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 1.35 4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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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형 SUV. 이제 종류도 많아졌다. 국내에 처음 소형 SUV가 등장한 것은 2013년 쉐보레가 트랙스를 내놓으면서부터다. 트랙스가 소형 SUV 시장을 개척했다면 르노삼성 QM3가 길을 뚫었고 쌍용 티볼리가 신나게 달렸던 것이 국내 소형 SUV 시장이었다.
지금은 소형 SUV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현대 베뉴, 코나, 기아 스토닉 셀토스, 니로, 쏘울, 쌍용 티볼리, 르노삼성 QM3가 있다. 여기에 코나와 니로, 쏘울은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버전도 있으니 선택의 폭이 정말 넓어졌다.
국내 최초로 소형 SUV를 제안했던 쉐보레가 이번에는 고급 소형 SUV 시장에 진입했다. 2013년 당시를 회상해보자. 트랙스가 나왔을 때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QM3가 예쁘게 치장하고 디젤 특유의 연비, 수입차 신분으로 다가오니 비싸도 잘 팔렸다. 티볼리는 시작가는 저렴하게 만들어 놓고 저렴하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진입했다. 하지만 기본형은 거의 생산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비싼 상급 트림으로 유도하며 옵션 잔치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털었던 것. 차량도 엉성하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잘 팔렸다. 첫차 소비자들에게 기준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현대와 기아차가 소형 SUV를 엔트리급과 고급형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형 SUV 가격이 점차 높아졌다. 셀토스는 소형 SUV로는 놀라운 가격 3천만 원 이상도 요구했다. 소형 SUV라는 것은 그저 세그먼트 구분일 뿐, 실제로 중형차보다 비싼 몸값을 받게 된 것이다.
쉐보레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트랙스의 상급 모델격 소형 SUV를 출시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소형 고급형 SUV 시장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여기엔 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아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모델명은 트레일블레이저다. 한때 중형급 SUV로 판매됐었다 사라진 이름을 부활시킨 것이다.
현대 코나와 기아 셀토스가 소형 SUV 가격이 높아진 덕분에 트레일블레이저의 가격이 꽤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 팀은 소형 SUV 가격 높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비싼 가격을 요구할 만큼의 상품성이라도 갖춰야 한다. 기아 셀토스가 상당히 잘 나온 상황에서 트레일블레이저가 셀토스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먼저 이 차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GM의 VSS-F 플랫폼으로 개발됐다. Vehicle Strategy Set–Front라는 이름으로 다소 장황해 보이는데, 한마디로 모든 종류의 전륜구동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 유연성이 대단해서 경차급 차부터 대형 세단까지 대응 가능한 정도다.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모델이 바로 트레일블레이저다. 형제 모델로 뷰익 앙코르 GX가 있다. 트레일블레이저가 블레이저의 소형급 버전이라면 앙코르 GX는 앙코르(트랙스의 뷰익 버전)를 커다랗게 확대한 버전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두 차량 모두 한국지엠이 생산해 수출한다.
디자인은 중형 SUV 블레이저의 축소판이다. 전면부는 거의 똑같다. 분리형 라이트 디자인이 적용됐으며, 새롭게 해석한 듀얼 포트 그릴도 강한 인상을 만든다. 측면은 각진 형태의 루프라인이 독특한 이미지를 전한다. 특히 C-필러 디자인을 상어 지느러미를 연상시키도록 꾸몄다는 점도 재미있다. 캐릭터 라인도 입체적이다.
후면부도 굵은 선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딘가 모르게 현대 투싼이나 쌍용 코란도와도 닮았다. 듀얼 머플러가 적용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전동식 테일게이트도 갖춰진다. 어두워지면 바닥에 조명이 들어오는데, 이 부분을 발로 차면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센서 위치를 몰라 엄한 곳에 발을 허우적거릴 일이 없어 좋다. 테일게이트가 열리는 높이도 조정할 수 있다.
소형 SUV 라지만 크기가 꽤 크다. 기존까지 국내에서 가장 큰 소형 SUV였던 기아 셀토스보다 최대 50mm 길고 10mm 넓으며 40mm 높다. 휠베이스도 10mm 길다. 상급 모델인 현대 투싼이나 쌍용 코란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 나지 않는데, 미국인들의 기준에서 ‘소형’이 이리도 크니 이쿼녹스 조차 작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참고로 이쿼녹스는 현대 투싼과 싼타페 중간 크기다.
실내 테마도 강한 모습을 갖는다. 여기저기 각진 선들이 눈에 띈다.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도어 패널까지 새로운 디자인이다. 참고로 미국 본토에서는 뷰익 앙코르 GX도 함께 팔리기 때문에 실내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다는 점이 지적된다. 하지만 국내 기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아무래도 계기판에서는 차량 등급의 한계가 느껴진다. 디지털 계기판이 아니라는 점이 어색해 보일 정도니 요즘 자동차 트렌드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 실감 난다. 물론 다른 동급 모델들도 유사한 모습이다. 계기판의 중앙 모니터에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심지어 어떤 장치가 연비에 영향을 주는지도 알려줬던 점이 흥미롭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반응 속도가 빠르다. 미국 브랜드답게 GUI 디자인이 투박하지만 직접 사용했을 때 만족감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후방카메라는 HD 카메라를 사용해 선명하게 보인다. 현대 그랜저가 채도는 낮아도 선명한 화질을 보였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그냥 봐도 무난한 화질을 보여준다.
여기에 무선 애플 카플레이 탑재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정도만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했으니, 대중 브랜드로는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은 애플 카플레이 실행 후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페어링만 해주면 된다.
안드로이드 오토도 무선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구글이 국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유선으로만 연결된다. 물론 구글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면 무선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데크까지 있으니 선 하나 없이 스마트폰 충전을 하면서 자동차와 연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USB 타입 A는 물론 타입 C 포트까지 최신 규격도 갖췄다. 트렌드를 잘 따라간 예다.
공조장치 버튼 배열은 깔끔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온도 다이얼 부분 조작감이 저렴하게 느껴진다. 조금 가볍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향후 묵직한 느낌으로 개선되면 좋겠다.
시트는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한다. 기존 쉐보레 차량들은 통풍과 열선을 같은 불빛으로 보여줬는데 이제 색을 구분하고 있다. 기존 고집을 꺾은 것인데, 아직도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기어 레버가 대표적이다. 토글 버튼을 통한 매뉴얼 조작 방식은 여전히 아쉽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무릎 공간과 머리 공간 모두 만족스럽다. 점차 컴팩트 SUV 영역이 침범 당하는 느낌이다. 4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바닥에 돌출 공간이 높지 않다는 점도 좋았다. USB 포트도 마련했는데, 후석 송풍구가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특히나 이 부분은 경쟁 브랜드가 바이럴 포인트로 삼는 부분인 만큼 향후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USB 포트 옆에는 230V 포트를 위해 남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보인다. 페이스리프트 때 추가되지 않을까?
트렁크 공간도 넉넉하다. 여기에 바닥 높이를 2단으로 조정할 수 있다. 공간 활용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파노라마 선루프도 갖추고 있는데, 소형 SUV 등급으로는 상당히 넓은 면적이다.
안전 장비도 다양하게 탑재된다. 자동차와 보행자까지 인식 가능한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전방 차량 거리 감지,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차량 출발 알림,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사각 및 후측방 경고, 오토 하이빔 등의 기능도 탑재됐다.
하지만 차로 유지 기능이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물론 안전 기능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타사들이 내세우는 전략(?)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GM 차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에는 분명하다. 물론 소비자들도 이 기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해야 한다. ACC와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을 묶어 구현하는 반자율 주행 기능이란 것이 정확히는 마케팅용으로 쓸 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 주행과 마케팅 용어로 만들어진 반자율 주행 기능은 분명 다르다.
전방 차량 출발 알림 기능은 시각은 물론 청각으로도 운전자에게 경고해주는데, 별도의 메시지 없이 자동차 모양 아이콘이 깜빡이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에는 2가지 엔진과 2가지 변속기가 탑재된다. 이 모두가 일반적인 사양은 아니다. 엔진은 3기통이다. 기본형에는 1.2리터 터보, 상급에는 1.35리터 터보 엔진이 쓰인다. 변속기는 CVT가 기본이다. 이중 1.35리터 모델에는 9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 9단 변속기가 탑재되면 4륜 시스템도 추가된다. 테스트 모델은 3기통 1.35리터 엔진과 9단 변속기, 여기에 4륜 시스템이 조합된 최상급 사양이다.
3기통 엔진에 9단 변속기의 조합. 여기에 4륜 구동까지 갖췄다? 궁금한 운동 성능을 알아보기 앞서 정숙성부터 확인했다. 시동을 걸면 3기통 엔진이 움직인다. GM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3기통 엔진에 12가지 신기술을 넣어 소음과 진동을 크게 감소시켰다고. 실제 그렇다. 스파크의 3기통 엔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수준의 정숙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4기통이나 6기통 엔진을 넘어설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통에 따른 체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냉간 시가 아니라면 일상 주행에서 기통수를 구분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약 38dBA 수준을 보였다. 참고로 1.5리터 터보 엔진과 1.6리터 터보 엔진이 탑재된 쌍용 티볼리와 기아 셀토스는 약 39dBA 수준을 나타냈다. 수치만 놓고 보면 트레일블레이저가 더 조용하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의 음색이 조금 더 귀에 잘 들리는 느낌이라 체감적으로는 그 차이가 크지는 않다.
진동도 약간 존재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겨울철 냉간 시에 조금 더 잘 느껴진다. 예열이 끝난 상황, 차가 움직일 때는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엔진 특성으로 봐야 하기에 타협이 필요해 보인다.
주행을 하면 먼저 느껴지는 정숙성. 아이들 상태에서는 소음과 진동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주행이 시작되면 과연 이차가 소형차일까 싶다. 소형급으로는 충분한 수준이다. 시속 80km의 속도에서 측정된 정숙성은 60dBA. 셀토스가 60.5dBA을, 티볼리는 61.0dBA, 투싼이 60dBA이었다. 상급 모델과 맞먹는 수준의 정숙성은 트레일블레이저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참고할 사항이 있는데, 트레일블레이저는 4기통 1.5~1.6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경쟁 모델보다 높은 엔진 회전수를 사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가속 때 엔진 소리가 조금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물론 3기통 엔진의 장점도 있다. 3기통 엔진은 4기통 엔진보다 2차 진동이 적다. 통상 4기통 엔진은 2500rpm과 4000rpm 구간에서 진동이 커지는 구조적인 제한이 따른다. 반면 3기통 엔진은 이 영역에서 자유롭다. 종류에 따라 밸런스 샤프트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같은 배기량이라도 실린더가 줄어들면 열손실도 감소한다는 이점도 생긴다. 창문이 3개인 것과 4개인 것 중 어디에서 더 빨리 열이 빠져나갈지 생각해보면 쉽다. 배기 맥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터보차저의 효율도 끌어올리기 쉽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부분이다. 무작정 3기통 엔진이라고 ‘저급’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트레일블레이저의 가속페달을 밟으면 3기통 엔진의 독특한 엔진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엔진은 156마력과 24.1kgf.m의 토크를 발휘한다. 참고로 1.2리터 사양은 139마력과 22.4kgf.m 성능을 보인다. 기존 1.4리터 터보와 유사한 성능을 내는 것이다. 1.35리터는 기존 1.5리터 엔진을, 1.2리터 엔진은 1.4리터 엔진을 대체하는 성격으로 보면 된다.
가속페달을 밟아 나간다. 매우 강력한 가속은 아니지만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100km/h 이상 영역에서도 지치지 않는 가속력이 돋보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성능을 측정했다. 결과는 9.52초. 쌍용 티볼리 1.5 터보의 9.73초를 앞선 성능이다. 물론 177마력의 셀토스(8.61초) 보다는 느리다. 코나(8.36초) 또는 200마력대 쏘울 부스터(7.81초)와 비교하면 격차가 벌어진다. 하지만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성능을 충분히 커버하는데 문제는 없다. 부족하다고? 여담이지만 이 성능은 지난해 우리 팀이 테스트한 스포티지 2.0 디젤, 투싼 1.6 디젤 보다 빠른 성능이다.
우리 팀은 한가지 재미난 시험도 했다. 당초 외관 차이를 보려고 현장에 가져간 ACTIV 트림의 가속 성능도 계측한 것. ACTIV 트림은 17인치 휠과 타이어를 쓴다. 구조적으로 가속에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결과는 RS가 앞섰다. 동일한 옵션, AWD를 가지고 있기에 ACTIV가 유리해 보였지만 미미하게 RS가 빨랐다. 또 하나 RS는 AWD 구동모드에서 조금 더 빠른 기록을 냈고, ACTIV는 2WD 모드에서 더 빠른 성능을 보였다. 앞서 ACTIV에는 17인치 휠이 쓰인다고 했는데, 이 경우 보다 가벼운 무게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목적 타이어는 무게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을 때도 많다. 물론 이 두 트림간 가속성능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트레일블레이저의 가속성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국내 소형 SUV 중 딱 중간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의 강점이 살아나는 부분이 있으니 고속주행 안정감이다. 최근 국산차와 일본차 모두 수준급의 고속 안정감을 갖는다.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의 편안함과 고속 안정감 부분은 미국, 특히 GM이 잘 하는 영역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한 힘으로 편하게 밀어붙이는 느낌. 여기에 고속에서도 불안함 없이 안정적으로 노면과 일체화되는 감각은 트레일블레이저만의 강점이 된다.
승차감도 장점이다. 적당히 부드럽게, 불안하지 않게 차체를 잘 잡아주는 서스펜션이 좋다. 특히 서스펜션의 처리 과정이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면으로부터 작은 충격이 발생하면 짧고 예리하게 충격을 전하는 차량들이 있다. 반면 뭉툭하면서 묵직한 감각으로 전달하는 차도 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후자다.
승차감을 결정짓는 요소, 여러 가지 구조적인 원인이 한몫한다. 예를 들어 무게에서 오는, 휠베이스에서 결정되는, 섀시 성격에 따른 승차감 차이가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차가 작고 가벼울수록 좋은 승차감을 만들기 힘들다. 고 무거울수록 좋은 승차감을 만들기 쉽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소형 SUV들은 한결같이 딱 ‘소형차’ 범위 안에 있는 승차감을 전달했다. 셀토스는 변속기(DCT) 특성으로 저속에서 말 타는 현상이 있어 승차감에서 점수를 잃었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만큼은 동급에서 최고 수준, 조금 더 과장하면 한 체급 위 등급의 승차감을 낸다. 후륜 서스펜션이 토션빔인가 멀티링크인가를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 시장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하우다. 과거 포르쉐는 타사 모델들이 더블 위시본으로 성능을 잡아 나가던 시절에도 맥퍼슨 스트럿 구조로도 이상적인 핸들링과 성능을 만들어 냈다. 구조가 아닌 셋업 능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다. 물론 같은 능력을 가진 브랜드가 두 가지 서스펜션을 만든다면 당연히 구조가 복잡한 서스펜션이 더 좋은 성능을 낸다. 하지만 두 브랜드 간 기술 수준이 다르다면 구조에 대한 약점을 셋업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집에서 1등급 한우로 구운 스테이크, 미쉐린 스타급 셰프가 미국산 또는 호주산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무조건 한우가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노하우에 따른 셋업(?) 능력이다.
잘 달리는 것만큼 제동성능도 중요하다. 브레이크 페달 감각은 쉐보레답지 않게 의외로 초반 응답성을 강조한 설정. 현대 기아차 르노삼성만큼은 아니지만 여성 소비자들에 어필하기 위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예민한 조작 능력보다 쉬운 조작성을 택할 것인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최근 아우디도 초반 응답성을 강조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쉬운 조작성이 트렌드가 되는 것일까?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거리는 38.17m였다. 참고로 트랙스는 38.77m였다. GM을 비롯한 캐딜락 모델은 보통 37~38m 대를 보여준다. 기아 니로(37.46m)와 쏘울(37.70m), 셀토스(37.95m)는 모두 37m 대를 기록해 최단거리 부분에서 앞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38~39m 내외의 성능을 꾸준히 보인 것은 트레일블레이저의 경쟁력이 된다. 일정한 성능을 낸다는 것이다.
각 모델명 최단 최장 거리는 다음과 같다. 최단거리에서는 나은 모습이었지만 후반에 밀리는 거리차가 조금 크다.
- 기아 셀토스 최장 제동 거리 : 40.37m
- 기아 니로 최장 제동 거리 : 39.70m
- 기아 쏘울 최장 제동 거리 : 39.44m
최대 제동성능을 끌어내는 과정도 쉽다. 페달이 너무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트레일블레이저는 엔진이 브레이크 유압을 만들지 않고 전기모터가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발생하는데, 트레일블레이저에서는 거의 같은 아쉬움이 나오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전기모터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와인딩 코스로 자리를 옮겼다.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기대감도 높아진다. 스티어링 휠을 감으며 코너에 들어서자 일체감 있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전륜의 반응이 너무 느리면 운전 감각 부분이 아쉬워지고 반대로 너무 빠르면 불필요하게 민감할 수 있다. 이 사이에서 잘 조율하는 노하우가 필요한데, 트레일블레이저가 딱 그렇다. 생각하는 만큼 정확하게 움직여준다. 후륜이 늦게 따라오지 않고 일체감 있게 달리는 감각에서 이 차량이 소형차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GM 차들은 이런 부분에 강하다. 소형차부터 본격 스포츠카까지 다뤄본 그들의 노하우 덕분이다.
경쾌하지만 경박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소형 SUV들은 코너를 돌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요철을 만나면 ‘텅’거리며 기분 나쁘고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도 여유롭게 처리해내며 안정감 있는 감각을 유지했다.
차량의 주행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변속기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먼저 토글 버튼으로 변속을 해야 한다는 점은 불편하다. 9단의 기어비는 트레일블레이저에 잘 맞게 배분됐지만 기어를 내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면 좋겠다. 반면 기어를 올리는 속도는 빠르다. 특히 1단에서 2단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구조적으로 기어를 바꿔 끼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기어비만 변화시킨다는 개념으로 설계됐다. 1단에서 2단 만큼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 포르쉐 PDK보다도 빠른 수준이다. 하지만 코너에서 달릴 때는 기어를 내리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 때문에 체감적인 속도는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
코너를 돌아가는 속도도 적당하다. 매우 높은 그립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차량 성격상 충분한 접지력을 만들어준다. 18인치 휠에 장착되는 타이어는 한국타이어의 키너지 GT. 225mm 너비를 갖는다. 소형 SUV라서 그럴까? SUV 전용 타이어를 뜻하는 별다른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타이어에서 특별히 큰 소음이 만들어지거나 승차감도 해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을 갖는다. ACTIV 트림에는 한국 타이어의 다이나프로 AT2라는 모델이 장착되는데, 다양한 노면 대응을 위한 타이어다. 오프로드 성능을 기대할 수 있지만 차량 성격이 온로드에 맞춰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키너지 GT 쪽이 낫다.
연비는 어땠을까? 100km/h의 속도로 주행했을 때 약 15km/L 전후의 효율을 보여줬다. 오르막과 내리막 교차가 많은 구간에서는 14.5km/L 수준도 보인다. 반면 평탄한 노면이 지속되면 16km/L 때로는 그 이상의 수치를 보이기도 한다. 3기통 저 배기량 엔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18~20km/L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는 욕심이다. 저 배기량 엔진 특성상 오르막에서 연비가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급 셀토스와 비교한다면 평지에서는 유사한 수준, 오르막이 많은 구간에서는 배기량에 여유가 있는 셀토스가 소폭 앞선다고 보면 된다.
제조사 발표 기준, 트레일블레이저는 3종 저공해차 인증을 받았다. 세금 혜택을 비롯해 공영주차장 할인 등 이점도 있다.
연료탱크는 50리터 수준이다. 가솔린 2만 원 정도만 넣어도 연료탱크의 4분의 1 이상은 차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만큼 연료 게이지도 빨리 하락한다. 또, 가솔린 터보 엔진 특성상 운전자가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연비도 큰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저 배기량 터보 엔진일수록 운전 방법에 따른 연비 차이가 커진다. 특성을 잘 이용하면 좋은 연비, 마구 몰아 대면 소형차 수준을 넘어선 나쁜 연비를 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GM은 차량의 기본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트레일블레이저도 잘 만들어졌다. 특히나 승차감에서 이점이 많다. 이런 내용을 소비자들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장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쉐보레 차량 구입을 꺼려 하는 이유 2가지가 있다. 먼저 가격이다. 차는 좋지만 차 값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구성을 갖춘 다른 차를 노리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다음은 브랜드 이미지다. 언제 철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를 위한 보다 확실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
가격은 잘 나왔다. 아니, 잘 나온 것이 아니라 잘 나온 것처럼 보인다. 트랙스가 처음 나왔을 때 가격 때문에 온갖 매질을 혼자 다 맞았다. 이를 틈타 QM3와 티볼리가 편하게 질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시장의 중심인 현대 기아가 가격을 올려줬으니 트레일블레이저가 비싸지 않게 보인다. 물론 트림별 가격 구성도 잘하긴 했다.
그러나 최상급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한 구성은 추천하기 어렵다. 셀토스 때도 그랬지만 3000만 원 이상 주고 소형급으로 접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중간 트림인 프리미어 혹은 RS에 적절한 옵션을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격 좋고 구성도 좋다.
차는 정말 잘 만들었다. 그럼 이제 하나 남았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지 여부다. 연구원들이 피땀 흘려 좋은 차를 만들었으니 이제 한국지엠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되돌려 놓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다시금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지엠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일단 지켜보자!
지금은 소형 SUV 춘추전국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현대 베뉴, 코나, 기아 스토닉 셀토스, 니로, 쏘울, 쌍용 티볼리, 르노삼성 QM3가 있다. 여기에 코나와 니로, 쏘울은 하이브리드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버전도 있으니 선택의 폭이 정말 넓어졌다.
국내 최초로 소형 SUV를 제안했던 쉐보레가 이번에는 고급 소형 SUV 시장에 진입했다. 2013년 당시를 회상해보자. 트랙스가 나왔을 때 소비자들은 비싸다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QM3가 예쁘게 치장하고 디젤 특유의 연비, 수입차 신분으로 다가오니 비싸도 잘 팔렸다. 티볼리는 시작가는 저렴하게 만들어 놓고 저렴하다는 이미지를 내세우며 진입했다. 하지만 기본형은 거의 생산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비싼 상급 트림으로 유도하며 옵션 잔치로 소비자들의 지갑을 털었던 것. 차량도 엉성하게 만들었는데, 그래도 잘 팔렸다. 첫차 소비자들에게 기준이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 현대와 기아차가 소형 SUV를 엔트리급과 고급형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형 SUV 가격이 점차 높아졌다. 셀토스는 소형 SUV로는 놀라운 가격 3천만 원 이상도 요구했다. 소형 SUV라는 것은 그저 세그먼트 구분일 뿐, 실제로 중형차보다 비싼 몸값을 받게 된 것이다.
쉐보레도 이 흐름에 동참했다. 트랙스의 상급 모델격 소형 SUV를 출시한 것이다. 이 말은 곧 소형 고급형 SUV 시장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여기엔 보다 높은 가격으로 팔아보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모델명은 트레일블레이저다. 한때 중형급 SUV로 판매됐었다 사라진 이름을 부활시킨 것이다.
현대 코나와 기아 셀토스가 소형 SUV 가격이 높아진 덕분에 트레일블레이저의 가격이 꽤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 팀은 소형 SUV 가격 높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렇다면 비싼 가격을 요구할 만큼의 상품성이라도 갖춰야 한다. 기아 셀토스가 상당히 잘 나온 상황에서 트레일블레이저가 셀토스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먼저 이 차의 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GM의 VSS-F 플랫폼으로 개발됐다. Vehicle Strategy Set–Front라는 이름으로 다소 장황해 보이는데, 한마디로 모든 종류의 전륜구동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이다. 그 유연성이 대단해서 경차급 차부터 대형 세단까지 대응 가능한 정도다.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모델이 바로 트레일블레이저다. 형제 모델로 뷰익 앙코르 GX가 있다. 트레일블레이저가 블레이저의 소형급 버전이라면 앙코르 GX는 앙코르(트랙스의 뷰익 버전)를 커다랗게 확대한 버전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두 차량 모두 한국지엠이 생산해 수출한다.
디자인은 중형 SUV 블레이저의 축소판이다. 전면부는 거의 똑같다. 분리형 라이트 디자인이 적용됐으며, 새롭게 해석한 듀얼 포트 그릴도 강한 인상을 만든다. 측면은 각진 형태의 루프라인이 독특한 이미지를 전한다. 특히 C-필러 디자인을 상어 지느러미를 연상시키도록 꾸몄다는 점도 재미있다. 캐릭터 라인도 입체적이다.
후면부도 굵은 선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딘가 모르게 현대 투싼이나 쌍용 코란도와도 닮았다. 듀얼 머플러가 적용됐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전동식 테일게이트도 갖춰진다. 어두워지면 바닥에 조명이 들어오는데, 이 부분을 발로 차면 쉽게 문을 열 수 있다. 센서 위치를 몰라 엄한 곳에 발을 허우적거릴 일이 없어 좋다. 테일게이트가 열리는 높이도 조정할 수 있다.
소형 SUV 라지만 크기가 꽤 크다. 기존까지 국내에서 가장 큰 소형 SUV였던 기아 셀토스보다 최대 50mm 길고 10mm 넓으며 40mm 높다. 휠베이스도 10mm 길다. 상급 모델인 현대 투싼이나 쌍용 코란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 나지 않는데, 미국인들의 기준에서 ‘소형’이 이리도 크니 이쿼녹스 조차 작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참고로 이쿼녹스는 현대 투싼과 싼타페 중간 크기다.
실내 테마도 강한 모습을 갖는다. 여기저기 각진 선들이 눈에 띈다. 스티어링 휠, 대시보드, 도어 패널까지 새로운 디자인이다. 참고로 미국 본토에서는 뷰익 앙코르 GX도 함께 팔리기 때문에 실내 디자인이 완전히 똑같다는 점이 지적된다. 하지만 국내 기준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이다.
아무래도 계기판에서는 차량 등급의 한계가 느껴진다. 디지털 계기판이 아니라는 점이 어색해 보일 정도니 요즘 자동차 트렌드가 얼마나 빨리 변하고 있는지 실감 난다. 물론 다른 동급 모델들도 유사한 모습이다. 계기판의 중앙 모니터에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심지어 어떤 장치가 연비에 영향을 주는지도 알려줬던 점이 흥미롭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반응 속도가 빠르다. 미국 브랜드답게 GUI 디자인이 투박하지만 직접 사용했을 때 만족감만큼은 최고 수준이다. 후방카메라는 HD 카메라를 사용해 선명하게 보인다. 현대 그랜저가 채도는 낮아도 선명한 화질을 보였다면 트레일블레이저는 그냥 봐도 무난한 화질을 보여준다.
여기에 무선 애플 카플레이 탑재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정도만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했으니, 대중 브랜드로는 매우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용 방법은 애플 카플레이 실행 후 블루투스로 스마트폰과 페어링만 해주면 된다.
안드로이드 오토도 무선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아직 구글이 국내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유선으로만 연결된다. 물론 구글이 국내 서비스를 시작하면 무선 안드로이드 오토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 데크까지 있으니 선 하나 없이 스마트폰 충전을 하면서 자동차와 연결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USB 타입 A는 물론 타입 C 포트까지 최신 규격도 갖췄다. 트렌드를 잘 따라간 예다.
공조장치 버튼 배열은 깔끔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온도 다이얼 부분 조작감이 저렴하게 느껴진다. 조금 가볍게 움직인다는 얘기다. 향후 묵직한 느낌으로 개선되면 좋겠다.
시트는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한다. 기존 쉐보레 차량들은 통풍과 열선을 같은 불빛으로 보여줬는데 이제 색을 구분하고 있다. 기존 고집을 꺾은 것인데, 아직도 고집부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기어 레버가 대표적이다. 토글 버튼을 통한 매뉴얼 조작 방식은 여전히 아쉽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무릎 공간과 머리 공간 모두 만족스럽다. 점차 컴팩트 SUV 영역이 침범 당하는 느낌이다. 4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바닥에 돌출 공간이 높지 않다는 점도 좋았다. USB 포트도 마련했는데, 후석 송풍구가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특히나 이 부분은 경쟁 브랜드가 바이럴 포인트로 삼는 부분인 만큼 향후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 USB 포트 옆에는 230V 포트를 위해 남겨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자리가 보인다. 페이스리프트 때 추가되지 않을까?
트렁크 공간도 넉넉하다. 여기에 바닥 높이를 2단으로 조정할 수 있다. 공간 활용성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파노라마 선루프도 갖추고 있는데, 소형 SUV 등급으로는 상당히 넓은 면적이다.
안전 장비도 다양하게 탑재된다. 자동차와 보행자까지 인식 가능한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전방 차량 거리 감지, 정차 및 재출발이 가능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전방 차량 출발 알림,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사각 및 후측방 경고, 오토 하이빔 등의 기능도 탑재됐다.
하지만 차로 유지 기능이 없다는 점이 아쉽긴 하다. 물론 안전 기능 자체로는 문제가 없다. 다만 타사들이 내세우는 전략(?)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GM 차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에는 분명하다. 물론 소비자들도 이 기능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해야 한다. ACC와 차선 중앙 유지 기능을 묶어 구현하는 반자율 주행 기능이란 것이 정확히는 마케팅용으로 쓸 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자율 주행과 마케팅 용어로 만들어진 반자율 주행 기능은 분명 다르다.
전방 차량 출발 알림 기능은 시각은 물론 청각으로도 운전자에게 경고해주는데, 별도의 메시지 없이 자동차 모양 아이콘이 깜빡이는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
트레일블레이저에는 2가지 엔진과 2가지 변속기가 탑재된다. 이 모두가 일반적인 사양은 아니다. 엔진은 3기통이다. 기본형에는 1.2리터 터보, 상급에는 1.35리터 터보 엔진이 쓰인다. 변속기는 CVT가 기본이다. 이중 1.35리터 모델에는 9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 9단 변속기가 탑재되면 4륜 시스템도 추가된다. 테스트 모델은 3기통 1.35리터 엔진과 9단 변속기, 여기에 4륜 시스템이 조합된 최상급 사양이다.
3기통 엔진에 9단 변속기의 조합. 여기에 4륜 구동까지 갖췄다? 궁금한 운동 성능을 알아보기 앞서 정숙성부터 확인했다. 시동을 걸면 3기통 엔진이 움직인다. GM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3기통 엔진에 12가지 신기술을 넣어 소음과 진동을 크게 감소시켰다고. 실제 그렇다. 스파크의 3기통 엔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좋은 수준의 정숙성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4기통이나 6기통 엔진을 넘어설 정도까지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기통에 따른 체급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하지만 냉간 시가 아니라면 일상 주행에서 기통수를 구분할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약 38dBA 수준을 보였다. 참고로 1.5리터 터보 엔진과 1.6리터 터보 엔진이 탑재된 쌍용 티볼리와 기아 셀토스는 약 39dBA 수준을 나타냈다. 수치만 놓고 보면 트레일블레이저가 더 조용하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의 음색이 조금 더 귀에 잘 들리는 느낌이라 체감적으로는 그 차이가 크지는 않다.
진동도 약간 존재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겨울철 냉간 시에 조금 더 잘 느껴진다. 예열이 끝난 상황, 차가 움직일 때는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엔진 특성으로 봐야 하기에 타협이 필요해 보인다.
주행을 하면 먼저 느껴지는 정숙성. 아이들 상태에서는 소음과 진동을 조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주행이 시작되면 과연 이차가 소형차일까 싶다. 소형급으로는 충분한 수준이다. 시속 80km의 속도에서 측정된 정숙성은 60dBA. 셀토스가 60.5dBA을, 티볼리는 61.0dBA, 투싼이 60dBA이었다. 상급 모델과 맞먹는 수준의 정숙성은 트레일블레이저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참고할 사항이 있는데, 트레일블레이저는 4기통 1.5~1.6리터 엔진을 사용하는 경쟁 모델보다 높은 엔진 회전수를 사용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때문에 가속 때 엔진 소리가 조금 크게 부각되기도 한다.
물론 3기통 엔진의 장점도 있다. 3기통 엔진은 4기통 엔진보다 2차 진동이 적다. 통상 4기통 엔진은 2500rpm과 4000rpm 구간에서 진동이 커지는 구조적인 제한이 따른다. 반면 3기통 엔진은 이 영역에서 자유롭다. 종류에 따라 밸런스 샤프트가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같은 배기량이라도 실린더가 줄어들면 열손실도 감소한다는 이점도 생긴다. 창문이 3개인 것과 4개인 것 중 어디에서 더 빨리 열이 빠져나갈지 생각해보면 쉽다. 배기 맥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터보차저의 효율도 끌어올리기 쉽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부분이다. 무작정 3기통 엔진이라고 ‘저급’스러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트레일블레이저의 가속페달을 밟으면 3기통 엔진의 독특한 엔진 사운드가 만들어진다. 엔진은 156마력과 24.1kgf.m의 토크를 발휘한다. 참고로 1.2리터 사양은 139마력과 22.4kgf.m 성능을 보인다. 기존 1.4리터 터보와 유사한 성능을 내는 것이다. 1.35리터는 기존 1.5리터 엔진을, 1.2리터 엔진은 1.4리터 엔진을 대체하는 성격으로 보면 된다.
가속페달을 밟아 나간다. 매우 강력한 가속은 아니지만 힘 부족은 느껴지지 않는다. 100km/h 이상 영역에서도 지치지 않는 가속력이 돋보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성능을 측정했다. 결과는 9.52초. 쌍용 티볼리 1.5 터보의 9.73초를 앞선 성능이다. 물론 177마력의 셀토스(8.61초) 보다는 느리다. 코나(8.36초) 또는 200마력대 쏘울 부스터(7.81초)와 비교하면 격차가 벌어진다. 하지만 일상에서 필요로 하는 성능을 충분히 커버하는데 문제는 없다. 부족하다고? 여담이지만 이 성능은 지난해 우리 팀이 테스트한 스포티지 2.0 디젤, 투싼 1.6 디젤 보다 빠른 성능이다.
우리 팀은 한가지 재미난 시험도 했다. 당초 외관 차이를 보려고 현장에 가져간 ACTIV 트림의 가속 성능도 계측한 것. ACTIV 트림은 17인치 휠과 타이어를 쓴다. 구조적으로 가속에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결과는 RS가 앞섰다. 동일한 옵션, AWD를 가지고 있기에 ACTIV가 유리해 보였지만 미미하게 RS가 빨랐다. 또 하나 RS는 AWD 구동모드에서 조금 더 빠른 기록을 냈고, ACTIV는 2WD 모드에서 더 빠른 성능을 보였다. 앞서 ACTIV에는 17인치 휠이 쓰인다고 했는데, 이 경우 보다 가벼운 무게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목적 타이어는 무게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을 때도 많다. 물론 이 두 트림간 가속성능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트레일블레이저의 가속성능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국내 소형 SUV 중 딱 중간 정도로 보면 된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의 강점이 살아나는 부분이 있으니 고속주행 안정감이다. 최근 국산차와 일본차 모두 수준급의 고속 안정감을 갖는다.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장거리 이동의 편안함과 고속 안정감 부분은 미국, 특히 GM이 잘 하는 영역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한 힘으로 편하게 밀어붙이는 느낌. 여기에 고속에서도 불안함 없이 안정적으로 노면과 일체화되는 감각은 트레일블레이저만의 강점이 된다.
승차감도 장점이다. 적당히 부드럽게, 불안하지 않게 차체를 잘 잡아주는 서스펜션이 좋다. 특히 서스펜션의 처리 과정이 저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면으로부터 작은 충격이 발생하면 짧고 예리하게 충격을 전하는 차량들이 있다. 반면 뭉툭하면서 묵직한 감각으로 전달하는 차도 있다. 트레일블레이저는 후자다.
승차감을 결정짓는 요소, 여러 가지 구조적인 원인이 한몫한다. 예를 들어 무게에서 오는, 휠베이스에서 결정되는, 섀시 성격에 따른 승차감 차이가 크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차가 작고 가벼울수록 좋은 승차감을 만들기 힘들다. 고 무거울수록 좋은 승차감을 만들기 쉽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시된 소형 SUV들은 한결같이 딱 ‘소형차’ 범위 안에 있는 승차감을 전달했다. 셀토스는 변속기(DCT) 특성으로 저속에서 말 타는 현상이 있어 승차감에서 점수를 잃었다.
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만큼은 동급에서 최고 수준, 조금 더 과장하면 한 체급 위 등급의 승차감을 낸다. 후륜 서스펜션이 토션빔인가 멀티링크인가를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 시장이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하우다. 과거 포르쉐는 타사 모델들이 더블 위시본으로 성능을 잡아 나가던 시절에도 맥퍼슨 스트럿 구조로도 이상적인 핸들링과 성능을 만들어 냈다. 구조가 아닌 셋업 능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다. 물론 같은 능력을 가진 브랜드가 두 가지 서스펜션을 만든다면 당연히 구조가 복잡한 서스펜션이 더 좋은 성능을 낸다. 하지만 두 브랜드 간 기술 수준이 다르다면 구조에 대한 약점을 셋업 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집에서 1등급 한우로 구운 스테이크, 미쉐린 스타급 셰프가 미국산 또는 호주산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 무조건 한우가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노하우에 따른 셋업(?) 능력이다.
잘 달리는 것만큼 제동성능도 중요하다. 브레이크 페달 감각은 쉐보레답지 않게 의외로 초반 응답성을 강조한 설정. 현대 기아차 르노삼성만큼은 아니지만 여성 소비자들에 어필하기 위한 성격이 아닐까 싶다. 예민한 조작 능력보다 쉬운 조작성을 택할 것인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최근 아우디도 초반 응답성을 강조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데, 쉬운 조작성이 트렌드가 되는 것일까?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거리는 38.17m였다. 참고로 트랙스는 38.77m였다. GM을 비롯한 캐딜락 모델은 보통 37~38m 대를 보여준다. 기아 니로(37.46m)와 쏘울(37.70m), 셀토스(37.95m)는 모두 37m 대를 기록해 최단거리 부분에서 앞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38~39m 내외의 성능을 꾸준히 보인 것은 트레일블레이저의 경쟁력이 된다. 일정한 성능을 낸다는 것이다.
각 모델명 최단 최장 거리는 다음과 같다. 최단거리에서는 나은 모습이었지만 후반에 밀리는 거리차가 조금 크다.
- 기아 셀토스 최장 제동 거리 : 40.37m
- 기아 니로 최장 제동 거리 : 39.70m
- 기아 쏘울 최장 제동 거리 : 39.44m
최대 제동성능을 끌어내는 과정도 쉽다. 페달이 너무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트레일블레이저는 엔진이 브레이크 유압을 만들지 않고 전기모터가 만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여기에서 약간의 이질감이 발생하는데, 트레일블레이저에서는 거의 같은 아쉬움이 나오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면 브레이크 페달을 밟을 때 전기모터가 작동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와인딩 코스로 자리를 옮겼다. 기본기가 탄탄한 만큼 기대감도 높아진다. 스티어링 휠을 감으며 코너에 들어서자 일체감 있는 움직임이 돋보인다. 전륜의 반응이 너무 느리면 운전 감각 부분이 아쉬워지고 반대로 너무 빠르면 불필요하게 민감할 수 있다. 이 사이에서 잘 조율하는 노하우가 필요한데, 트레일블레이저가 딱 그렇다. 생각하는 만큼 정확하게 움직여준다. 후륜이 늦게 따라오지 않고 일체감 있게 달리는 감각에서 이 차량이 소형차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GM 차들은 이런 부분에 강하다. 소형차부터 본격 스포츠카까지 다뤄본 그들의 노하우 덕분이다.
경쾌하지만 경박스럽지 않다. 지금까지 소형 SUV들은 코너를 돌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요철을 만나면 ‘텅’거리며 기분 나쁘고 불안정한 움직임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도 여유롭게 처리해내며 안정감 있는 감각을 유지했다.
차량의 주행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변속기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먼저 토글 버튼으로 변속을 해야 한다는 점은 불편하다. 9단의 기어비는 트레일블레이저에 잘 맞게 배분됐지만 기어를 내리는 속도가 조금 더 빨라지면 좋겠다. 반면 기어를 올리는 속도는 빠르다. 특히 1단에서 2단으로 옮겨가는 과정은 구조적으로 기어를 바꿔 끼운다는 개념이 아니라 기어비만 변화시킨다는 개념으로 설계됐다. 1단에서 2단 만큼은 농담이 아니라 진짜 포르쉐 PDK보다도 빠른 수준이다. 하지만 코너에서 달릴 때는 기어를 내리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 때문에 체감적인 속도는 다소 느리게 느껴진다.
코너를 돌아가는 속도도 적당하다. 매우 높은 그립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차량 성격상 충분한 접지력을 만들어준다. 18인치 휠에 장착되는 타이어는 한국타이어의 키너지 GT. 225mm 너비를 갖는다. 소형 SUV라서 그럴까? SUV 전용 타이어를 뜻하는 별다른 문구는 보이지 않는다. 타이어에서 특별히 큰 소음이 만들어지거나 승차감도 해치지 않는 무난한 성격을 갖는다. ACTIV 트림에는 한국 타이어의 다이나프로 AT2라는 모델이 장착되는데, 다양한 노면 대응을 위한 타이어다. 오프로드 성능을 기대할 수 있지만 차량 성격이 온로드에 맞춰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키너지 GT 쪽이 낫다.
연비는 어땠을까? 100km/h의 속도로 주행했을 때 약 15km/L 전후의 효율을 보여줬다. 오르막과 내리막 교차가 많은 구간에서는 14.5km/L 수준도 보인다. 반면 평탄한 노면이 지속되면 16km/L 때로는 그 이상의 수치를 보이기도 한다. 3기통 저 배기량 엔진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18~20km/L 정도까지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는 욕심이다. 저 배기량 엔진 특성상 오르막에서 연비가 다소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급 셀토스와 비교한다면 평지에서는 유사한 수준, 오르막이 많은 구간에서는 배기량에 여유가 있는 셀토스가 소폭 앞선다고 보면 된다.
제조사 발표 기준, 트레일블레이저는 3종 저공해차 인증을 받았다. 세금 혜택을 비롯해 공영주차장 할인 등 이점도 있다.
연료탱크는 50리터 수준이다. 가솔린 2만 원 정도만 넣어도 연료탱크의 4분의 1 이상은 차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만큼 연료 게이지도 빨리 하락한다. 또, 가솔린 터보 엔진 특성상 운전자가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연비도 큰 차이가 발생한다. 특히 저 배기량 터보 엔진일수록 운전 방법에 따른 연비 차이가 커진다. 특성을 잘 이용하면 좋은 연비, 마구 몰아 대면 소형차 수준을 넘어선 나쁜 연비를 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GM은 차량의 기본기를 중시한다. 그만큼 트레일블레이저도 잘 만들어졌다. 특히나 승차감에서 이점이 많다. 이런 내용을 소비자들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장 인식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쉐보레 차량 구입을 꺼려 하는 이유 2가지가 있다. 먼저 가격이다. 차는 좋지만 차 값이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가격으로 더 많은 구성을 갖춘 다른 차를 노리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다음은 브랜드 이미지다. 언제 철수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를 위한 보다 확실한 메시지 전달이 필요하다.
가격은 잘 나왔다. 아니, 잘 나온 것이 아니라 잘 나온 것처럼 보인다. 트랙스가 처음 나왔을 때 가격 때문에 온갖 매질을 혼자 다 맞았다. 이를 틈타 QM3와 티볼리가 편하게 질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시장의 중심인 현대 기아가 가격을 올려줬으니 트레일블레이저가 비싸지 않게 보인다. 물론 트림별 가격 구성도 잘하긴 했다.
그러나 최상급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한 구성은 추천하기 어렵다. 셀토스 때도 그랬지만 3000만 원 이상 주고 소형급으로 접근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중간 트림인 프리미어 혹은 RS에 적절한 옵션을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 가격 좋고 구성도 좋다.
차는 정말 잘 만들었다. 그럼 이제 하나 남았다.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는지 여부다. 연구원들이 피땀 흘려 좋은 차를 만들었으니 이제 한국지엠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되돌려 놓느냐에 달렸다. 그리고 새로운 마케팅 전략이 다시금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어야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지엠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는 점이다. 일단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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