 만큼은 잘 만들었다. 반면 지금의 것은 대형차로는 평균에서 약간 떨어지는 수준. 원인을 꼽자면 셋업, 그리고 구조의 한계가 있다.
지금의 현대차는 서스펜션에 대한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승차감과 성능, 이 두 가지를 잡으려는 모습인데, 아직 결과는 한쪽에 치우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은 언젠가 결실을 맺게 된다. 또한 통상 이 정도의 모델에는 에어 서스펜션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나오는 승차감? 확실히 다르다.
운전석에서 느껴본 G90은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 차의 가치는 뒷좌석에서 나온다. 특히나 재계, 정계 인사들은 G90을 탈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한 것 또한 뒷좌석이다.
이제 뒷좌석 얘기를 해보자. 비교 대상을 국산 세단에 두면 G90은 승차감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S-클래스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차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아쉬운 편이다. 아마도 뒷좌석 승차감에 대한 불만은 기존 에쿠스를 이용해 온 소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물론 과거 에쿠스 대비 성능의 향상이란 것이 이점이 생겼지만 뒷좌석 이용자들에게 큰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다.
시트를 조절한다. 제법 편안한 자세가 나온다. 오토만 시트 수준의 편안함은 아니어도 시트의 움직임 범위를 감안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뒷좌석을 위한 마사지 기능이 없다. 최근 테스트한 캐딜락 CT6는 4좌석 모두에 마사지 기능이 있었다. 벤츠 S-클래스는 마사지 기능에 온돌 기능까지 넣어 차별화를 꾀한다.
뒷좌석 승객을 위한 모니터가 달리는데 각도를 수동 조절한다. 시트벨트를 풀고 앞으로 다가가 모니터 각도를 바꿔야 한다. 물론 조수석 시트 백 각도 조절을 통해 모니터 각도를 바꿀 수 있긴 한데, 이건 좀 억지스러운 방법이다.
승차감은 앞좌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급 대형 세단 치고 단단한 느낌이지만 이것이 준대형급 차들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다. 만약 수입 대형 세단에 대한 경험 없이 에쿠스, EQ900, G90을 타왔던 소비자라면 아예 불만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칭찬할 부분이 있다면 트렁크 공간이다. 수입 대형 세단은 트렁크가 좁다. 하지만 제네시스 G90의 트렁크는 광활했다. 골프백 적재도 어렵지 않다. 다만 골프백 사이즈가 커져가는 요즘 추세(?)를 감안, 여기에 보스턴백까지 감안하면 3세트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G90의 가격은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 최고 트림이지만 선루프조차 옵션이다. 수입차와 비교한다면 어떨까? 할인 없이도 가장 잘 팔리는 S-클래스, 여기에 8기통 엔진을 갖춘 S560과 비교하자면 약 7천만 원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7천만 원이란 돈은 분명 크다. 하지만 고급차를 타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가치, 최고의 안전성, 편안함, 이것들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최고급차 시장이다. 7천만 원의 차이.
G90 5.0에서 내린 뒤 생각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S-클래스를 꽤 싸게 팔고 있구나.”
물론 S-클래스가 싸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G90이 비쌌다. 같은 구성을 담은 기아 K9을 보자. 5.0 퀀텀은 디자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이 G90과 같다. 오히려 디스플레이 계기판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는 느낌도 보인다. 가격을 비교해 보면 약 3천만 원 차이가 난다. 디자인과 엠블럼의 차이. 여기에 3천만 원의 가치가 있을까? 그 가치는 국내 시장에서나 먹힌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는 차. 지금의 G90은 그런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 차를 해외로 가져가면 어떨까? 10만 불? 이건 당연히 어렵다. 8만 불? 이것도 무리다.
국내서는 어떻게 든 팔리는 차다. 재계 인사들은 평상시 다른 차를 타도 공식 석상용으로 제네시스 정도는 갖고 있다. 정치계 인사들은 어떤가? 자식들은 고가의 수입차를 타도 자신들은 국산 최고급 제네시스를 이용한다. 수입차 타고 구설수에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해외 시장에서 바라보면 입장이 다르다. 우선 브랜드가 약하다. 최상급 모델이라지만 상징적인 것들이 없다. 업계를 리드할 수 있는 최신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최고의 승차감도 아니며, 스포티한 세단도 아니며, 안정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중국 화웨이는 라이카와 제휴를 통해 탄생했다는 자사 스마트폰의 사진 퀄리티를 자랑했다. 물론 DSLR로 찍은 사진으로 밝혀지며 사기(?)로 마무리됐지만 후발 주자에겐 다른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한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예였다. 시장을 선점한 쟁쟁한 라이벌들에 맞서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제네시스 G90에겐 그런 특별한 무엇인가가 없다.
냉정히 말해 높은 판매량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고급차를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치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공한 시장은 국내뿐이다. 물론 해외 시장에 막 나왔기 때문에 밸류를 논하기 어렵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는 뚝딱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시장은 단지 싸다고 해서 먹히는 시장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제네시스가 조금 더 내실을 위한 투자를 해줬으면 한다.
뭔가 아쉬움을 많이 얘기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이 내용들이 이 차의 판매량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 차를 사야 할 사람들은 차의 성능이나 기본기나, 장비나, 시승기가 필요치 않으니까. 이번 시승기는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컨텐트가 아닌, 제네시스 연구원들에게 보낸 메일의 성격이 더 짙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얘기를 전하고 싶다. ‘생산 노조를 욕하는 소비자들은 많아도 노력해 나가는 당신들을 욕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더 힘을 내주었으면 한다. 우리(한국) 자동차 역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지금의 당신들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꽤 오래전부터 이 시장에 발을 담갔다. 에쿠스로 시작해 현재는 제네시스 G90, 기아차는 엔터프라이즈에서 시작해 K9까지 발전해 왔다. 그리고 제네시스 G90은 국산 최초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내놓은 풀사이즈 대형 세단이다.
에쿠스가 지난 1999년 등장했으니 현대차도 대형 세단을 만들어 온 역사가 20년에 이른다. 그리고 정점에 있는 것이 제네시스 G90이다. 제네시스는 ‘글로벌 명차’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정말 20년의 내공이 G90을 통해 표출될 수 있을까?
이번 G90은 에쿠스 후속인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디자인은 혁신적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갖췄다. 물론 지금도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이다. 하지만 디자인이 좋고 나쁨을 떠나 도로 위에서 존재감을 뽐낸다. 해외 모델을 모방하지 않고 제네시스만의 디자인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도 좋다. 물론 이 디자인이 멋진가 혹은 좋은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는 어렵다. 난해한 면도 있다. 진정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이다.
특유의 그릴 디자인은 향후 제네시스 브랜드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차기 G70과 G80, 새롭게 등장할 GV80도 이런 느낌의 그릴을 쓰게 된다.
지-매트릭스(G-Matrix)라는 이름의 패턴도 특징이다. 지-매트릭스는 다이아몬드를 빛에 비추었을 때 보이는 난반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졌다. 이름은 그럴듯한데, 한마디로 ‘X’자 패턴이다. 무수히 많은 ‘X’자 패턴을 여기저기에 쓴 것. 헤드램프 내부에도 있고, 리어램프, 측면의 방향 지시등, 휠에도 쓰였다. 휠에는 공명음을 저감하는 기술이 적용됐다.
자세히 보면 디테일에 많은 신경을 썼다. 국산차 중 이렇게 세밀한 부분에 정성을 들인 모델은 흔치 않다.
측면부는 기존 EQ900과 크게 다르지 않다. 쿠페는 아니지만 쿠페 같은 느낌으로 떨어지는 루프라인이 특징이다. 후면부도 크게 달라졌는데, 일자로 연결된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트렁크 형상은 리어 스포일러 역할을 겸하도록 변경됐으며, 머플러를 전면 그릴과 비슷한 5각형 형상으로 꾸몄다.
외관 디자인과 달리 실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본적인 배치 구조도 동일하다. 심지어 계기판조차 변하지 않았다. 기아 K9은 물론 신형 쏘나타도 디스플레이 계기판을 쓰는데, 최상급 모델이 아날로그 계기판을 사용했다는 점이 아쉽다. 풀체인지를 위해 남겨둔 것 같다.
바뀐 부분을 확인해보자. 스티어링 휠 버튼 색상을 흰색으로 통일했다. 기존에는 통화 버튼이 녹색과 적색이었다. 오디오와 공조장치 버튼 개수도 줄었다. 그리고 크롬 마감 버튼을 확대 적용했다. 센터페시아 송풍구 면적도 키웠다.
센터페시아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헤드-업 디스플레이에는 제네시스 전용 그래픽이 쓰인다. 완전히 새로운 UI를 기대했지만 배경화면이 제네시스를 상징하는 구릿빛으로 변경된 정도다.
고급차답게 고급 소재를 곳곳에 사용했다. 시트를 비롯해 대시보드와 도어 패널 등에 나파 가죽을 쓰고 스티칭과 파이핑으로 멋을 냈다. 천장도 고급 소재로 덮었다. 메르세데스-벤츠 S560은 고급차임에도 천장에 직물 소재를 쓰고 있다. 상급인 마이바흐, AMG 버전으로 가야 고급 소재가 사용된다. 눈에 띄는 것은 우드 트림을 실제 원목으로 대체했다는 점이다. 고급차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기존 EQ900은 90년대 차에서나 쓰였던 촌스러운 우드 트림이 옥에 티였다.
G90의 분위기를 단번에 망치는 부분이 있으니, 다름 아닌 방향지시등 레버다. 방향지시등 레버를 조작하는 순간 ‘철컥’하는 저렴한 감각과 소리를 낸다. 현재 현대차에서 가장 저렴한 세단인 엑센트가 떠오른다. 대중차부터 고급차까지 이렇게 저렴한 감각을 한결같이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G90은 현대차를 넘어 현대차그룹을 대표하는 최고급 세단이다. 이렇게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야 진정한 기함급 모델이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시트 구성은 평범하다. 기본적으로 편안함에 초점을 맞춘다. 운전석 시트는 22방향으로 제어된다. 운전자의 자세를 추천해 주는 스마트 자세제어 기능도 달리는데 과거와 달리 이상적인 운전자세를 잡아 준다. 과거에는 다소 누운 자세를 만들어 안전운전과 거리가 멀었다. 다만 마사지 기능이 없다. 뭐랄까 꼭 한 가지를 뺀 느낌? 이 차의 가격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쉽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여기에 독립식 2인 시트를 넣어 VIP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헤드레스트에 쿠션도 있고 뒷좌석 전동 조절 기능은 물론 별도 모니터를 활용해 엔터테인먼트 기능도 즐길 수 있게 했다. 전동 선셰이드나 뒷좌석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도 갖췄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조수석이 최대한 앞으로 이동하며 접힌다. 이때 넉넉한 뒷좌석이 만들어진다. 조수석 시트가 접히면서 사이드미러를 가리는 차들이 있다. 뒷좌석 승객은 편해도 운전자 입장에서는 안전에 위협이 되는 요소인데, 운전석에서 바라볼 때 사이드미러를 가리지 않아 좋았다. 기아 K9은 조수석을 접는 각도가 부족해 헤드레스트를 한 번 더 접어 시야를 확보했는데, G90은 헤드레스트를 접지 않고도 넓은 시야를 만들어 냈다.
다만 앞좌석 뒤에 부착된 엔터테인먼트 모니터를 수동으로 움직여야 한다. 편안하게 앉아있다가 모니터 각도 조절을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킨 뒤 손으로 조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비싼 가격을 지불하는 만큼 모든 것이 편안함에 집중되어야 하는데, 기아 K9, G90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다.
사운드 시스템은 17개의 스피커를 활용한 렉시콘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우리 팀은 청음 후 무난하다는 평가를 냈는데, 이상적이라는 평까지 끌어내지는 못했다. 1억 원대 초반에 있는 모델로는 무난한 성능이지만 음을 분리하는 능력, 특히 렉시콘이란 브랜드 밸류를 생각했을 때 소폭 부족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이외에 소소한 기능들이 많이 담겼다. 내비게이션은 무선 인터넷으로 업데이트된다. 고스트 도어 클로징, 서라운드 뷰 모니터, 계기판에 후측방 정보를 보여주는 후측방 모니터, 터널 진입 전에 창문을 닫아주는 외부 공기 유입 방지 기능, 후진 때 도로에 조명을 비춰주는 후진 가이드 램프 등의 기능도 좋다.
당연한 얘기지만 최고급 세단답게 많은 안전장비도 갖추고 있다.
먼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하며 저속에서 앞차를 따르는 것도 지원한다. 내비게이션 정보를 활용해 과속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속도를 줄이는 기능도 유용하다. 또, 곡선 구간 정보를 읽어 스스로 적절한 속도로 줄이는 기능도 있다. 물론 매번 완벽하게 작동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G90에 담긴 다양한 안전장비의 기능성에 대해 알아보자.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기능은 소리, 진동, 스티어링 개입까지 모두 해준다. 차선 중앙을 유지해주는 레인 센터링 기능도 있다. 하지만 차선을 넘으려 할 때 브레이크까지 제어하는 타입은 아니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시스템은 소리와 계기판 경고는 물론 스스로 브레이크도 작동시킨다. 반대 차선에서 오는 차까지 인식하고 보행자는 물론 자전거나 오토바이까지 감지할 수 있다. 다만 볼보처럼 동물까지 인식하지는 못한다.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사각 및 후측방 경고는 소리를 비롯해 계기판이나 센터페시아 모니터, 혹은 사이드미러에서 경고 표시를 해줬다. 후측방 경고 기능은 자동으로 브레이크까지 작동시키지만, 사각지대 경고 기능은 순수 경고까지만 해준다.
혼다 레인 와치 기능처럼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판으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혼다와 달리 좌우 모두 볼 수 있다. 특히 우측에 카메라를 띄울 때 태코미터 정보를 함께 넣었다는 점도 좋다.
사각 및 후측방 경고
헤드램프에 LED를 쓰지만 오토 하이빔 기능은 단순히 하향등과 상향등을 오가는 방식이다. 수십 개의 LED를 활용해 상향등을 유지하면서 상대방 쪽을 선택적으로 어둡게 만들어주는 기능이 추가되면 좋겠다. 물론 레이저나 LED를 활용해 600m 이상 밝혀주는 기능이 있으면 더더욱 좋다. 도심에서는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도 한적한 도로에서는 정말 유용한 기능이 바로 오토 하이빔이다. 수입 고급차들은 이미 이것들을 기본으로 쓴다.
오토 하이빔
이렇게 보면 G90은 좋은 기술적인 구성을 갖췄다. 하지만 해외 경쟁 모델들은 더 많은 기능을 갖고 있다. 먼저 아우디 A8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에는 라이다 센서가 추가돼 끼어드는 차량까지 인식한다.
벤츠 S-클래스와 E-클래스, BMW 5시리즈 등은 차선을 유지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방향지시등만 작동하면 스스로 차선도 바꿔준다.
전방 추돌 경고 기능은 위험이 감지돼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조작하면 차량 스스로 스티어링 시스템에 개입해 더 빠르게 위험 상황을 피하도록 돕는다. 이미 BMW, 아우디, 렉서스, 볼보, 포드, 링컨 등 많은 모델에 쓰이는 기능이다.
물론 일부 기능은 국내에 출시될 때 빠지는 경우가 많다. 관련 법이 모호해 인증받기가 힘들다는 것이 이유다. 국산차가 동일한 기술을 내놓으면 그때부터는 기술이 퍼진다. 물론 수입차들이 개별적으로 인증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입사 담당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것들로 정부 관련 부처를 귀찮게 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것. 가뜩이나 차량 인증에 수개월 이상이 지연되는 이때, 신기술까지 넣으려면 답답함이 커진다는 얘기다. 국내 관련 법도 시대 흐름에 맞춰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이제 G90에 대해 살펴봤으니 주행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시동 버튼을 누르면 고급 대형차다운 조용하고 차분한 소리를 낸다. 테스트 모델은 8기통 5.0리터 엔진을 쓰는데, 음색의 표출보다 소음 억제에 비중을 둔 모습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36.0 dBA. 이는 기존 EQ900 3.3 T-GDI 모델과 동일한 수치였다.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사용한 K9 퀀텀도 36.0 dBA을 기록한 바 있다. 이와 동일한 정숙성을 보인 차로는 메르세데스-벤츠 E300, 쉐보레 말리부 2.0 터보, 캐딜락 CT6 3.6 등이 있다.
시속 80km로 주행한다. 약간의 바람소리와 노면 소리 정도만 들리는 수준이다. 이때의 소음 수준은 약 57.0dBA. 꽤 조용하다.
가속 페달을 밟았을 때 감성적인 이점이 잘 살아난다. 특히나 V8 엔진이 보여주는 회전 질감이나 사운드는 다른 엔진이 흉내 내기 힘든 전매특허다. 다만 G90의 5.0리터 엔진은 음색을 많이 억제시켰다. V8 엔진음은 소음이 아닌 사운드다. 조금 더 멋스럽게 분출해도 좋을 것 같다. 특정 RPM 이상에서 사운드를 키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5.0리터 엔진은 425마력을 낸다. 53kgf · m라는 최대 토크도 갖췄다. 수치로는 수준급이다. 그러나 달릴 때 수치만큼의 성능이 구현되지는 않는다. 저속에서 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큰데, 토크가 부족해 보인다. 5.0리터 급 엔진을 가진 차에서 힘 부족을 느낀다는 것이 아이러니한데, 저속에서 답답한 느낌이 크다. 마치 그랜저를 2.0급 자연흡기 엔진으로 끌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5.0 엔진은 그저 힘없는 엔진인가? 그렇지는 않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RPM을 높여보자. 서서히 힘이 증가하고, 5천 RPM 이상에 들어서면 꽤 좋은 가속감으로 차체를 밀어붙인다. 예전 기아 K9 때도 느꼈는데, 이 엔진은 세단용이 아니다. 세단이라면 고성능을 지향하는 모델, 또는 고급 쿠페와 더 궁합이 좋을 것 같다. 저속이나 엔진의 저회전 영역에서는 다소 밋밋하지만 고 RPM에서 시원스러운 힘을 내주기 때문.
이에 우리 팀은 5.0 모델이 아닌 3.3T 모델을 추천한다. 배기량은 적어도 두 개의 터보가 만드는 토크 덕분에 저속 및 저회전 영역에서 운전이 편하다. 차량 값도 저렴하다. 자동차세가 줄어드는 것도 덤이다. 여담이지만 국내 세법상 제네시스 G70, 스팅어 3.3T와 2배 이상의 가격을 가진 G90 3.3T는 동일한 세금을 낸다.
정리하자면 차량 후미에 붙은 5.0 이란 숫자를 위해 수백만 원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 물론 가장 비싼 차를 구입해야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있다. 그 수요층에겐 힘이 있든 없든 문제가 아니다.
5.0리터 엔진이 보여준 특성, 이는 3.8리터 엔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제네시스는 물론 팰리세이드도 저속 토크가 부족하다. 사실 나머지 차량들에게 선택권은 없다. 다기통 엔진이 제한적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니까. 다만 G90 소비자라면, G90을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라면 여러 가지 이점이 많은 3.3T 엔진을 구입하라 조언하고 싶다.
변속기 성능은 무난하다. 변속 때 반응이 빠른 편은 아니지만 여유롭게 승차감을 지키며 변속해 나가는 타입이었다. 이는 G90의 성격과 잘 맞는다. 기어비에 대한 불만도 없다. 물론 성능 중심으로 기어비를 좁히는 것을 얘기할 수 있지만 잦은 변속이 이차의 수요층에게 불만이 될 가능성이 있다.
가속력을 보자. 정지 상태부터 달린 G90은 6.28초라는 기록을 냈다. 페이스리프트 이전의 EQ900 3.3T 모델이 6.11초 정도를 냈으니 소폭의 차이를 갖는 정도다. 물론 이 수치엔 별 의미가 없다. 어차피 빠른 차임에 분명하고 조금 더 빠르냐 소폭 느리냐 수준이기 때문. 다만 저속에서의 편안함으로 보면 3.3T가 낫다. 앞서 언급했지만 엔진 튜닝이 필요하다. G90의 소비자에게 425마력이란 수치는 의미 없다. 이것은 단지 카탈로그에 써넣을 숫자에 불과하다. 380마력이라도 미끄러지듯 여유 있는 가속을 만들어주는 유닛이 좋지 않을까?
이제 코너에 돌입해 보자. 수입 대형 세단들은 고급화된 장비는 물론, 달리기 성능도 좋다. 어떤 차들은 마치 컴팩트급 세단을 운전하는 것 같은 경쾌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 G90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확실히 무게감을 느끼게 하는 모습이다. 무겁다는 의미가 아닌, 차량의 거동에서 중량감이 느껴진다고 보면 된다. 덩치감이 느껴진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코너 출구를 바라보며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핸들링은 무난하다. 최근 현대차가 핸들링에 신경을 쓰는 모습인데, 현대차는 이 부분의 성능이 소폭 향상됐다. 다만 약간의 핸들링 성능을 위해 승차감을 크게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G90은 그래도 그 중간에서 타협하려 했다.
코너의 중심이다. 4륜 구동 시스템 HTRAC이 달린 만큼 가속페달을 밟는 시기를 당겼다. 그 순간 리어 휠이 미끄러진다. 조금 속도를 높여 코너에 진입해도 같은 모습이 연출된다.
‘이차 4륜 구동 맞아?’
기아 K9 때도 그랬지만 G90도 쉽사리 리어 휠이 미끄러졌다. 구동방식 이슈보다 타이어가 차체를 붙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컨티넨탈의 프로컨텍 시리즈. 전형적인 4계절 타이어이자 컴포트한 성향의 제품이다.
세계적인 수입 대형 세단들을 보자. 대부분이 이런 타이어를 쓰지 않는다. 이들이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다. 그렇다면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의 성격은 어떤가? 약간의 소음을 갖지만 가장 안정적인 성능을 내준다. 고속에서도 안전성이 뛰어나며 한계가 높아 긴급 대처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위기를 모면하게 해준다.
단순히 소음이나 승차감을 살리고 싶었다면 수입 모델들도 컴포트 성향의 타이어를 끼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최고급 세단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성이다. 긴급상황, 고속 주행.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사의 최고급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을 구해야 한다. 다양한 안전장비? 그것도 같은 이유로 채용된다. 아울러 G90의 정숙성이 좋긴 하나, 수입 대형 세단들은 소음에서 불리한 프리미엄 스포트 타이어를 끼우고 G90과 유사한, 또는 더 나은 성능을 내고 있다. 물론 뒷좌석 이용자들이 이 부분에 아쉬움을 표하지 않겠지만, G90은 해외 시장에서도 싸워야 하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대표 모델이다. 때문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꾸준한 시도를 해주면 좋겠다.
지금이야 현대차를 지지하는 해외 언론들이 있지만, 그들은 언제든 자본의 흐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내실을 키워야 한다. 특히나 지금 남양 연구소는 과거와 다른 분위기다. 예전에는 어르신들의 취향에 맞춰 차를 개발해야 했지만, 지금은 유럽 엔지니어 덕분에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사실 유럽 엔지니어들이 왔다고 극적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지는 못한다. 그들도 각 파트별 최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사가 몸담았던 브랜드의 흐름이란 것을 알고 있다. 큰 틀을 볼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다양한 시도가 가능해질 수 있다. 국내 연구진들이 그들을 이용하길 바란다.
정리하자면 코너링, 이런 환경에서 약점이 많으며 긴급 대처 상황에서 능력도 타사 대비 아쉬움이 컸다. 차기 모델에서는 정말 제네시스의 최고급 모델 다운 성능마저도 나왔으면 좋겠다.
코너링 때 시트벨트가 조여지는 기능이 있다. 이는 충돌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인데, 조여진 이후 풀어지는 시간이 조금 당겨지면 좋겠다. 물론 단점은 아니다. 특히나 G90의 소비자가 스포티한 운전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단순히 긴급 상황 이후 벨트가 조여져 있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지기에 하는 얘기다.
G90도 여러 가지 주행모드를 제공한다. 대부분 주행 환경에 잘 맞다. 하지만 스포트 모드의 존재 이유를 모르겠다. 모드 변경에 따른 큰 변화는 스티어링에서 전해져 온다. 확실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다. 피드백을 전하는 능력도 노멀 모드보다 아쉽다. 뭔가 뭉툭하게 뭉개진 감각이 전해지는 것 같다. 댐핑 값 조정이 되긴 하나 그렇다고 극적인 성능을 내지는 못한다. 무엇을 해도 타이어가 성능을 다 잃게 한다. 그저 ‘남들 다 있으니 우리도 만들어 봤어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중요하지 않다. G90 출고 이후 이 모드를 한 번도 안 쓰고 차량을 매각할 소비자가 90%를 넘을 테니까.
제동력은 어떨까? 대형급 세단들은 저마다 안정적인 제동성능을 낸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자사 차를 구입해주는 VIP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G90은 최단거리 38.9m를 기록했다. 총 5회의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가장 긴 거리는 42m를 전후했다. 3m의 편차라면 조금 큰 편이다.
지난해 테스트한 기아 K9 5.0 퀀텀은 최단거리 42.14m를 기록했다. 사실 제동 시스템의 하드웨어 스펙에서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데, 성능이 꽤 안 나왔다. 컨디션 관리가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자주 느끼는 것인데, 요즘 기자들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시승한 모 차량은 4천 km가 넘는 주행거리를 가졌지만 제동 시스템이 새것과 같았다. 기회가 되면 K9도 재테스트 해봐야겠다.
다시 G90 얘기를 하자. G90의 성능을 감안할 때 제동력 자체가 이상적이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타이어도 한몫한다. 그저 부드럽게만, 이를 위해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참고로 브레이크도 열에 의해 성능을 잃지만 타이어도 열의 축적에 따라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
승차감은 적정 수준이다. 다만 차를 처음 받았을 때 놀랐다. 승차감이 너무 나빴기 때문. 너무 튀는 모습이 이상했다. 현대차 엔지니어들이 개념을 잃었나 싶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타이어 공기압이 비정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냉간 기준 44psi 수준. 권장이 되는 기본 공기압은 35psi다. 즉, 냉간 수치로 44psi 정도를 맞춰두면 차가 달리면서 공기압이 늘어 일반 주행 때 48~50psi를 전후하는 수치를 갖게 된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공기압을 확인하지 않고 G90을 시승한 운전자라면 분명 승차감을 욕할 것이다. 만약 이것을 타며 승차감이 좋다고 말했다면? 직업을 바꾸길 추천한다.
공기압을 낮추니 정상적인 승차감이 나온다. 물론 이 승차감이 업계 최고는 아니다. 과거의 현대차는 안정감은 떨어졌어도 물렁거리는 서스펜션이 승차감 만큼은 잘 만들었다. 반면 지금의 것은 대형차로는 평균에서 약간 떨어지는 수준. 원인을 꼽자면 셋업, 그리고 구조의 한계가 있다.
지금의 현대차는 서스펜션에 대한 숙제를 풀어가는 과정이다. 승차감과 성능, 이 두 가지를 잡으려는 모습인데, 아직 결과는 한쪽에 치우치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노력은 언젠가 결실을 맺게 된다. 또한 통상 이 정도의 모델에는 에어 서스펜션을 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 나오는 승차감? 확실히 다르다.
운전석에서 느껴본 G90은 만족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이 차의 가치는 뒷좌석에서 나온다. 특히나 재계, 정계 인사들은 G90을 탈 수밖에 없다. 그들을 위한 것 또한 뒷좌석이다.
이제 뒷좌석 얘기를 해보자. 비교 대상을 국산 세단에 두면 G90은 승차감은 좋은 편이다. 하지만 S-클래스를 중심에 두고 다양한 차들과 비교하자면 조금 아쉬운 편이다. 아마도 뒷좌석 승차감에 대한 불만은 기존 에쿠스를 이용해 온 소비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물론 과거 에쿠스 대비 성능의 향상이란 것이 이점이 생겼지만 뒷좌석 이용자들에게 큰 의미 있는 내용은 아니다.
시트를 조절한다. 제법 편안한 자세가 나온다. 오토만 시트 수준의 편안함은 아니어도 시트의 움직임 범위를 감안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뒷좌석을 위한 마사지 기능이 없다. 최근 테스트한 캐딜락 CT6는 4좌석 모두에 마사지 기능이 있었다. 벤츠 S-클래스는 마사지 기능에 온돌 기능까지 넣어 차별화를 꾀한다.
뒷좌석 승객을 위한 모니터가 달리는데 각도를 수동 조절한다. 시트벨트를 풀고 앞으로 다가가 모니터 각도를 바꿔야 한다. 물론 조수석 시트 백 각도 조절을 통해 모니터 각도를 바꿀 수 있긴 한데, 이건 좀 억지스러운 방법이다.
승차감은 앞좌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급 대형 세단 치고 단단한 느낌이지만 이것이 준대형급 차들과 비교될 수준은 아니다. 만약 수입 대형 세단에 대한 경험 없이 에쿠스, EQ900, G90을 타왔던 소비자라면 아예 불만을 표하지 않을 것이다.
칭찬할 부분이 있다면 트렁크 공간이다. 수입 대형 세단은 트렁크가 좁다. 하지만 제네시스 G90의 트렁크는 광활했다. 골프백 적재도 어렵지 않다. 다만 골프백 사이즈가 커져가는 요즘 추세(?)를 감안, 여기에 보스턴백까지 감안하면 3세트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G90의 가격은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 최고 트림이지만 선루프조차 옵션이다. 수입차와 비교한다면 어떨까? 할인 없이도 가장 잘 팔리는 S-클래스, 여기에 8기통 엔진을 갖춘 S560과 비교하자면 약 7천만 원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7천만 원이란 돈은 분명 크다. 하지만 고급차를 타는 이유가 무엇인가? 시장에서의 가치, 최고의 안전성, 편안함, 이것들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최고급차 시장이다. 7천만 원의 차이.
G90 5.0에서 내린 뒤 생각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S-클래스를 꽤 싸게 팔고 있구나.”
물론 S-클래스가 싸다는 것은 아니다. 정확히 G90이 비쌌다. 같은 구성을 담은 기아 K9을 보자. 5.0 퀀텀은 디자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구성이 G90과 같다. 오히려 디스플레이 계기판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는 느낌도 보인다. 가격을 비교해 보면 약 3천만 원 차이가 난다. 디자인과 엠블럼의 차이. 여기에 3천만 원의 가치가 있을까? 그 가치는 국내 시장에서나 먹힌다.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하는 차. 지금의 G90은 그런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 차를 해외로 가져가면 어떨까? 10만 불? 이건 당연히 어렵다. 8만 불? 이것도 무리다.
국내서는 어떻게 든 팔리는 차다. 재계 인사들은 평상시 다른 차를 타도 공식 석상용으로 제네시스 정도는 갖고 있다. 정치계 인사들은 어떤가? 자식들은 고가의 수입차를 타도 자신들은 국산 최고급 제네시스를 이용한다. 수입차 타고 구설수에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반면 해외 시장에서 바라보면 입장이 다르다. 우선 브랜드가 약하다. 최상급 모델이라지만 상징적인 것들이 없다. 업계를 리드할 수 있는 최신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최고의 승차감도 아니며, 스포티한 세단도 아니며, 안정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중국 화웨이는 라이카와 제휴를 통해 탄생했다는 자사 스마트폰의 사진 퀄리티를 자랑했다. 물론 DSLR로 찍은 사진으로 밝혀지며 사기(?)로 마무리됐지만 후발 주자에겐 다른 무엇인가, 남들과 다른 한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예였다. 시장을 선점한 쟁쟁한 라이벌들에 맞서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제네시스 G90에겐 그런 특별한 무엇인가가 없다.
냉정히 말해 높은 판매량을 기대하기 어렵다. 최고급차를 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치다. 제네시스 브랜드가 성공한 시장은 국내뿐이다. 물론 해외 시장에 막 나왔기 때문에 밸류를 논하기 어렵다는 것은 맞다. 하지만 고급 브랜드의 이미지는 뚝딱하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 시장은 단지 싸다고 해서 먹히는 시장도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제네시스가 조금 더 내실을 위한 투자를 해줬으면 한다.
뭔가 아쉬움을 많이 얘기한 것 같다. 하지만 다른 때와 달리 이 내용들이 이 차의 판매량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이 차를 사야 할 사람들은 차의 성능이나 기본기나, 장비나, 시승기가 필요치 않으니까. 이번 시승기는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 전하는 컨텐트가 아닌, 제네시스 연구원들에게 보낸 메일의 성격이 더 짙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얘기를 전하고 싶다. ‘생산 노조를 욕하는 소비자들은 많아도 노력해 나가는 당신들을 욕하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더 힘을 내주었으면 한다. 우리(한국) 자동차 역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은 지금의 당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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