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시대를 바꾸는 새로운 기준, 재규어 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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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가 가장 치열하고 힘든 싸움판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수입 컴팩트 세단 시장의 변화를 예고하며 출시한 XE가 그 주인공이다. 독일 3사가 휘어잡고 있는 세그먼트에서 어떤 자신감으로 도전했을까? 승산이 있기는 한 걸까? 다양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운전해보니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히려 시장을 흔들어 놓고 남을 강력한 믿음도 받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게임 체인저’를 외치는 재규어 XE를 만나봤다.
그 누가 봐도 재규어
도전의 시작은 디자인에서부터 나온다. 사실 전체적인 실루엣을 비롯해 큰 덩어리로 보면 그리 특별한 건 없다. “너무 심심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재규어만의 섹시한 디자인 특징이 가득 스며있다. 보닛 위 캐릭터라인과 날렵한 헤드램프, 그 속을 채우는 ‘J’자모양 주간운행등이 대표적이다. 또, 단순한 사각형 그릴은 재규어 심볼 로고를 통해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여기에 뒤쪽으로 갈수록 완만하게 흐르는 지붕선은 쿠페형 세단을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컴팩트 세단의 젊음과 개성, 비율까지 삼박자를 맞췄다. 뒷모습은 빈틈없이 꽉 들어찼다. 커다란 테일램프는 U자형 제동등을 통해 다른 모델들과 패밀리-룩을 맞췄고 로고와 뱃지, 모델명 레터링도 빠짐없이 챙겨 넣었다. 여기에 크기를 키운 공기흡입구와 날카로운 사이드 스커트, 전용 18인치 휠, 휀더에 붙어있는 R 스포트 뱃지 등은 기본형과 다른 특별함을 내세웠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의 완성
실내 역시 깔끔하고, 단정하며, 고급스럽다. 전체를 감싸는 바깥 부분은 둥글게 디자인해 아늑한 느낌을 살렸고, 센터페시아를 비롯한 가운데에는 정갈한 디자인과 돌출부위를 없애 개방감을 높였다. 2단계로 나뉜 문짝 버튼과 낮은 송풍구 위치 등은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눈에 익고 사용법이 익숙해지면 XE처럼 감각적인 실내 디자인을 가진 차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실내를 꾸미고 있는 소재에서도 동급 경쟁모델을 뛰어 넘는다. 분명 엔트리 모델을 타고 있는데 소재와 구성은 웬만한 중대형 세단 그 이상을 보는 것 같다. 질 좋은 가죽은 시트와 스티어링 휠, 문짝 등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모든 부분에 덮었고, 블랙 하이그로시 센터페시아와 스르륵 올라오는 조그셔틀 변속기, 단정한 하늘색 조명등에서 재규어만의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성이 가득
재규어 XE의 가장 큰 매력은 운동성능이다. 시승차에는 재규어-랜드로버 그룹이 독자개발한 인제니움 엔진이 탑재됐다. 4기통 2.0리터 터보차져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를 발휘한다. 처음 시동을 켜면 꽤 거친 디젤음이 귓가를 거슬린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흔하디 흔한 2리터 디젤 엔진이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주행에 들어가면 소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엔진 회전부터 급가속 및 추월가속, 실용영역은 물론 고속주행에서도 지금 것 경험한 유럽차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때로는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또 때로는 강력하게 힘을 몰아 붙이는 감각이 수준급이다.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고르게 숨을 쉬다가도 급히 힘을 쏟아야 할 때는 독일차 못지 않는 역동적인 운전 솜씨도 뽐낸다. 가볍고 단단한 알루미늄 차체와 8단 자동 변속기, 하체 세팅 등이 고루 맞물려 균형감을 살렸다. 여기에 코너 안쪽에서 뒷 바퀴에 제동을 걸어 안정적인 동선으로 코너를 탈출하는 토크백터링 기술과 주행 조건에 맞춰 운전 모드(기본, 에코, 다이내믹, 윈터)를 바꿀 수 있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 등은 운전의 즐거움과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서스펜션은 감각은 놀라웠다. 전륜 더블 위시본과 후륜 인테그럴 링크 방식을 조합했는데, 날카로운 핸들링을 도와주면서도 부드럽고 민첩한 주행 성능을 이끌어 내는데 뛰어났다. 또한, 그 과정에서 스릴보다는 불안함 없이, 노면의 굴곡을 유연하게 걸러냈다. 이 세그먼트의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는 BMW 3시리즈와 겨뤄도 손색이 없고, 오히려 재규어만의 신사적이면서 날카로운 감각이 더 놀라울 따름이다.
주행을 하면서 자꾸만 드는 생각은 ‘작정하고 만들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예전 X타입의 실패를 밑걸음으로 이번에는 제대로 갈고 닦아 만든 흔적이 보인다. XE는 무작정 좋은 부분만 크게 부각되어 툭툭 넣은 게 아닌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면서도 경쟁차종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정성이 차 안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있고, 운전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판을 바꿀 게임은 지금부터!
시대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바꾸는 건 기존 흐름이 지루해질 때, 또 누군가 새로운 혁신을 거칠 때 이뤄진다. 현재 수입 컴팩트 세단 시장이 그렇다. 독일 3사가 팽팽하게 잡고 있는 이 흐름을 누군가 깨주길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XE가 있다.
하루아침에 결과가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쟁차종들도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재규어가 모르고 차를 만들진 않았다. 때문에 남의 것을 가져다 붙인 다던지 어느 곳 하나 서툴거나 대충 만든 구석이 없다. 알루미늄 차체와 독자개발한 듬직한 인제니움 엔진, 탄탄한 서스펜션은 물론 잘 세팅된 주행 감각과 재규어만의 섹시한 디자인까지 XE가 내세울만한 장점이 너무 많다.
재규어가 내세운 ‘게임 체인저’란 단어는 함부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그 만큼 자신감 있고, 공 들여 만들었다는 걸 증명하는 단어다. 2014년 9월 런던을 배경으로 헬리콥터에 실려 템스강 상공을 나르던 XE를 기억한다. 그 때의 그 힘찬 비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스스로 ‘게임 체인저’라고 자부하는 XE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야심찬 날개 짓이 향후 판을 어떻게 흔들어 놓을 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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