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보고, 몰고, 만끽하다, 포르쉐 911 카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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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 차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로망'과도 같은 모델이자 '포르쉐 바이러스'란 심리적인 감염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다. 그런 녀석이 어느 날, 담담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정체성 짙은 생김새와 강렬한 성능이 암시되는 큼직한 휠, 그리고 낮고 깊은 배기음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하나가 된 911은 기대 이상의 주행 감성을 유감없이 뽐내며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내어줬고, 덩달아 운전대를 잡은 내내 지루했던 틈이 없었다. 모든 과정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의의로 쉽고 편안했으며,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운전대를 잡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실체를 쏙 빼닮은 키를 운전대 왼편 키홀더에 꽂는 순간부터 시작이었다. 우렁찬 배기음이 귓가를 사정없이 때렸고, 등 뒤로 터보 수평대향 엔진의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911이구나‥, 내가 정말 911을 타고 있구나'. 괜스레 헛웃음이 나며 온몸이 짜릿했다. 그런 모습에 스스로 '미쳤구나' 싶기도 했다. 이렇듯 본격적인 시승 전부터 기분을 최고치로 올려놓은 시승차의 정확한 모델명은 911 카레라. 수많은 911 라인업 중 엔트리급에 속하는 모델이며, 최고출력 370마력, 최대토크 45.9kg.m의 힘을 내는 3.0리터 6기통 터보 수평대향 엔진과 7단 더블 클러치 변속기가 탑재됐다.
제원 상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4.2초. 최고시속은 295km에 달한다. 수치 그대로 무시무시한 성능을 자랑한다. 체감상 성능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1,700rpm부터 5,000rpm까지 끊임없이 터지는 넉넉한 토크감을 바탕으로 손에 땀을 쥐는 가속력을 선사했다. 터보렉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며, 리어 엔진의 야수 같은 힘이 변속기를 거쳐 뒷바퀴로 전달되는 그 일련의 과정이 꼭 전방을 향해 묵직하면서도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동시에 리어 범퍼 한 가운데 있는 두 개의 배기구에서는 거친 음색을 토해냈고, 그 소리는 분명 이성을 잃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빠르게 달리고 싶을 땐 번개같은 가속력을, 부드럽게 나가고 싶을 때는 푸근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데일리 스포츠카, 911 카레라.
이런 주행 질감은 드라이빙 포지션을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자 더욱 과격하게 전해졌다. 특히, 전자식 댐핑 컨트롤 시스템으로 자체 높이가 10mm 낮아져 보다 높은 속도에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했다. 아울러 코너를 돌아나갈 때도 두려움보단 차에 대한 신뢰감이 앞장섰다. 그 움직임이 '너는 그냥 즐겨,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하체와 차체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 운전대 조향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된 듯 이질감이 없었다. 속도의 짜릿함을 온전히 지닌 스포츠카만의 본질을 품고 있으면서도 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운전자의 불안을 각종 첨단 장비를 통해 떨쳐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운전을 잘한다고는 자부할 수는 없는 실력인데, 마치 프로 드라이버가 된 듯 기고만장해진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잘 달리는 만큼 제동력도 막강했다. 이는 6mm의 디스크 브레이크와 대형 4-피스톤 브레이크 캘리퍼가 들어간 덕이었는데, 고속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전개하자 신속하고도 흐트러짐 없이 속도를 줄여 나갔다.
빠르게 달리고 싶을 땐 번개같은 가속력을, 부드럽게 나가고 싶을 때는 푸근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데일리 스포츠카, 911 카레라.
이번엔 분위기를 달리해 최대한 힘을 빼고 도로를 읽어 나갔다. 전반적으로 부드러웠다.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지 않는 이상 고급 세단을 타고 있다는 착각이 들만큼. 배기음도 크게 들리지 않았고, 승차감도 딱딱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거기에다 변속 충격이란 개념은 느낄래야 느낄 수 없는 발 빠른 변속기와 연료 효율을 위해 더해진 오토 스타트 스탑 시스템까지 들어가 더더욱 스포츠카를 몬다는 느낌이 적었다. 게다가 주행 중 가속 페달에서 발을 때면 작동되는 구동 제어 시스템 코스팅 모드까지 지원됐다. 이쯤 되니 이 차의 연비가 궁금해졌다. 공식 복합연비는 리터당 9.4km. 도심연비 리터당 8.4km, 고속연비 리터당 11.0km다. 고성능 스포츠카란 점을 고려하면 매우 훌륭한 숫자가 아닐 수 없다. 역시 인풋이 좋으면 아웃풋도 좋은 법이다.
화끈한 성능과 함께 효율까지 챙긴 차분한 주행 감각을 고루 갖춘 이중적인 캐릭터 911. 이런 독특함 속에서 데일리 스포츠카란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닐까 싶다. 과연 화려함을 품으면서 다재다능한 재주를 선보이는 차였다. 또 운전대를 잡으면 세상이 특별하게 보이는 마법 같은 힘이 있었다.
운전의 즐거움을 더욱 더 풍부하게
운전의 즐거움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다양했다. 무엇보다 한글 지원 내비게이션을 적용한 새로운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은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스마트폰을 만지는 듯 빠른 속도로 반응하는 7인치 터치 스크린이 깔끔한 그래픽 디자인을 바탕으로 여러 기능을 지원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내비게이션 지도 그래픽 역시 디테일을 개선해 보는 맛이 있었다. 기능적으로는 2~3분마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업데이트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도심 교통 상황을 빠르게 제공했으며, 계기반 오른쪽 한편에도 지도 화면을 비춰 직관적인 시인성도 놓치지 않았다. 사운드 시스템은 보스의 것이 탑재됐는데, 12개 스피커가 만들어낸 입체적인 음장감이 일품이었다. 이밖에 애플 카플레이 시스템은 소유 스마트폰이 안드로이드폰인 관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안과 밖의 조화, 매혹적인 디자인
유려한 선과 볼륨감이 살아있는 면으로 표현된 모양새. 여기에 4점식 LED 주간 주행등, 입체적인 형태의 테일램프, 차 곳곳에 들어간 에어덕트 등으로 디테일을 구체화한 게 911이었다. 앞면, 옆면, 후면에서 비롯되는 전체적인 비례감은 높았으며, 포르쉐만의 디자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까지 이질감없이 곁들였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였는데, 짜임새 있는 센터페시아 레이아웃과 5개의 원으로 이루어진 계기반, 섬세한 조형미를 갖춘 3-스포크 스티어링 휠 등으로 세련미 높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중 375mm의 직경의 운전대는 수퍼카 918 스파이더의 스티어링 휠 설계에 기반해 스포티한 감각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진정 안과 밖의 조화가 잘 어우러졌으며, 이 완성도 높은 두 요소의 만남은 시선을 잡아 끄는 매혹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엔트리 911이 이 정도면‥?
빠르게 달리고 싶을 땐 번개같은 가속력을, 부드럽게 나가고 싶을 때는 푸근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데일리 스포츠카, 911 카레라.
그렇다. 지금까지의 얘기는 모두 911 중에서도 엔트리급인 카레라 모델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포르쉐만의 스포츠 DNA를 100% 체험하기도 벅찰 정도로 스릴 넘치는 차였다. 맹렬한 달리기 실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탄탄한 하체와 각종 첨단 품목까지.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여기에 지난 40년 간 레이싱은 물론 양산형 모두에서 쌓아온 성공적인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결국 전통을 존중하고 기술을 향상하며, 디자인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인정해 나간 프로세스가 지금의 결과물을 이룩한 것이 아닐까. 놀라운 점은 이런 매력적인 상품 경쟁력을 갖추고도 가격이 꽤나 합리적이라는 거다. 911 카레라의 기본 가격은 1억3,300만원. 옵션을 추가하면 값은 올라가겠지만, 자동차 시장 속 911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지금 내 통장 잔고가 한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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