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바람의 아들’ 현대 벨로스터 N D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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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던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개발했다.”
2011년 벨로스터 발표회에서 현대차 양승석 사장은 이런 말을 했다. 2007년 서울모터쇼에 처음 공개됐던 콘셉트카 ‘벨로스터’가 드디어 양산차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운전석 도어 1개, 조수석 도어 2개의 콤팩트 스포티카는 그렇게 첫 걸음을 내딛었다.
시작은 미약했다. 평범한 1.6ℓ 가솔린 직분사 엔진을 얹은 차의 성능은 독특한 외형과 어울리지 않았다. 뒤에 DCT와 터보 모델을 추가했으나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2017년 등장한 2세대 벨로스터의 데뷔 무대는 강원도 인제스피디움이었다. 자동차 경주장을 데뷔 무대로 선택했다는 것만 봐도 이 차의 성격은 한 눈에 드러난다. 1.4ℓ 터보와 1.6ℓ 터보 등 두 가지 엔진으로 무장한 신형 벨로스터는 1세대보다 한층 강력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성능은 여전히 조금 아쉬웠다. 섀시가 강해졌기 때문에 이보다 더 강력한 파워트레인을 얹어도 좋을 듯했다.
현대차는 이듬해인 2018년, 드디어 베일에 싸였던 벨로스터 N을 공개했다. 유럽에서 출시한 i30 N에 이은 현대차의 두 번째 고성능 모델이었다. 알버트 비어만 R&D 담당 사장은 “현대차의 고성능 철학과 모터스포츠의 연계성을 바탕으로 완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2세대 모델은 개발 초기부터 모터스포츠에 뛰어들 각오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21일 현대차가 선보인 벨로스터 N DCT는 수동변속기 대신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DCT)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현대차는 1세대 벨로스터에 건식 7단 DCT를 적용한 바 있다. 이와 달리 신형 벨로스터 N DCT는 8단 습식 타입이다.
‘건식’이냐 ‘습식’이냐를 가르는 건 오일량과 미션 구조에 있다. 어떤 기자는 오일을 사용하는 게 습식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수동이든 DCT이든 자동이든 모든 미션에는 오일이 들어간다. 다만 건식은 오일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 때문에 높은 토크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습식은 오일이 윤할 작용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속이 부드럽고 고출력 엔진의 토크도 받아낼 수 있다. 1세대 벨로스터와 달리 이번에 습식 DCT가 적용된 이유다. 대신 구조가 복잡하고 단가가 비싸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21일 삼성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시승회는 고속 게이트 슬라럼과 회피 기동, 짐카나 그리고 서킷 주행 순으로 진행됐다. 슬라럼에서는 방향 전환 성능을, 회피 기동 때는 제동 성능을 테스트해보고 서킷 주행에서는 가속 성능을 비롯한 전반적인 주행 성능을 테스트해보라는 의미다.
벨로스터 N은 최대토크 36.0㎏·m가 1450rpm부터 나오기 때문에 출발 순간부터 엄청난 가속감을 느낄 수 있다. 현대차는 여기에 런치 컨트롤 조절 기능을 추가했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런치 컨트롤이 시작되는 엔진 회전수를 지정한 후 실행 버튼을 누르면, 작동 대기 상태에서 5분 동안 쓸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가속 페달을 한 번에 세게 밟으면 앞바퀴가 강한 스핀을 일으키면서 튀어나간다. 현대차에 따르면 0→100㎞/h 가속성능이 0.3초 단축된다는데, 짐카나나 드레그 레이스에서는 승부를 가를 수 있다. 물론 벨로스터 N DCT는 출발 가속이 아주 빠르기 때문에 이 기능에 무조건 의존할 필요는 없다.
서킷 주행 실력은 현대차가 지금까지 내놓은 차 중 최고다. 탄탄한 섀시에 고출력 엔진과 민첩한 DCT가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를 이룬다. 스티어링 휠 오른쪽에 달린 NGS(N Grin Shift) 버튼을 누르면 최대토크가 36.0㎏·m에서 38.5㎏·m로 높아진다. 20초간 쓸 수 있고 클러스터에 남은 시간도 표시된다. 물론 이 기능을 안 써도 스피드웨이의 직선로에서 최고시속 190㎞를 쉽게 낼 정도로 기본적인 펀치력이 좋다.
대신 사운드는 수동 모델보다 약하다. 수동 모델은 N 모드에서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거나 변속하면 ‘퍼버버벙’하는 후배기음이 귀청을 때린다. 팝콘 볶는 소리 같다 해서 ‘팝콘 사운드’라 부르는 소리다. 반면에 DCT는 가속 페달을 90% 이상 밟으면 윗단으로 기어가 변속되면서 배기음이 커지는 ‘업 시프트 뱅 사운드’가 작동한다. 이 소리가 수동 모델에 비해 기본적으로 좀 작다. 이게 불만이라면 수동 모드로 다운 시프트를 써가며 사운드를 즐길 수도 있는데, 역시 수동 모델보다는 소리가 작다.
직선로에서 펀치력이 돋보였다면, 코너링에서는 센스 있는 DCT의 변속감각이 눈길을 끈다. 이 차에 적용된 N 트랙 센스 시프트는 코너링이 많은 역동적인 주행을 지속할 경우 전문 드라이버 수준의 변속 패턴을 구현한다. 예를 들어 스피드웨이의 직선로 다음에 나오는 업 힐(up hill) 구간의 경우 수동 모델이라면 적절한 다운 시프트 시점을 택해야 하는데, DCT 모델은 알아서 변속시점을 늦추고 높은 엔진 회전수를 사용해 가속성능을 유지한다. 몇 차례 주행을 반복해봤는데 변속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맞춘다.
타이어는 225/40ZR18 미쉐린 제품이나 235/35R19 피렐리 P-제로가 장착된다. 시승차에 장착된 피렐리 제품은 고속 코너링에서 끈끈한 접지력이 특히 돋보였다. 급출발이나 방향전환 때는 타이어가 살짝 미끄러지는 경향도 보였는데, 이 정도는 운전의 재미를 주는 요소로 받아들일 수 있다. 운전자의 스킬이 충분하다면 파워 슬라이드를 즐기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공차중량은 6단 수동이 1385㎏, 6단 수동 퍼포먼스 패키지가 1415㎏, 8단 DCT 퍼포먼스 패키지가 1460㎏이다. 재미있는 건 연비다. 8단 DCT 퍼포먼스 패키지가 6단 수동보다 75㎏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고속도로 연비는 11.9~12.1㎞/ℓ의 6단 수동보다 우수한 12.3㎞/ℓ를 기록한다. 도심 연비는 8.9㎞/ℓ로 6단 수동의 9.5~9.7㎞/ℓ보다 열세인 걸 보면, 장거리 고속주행이 많은 이들에게 어필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형 벨로스터 N은 한 가지 트림만 나오며 2944만원이다. 개별소비세 5% 기준으로 바꾸면 3075만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보다 110만원 올랐다. 여기에 N DCT 패키지와 퍼포먼스 패키지, 컨비니언스 패키지, 스마트 센스, 선루프, 무광 컬러를 더하면 3634만원이 된다. 컨비니언스 패키지 대신 N 라이트 스포츠 버킷 시트를 고르면 3694만원으로 오른다. 기존 가격보다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3000만원 중반대 가격으로 스포츠 해치백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남과 다른 차를 원하는 이들을 위한 N 퍼포먼스 킷도 준비된다. 카본 스포일러와 리어 디퓨저, 사이드 미러, 알칸타라 인테리어 패키지, 모노블록 브레이크 패키지 등이 그것이다. 지갑이 넉넉하다면 고를 만한 가치가 있는 사양들이다.
벨로스터 N DCT는 현대차의 고성능차 라인업 확대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차다. 그러나 앞바퀴굴림 해치백의 한계도 분명한 만큼, 4륜구동 해치백이나 미드십 스포츠카의 양산에도 도전하는 게 좋다. 2014년 제네바 모터쇼에 공개했던 콘셉트카 ‘파소코르토’처럼 미드십 스포츠카는 계속 시도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앞으로 8단 DCT가 적용될 아반떼 N, 쏘나타 N에 대한 기대도 크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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