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봄날은 지금부터’ 토요타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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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지방 방송국 PD인 은수(이영애)를 일로 만났다. 두 사람은 라디오에 쓸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러 다니며 친해진다. 어느 날, 일을 끝내고 상우가 은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데, 두 사람 모두 아쉬워하는 느낌이다. 이때 은수가 용기 내서 말한다. “라면 먹고 갈래요?” 그렇게 둘은 사랑에 빠진다. 상우는 은수에게 보고 싶다고 전화하다가 택시를 타고 강릉에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 중에서
토요타자동차를 대표하는 플래그십 모델, 크라운이 한국에 ‘다시’ 상륙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다시’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정확히 56년 전에 한국에서 신진자동차를 통해 2세대 크라운이 선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진자동차는 토요타자동차와 제휴해서 크라운 2세대부터 4세대 모델까지 한국에서 조립 생산했다. 포드자동차의 20M을 들여온 현대자동차에 대응한 카드였는데, 정부 관료나 부유층에게 나름대로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크라운과 한국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토요타는 중국의 ‘주은래 4원칙’ 때문에 한국을 버리고 중국을 선택했고, 신진자동차의 크라운 생산도 종료됐다.
일본 내수 시장 위주로 판매됐던 크라운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젊은 분위기로 탈바꿈했으나, 일본에서는 나이 드신 어르신의 차, 관공서용 차 이미지가 강했다.
이번에 한국에 상륙한 16세대 크라운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토요타 최초로 개발 3년 만에 전면 재검토에 들어갈 정도로 심혈을 기울인 이 차는 이전 세대의 크라운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디자인과 메커니즘이 달라졌다.
이렇게 멋지게 달라진 크라운을 경험하라고 한국토요타는 출입 기자들을 강원도 정선으로 초대했다. 시승코스는 정선에서 강릉 사천 해변을 오가는 왕복 약 150㎞. 전날 비가 내린 후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는 너무나도 맑았다. 드라이빙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 영화 ‘봄날은 간다’의 상우가 은수를 보러 강릉에 갔을 때가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네 가지로 개발된 크라운 중 한국에 가장 먼저 선보인 모델은 크로스오버 모델이다. 말 그대로 세단과 SUV의 장점을 두루 갖춘 혼종 모델이다.
차체 크기는 길이 4980㎜, 너비 1840㎜, 높이 1540㎜이고, 휠베이스는 2850㎜다. 단종된 아발론 세단과 비교하면, 길이는 크라운이 5㎜ 길고, 너비는 10㎜ 좁고 높이는 105㎜ 높다. 크라운 크로스오버는 세단보다 의도적으로 높이를 높인 차이므로, 나머지 사이즈는 비슷한 편이다.
비교 대상으로 많이 거론되는 현대차 그랜저와 비교하면, 길이는 그랜저가 55㎜ 길고 너비는 40㎜ 넓고 높이는 80㎜ 낮다. 휠베이스는 그랜저가 45㎜ 길다. 한 마디로 높이 빼고는 모두 그랜저가 크다.
대시보드에는 최신 트렌드의 널찍한 파노라마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센터 콘솔에는 수직으로 수납하는 스마트폰 무선 충전장치가 마련됐다. 수평으로 놓는 방식처럼 차체의 좌우 흔들림에 영향을 받지 않고 확실하게 고정되는 게 장점. 갤럭시 S22 울트라 같은 대화면 스마트폰도 잘 수납된다.
먼저 타본 차는 2.5 하이브리드다. 2.5ℓ 자연 흡기 엔진과 모터, 무단변속기를 조합해 239마력의 합산 최고출력을 지녔고, 좋은 연비를 강점으로 하는 차다.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은 승차감이다. 에코-노멀-스포츠로 구성된 드라이브 모드는 어떤 걸 선택해도 안락함이 도드라진다. 좋은 연비와 편안한 주행에 중점을 둔 차의 콘셉트를 읽을 수 있다.
다만 2.4 듀얼 부스트 모델에 있는 시프트 패들이 없어서 운전의 즐거움은 살짝 덜하다. 스포츠 모드로 바꿔도 두둥실 떠가는 듯한 승차감도 처음에는 낯설다.
곧바로 바꿔 탄 2.4 듀얼 부스트 모델은 완전히 다른 차다. 2.5 하이브리드 모델에 없는 컴포트, 스포츠 플러스, 커스텀 모드가 있는데, 가변 제어 서스펜션(AVS: Adaptive Variable Suspension) 덕분에 훨씬 다양한 모드가 가능해졌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모드는 스포츠 플러스다. 차체를 단단히 잡아주면서도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아서 운전이 아주 즐겁다. 기본으로 장착된 브리지스톤 투란자 EL450 타이어가 아쉬울 정도로 섀시의 완성도가 뛰어나다. 여기에 고성능 타이어를 장착한다면 더 좋은 핸들링을 기대할 수 있겠다. 타이어는 두 모델 모두 225/45 R21 사이즈다. 휠 사이즈를 키우는 최근 트렌드에 맞춘 것으로 보인다.
2.4 듀얼 부스트는 자연 흡기인 2.5 하이브리드와 달리 가솔린 터보 엔진과 강력한 출력을 내는 후륜 모터를 결합했고, 무단변속기 대신 6단 자동변속기를 장착했다. 합산 출력은 348마력으로, 2.5의 239마력보다 100마력 이상 높다. 특히 최대토크가 3600~5200rpm에서 22.5㎏·m 나오는 2.5 하이브리드와 달리, 2.4 듀얼 부스트 모델은 2000~3000rpm 사이에서 46.9㎏·m가 발휘돼 중속 영역에서 가속감이 훨씬 강력하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전륜:후륜의 구동 비율을 100:0에서 20:80까지 알아서 조절해준다. BMW의 방식처럼 100:0~0:100으로 세팅하는 것도 좋을 텐데…. 궁금해서 토요타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그가 이렇게 설명한다.
“BMW의 방식은 출력을 앞뒤로 나누는 개념인데, 크라운은 뒤쪽에서 출력을 더하는 개념입니다. 전기모터가 출력을 더하면서 비율을 80%까지 올리는 방식이죠.”
설명을 듣고 보니, 급가속 때 차체 뒤쪽에서 강하게 밀어주는 느낌의 비결이 이해됐다. 2.5 하이브리드와의 주행감각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 시스템이 크다.
인증 연비는 2.5 하이브리드가 도심 17.6, 고속도로 16.6㎞/ℓ, 2.4 듀얼 부스트는 도심 10.0, 고속도로 12.5㎞/ℓ다. 일반적으로 하이브리드 차량은 도심 연비가 더 좋은데, 2.4 듀얼 부스트는 정반대다. 고속도로 주행성능에 더 초점을 뒀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이 차는 승차감, 정숙성, 연비 등이 대부분 마음에 드는데, 한 가지가 거슬린다. 차의 격에 맞지 않는 오디오다. 2.5는 6개 스피커이고, 2.4는 JBL 오디오에 11개 스피커인데, 두 오디오 모두 성에 차지 않는다. 고음과 저음을 높여봐도 음장감이 많이 부족하다. 6000만원대 차의 오디오가 이 정도이면 안 된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가 이 오디오를 들었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가격은 2.5 하이브리드가 5670만원, 2.4 듀얼 부스트가 6480만원이다. 모두 개소세 3.5% 기준이므로 5%가 적용되는 다음 달부터는 가격이 다소 오른다.
현재의 가격으로 본다면, 가격 경쟁력은 충분하다.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경우 풀 옵션을 장착하면 6000만원 가까이 되므로 붙어볼 만하다. 강력한 주행성능을 중시하는 이라면 현재 100대 한정 판매되는 2.4 듀얼 부스트가 더 어울린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는 자신을 떠난 은수에게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며 눈물짓는다. 상우의 할머니는 여자와 버스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라고 등을 토닥여준다.
떠난 여자와 버스는 어쩔 수 없지만, 크라운은 5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강릉에서 뜨겁게 재회했던 상우와 은수처럼, 한국 고객과의 재회도 멋지게 시작될 것이다. 크라운의 봄날은 이제부터다.
정선=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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