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E-PACE P250 A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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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엄밀히 따져 니치(Niche) 브랜드에 속한다. 니치 브랜드는 포지션이 애매한데, 대중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 사이 또는 프리미엄 브랜드와 럭셔리 브랜드 사이에 위치한다. 차량이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떤 소비자에게는 벤틀리 보다 고귀한 모델로 비칠 수도, 어떤 소비자에게는 폭스바겐 같은 대중 브랜드보다 조금 좋은 정도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는 소량 생산이라는 니치 브랜드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들은 희소성을 중요시하고 여기서 나오는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남다르게 여긴다. 니치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을 갖고, 각 모델마다 남다른 개성을 강조해 나가려 한다. ‘적게 만드는 대신 집중해서 제대로 만든다’가 니치 브랜드의 기본 정신이다. 그리고 재규어가 그런 니치 브랜드의 대표주자다.
물론 어디까지나 니치 브랜드라는 것은 규모가 작은 회사를 잘 포장한 표현이다. 많이 팔릴수록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조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재규어도 SUV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자사 역사상 최초의 SUV인 F-페이스(F-PACE)를 내놓은 이후 이제 소형 SUV 시장(E-페이스)까지 영역을 넓혔다. 곧 국내시장에 출시될 I-페이스(사실상 해치백에 가까운)까지 추가되면 재규어는 3종의 SUV 라인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E-페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소형 SUV 그룹에 속한다.
재규어의 첫 SUV F-페이스
같은 집안의 랜드로버가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결심이라도 한 모양이다. SUV 전문 브랜드보다 먼저 소형 SUV를 내놨기 때문이다. 과연 E-페이스가 재규어 판매량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에 나섰다.
E-페이스는 한눈에 재규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디자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꽤나 앙증맞아 보이는 모습도 신선했고 큰 사이즈의 휠로 한 번 더 눈길을 끌었다. 루프라인도 쿠페에 가까울 정도였고, 머플러 일체형의 리어 범퍼는 어지간한 스포츠카보다 강력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SUV라는 것은 알겠는데 SUV 같지 않은 이미지다.
이러한 이미지는 E-페이스 디자인이 F-타입(F-TYPE)에서 시작된 덕분이다. F-타입을 연상시키는 그릴,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심지어 루프라인까지 F-타입과 비슷하다. 귀여운 눈망울처럼 보이는 헤드램프에 J 블레이드 주간주행등을 넣어 재규어 가족임을 알리고 있다.
서두에서 E-페이스를 소형 SUV라고 언급했다. 물론 그만큼 컴팩트한 크기를 갖는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덩치’가 상당하다.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국산 소형 SUV와 크기를 비교해보자.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쌍용 티볼리와 크기를 비교해봤다. 사실 쌍용차와 재규어를 비교한다면 것 자체가 우습기에,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크기 비교라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E-페이스가 티볼리 보다 길고 높은 키를 갖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너비다. 2m에 가까운 너비를 갖는 SUV는 중형급으로 올라섰을 때 가질 수 있는 폭이다.
이러한 폭을 갖는 이유는 E-페이스가 재규어 랜드로버의 D8 플랫폼을 기초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D8 플랫폼으로 개발된 차량은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디스커버리 스포트가 있다. 한마디로 중형급 플랫폼으로 소형 SUV를 만들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오버 스펙의 차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에 있어서 오버 스펙은 사치스러움을 대표한다. 사실상 거의 모든 제조사는 성능이나 내구성 등을 한계치에 근접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최소만으로 최대의 이익을 보기 위함이다. BMW X1이나 X2는 미니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초로 한다. 아우디 Q2는 폭스바겐의 MQB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이들과 경쟁하는 재규어의 E-페이스는 훨씬 비싼 상급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태생, 뼈대부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E-페이스 소비자들은 플랫폼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참고로 실내에 들어서면 소형 SUV라는 느낌이 크지 않다. 넓은 너비 덕분이다.
어찌 됐건 E-페이스는 소형 SUV이고, 보다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는다. 때문에 윈드실드와 퍼들램프 등에서 귀여운 아기 재규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영국식 유머 감각이랄까? 꽤나 귀엽다.
한가지 더. 소형 SUV라고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친다. 사실 최근 소형 SUV 상당수는 해치백에서 키만 높인 경우가 많다. 엔진룸 레이아웃도 승용차와 같다. 하지만 E-페이스는 SUV 성격에 맞춰 오프로드를 감안한 레이아웃을 적용하고 있다.
공기 흡입구 부근을 험로 탈출에 용이하도록 바꾼 것. 일반적으로 엔진에 필요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통로는 그릴이나 범퍼 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E-페이스는 엔진 후드 앞쪽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고, 공기 흡입 구조물도 위를 향하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차량보다 악천후 환경 및 험로 등에서 엔진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게 된다. 겉모양만 SUV가 아니라 진정한 SUV가 되기 위한 고민들이 곁들여진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F-타입을 떠올리게 하는데, 운전석에 시선이 집중되는 비대칭형 구도다. 소재의 고급스러움도 칭찬하고 싶다. 아무리 프리미엄 브랜드 상품이라도 소형 SUV 등급에는 일부분 저렴해 보이는 마감이 드러나기 마련. 하지만 E-페이스는 실내 넓은 부위를 고급 가죽으로 감싸고 박음질 마감까지 꼼꼼하게 했다. 금속 소재가 전하는 감각도 좋다. 조금 욕심을 내자면 시동 버튼 주위까지 가죽으로 덮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센터페시아도 멋스럽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 차량 설정을 바꾸거나 랩타임, 중력 가속도, 페달 조작량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소형 SUV라는 특성에 맞춰 젊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요소를 넣은 것.
공조 장치 다이얼 속에 디스플레이를 넣어 직관성을 높인 것도 좋다. 기어 레버는 전자식이며, 그 주위에 주행모드를 변경할 수 있는 스위치를 달았다. 다만 조작감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일반 버튼 타입으로 바꿔도 좋을 듯싶다.
센터 콘솔 컵홀더는 탈착식인데 이를 제거하면 커다란 내부 공간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USB 3.0 포트를 달았다. 아직 자동차에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았기에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오버헤드 콘솔을 바라보면 텔레매틱스 서비스 버튼들이 있다. 좌측은 일반 문의 및 정비 사항 관련의 재규어 어시스턴트 서비스, 우측은 사고 발생 때 사용할 수 있는 SOS 긴급출동 서비스를 위한 것이다. 소형 SUV로는 보기 쉽지 않은 기능이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국내에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칭찬할 만하다.
뒷좌석은 충분하다. 소형급으로는 충분히 넓은 공간이다. 레그룸에서 차량 크기의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의외로 헤드룸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특히 쿠페와 유사한 루프라인을 갖췄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의외였다. 여기에 뒷좌석 승객을 위한 USB 포트를 3개나 준비했다. 젊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얘기다. 반면 뒷좌석 루프 쪽에 손잡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를 추가해 주면 좋겠다.
트렁크 공간은 484리터를 갖는다. 뒷좌석을 폴딩 하면 1,141리터까지 공간이 늘어난다. 파워 아울렛과 전동식 테일게이트 등의 구색도 좋다. 다만 쿠페와 닮은 루프 형상 때문에 화물을 높이 쌓지는 못한다.
참고로 우리가 만난 테스트카는 국내에 미디어 시승용으로 들여온 데모 에디션(Demo Edition)이다. 이름 그대로 일반인에게는 판매되지 않고 E-페이스가 어떤지 보여주는 용도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 전용 시승차다.
그렇다 보니 외관 외에 실내 구성도 다소 빈약하다. 계기판도 일반적인 아날로그 다이얼 방식인데, 상급 트림에는 12.3인치의 디스플레이가 쓰인다. 시트에는 메모리 기능도 없었다. 특히 액티브 세이프티 부분에서는 차선유지 보조 기능 정도만 갖춰져 있다. 그것도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이 아닌 차선을 넘었을 때만 보정해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 오토하이빔, 자동 주차,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은 갖고 있었다. 참고로 전방 추돌 경고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 경고 등의 기능은 옵션으로 적용되는 사양이다.
데모 에디션(미디어 전용 테스트카)의 부실함을 살펴봤으니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보자.
운전석에 탑승하면 높은 시야부터 다가온다. 차체의 지상고도 높은 편이지만 시트 자체도 높은 위치에 있다. 기아 쏘렌토와 비교해 살짝 낮은 정도랄까? 그동안 만나왔던 소형 SUV들이 해치백 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면 E-페이스는 SUV를 탄다는 생각을 쉽게 심어준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가솔린과 디젤 엔진의 중간쯤 되는 음색을 낸다. 참고로 지금 국내 시판되는 E-페이스는 가솔린 엔진 하나뿐이다. 정숙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아이들링 소음을 확인해본 결과 41.0 dBA 정도였다. 이는 2.0 디젤 엔진을 사용했던 볼보 XC60 D4와 유사한 수치다.
최근 모듈러 엔진을 사용하는 제조사가 많아지고 있다. 모듈러 엔진이란 한가지 엔진을 개발한 뒤 가솔린과 디젤은 물론 3, 4, 6기통 등을 오가게 규격화 시킨 것을 뜻한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인제니움 엔진도 모듈러 엔진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엔진들은 다소 거친 음색을 낸다는 공통된 아쉬움을 갖는다. 볼보의 모듈러 엔진도 그렇다.
E-페이스는 아이들링 때 소폭 거친 음색을 들려줬지만 막상 움직임이 시작되면 부드럽고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그 덕분에 주행 때의 소음이 중형 세단 수준까지 낮아졌다.
사실 주행이 이뤄지면 엔진 보다 달라진 성향의 서스펜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다. 일상 주행 때 조금은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이 재밌다. 그동안 재규어는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중심으로 차를 만들었다. 기존과 다른 노선이다. 물론 노면이 좋지 않을 때 대부분의 정보가 운전자에게 전달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처리할 때 경박스럽지 않다는 것이 좋다. 같은 단단함이라도 운전자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서스펜션이 있는가 하면 깔끔하게 처리해 내는 셋업을 갖춘 경우도 있다. 사실 서스펜션 기술, 노하우의 차이도 여기서 나온다. 단단한 서스펜션이 얻는 이점, 하지만 이로 인한 단점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가속페달을 밟는다. 부드럽게 미는 느낌과 더불어 속도가 오른다. 제원상 출력은 249마력, 최대토크는 37.2kg.m 수준이다. 하지만 체감은 그에 밑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측정한 결과 9.17초로 나왔다. 조금 더 빠른 성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낮게 나왔다. 우리 팀은 그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연료다. 2.0리터 터보 엔진으로 250마력 정도를 내는 가솔린 엔진치고 일반유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테스트카는 일반유로 길들여진 상태였다. 3.0리터 급 엔진에서 300마력 내외를 뽑아낸다면 성능 저하가 크지 않지만 2.0리터 급 엔진이라면 연료에 따른 성능 편차가 커진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과거 2.0리터 터보 엔진은 연료에 따라 최대 100마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재규어 E-페이스도 이로 인해 최소 1초 정도는 손해를 봤을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는 휠과 타이어의 조합이다. 커다란 휠은 분명 멋있지만 19인치 휠 크기는 빠른 가속력을 내는데 부담이 된다. 당연히 크고 무거운 휠을 쓸수록 가속 시간은 늘어난다. 쉽게는 18인치가 가장 빠르고 이후 19인치, 20인치 순으로 가속시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또한 모든 제조사들은 가장 작은 사이즈의 휠과 타이어를 통한 가속성능을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마지막으로는 차체 무게다. 우리 팀이 측정한 E-페이스의 실제 무게는 1,868 kg 수준으로 소형 SUV로는 다소 무거운 편에 속했다. 이는 발진 가속 보다 체감 성능을 낮추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고급 휘발유를 사용하고 18인치 휠을 사용해야 제조사가 말하는 7초대 성능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가속 성능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놀라운 부분은 고속주행 안정성이었다. 조금은 통통 튀는 감각을 전하던 E-페이스의 하체. 하지만 속도가 오르자 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안정감을 살려내기 시작했다. 앞서 체감을 무디게 만들던 차체 무게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 시야가 높은 SUV 특성상 고속 안정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E-페이스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재규어는 E-페이스 출시 전부터 잘 달리는 SUV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히 생긴 것만 F-타입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 E-페이스는 달릴 때 만족감이 높았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페달을 조작하는 복합적인 조작을 거치자 E-페이스는 상당히 깔끔한 조작감과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또한 주행 질감 자체가 고급스럽다. 운전을 할 때의 느낌에서 싼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다. 단순히 좋고 비싼 부품을 사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부분까지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E-페이스는 소형급 모델에서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러운 감각을 보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코너를 공략하면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날카롭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코너를 돌아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프리미엄 소형 SUV 중 볼보 XC40의 주행감각과 성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코너를 파고드는 속도, 핸들링 측면에서 보면 E-페이스가 한수 위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할 때 차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XC40쪽이다. 하지만 실제 차량의 움직임이나 운전자가 제어하는 측면에서 보면 E-페이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절대 XC40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E-페이스가 이 부분에서 월등하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엔 4륜 시스템의 영향력도 포함된다. E-페이스의 4륜 시스템의 꽤나 공격적이다. 전후 구동 배분도 100:0에서 0:100까지 가능하다. 물론 매번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배분 능력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보편적인 SUV들은 언더스티어를 보이지만 E-페이스는 코너 공략 방법에 따라 후륜에 구동력을 집중시키며 성능 중심의 전개를 해나갈 수 있다. 마치 후륜구동차를 타는 느낌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타이어 성능도 매우 뛰어나다. 235mm의 폭을 갖는 타이어는 굿이어의 Eagle F1 Asymmetric3 SUV라는 제품이다. 어느 정도 코너링 속도를 예상하고 진입해도 민망할 정도로 여유가 많다. 기대 이상의 접지력을 낸다는 얘기다. 타이어는 E-페이스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타이어 성능이 뛰어나기에 브레이크 시스템이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 더 가중되는 것 같다.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6.89m. 테스트가 반복되면 제동거리가 최대 40m까지 늘어났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현상은 없었다. 즉, 차량 무게와 타이어 성능을 제동 시스템이 버거워 한다는 느낌이 짙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리하자면 평균 제동거리는 약 38~39m 내외로 볼 수 있다. 떨어지는 성능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기 좋은 모델인 만큼 제동 성능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변속기는 ZF의 전륜구동형 9단 자동변속기를 쓴다. 약 120km/h 전후의 속도에서 9단이 연결될 정도로 기어비는 넓다. 저단에서는 적절하게 촘촘한 기어비를 갖고 있는데 스포티한 주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어를 올리는(쉬프트업)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만 내려주는(쉬프트다운) 속도는 평이한 수준이다. 하지만 만족도는 높다. 초창기 ZF 9단 변속기는 의외로 많은 아쉬움을 줬다. 하지만 지금의 것은 만족감이 커졌다.
주행 연비는 어떨까? 가솔린 엔진+1.8톤의 무게+자동변속기+4륜 시스템의 조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매우 뛰어난 연비를 보이긴 어려운 조합을 갖고 있다.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주행 조건에서 14km/L 이상의 연비를 보였다. 다만 가감속이 잦거나 도심 시내에서 주행을 한다면 7km/L 대에 머물게 된다. 우리 팀의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후 보여준 연비는 8km/L 대 후반이었다.
재규어 E-페이스는 의외로 재미난 차였다. 그리고 재규어가 이 차를 개발하며 얼마나 돈을 아끼지 않았나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하체를 보는 것.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연히 좋다. 비싼 차니까. 반면 BMW 일부 모델은 각종 암이나 링크들이 점점 부실해지는 모습이다. 일부 모델은 현대차와 비교해도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도다. 물론 셋업 노하우 격차가 크긴 하지만 말이다.
반면 하체를 보면 놀라는 브랜드가 있다. 먼저 캐딜락이다. 컴팩트세단 ATS는 분명 오버 스펙의 하체를 갖고 있으며, CT6는 오픈휠 레이스카의 푸시로드 서스펜션 링크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보여 우리 팀을 놀라게 했다. 이 부류에 속하는 것이 바로 재규어다. 재규어가 강조하는 후륜 인테그럴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E-페이스도 동일한 하체 구조를 갖고 있다.
하체 구성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하면 바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최근의 재규어는 독일 3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뛰어넘는 주행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다. 타보면 돈값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경쟁 모델인 볼보 XC40은 반자율 주행 기능을 기본 탑재하면서 가격 이점까지 득했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잔고장과 A/S 서비스 문제도 풀어야 한다. 실제 서비스의 문제가 아닌, 이미지 변경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가 꽤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E-페이스가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 같다.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저평가 될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재규어 연구진은 대단한 소형 SUV를 만들어냈다. 이후의 남은 과제는 재규어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이는 소량 생산이라는 니치 브랜드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소비자들은 희소성을 중요시하고 여기서 나오는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남다르게 여긴다. 니치 브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희소성을 갖고, 각 모델마다 남다른 개성을 강조해 나가려 한다. ‘적게 만드는 대신 집중해서 제대로 만든다’가 니치 브랜드의 기본 정신이다. 그리고 재규어가 그런 니치 브랜드의 대표주자다.
물론 어디까지나 니치 브랜드라는 것은 규모가 작은 회사를 잘 포장한 표현이다. 많이 팔릴수록 많이 만들어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제조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재규어도 SUV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자사 역사상 최초의 SUV인 F-페이스(F-PACE)를 내놓은 이후 이제 소형 SUV 시장(E-페이스)까지 영역을 넓혔다. 곧 국내시장에 출시될 I-페이스(사실상 해치백에 가까운)까지 추가되면 재규어는 3종의 SUV 라인업을 갖게 된다. 그리고 E-페이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소형 SUV 그룹에 속한다.
같은 집안의 랜드로버가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결심이라도 한 모양이다. SUV 전문 브랜드보다 먼저 소형 SUV를 내놨기 때문이다. 과연 E-페이스가 재규어 판매량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테스트에 나섰다.
E-페이스는 한눈에 재규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디자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꽤나 앙증맞아 보이는 모습도 신선했고 큰 사이즈의 휠로 한 번 더 눈길을 끌었다. 루프라인도 쿠페에 가까울 정도였고, 머플러 일체형의 리어 범퍼는 어지간한 스포츠카보다 강력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SUV라는 것은 알겠는데 SUV 같지 않은 이미지다.
이러한 이미지는 E-페이스 디자인이 F-타입(F-TYPE)에서 시작된 덕분이다. F-타입을 연상시키는 그릴,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심지어 루프라인까지 F-타입과 비슷하다. 귀여운 눈망울처럼 보이는 헤드램프에 J 블레이드 주간주행등을 넣어 재규어 가족임을 알리고 있다.
서두에서 E-페이스를 소형 SUV라고 언급했다. 물론 그만큼 컴팩트한 크기를 갖는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덩치’가 상당하다. 의미를 설명하기 전에 국산 소형 SUV와 크기를 비교해보자.
국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쌍용 티볼리와 크기를 비교해봤다. 사실 쌍용차와 재규어를 비교한다면 것 자체가 우습기에, 이해를 돕기 위한 단순 크기 비교라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E-페이스가 티볼리 보다 길고 높은 키를 갖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너비다. 2m에 가까운 너비를 갖는 SUV는 중형급으로 올라섰을 때 가질 수 있는 폭이다.
이러한 폭을 갖는 이유는 E-페이스가 재규어 랜드로버의 D8 플랫폼을 기초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D8 플랫폼으로 개발된 차량은 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 이보크와 디스커버리 스포트가 있다. 한마디로 중형급 플랫폼으로 소형 SUV를 만들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오버 스펙의 차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자동차에 있어서 오버 스펙은 사치스러움을 대표한다. 사실상 거의 모든 제조사는 성능이나 내구성 등을 한계치에 근접한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최소만으로 최대의 이익을 보기 위함이다. BMW X1이나 X2는 미니의 전륜구동 플랫폼을 기초로 한다. 아우디 Q2는 폭스바겐의 MQB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이들과 경쟁하는 재규어의 E-페이스는 훨씬 비싼 상급 플랫폼으로 만들어졌다. 태생, 뼈대부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E-페이스 소비자들은 플랫폼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참고로 실내에 들어서면 소형 SUV라는 느낌이 크지 않다. 넓은 너비 덕분이다.
어찌 됐건 E-페이스는 소형 SUV이고, 보다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삼는다. 때문에 윈드실드와 퍼들램프 등에서 귀여운 아기 재규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영국식 유머 감각이랄까? 꽤나 귀엽다.
한가지 더. 소형 SUV라고 만만하게 보면 큰코다친다. 사실 최근 소형 SUV 상당수는 해치백에서 키만 높인 경우가 많다. 엔진룸 레이아웃도 승용차와 같다. 하지만 E-페이스는 SUV 성격에 맞춰 오프로드를 감안한 레이아웃을 적용하고 있다.
공기 흡입구 부근을 험로 탈출에 용이하도록 바꾼 것. 일반적으로 엔진에 필요한 공기를 빨아들이는 통로는 그릴이나 범퍼 쪽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E-페이스는 엔진 후드 앞쪽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고, 공기 흡입 구조물도 위를 향하는 형상으로 만들어졌다. 일반적인 차량보다 악천후 환경 및 험로 등에서 엔진을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커지게 된다. 겉모양만 SUV가 아니라 진정한 SUV가 되기 위한 고민들이 곁들여진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F-타입을 떠올리게 하는데, 운전석에 시선이 집중되는 비대칭형 구도다. 소재의 고급스러움도 칭찬하고 싶다. 아무리 프리미엄 브랜드 상품이라도 소형 SUV 등급에는 일부분 저렴해 보이는 마감이 드러나기 마련. 하지만 E-페이스는 실내 넓은 부위를 고급 가죽으로 감싸고 박음질 마감까지 꼼꼼하게 했다. 금속 소재가 전하는 감각도 좋다. 조금 욕심을 내자면 시동 버튼 주위까지 가죽으로 덮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센터페시아도 멋스럽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센터페시아 모니터를 통해 차량 설정을 바꾸거나 랩타임, 중력 가속도, 페달 조작량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소형 SUV라는 특성에 맞춰 젊은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요소를 넣은 것.
공조 장치 다이얼 속에 디스플레이를 넣어 직관성을 높인 것도 좋다. 기어 레버는 전자식이며, 그 주위에 주행모드를 변경할 수 있는 스위치를 달았다. 다만 조작감이 좋은 편은 아니다. 일반 버튼 타입으로 바꿔도 좋을 듯싶다.
센터 콘솔 컵홀더는 탈착식인데 이를 제거하면 커다란 내부 공간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USB 3.0 포트를 달았다. 아직 자동차에는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았기에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오버헤드 콘솔을 바라보면 텔레매틱스 서비스 버튼들이 있다. 좌측은 일반 문의 및 정비 사항 관련의 재규어 어시스턴트 서비스, 우측은 사고 발생 때 사용할 수 있는 SOS 긴급출동 서비스를 위한 것이다. 소형 SUV로는 보기 쉽지 않은 기능이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국내에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을 칭찬할 만하다.
뒷좌석은 충분하다. 소형급으로는 충분히 넓은 공간이다. 레그룸에서 차량 크기의 한계를 느끼게 되지만 의외로 헤드룸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특히 쿠페와 유사한 루프라인을 갖췄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의외였다. 여기에 뒷좌석 승객을 위한 USB 포트를 3개나 준비했다. 젊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는 얘기다. 반면 뒷좌석 루프 쪽에 손잡이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를 추가해 주면 좋겠다.
트렁크 공간은 484리터를 갖는다. 뒷좌석을 폴딩 하면 1,141리터까지 공간이 늘어난다. 파워 아울렛과 전동식 테일게이트 등의 구색도 좋다. 다만 쿠페와 닮은 루프 형상 때문에 화물을 높이 쌓지는 못한다.
참고로 우리가 만난 테스트카는 국내에 미디어 시승용으로 들여온 데모 에디션(Demo Edition)이다. 이름 그대로 일반인에게는 판매되지 않고 E-페이스가 어떤지 보여주는 용도에 초점을 맞춘 미디어 전용 시승차다.
그렇다 보니 외관 외에 실내 구성도 다소 빈약하다. 계기판도 일반적인 아날로그 다이얼 방식인데, 상급 트림에는 12.3인치의 디스플레이가 쓰인다. 시트에는 메모리 기능도 없었다. 특히 액티브 세이프티 부분에서는 차선유지 보조 기능 정도만 갖춰져 있다. 그것도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이 아닌 차선을 넘었을 때만 보정해 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 오토하이빔, 자동 주차, 헤드-업 디스플레이 기능은 갖고 있었다. 참고로 전방 추돌 경고나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사각 경고 등의 기능은 옵션으로 적용되는 사양이다.
데모 에디션(미디어 전용 테스트카)의 부실함을 살펴봤으니 본격적으로 테스트를 진행해보자.
운전석에 탑승하면 높은 시야부터 다가온다. 차체의 지상고도 높은 편이지만 시트 자체도 높은 위치에 있다. 기아 쏘렌토와 비교해 살짝 낮은 정도랄까? 그동안 만나왔던 소형 SUV들이 해치백 보다 살짝 높은 정도였다면 E-페이스는 SUV를 탄다는 생각을 쉽게 심어준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걸면 가솔린과 디젤 엔진의 중간쯤 되는 음색을 낸다. 참고로 지금 국내 시판되는 E-페이스는 가솔린 엔진 하나뿐이다. 정숙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아이들링 소음을 확인해본 결과 41.0 dBA 정도였다. 이는 2.0 디젤 엔진을 사용했던 볼보 XC60 D4와 유사한 수치다.
최근 모듈러 엔진을 사용하는 제조사가 많아지고 있다. 모듈러 엔진이란 한가지 엔진을 개발한 뒤 가솔린과 디젤은 물론 3, 4, 6기통 등을 오가게 규격화 시킨 것을 뜻한다. 재규어랜드로버의 인제니움 엔진도 모듈러 엔진에 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엔진들은 다소 거친 음색을 낸다는 공통된 아쉬움을 갖는다. 볼보의 모듈러 엔진도 그렇다.
E-페이스는 아이들링 때 소폭 거친 음색을 들려줬지만 막상 움직임이 시작되면 부드럽고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그 덕분에 주행 때의 소음이 중형 세단 수준까지 낮아졌다.
사실 주행이 이뤄지면 엔진 보다 달라진 성향의 서스펜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진다. 일상 주행 때 조금은 통통 튀는 듯한 느낌이 재밌다. 그동안 재규어는 부드러운 서스펜션을 중심으로 차를 만들었다. 기존과 다른 노선이다. 물론 노면이 좋지 않을 때 대부분의 정보가 운전자에게 전달된다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처리할 때 경박스럽지 않다는 것이 좋다. 같은 단단함이라도 운전자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서스펜션이 있는가 하면 깔끔하게 처리해 내는 셋업을 갖춘 경우도 있다. 사실 서스펜션 기술, 노하우의 차이도 여기서 나온다. 단단한 서스펜션이 얻는 이점, 하지만 이로 인한 단점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무게가 실린다는 것이다.
가속페달을 밟는다. 부드럽게 미는 느낌과 더불어 속도가 오른다. 제원상 출력은 249마력, 최대토크는 37.2kg.m 수준이다. 하지만 체감은 그에 밑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을 측정한 결과 9.17초로 나왔다. 조금 더 빠른 성능을 발휘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성능이 낮게 나왔다. 우리 팀은 그 원인을 3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연료다. 2.0리터 터보 엔진으로 250마력 정도를 내는 가솔린 엔진치고 일반유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테스트카는 일반유로 길들여진 상태였다. 3.0리터 급 엔진에서 300마력 내외를 뽑아낸다면 성능 저하가 크지 않지만 2.0리터 급 엔진이라면 연료에 따른 성능 편차가 커진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과거 2.0리터 터보 엔진은 연료에 따라 최대 100마력이 떨어지는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 재규어 E-페이스도 이로 인해 최소 1초 정도는 손해를 봤을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는 휠과 타이어의 조합이다. 커다란 휠은 분명 멋있지만 19인치 휠 크기는 빠른 가속력을 내는데 부담이 된다. 당연히 크고 무거운 휠을 쓸수록 가속 시간은 늘어난다. 쉽게는 18인치가 가장 빠르고 이후 19인치, 20인치 순으로 가속시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또한 모든 제조사들은 가장 작은 사이즈의 휠과 타이어를 통한 가속성능을 발표하는 것이 관례다.
마지막으로는 차체 무게다. 우리 팀이 측정한 E-페이스의 실제 무게는 1,868 kg 수준으로 소형 SUV로는 다소 무거운 편에 속했다. 이는 발진 가속 보다 체감 성능을 낮추는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고급 휘발유를 사용하고 18인치 휠을 사용해야 제조사가 말하는 7초대 성능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가속 성능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에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놀라운 부분은 고속주행 안정성이었다. 조금은 통통 튀는 감각을 전하던 E-페이스의 하체. 하지만 속도가 오르자 탄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안정감을 살려내기 시작했다. 앞서 체감을 무디게 만들던 차체 무게도 일정 부분 도움이 됐다. 시야가 높은 SUV 특성상 고속 안정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반면 E-페이스에서는 그런 아쉬움이 없었다.
재규어는 E-페이스 출시 전부터 잘 달리는 SUV라는 점을 강조했다. 단순히 생긴 것만 F-타입을 따라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분명 E-페이스는 달릴 때 만족감이 높았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고 페달을 조작하는 복합적인 조작을 거치자 E-페이스는 상당히 깔끔한 조작감과 움직임을 만들어 냈다. 또한 주행 질감 자체가 고급스럽다. 운전을 할 때의 느낌에서 싼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사실 이런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렵다. 단순히 좋고 비싼 부품을 사용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부분까지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E-페이스는 소형급 모델에서 느낄 수 없는 고급스러운 감각을 보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코너를 공략하면 한 번 더 놀라게 된다. 날카롭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코너를 돌아 나가기 때문이다. 우리 팀은 프리미엄 소형 SUV 중 볼보 XC40의 주행감각과 성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코너를 파고드는 속도, 핸들링 측면에서 보면 E-페이스가 한수 위다.
스티어링 휠을 조작할 때 차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XC40쪽이다. 하지만 실제 차량의 움직임이나 운전자가 제어하는 측면에서 보면 E-페이스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절대 XC40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E-페이스가 이 부분에서 월등하고 이해하면 된다.
여기엔 4륜 시스템의 영향력도 포함된다. E-페이스의 4륜 시스템의 꽤나 공격적이다. 전후 구동 배분도 100:0에서 0:100까지 가능하다. 물론 매번 이렇게 극적으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을 오가는 배분 능력을 갖췄다고 보면 된다. 보편적인 SUV들은 언더스티어를 보이지만 E-페이스는 코너 공략 방법에 따라 후륜에 구동력을 집중시키며 성능 중심의 전개를 해나갈 수 있다. 마치 후륜구동차를 타는 느낌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타이어 성능도 매우 뛰어나다. 235mm의 폭을 갖는 타이어는 굿이어의 Eagle F1 Asymmetric3 SUV라는 제품이다. 어느 정도 코너링 속도를 예상하고 진입해도 민망할 정도로 여유가 많다. 기대 이상의 접지력을 낸다는 얘기다. 타이어는 E-페이스에게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하지만 타이어 성능이 뛰어나기에 브레이크 시스템이 받는 스트레스가 조금 더 가중되는 것 같다.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6.89m. 테스트가 반복되면 제동거리가 최대 40m까지 늘어났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현상은 없었다. 즉, 차량 무게와 타이어 성능을 제동 시스템이 버거워 한다는 느낌이 짙었다. 이 부분에 대해 정리하자면 평균 제동거리는 약 38~39m 내외로 볼 수 있다. 떨어지는 성능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기 좋은 모델인 만큼 제동 성능에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변속기는 ZF의 전륜구동형 9단 자동변속기를 쓴다. 약 120km/h 전후의 속도에서 9단이 연결될 정도로 기어비는 넓다. 저단에서는 적절하게 촘촘한 기어비를 갖고 있는데 스포티한 주행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기어를 올리는(쉬프트업)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만 내려주는(쉬프트다운) 속도는 평이한 수준이다. 하지만 만족도는 높다. 초창기 ZF 9단 변속기는 의외로 많은 아쉬움을 줬다. 하지만 지금의 것은 만족감이 커졌다.
주행 연비는 어떨까? 가솔린 엔진+1.8톤의 무게+자동변속기+4륜 시스템의 조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매우 뛰어난 연비를 보이긴 어려운 조합을 갖고 있다.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주행 조건에서 14km/L 이상의 연비를 보였다. 다만 가감속이 잦거나 도심 시내에서 주행을 한다면 7km/L 대에 머물게 된다. 우리 팀의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후 보여준 연비는 8km/L 대 후반이었다.
재규어 E-페이스는 의외로 재미난 차였다. 그리고 재규어가 이 차를 개발하며 얼마나 돈을 아끼지 않았나를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하체를 보는 것. 메르세데스-벤츠는 당연히 좋다. 비싼 차니까. 반면 BMW 일부 모델은 각종 암이나 링크들이 점점 부실해지는 모습이다. 일부 모델은 현대차와 비교해도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정도다. 물론 셋업 노하우 격차가 크긴 하지만 말이다.
반면 하체를 보면 놀라는 브랜드가 있다. 먼저 캐딜락이다. 컴팩트세단 ATS는 분명 오버 스펙의 하체를 갖고 있으며, CT6는 오픈휠 레이스카의 푸시로드 서스펜션 링크를 연상시키는 구조를 보여 우리 팀을 놀라게 했다. 이 부류에 속하는 것이 바로 재규어다. 재규어가 강조하는 후륜 인테그럴 멀티링크 서스펜션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 E-페이스도 동일한 하체 구조를 갖고 있다.
하체 구성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운전하면 바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최근의 재규어는 독일 3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뛰어넘는 주행 감각을 만들어내고 있다. 타보면 돈값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계도 있다. 경쟁 모델인 볼보 XC40은 반자율 주행 기능을 기본 탑재하면서 가격 이점까지 득했다.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잔고장과 A/S 서비스 문제도 풀어야 한다. 실제 서비스의 문제가 아닌, 이미지 변경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가 꽤 큰 단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E-페이스가 소비자들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너무나 안타까울 것 같다. 이것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저평가 될 차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명 재규어 연구진은 대단한 소형 SUV를 만들어냈다. 이후의 남은 과제는 재규어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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