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소음·매연 없는 볼보 전기트럭…우리나라에는 왜 못 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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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전기트럭은 1톤급 미만 소형트럭에만 한정됐다. 짧은 주행거리로 인해 도심 곳곳을 누비는 데 적합한 모델들이 주를 이뤄왔다. 그러나 이제는 중형트럭을 넘어 풀사이즈 대형트럭까지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품고 있다.
볼보트럭은 2019년 중형 전기트럭를 판매한 데 이어 올해 업계 최초로 대형트럭 양산에 돌입했다. 총 5종에 달하는 라인업을 구축하며 유럽 내 전체 운송 수요 중 45%에 대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연 전동화를 맞이한 중대형 상용차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의 운송을 담당할 전기트럭을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스웨덴 예테보리에 위치한 볼보트럭 테스트 트랙을 방문했다.
현지 코스에는 총 7대의 전기트럭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형 플래그십 FH와 비슷한 사양의 볼륨모델 FM, 중형트럭인 FE 및 FL 등이 자리했다. 이 차량들은 테스트 차량이 아닌, 실제로 양산 판매에 들어간 모델이라는 점에서 인상깊었다. 전기트럭을 공개한 회사는 많아도, 실제 판매까지 이어지는 브랜드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FH와 FM에 올랐다. 볼보트럭 판매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총중량(GCW) 44톤급 대형트럭으로, 이달 갓 양산에 돌입한 신상 모델이다. 첫 인상은 역시 '정숙성'이 돋보인다. 거대한 디젤 엔진이 내뿜는 엔진 소음이 사라진 덕분이다. 조용한 실내를 채우는 전기모터 소음은 일반적인 전기 승용차를 모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차량 바깥에는 차량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가상음(AVAS)이 재생된다. 현재 대형 모델인 FH와 FM에만 탑재된 기능으로, 중형급 FE·FL에는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시승용 차량 후미에 달린 컨테이너에는 최대 적재용량인 25톤에 달하는 콘크리트가 채워져 있었다. 실제 업무에 투입됐을 경우를 재현해보기 위함이다. 최고출력 670마력(490kW), 최대토크 244.7kgf·m(2400nm)를 발휘하는 세 개의 전기모터가 육중한 체구를 부드럽게 밀어낸다.
44톤 거구가 12도에 달하는 언덕을 무리 없이 올라갔다. 디젤 차량이었다면 굉음을 냈을 법한데, 전기모터는 유유자적 덩치를 밀어낼 뿐이다. 동승한 인스트럭터의 권유에 따라 오르막 한 가운데서 멈춘 뒤 재출발을 시도했다. 무거운 무게 탓에 뒤로 밀릴까 염려됐지만,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일정시간 자동으로 붙잡아준다. 이어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아주면 부드러운 재출발이 가능하다.
내리막에서는 전기 브레이크 시스템이 회생제동을 걸어준다. 이를 통해 늘어난 무게에도 불구하고 기존 내연기관차만큼의 충분한 성능을 발휘한다.긴 내리막이라면 주행거리가 늘어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는 다이내믹 스티어링 휠(VDS) 기능이 빛을 발했다. 전동 모터가 노면 상태를 초당 2000번 감지해 운전대로 전해지는 불필요한 피드백을 걸러주는 기능이다. 덕분에 맨홀 등을 밟을 때에도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듯 편안하다. 장시간 운전하는 트럭 운전사들에게는 꼭 필요한 완소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왼편에 위치한 컬럼 조절 페달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발로 간단히 밟고 떼는 것만으로도 스티어링 휠 위치를 쉽게 조절할 수 있어 승하차 편의를 크게 향상한다.
시승차 운전석 뒤편에는 흔히 볼 수 있는 침대 대신 추가로 좌석 두개가 마련됐다. 가까운 현장을 여러 명이서 오가는 상황에 적합한 모습이다. 세상에 똑같은 트럭은 없다는 볼보트럭의 모토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볼보의 대형 전기트럭에는 90kW 배터리 팩이 기본으로 탑재된다. FH와 FM의 경우 소비자 요구 사항에 따라 2개부터 최대 6개까지 배터리 팩을 탑재해 180~540kWh 배터리 사이즈를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합으로 1회 충전시 최대 300∼380km를 달릴 수 있다.
볼보트럭에 따르면 유럽 전체 물류의 45%가 300km 미만에서 이루어진다. 300km라는 수치는 얼핏 짧아보이지만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에 운전사의 휴게시간 동안 추가 충전을 한다면 그 거리는 더욱 늘어난다. 충전은 43kW AC 및 250kW DC 급속 방식을 지원해 보다 효과적으로 배터리를 관리할 수 있다.
이어 중형급 전기트럭 FE와 FL을 체험했다. 두 모델은 이미 2020년부터 스웨덴을 비롯한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현업에 투입 중인 베테랑 모델이다. 매연과 소음이 없어 새벽과 심야시간에도 주민 피해 없이 운송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통해 운송 물류의 흐름을 개선하고 낮 시간대의 교통 혼잡 문제도 줄일 수 있게 된다.
FE는 2개의 전기모터와 2단 기어박스를 통해 300마력(225kW)을 내고, FL은 1개 전기모터가 2단 기어박스와 맞물려 175마력(130kW)를 발휘한다. FE는 무거운 물건을 단거리 운송하는 데 최적화됐다면, FL은 도심 내 중장거리 운송에 알맞은 사양이다.
볼보 중형트럭에는 66kWh 배터리 팩이 기본이다. 바퀴 갯수에 따라 총중량 27톤까지 늘릴 수 있는 FE는 3~4개 배터리 팩을 구성해 200km 주행이 가능하며, 16톤급 FL은 3~6개 팩을 조합해 최대 300km를 달릴 수 있다. 볼보트럭은 "FE와 FL의 경우, 도심 내 주행에 특화돼있어 긴 주행거리보다는 임무수행에 걸맞은 특장을 싣고 달리는 데 유리하도록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트레일러를 이끄는 FH·FM과 달리, 두 모델은 일체형 바디 구조로 운전이 훨씬 편하다. FE·FL 또한 전기차의 특성을 고스란히 살려 조용하고 편안한 주행이 가능했다. 대형트럭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실내 소재나 옵션에서 체급 차이가 느껴지지만, 업무용 환경에서 크게 문제되는 수준은 아니다.
다만 볼보트럭에게 있어 안타까운 실정이 있다. FE 및 FL 일렉트릭은 현행법상 국내에서 판매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도로를 주행 가능한 중형 상용차 폭 규제가 미국·EU·중국 등은 2.55m인데 한국은 2.5m로 제한하고 있어서다. 지금까지 해외 상용차 기업들은 국내 판매를 위해 폭 2.5m짜리 차량을 별도로 설계·제작했다. 그러나 볼보의 중형 전기트럭은 2.55m에 맞춘 단일 규격이다. 배터리 등 전기트럭의 구조를 바꾸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볼보트럭을 포함한 상용차 업계는 자동차 폭 규제에 5cm의 유연성을 부여해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호주에서는 유럽 자동차 업체들 건의를 수용해 지난해 2.5m였던 차량 폭 규제 기준을 2.55m로 완화했다. 호주 교통청은 "규제 완화를 실증한 결과 교통 안전에 위해가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정부도 실증 과정을 거쳐 규제를 완화한다면 어떨까.
보조금 지급 문제도 있다. 현재 대부분의 전기트럭 보조금은 중형급에만 5000만원 상당 보조금이 지급된다. 대형 전기트럭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다양한 대형 전기트럭이 시장에 원활히 보급되기 위해서는 현 실정에 맞는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각 브랜드들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소음 없이 움직이는 전기트럭이 여럿 달리는 모습은 마치 근미래에 와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전기차는 향후 탄소 저감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특히 상용차 분야에서 그 효과가 뚜렷할 전망이다. 하루 빨리 도로 위 상용차들이 전동화를 거쳐 매연·소음 없는 도로를 만들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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