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GLE 450 4MA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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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가 4세대 GLE를 출시했다. 사실 출시 전부터 말들이 많았다. 가격은 비싼데 구성이 볼 품 없다는 것.
소비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반자율 주행 기능이 빠졌다는 것, 애플 카플레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 고가의 차량인데 선루프도 없다는 것. 그리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 우선 가격부터 보자. 가장 저렴한 300d 모델이 9030만 원이다. 상급 450 모델은 1억 1050만 원에 달한다.
(참고로 우리 팀이 GLE를 테스트한 것은 지난 2019년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0년형 GLE 450을 내놓으면서 ADAS 기능을 보강했다. 하지만 가격을 500만 원가량 올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정말 많은 욕을 먹는 GLE지만 판매량을 보니 예전 GLE 만큼 팔린다. 욕하는 사람 따로, 구입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것.
그래서 오토뷰 팀이 나섰다. ‘GLE, 비싼 돈 주고 구입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테스트 모델은 상급 사양 GLE 450 4MATIC이다. AMG 익스테리어 패키지도 적용돼 범퍼의 디자인도 스포티하다. 하위 모델인 300d에는 AMG 패키지가 빠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두 모델 간 디자인 차이가 크다. 누구라도 AMG 패키지를 원할 것.
최근 등장한 CLS, GLE, A-클래스의 공통 특징은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다. 때때로 못생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여기에 AMG 패키지 혹은 프로그레시브 패키지를 넣어야 멋진 모습이 된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같은데, 왠지 옵션(질) 유도의 냄새도 풍긴다.
디자인은 과감하다. AMG 패키지 덕에 다이아몬드 패턴이 그릴에 박히며 한층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범퍼에는 커다란 공기흡입구 디자인도 적용됐다. 독특한 디자인의 헤드램프에는 한 쪽당 84개의 LED로 이뤄진 매트릭스 LED도 탑재된다. 어두울 때 시동을 걸어보자. 눈앞에서 조명들이 화려한 오프닝 세리머니를 보여줄 것이다. 화려하다.
측면부는 한눈에 봐도 한 덩치 하는 SUV의 모습이다. 휠이 20인치나 되지만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 안을 꽉 채운 브레이크 시스템도 넉넉한 제동 성능을 짐작하게 한다.
지상고가 높은 만큼 사이드 스텝도 있다. GLE는 동급 경쟁 모델인 BMW X5나 아우디 Q7과 비교해 조금 더 올라탄다는 느낌을 전한다. 쌍용자동차의 G4 렉스턴이나 쉐보레 콜로라도처럼 프레임 기반 차가 떠오를 정도로 꽤 높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만큼 지상고 조절 폭도 다양하다. 짐을 싣기 위해 최대한 내릴 경우(적재 모드 사용 시) 평상시 대비 50mm 가량 지상고를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오프로드 모드를 선택하면 평상시보다 60mm 가량 지상고가 올라간다.
후면에서는 얇아진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삼각형 디자인도 시선을 잡는다. 캐빈부터 차체, 오버 펜더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다부지고 근육질 적인 모습이다. 범퍼에는 듀얼 머플러가 보이는데, 디자인만 적용된 것으로, 실제 것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
인테리어는 고급화에 초점을 맞춘다. 최신 벤츠의 상징이 된 12.3인치 디스플레이 2개를 결합해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도 보여준다. 밝기와 난반사 등이 개선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데 계기판이 별도의 커버 없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다. 시원스럽게 잘 보여서 좋다.
송풍구는 사각형 디자인이다. 센터 콘솔 부분에는 오프로드 주행 때 도움을 주는 손잡이를 달았는데, 제법 강인한 분위기를 보인다. 이외에 각종 버튼이나 변속 레버까지 모두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듬었다.
그런데 시동 버튼이 다소 누르기 불편한 곳에 위치한다. 일반적인 버튼 위치보다 밑에 자리하는데, 누르는데 허리를 굽히거나 어깨를 내려야 한다. 후술하겠지만 이 시동 버튼을 누르면 정말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고급 SUV인 만큼 소재도 고급화를 지향했다. 단순히 소프트한 소재를 쓴 것이 아니라 꽤 푹신거리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 두께감은 일부 링컨(Lincoln) 모델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벤츠가 이러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앰비언트 라이트와 고급스럽게 들어오고 꺼지는 실내조명도 고급화된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벤츠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도 GLE를 통해 처음 들어왔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벤츠도 터치식을 사용한다는 것. 이제 센터페시아 터치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렉서스뿐인 것 같다.
MBUX 개발을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것이 자사의 미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 들어온 MBUX에겐 조금 더 현지화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한국어 구현에는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영어라면 “배고픈데 라스베이거스의 아시안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스시는 빼고, 최소 별 4개 이상의 평점으로”라는 명령을 알아듣고 이에 맞춰 검색 결과를 내놓는다. 간단한 수학 계산도 가능하고 인터넷 정보 검색을 해야 하는 일반 상식 등도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기능을 100% 활용하기 힘들다. 한글화가 이뤄졌지만 영어만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도 개발자들이 열심히 현지화 작업 중일 것이다. 그래도 “나 추워”나 “00도로 온도 설정해줘”와 같은 말은 잘 알아듣는다. 한번 알아들으면 다음부터 잘 알아듣는 것 같은데, 이따금씩 잘 알아듣지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공지능 모션인식 기술인 MBUX 인테리어 어시스턴트(Mercedes-Benz User Experience Interior Assistant, MBUX IA) 기능도 빠졌다. MBUX IA에서는 오버헤드 콘솔에 장착된 카메라가 운전자와 보조석에 탑승한 승객의 움직임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다가 옆에 놓인 가방을 집으려 손을 뻗으면 자동으로 조수석 쪽에 조명을 켜준다. 손을 원래 위치로 옮기면 조명을 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탑승했다면 2명의 행동 모두를 파악해 필요한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능이 40여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국내 사양에는 빠진다. 한국인들도 몸짓 잘한다. 해외에서도 옵션이라지만 1억 원이 넘는 차 값을 생각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GLE의 장점이다. 일반적인 헤드-업 디스플레이들은 전면 윈도를 바라볼 때 밑부분에 빼꼼히 일부 정보를 보여주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GLE의 것은 시야의 절반 정도에 이를만큼 크다. 정보도 다양하게 보여준다. 한 번에 3가지 정보를 동시에 띄울 수도 있다. 주행 상황에 따른 중력가속도와 구동 배분 등 정보도 볼 수 있다. 밝기나 해상도 면에서도 아쉬움이 없다.
앞좌석은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하며, 운전석에서 조수석을 조작할 수 있다. 마사지 기능은 없는데, 대신 MBUX의 웰빙 메뉴에서 시트 키네틱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씩 시트의 위치를 바꿔가며 운전자에게 자극을 주는 기능이다. 긴장을 푸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기존 모델 대비 휠베이스가 80mm 늘었는데 체감적으로 더 많이 확대된 느낌이다. 이제 독일차는 국산차보다 좁다는 인식은 바꿔도 될 듯하다. 뒷좌석 손잡이는 꽤 컸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시트 슬라이딩이나 등받이 각도 조절이 안된다. 파노라믹 선루프도 없다.
트렁크 공간도 넓다. 당연히 시트 폴딩이 돼 공간을 추가 확장 시킬 수 있다. 화물을 싣고 내릴 때 편리하도록 지상고를 낮춰주는 버튼도 있다.
사운드 시스템은 14개의 스피커를 갖춘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적당히 저음을 강조하면서 깔끔한 음색을 내준다. 사운드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적어도 이름값을 하는 것. 이외에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이나 자동 주차 같은 기능도 있다. 인식률도 쓸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벤츠의 반자율 주행을 비롯한 각종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옵션으로 비용을 지출해 적용해야 한다. (2020년형은 500만 원 상승 후 기본 장착)
때문에 크루즈 컨트롤에서 차간거리 조절이 안됐고 차선이탈 경고 기능은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가 차선을 넘지 않게만 도와주는 정도로만 구현됐다. 다른 모델을 통해 반자율 기능을 체험해본 소비자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요즘 현대기아차는 이 ADAS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것을 갖지 못한 경쟁차들 공격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이제 고급 브랜드 상품에서는 이 기능을 빼놓으면 안 된다. ‘아반떼도 있는데…’라는 댓글을 보기 싫다면 말이다.
앞좌석과 뒷좌석 USB 포트는 모두 타입 C 방식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겠지만 아직은 일반 USB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A 타입도 준비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젠더를 제공해 주긴 한다. 애플 카플레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를 기본 지원하지 않는데, 카플레이는 메르세데스-미 스토어에서 구입해야 사용 가능하다.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별도로 구입해서 활용해야 하는 업체로는 BMW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아무리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고 해도 돈 내고 써야 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불만스럽게 한다. 물론 BMW 글로벌은 “타사는 이 시스템 구축 비용을 차 값에 포함시켰고 우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자 결국 2020년부터 무상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벤츠가 돈 받고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지원한다고? 이건 아니지 싶다.
엄밀히 따져서 GLE에는 정말 많은 기능들이 담긴다. 그리고 정말 세밀하게 각 기능들을 구현시켰다는 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구성 몇 가지(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중앙 차로 유지, 파노라믹 선루프)가 빠지다 보니 상품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GLE 구성에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행을 위해 시동 버튼을 누른다. 일반 차량하고 전혀 다르게 엔진이 작동한다. 일반적인 차량은 ‘끼기긱 부릉’하고 엔진이 작동한다. ‘끼기긱’은 흔히 크랭킹이라고 불리는 시동을 위한 모터 회전, ‘부릉’은 엔진 실린더 내 연료가 점화되면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다. 그리고 이때 엔진 회전수가 조금 높아졌다가 정상 범위로 낮아진다.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그냥 ‘텅’하고 시동이 걸린다. S-클래스부터 이런 감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GLE는 ‘스르륵’하며 시동이 걸린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다. 크랭킹도, 엔진 점화 느낌 없이 정말 스르륵 시동이 걸린다. 여기서부터 GLE는 다른 차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대부분은 BAS(Belt Alternator Starter)라는 이름의 모터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일반 자동차의 스타터 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이 BAS가 12V의 4배 전력인 48V를 받아 더 큰 힘을 내고, 이것으로 엔진에 힘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벤츠의 48V 시스템은 벨트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닌 ISG(Integrated Starter Generator)를 사용하고, 이것을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 모터의 출력은 22마력이며 25.5kgf.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모터가 51마력과 20.9kgf.m를 발휘하니 출력은 낮지만 토크가 더 높은 셈이다. 엔진의 시동을 걸기에 차고 넘치는 힘이다. 또, 벨트 없이 직결된 구조이기 때문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엔진 시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승차감은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했을 때 푹신거리는 서스펜션 감각이다. 그만큼 편안한 감각이 우선시되고, 요철도 그저 기분 좋게 지나갈 뿐이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처럼 모터는 제한적으로 엔진에 힘을 더해준다. 중저속 영역에서 힘을 더하기 보다 가속 페달을 많이 밟아 가속력을 끌어낼 때 힘을 추가해 주는 개념이다. 마치 터보차저의 오버부스트 모드와 비슷하다고 해서 벤츠에서는 EQ 부스트라고 부른다.
엔진은 직렬 6기통 3.0리터 사양이다. 여기에 터보차저를 더해 367마력과 51kgf.m의 토크를 내도록 만들었다. 다시 EQ 부스트가 더해지고 9단 변속기와 4륜 시스템인 4MATIC을 통해 동력을 4개의 바퀴로 전달한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고요하다. 아이들 정숙성은 38.0dBA. 제네시스 EQ900 3.3T-GDI, 링컨 컨티넨탈과 동일한 수치다. 진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디젤과는 다른 N.V.H 성능을 잘 보여준다.
주행을 해도 그렇다.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 56.0dBA을 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세단 S 560 4MATIC이 55.0dBA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 정숙성인지 비교가 될 것이다.
차량의 움직임은 진중하다. 부드럽게, 품위를 잃지 않는 느낌이다. 동시에 넉넉한 힘으로 속도를 올릴 때는 무게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테스트 모델의 무게를 직접 확인한 결과 2279.5kg 수준이었다. 성인 1명만 탑승해도 2.3톤이 넘는 무게인 것. 이 정도 무게를 그저 부드럽고 거침없이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원스럽게 속도를 올린다. 아무래도 에어 서스펜션 특성상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다 보니 가속 때 차량 앞부분이 들리고, 이로 인해 더 빠르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일상 주행처럼 거침없다. 힘은 넉넉하고 차량은 촐싹거리지 않게 안정적으로 빠르게 달린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한 결과는 5.88초를 기록했다. 제조사 발표 수치가 5.7초였으니 큰 차이 없는 성능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한 성능이고, 벤츠는 이 성능을 여유롭고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했다.
고속 안정감도 좋다. 독일 브랜드들이 잘 하는 분야고, 특히 벤츠는 이 분야가 대가다. 100km/h이든 200km/h이든 달라지는 것은 빠르게 흘러가는 주변 풍경뿐이다. 운전자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속도감이 너무 낮게 느껴진다는 것이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 100km/h 속도에서 운전자가 느끼는 속도감은 약 60~80km/h 내외. 탑승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어도 실제로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경우도 많다. 운전에 집중하지 않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속도감이 낮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올바른 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자가 문제라는 얘기다.
브레이크 페달은 초반을 소폭 민감하게 설정한 타입이다. 조금만 밟아도 잘 멈춘다고 느끼게 된다. 답력도 적당하고 조작도 쉽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쑥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했고, 브레이크 감각도 하이브리드와 같다.
그래도 요즘 트렌드를 잘 따르고 있다. 일상 주행 때는 이질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최대한 일반 브레이크 페달의 조작 감각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 답력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후자다. 일반 소비자들은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을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약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았는데 그대로 쑥 들어가도 당황할 필요 없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브레이크 성능은 어땠을까?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 거리는 36.54m였다. 2.3톤의 무게를 생각하면 좋은 성능이다. 테스트가 반복되더라도 최대 1.5m 정도만 밀려났다. 평균 제동거리는 37.4m. 메르세데스-벤츠가 보여주는 36~37m 대 제동거리를 이번 GLE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선다.
외부에서 바라봐도 잘 멈추게 생겼다. 20인치 휠 안을 브레이크 시스템이 꽉 채우고 있다. 여기에 일반 디스크가 아닌 타공 디스크를 사용해 열 발산도 신경 썼다. 다만 이따금씩 디스크에 강한 공기를 불어넣어 디스크 청소를 해줘야 한다. 타공 부위에 브레이크 패드 분진이 쌓이기 때문이다. 구멍을 막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구멍 내부에 힘이 가해지고 나중에 상태가 악화되면 디스크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성능이 좋은 만큼 관리도 필요해진다.
와인딩 로드로 자리를 옮겼다. 주행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벤츠는 12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길이 5.4m가 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까지 뉘르부르크링에서 주행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뉘르부르크링을 달린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같다. 항상 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바꾼다. 스티어링 휠이 보다 묵직하게 바뀐다. 가속 페달 조작에 따른 엔진의 반응성이 좋다. 변속기 반응도 빨라지며, 에어 서스펜션도 단단한 성격으로 변한다.
덩치가 커서 와인딩 로드에서 다소 부담이 따르긴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시스템의 신뢰도가 높아서 언제든 강한 제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 2.3톤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파워트레인 성능이 좋으며, 재가속을 때 터보 엔진의 반응도 빨랐다.
하지만 코너를 만나면 무게감이 커진다. 관성을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특히 275mm 너비의 피렐리 P 제로 타이어가 4개의 바퀴를 담당했지만 접지 한계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물론 일상 속에서는 충분한 성능이다. 다만 전체적인 성능을 감안할 때 소폭 아쉬웠다.
스티어 특성은 언더스티어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코너링 한계도 읽기 쉬웠다.
일상 주행 때 부드러웠던 서스펜션,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자 적당한 수준으로 단단해졌다. 코너를 돌 때도 바디롤을 잘 잡아냈다. 복합 코너를 지나도 휘청거리지 않고 깔끔한 무게중심 이동 능력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에어 서스펜션 특유의 탄력성을 잃지 않았다. 확실히 섀시 설계를 비롯한 셋업 부분은 벤츠가 잘 한다.
변속기는 9단 자동이다. 초기형 모델은 이따금씩 변속 충격이 발생했는데 GLE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부드럽고 빠른 반응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이며, 스포츠 모드로 변경했을 때 조금 더 빨라져도 좋겠다.
GLE에는 새로운 4륜 시스템이 탑재됐다. 기존 시스템은 전후륜에 구동력 배분이 가능했지만 범위는 다소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GLE의 4MATIC 시스템은 전륜과 후륜 구동 배분이 100:0에서 0:100까지 이뤄진다. 탄력성이 더 커진 것. 물론 일반 주행 상황은 아니며 특정 환경 때 이러한 극단적인 구동 배분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일상 주행이나 와인딩 로드 주행에서는 후륜 쪽에 동력을 집중시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의 속도로 주행 중인 상황에서 GLE가 보여준 연비는 13.5km/L다. 현대 팰리세이드, 쉐보레 트래버스, 혼다 파일럿, 포드 익스플로러 모두 12~12.5km/L 정도를 보였다. 이보다 더 무겁고 높은 출력을 발휘하는 GLE가 효율은 더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GLE 450만 해도 고성능 지향 모델이다.
12.5km/L나 13.5km/L나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8% 높은 효율이다. 2~3%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투입하는 자동차의 세계에서 8%는 정말 큰 차이다. 그리고 GLE는 이러한 차이를 실제로 보여줬다. 여기에는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가속 페달을 떼면 엔진 자체를 멈춰 연료 소비 자체를 차단시켜주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도움도 한몫했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역시 벤츠’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시동 버튼을 눌러 엔진이 깨어나는 것만 보더라도 본인이 얼마나 앞서간 기술력을 만난 것인지 바로 느낄 수 있다. 주행의 고급스러움, 성능, 연비, 운전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등 모든 부분에서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렇게 좋은 차가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품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차량 본질은 못 보고 옵션에만 집착한다고?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GLE 450 4MATIC의 가격은 1억 원이 넘는다. 이런 거금을 줬는데 2천만 원대 풀옵션 국산차에도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중앙 차로 유지 기능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자동 주차? 어차피 국내는 주차 폭이 좁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사운드 시스템? 한 등급 낮춰도 된다. 어차피 E-액티브 바디 컨트롤(E-ACTIVE BODY CONTROL)도 빼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AMG 익스테리어 패키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기능들을 빼더라도 벤츠의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Driving Assistance package)를 빼지 말았어야 한다. 누가 봐도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다른 부수적인 기능을 많이 넣었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구성이 빈약하다고 느끼게 된다.
서두에 언급했던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GLE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 4세대 GLE는 동급에서 가장 좋은 완성도와 만족감을 전달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아마 이 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몇몇 구성이 빠졌지만 GLE는 더 많은 부분에서 만족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악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은 실제 소비자가 아니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GLE를 구입하려고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접한다면 일정 부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GLE는 기존 모델과 비슷한 월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이 차의 완성도와 가치를 본다면? 여기서 2배는 더 팔렸어야 한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상품성의 중요성을 깊게 고민했으면 한다.
소비자들이 지적하는 것은 크게 3가지다. 반자율 주행 기능이 빠졌다는 것, 애플 카플레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것. 고가의 차량인데 선루프도 없다는 것. 그리고 가격이 비싸다는 것. 우선 가격부터 보자. 가장 저렴한 300d 모델이 9030만 원이다. 상급 450 모델은 1억 1050만 원에 달한다.
(참고로 우리 팀이 GLE를 테스트한 것은 지난 2019년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20년형 GLE 450을 내놓으면서 ADAS 기능을 보강했다. 하지만 가격을 500만 원가량 올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정말 많은 욕을 먹는 GLE지만 판매량을 보니 예전 GLE 만큼 팔린다. 욕하는 사람 따로, 구입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것.
그래서 오토뷰 팀이 나섰다. ‘GLE, 비싼 돈 주고 구입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테스트 모델은 상급 사양 GLE 450 4MATIC이다. AMG 익스테리어 패키지도 적용돼 범퍼의 디자인도 스포티하다. 하위 모델인 300d에는 AMG 패키지가 빠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두 모델 간 디자인 차이가 크다. 누구라도 AMG 패키지를 원할 것.
최근 등장한 CLS, GLE, A-클래스의 공통 특징은 다소 밋밋한 디자인이다. 때때로 못생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여기에 AMG 패키지 혹은 프로그레시브 패키지를 넣어야 멋진 모습이 된다.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 같은데, 왠지 옵션(질) 유도의 냄새도 풍긴다.
디자인은 과감하다. AMG 패키지 덕에 다이아몬드 패턴이 그릴에 박히며 한층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낸다. 범퍼에는 커다란 공기흡입구 디자인도 적용됐다. 독특한 디자인의 헤드램프에는 한 쪽당 84개의 LED로 이뤄진 매트릭스 LED도 탑재된다. 어두울 때 시동을 걸어보자. 눈앞에서 조명들이 화려한 오프닝 세리머니를 보여줄 것이다. 화려하다.
측면부는 한눈에 봐도 한 덩치 하는 SUV의 모습이다. 휠이 20인치나 되지만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그 안을 꽉 채운 브레이크 시스템도 넉넉한 제동 성능을 짐작하게 한다.
지상고가 높은 만큼 사이드 스텝도 있다. GLE는 동급 경쟁 모델인 BMW X5나 아우디 Q7과 비교해 조금 더 올라탄다는 느낌을 전한다. 쌍용자동차의 G4 렉스턴이나 쉐보레 콜로라도처럼 프레임 기반 차가 떠오를 정도로 꽤 높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만큼 지상고 조절 폭도 다양하다. 짐을 싣기 위해 최대한 내릴 경우(적재 모드 사용 시) 평상시 대비 50mm 가량 지상고를 낮출 수 있다. 그리고 오프로드 모드를 선택하면 평상시보다 60mm 가량 지상고가 올라간다.
후면에서는 얇아진 리어램프가 눈길을 끈다. 삼각형 디자인도 시선을 잡는다. 캐빈부터 차체, 오버 펜더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다부지고 근육질 적인 모습이다. 범퍼에는 듀얼 머플러가 보이는데, 디자인만 적용된 것으로, 실제 것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
인테리어는 고급화에 초점을 맞춘다. 최신 벤츠의 상징이 된 12.3인치 디스플레이 2개를 결합해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도 보여준다. 밝기와 난반사 등이 개선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는데 계기판이 별도의 커버 없이 그대로 노출된 모습이다. 시원스럽게 잘 보여서 좋다.
송풍구는 사각형 디자인이다. 센터 콘솔 부분에는 오프로드 주행 때 도움을 주는 손잡이를 달았는데, 제법 강인한 분위기를 보인다. 이외에 각종 버튼이나 변속 레버까지 모두 새로운 디자인으로 다듬었다.
그런데 시동 버튼이 다소 누르기 불편한 곳에 위치한다. 일반적인 버튼 위치보다 밑에 자리하는데, 누르는데 허리를 굽히거나 어깨를 내려야 한다. 후술하겠지만 이 시동 버튼을 누르면 정말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고급 SUV인 만큼 소재도 고급화를 지향했다. 단순히 소프트한 소재를 쓴 것이 아니라 꽤 푹신거리는 느낌으로 만들었다. 이 정도 두께감은 일부 링컨(Lincoln) 모델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벤츠가 이러한 부분까지 챙기고 있다. 다양한 색상의 앰비언트 라이트와 고급스럽게 들어오고 꺼지는 실내조명도 고급화된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
벤츠의 최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MBUX도 GLE를 통해 처음 들어왔다.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벤츠도 터치식을 사용한다는 것. 이제 센터페시아 터치를 지원하지 않는 것은 렉서스뿐인 것 같다.
MBUX 개발을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것이 자사의 미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 들어온 MBUX에겐 조금 더 현지화가 필요해 보인다. 특히 한국어 구현에는 조금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영어라면 “배고픈데 라스베이거스의 아시안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스시는 빼고, 최소 별 4개 이상의 평점으로”라는 명령을 알아듣고 이에 맞춰 검색 결과를 내놓는다. 간단한 수학 계산도 가능하고 인터넷 정보 검색을 해야 하는 일반 상식 등도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기능을 100% 활용하기 힘들다. 한글화가 이뤄졌지만 영어만큼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된다. 지금도 개발자들이 열심히 현지화 작업 중일 것이다. 그래도 “나 추워”나 “00도로 온도 설정해줘”와 같은 말은 잘 알아듣는다. 한번 알아들으면 다음부터 잘 알아듣는 것 같은데, 이따금씩 잘 알아듣지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공지능 모션인식 기술인 MBUX 인테리어 어시스턴트(Mercedes-Benz User Experience Interior Assistant, MBUX IA) 기능도 빠졌다. MBUX IA에서는 오버헤드 콘솔에 장착된 카메라가 운전자와 보조석에 탑승한 승객의 움직임을 인식한다. 예를 들어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다가 옆에 놓인 가방을 집으려 손을 뻗으면 자동으로 조수석 쪽에 조명을 켜준다. 손을 원래 위치로 옮기면 조명을 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탑승했다면 2명의 행동 모두를 파악해 필요한 도움을 준다. 이러한 기능이 40여 가지가 넘는다. 하지만 국내 사양에는 빠진다. 한국인들도 몸짓 잘한다. 해외에서도 옵션이라지만 1억 원이 넘는 차 값을 생각했을 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GLE의 장점이다. 일반적인 헤드-업 디스플레이들은 전면 윈도를 바라볼 때 밑부분에 빼꼼히 일부 정보를 보여주는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GLE의 것은 시야의 절반 정도에 이를만큼 크다. 정보도 다양하게 보여준다. 한 번에 3가지 정보를 동시에 띄울 수도 있다. 주행 상황에 따른 중력가속도와 구동 배분 등 정보도 볼 수 있다. 밝기나 해상도 면에서도 아쉬움이 없다.
앞좌석은 통풍과 열선 기능을 지원하며, 운전석에서 조수석을 조작할 수 있다. 마사지 기능은 없는데, 대신 MBUX의 웰빙 메뉴에서 시트 키네틱 기능을 선택할 수 있다. 조금씩 시트의 위치를 바꿔가며 운전자에게 자극을 주는 기능이다. 긴장을 푸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기존 모델 대비 휠베이스가 80mm 늘었는데 체감적으로 더 많이 확대된 느낌이다. 이제 독일차는 국산차보다 좁다는 인식은 바꿔도 될 듯하다. 뒷좌석 손잡이는 꽤 컸다.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시트 슬라이딩이나 등받이 각도 조절이 안된다. 파노라믹 선루프도 없다.
트렁크 공간도 넓다. 당연히 시트 폴딩이 돼 공간을 추가 확장 시킬 수 있다. 화물을 싣고 내릴 때 편리하도록 지상고를 낮춰주는 버튼도 있다.
사운드 시스템은 14개의 스피커를 갖춘 부메스터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다. 적당히 저음을 강조하면서 깔끔한 음색을 내준다. 사운드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 적어도 이름값을 하는 것. 이외에 어라운드 뷰 모니터링이나 자동 주차 같은 기능도 있다. 인식률도 쓸 만하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다. 먼저 벤츠의 반자율 주행을 비롯한 각종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옵션으로 비용을 지출해 적용해야 한다. (2020년형은 500만 원 상승 후 기본 장착)
때문에 크루즈 컨트롤에서 차간거리 조절이 안됐고 차선이탈 경고 기능은 스티어링 휠과 브레이크가 차선을 넘지 않게만 도와주는 정도로만 구현됐다. 다른 모델을 통해 반자율 기능을 체험해본 소비자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요즘 현대기아차는 이 ADAS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것을 갖지 못한 경쟁차들 공격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기에 이제 고급 브랜드 상품에서는 이 기능을 빼놓으면 안 된다. ‘아반떼도 있는데…’라는 댓글을 보기 싫다면 말이다.
앞좌석과 뒷좌석 USB 포트는 모두 타입 C 방식이다. 미래를 위한 준비겠지만 아직은 일반 USB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있으니 A 타입도 준비하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래도 젠더를 제공해 주긴 한다. 애플 카플레이나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를 기본 지원하지 않는데, 카플레이는 메르세데스-미 스토어에서 구입해야 사용 가능하다.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별도로 구입해서 활용해야 하는 업체로는 BMW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아무리 무선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한다고 해도 돈 내고 써야 한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불만스럽게 한다. 물론 BMW 글로벌은 “타사는 이 시스템 구축 비용을 차 값에 포함시켰고 우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지 않자 결국 2020년부터 무상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벤츠가 돈 받고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지원한다고? 이건 아니지 싶다.
엄밀히 따져서 GLE에는 정말 많은 기능들이 담긴다. 그리고 정말 세밀하게 각 기능들을 구현시켰다는 점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구성 몇 가지(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중앙 차로 유지, 파노라믹 선루프)가 빠지다 보니 상품성이 매우 부족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GLE 구성에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행을 위해 시동 버튼을 누른다. 일반 차량하고 전혀 다르게 엔진이 작동한다. 일반적인 차량은 ‘끼기긱 부릉’하고 엔진이 작동한다. ‘끼기긱’은 흔히 크랭킹이라고 불리는 시동을 위한 모터 회전, ‘부릉’은 엔진 실린더 내 연료가 점화되면서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다. 그리고 이때 엔진 회전수가 조금 높아졌다가 정상 범위로 낮아진다. 이 과정을 극단적으로 줄이면 그냥 ‘텅’하고 시동이 걸린다. S-클래스부터 이런 감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GLE는 ‘스르륵’하며 시동이 걸린다. 글로 표현하기 힘든 감각이다. 크랭킹도, 엔진 점화 느낌 없이 정말 스르륵 시동이 걸린다. 여기서부터 GLE는 다른 차와 다르다는 것이 느껴진다.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등장하고 있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 대부분은 BAS(Belt Alternator Starter)라는 이름의 모터를 사용한다. 그러니까 구조적으로 일반 자동차의 스타터 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 이 BAS가 12V의 4배 전력인 48V를 받아 더 큰 힘을 내고, 이것으로 엔진에 힘을 더해주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벤츠의 48V 시스템은 벨트를 통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닌 ISG(Integrated Starter Generator)를 사용하고, 이것을 엔진과 변속기 사이에 위치시켰다. 이 모터의 출력은 22마력이며 25.5kgf.m의 토크를 만들어낸다. 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모터가 51마력과 20.9kgf.m를 발휘하니 출력은 낮지만 토크가 더 높은 셈이다. 엔진의 시동을 걸기에 차고 넘치는 힘이다. 또, 벨트 없이 직결된 구조이기 때문에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엔진 시동이 가능했던 것이다.
승차감은 부드러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했을 때 푹신거리는 서스펜션 감각이다. 그만큼 편안한 감각이 우선시되고, 요철도 그저 기분 좋게 지나갈 뿐이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처럼 모터는 제한적으로 엔진에 힘을 더해준다. 중저속 영역에서 힘을 더하기 보다 가속 페달을 많이 밟아 가속력을 끌어낼 때 힘을 추가해 주는 개념이다. 마치 터보차저의 오버부스트 모드와 비슷하다고 해서 벤츠에서는 EQ 부스트라고 부른다.
엔진은 직렬 6기통 3.0리터 사양이다. 여기에 터보차저를 더해 367마력과 51kgf.m의 토크를 내도록 만들었다. 다시 EQ 부스트가 더해지고 9단 변속기와 4륜 시스템인 4MATIC을 통해 동력을 4개의 바퀴로 전달한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고요하다. 아이들 정숙성은 38.0dBA. 제네시스 EQ900 3.3T-GDI, 링컨 컨티넨탈과 동일한 수치다. 진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디젤과는 다른 N.V.H 성능을 잘 보여준다.
주행을 해도 그렇다.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 56.0dBA을 보였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세단 S 560 4MATIC이 55.0dBA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 정숙성인지 비교가 될 것이다.
차량의 움직임은 진중하다. 부드럽게, 품위를 잃지 않는 느낌이다. 동시에 넉넉한 힘으로 속도를 올릴 때는 무게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테스트 모델의 무게를 직접 확인한 결과 2279.5kg 수준이었다. 성인 1명만 탑승해도 2.3톤이 넘는 무게인 것. 이 정도 무게를 그저 부드럽고 거침없이 속도를 올릴 수 있다는 점이 만족스럽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원스럽게 속도를 올린다. 아무래도 에어 서스펜션 특성상 탄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다 보니 가속 때 차량 앞부분이 들리고, 이로 인해 더 빠르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일상 주행처럼 거침없다. 힘은 넉넉하고 차량은 촐싹거리지 않게 안정적으로 빠르게 달린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한 결과는 5.88초를 기록했다. 제조사 발표 수치가 5.7초였으니 큰 차이 없는 성능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충분한 성능이고, 벤츠는 이 성능을 여유롭고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했다.
고속 안정감도 좋다. 독일 브랜드들이 잘 하는 분야고, 특히 벤츠는 이 분야가 대가다. 100km/h이든 200km/h이든 달라지는 것은 빠르게 흘러가는 주변 풍경뿐이다. 운전자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속도감이 너무 낮게 느껴진다는 것이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 100km/h 속도에서 운전자가 느끼는 속도감은 약 60~80km/h 내외. 탑승자는 별거 아닌 것처럼 느낄 수 있어도 실제로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경우도 많다. 운전에 집중하지 않다가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속도감이 낮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올바른 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자가 문제라는 얘기다.
브레이크 페달은 초반을 소폭 민감하게 설정한 타입이다. 조금만 밟아도 잘 멈춘다고 느끼게 된다. 답력도 적당하고 조작도 쉽다. 다만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쑥 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마일드 하이브리드라고 해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사용했고, 브레이크 감각도 하이브리드와 같다.
그래도 요즘 트렌드를 잘 따르고 있다. 일상 주행 때는 이질감을 최소화 시키기 위해 최대한 일반 브레이크 페달의 조작 감각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차이점이라면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 답력 변화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후자다. 일반 소비자들은 브레이크 페달을 끝까지 밟을 일이 없어야겠지만 만약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았는데 그대로 쑥 들어가도 당황할 필요 없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브레이크 성능은 어땠을까?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최단 거리는 36.54m였다. 2.3톤의 무게를 생각하면 좋은 성능이다. 테스트가 반복되더라도 최대 1.5m 정도만 밀려났다. 평균 제동거리는 37.4m. 메르세데스-벤츠가 보여주는 36~37m 대 제동거리를 이번 GLE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잘 선다.
외부에서 바라봐도 잘 멈추게 생겼다. 20인치 휠 안을 브레이크 시스템이 꽉 채우고 있다. 여기에 일반 디스크가 아닌 타공 디스크를 사용해 열 발산도 신경 썼다. 다만 이따금씩 디스크에 강한 공기를 불어넣어 디스크 청소를 해줘야 한다. 타공 부위에 브레이크 패드 분진이 쌓이기 때문이다. 구멍을 막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구멍 내부에 힘이 가해지고 나중에 상태가 악화되면 디스크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성능이 좋은 만큼 관리도 필요해진다.
와인딩 로드로 자리를 옮겼다. 주행 완성도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참고로 벤츠는 12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길이 5.4m가 넘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600까지 뉘르부르크링에서 주행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뉘르부르크링을 달린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같다. 항상 하는 일 중 하나이니까.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바꾼다. 스티어링 휠이 보다 묵직하게 바뀐다. 가속 페달 조작에 따른 엔진의 반응성이 좋다. 변속기 반응도 빨라지며, 에어 서스펜션도 단단한 성격으로 변한다.
덩치가 커서 와인딩 로드에서 다소 부담이 따르긴 한다. 하지만 브레이크 시스템의 신뢰도가 높아서 언제든 강한 제동력을 끌어낼 수 있다. 2.3톤이라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파워트레인 성능이 좋으며, 재가속을 때 터보 엔진의 반응도 빨랐다.
하지만 코너를 만나면 무게감이 커진다. 관성을 이길 수는 없었나 보다. 특히 275mm 너비의 피렐리 P 제로 타이어가 4개의 바퀴를 담당했지만 접지 한계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물론 일상 속에서는 충분한 성능이다. 다만 전체적인 성능을 감안할 때 소폭 아쉬웠다.
스티어 특성은 언더스티어다. 하지만 예측 가능한 수준이다. 코너링 한계도 읽기 쉬웠다.
일상 주행 때 부드러웠던 서스펜션,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자 적당한 수준으로 단단해졌다. 코너를 돌 때도 바디롤을 잘 잡아냈다. 복합 코너를 지나도 휘청거리지 않고 깔끔한 무게중심 이동 능력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에어 서스펜션 특유의 탄력성을 잃지 않았다. 확실히 섀시 설계를 비롯한 셋업 부분은 벤츠가 잘 한다.
변속기는 9단 자동이다. 초기형 모델은 이따금씩 변속 충격이 발생했는데 GLE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부드럽고 빠른 반응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는 일상생활 속에서이며, 스포츠 모드로 변경했을 때 조금 더 빨라져도 좋겠다.
GLE에는 새로운 4륜 시스템이 탑재됐다. 기존 시스템은 전후륜에 구동력 배분이 가능했지만 범위는 다소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GLE의 4MATIC 시스템은 전륜과 후륜 구동 배분이 100:0에서 0:100까지 이뤄진다. 탄력성이 더 커진 것. 물론 일반 주행 상황은 아니며 특정 환경 때 이러한 극단적인 구동 배분 변화가 생긴다. 그리고 일상 주행이나 와인딩 로드 주행에서는 후륜 쪽에 동력을 집중시키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의 속도로 주행 중인 상황에서 GLE가 보여준 연비는 13.5km/L다. 현대 팰리세이드, 쉐보레 트래버스, 혼다 파일럿, 포드 익스플로러 모두 12~12.5km/L 정도를 보였다. 이보다 더 무겁고 높은 출력을 발휘하는 GLE가 효율은 더 높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특히나 GLE 450만 해도 고성능 지향 모델이다.
12.5km/L나 13.5km/L나 큰 차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8% 높은 효율이다. 2~3% 효율을 높이기 위해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투입하는 자동차의 세계에서 8%는 정말 큰 차이다. 그리고 GLE는 이러한 차이를 실제로 보여줬다. 여기에는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가속 페달을 떼면 엔진 자체를 멈춰 연료 소비 자체를 차단시켜주는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도움도 한몫했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역시 벤츠’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 시동 버튼을 눌러 엔진이 깨어나는 것만 보더라도 본인이 얼마나 앞서간 기술력을 만난 것인지 바로 느낄 수 있다. 주행의 고급스러움, 성능, 연비, 운전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 등 모든 부분에서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렇게 좋은 차가 시장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상품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차량 본질은 못 보고 옵션에만 집착한다고?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GLE 450 4MATIC의 가격은 1억 원이 넘는다. 이런 거금을 줬는데 2천만 원대 풀옵션 국산차에도 있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이나 중앙 차로 유지 기능이 없다는 것은 문제다.
자동 주차? 어차피 국내는 주차 폭이 좁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사운드 시스템? 한 등급 낮춰도 된다. 어차피 E-액티브 바디 컨트롤(E-ACTIVE BODY CONTROL)도 빼고 들어오지 않았던가? AMG 익스테리어 패키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기능들을 빼더라도 벤츠의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Driving Assistance package)를 빼지 말았어야 한다. 누가 봐도 중요한 요소다. 아무리 다른 부수적인 기능을 많이 넣었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구성이 빈약하다고 느끼게 된다.
서두에 언급했던 질문의 답을 찾아보자. GLE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 그렇다. 4세대 GLE는 동급에서 가장 좋은 완성도와 만족감을 전달했다.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말이 많아도 아마 이 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몇몇 구성이 빠졌지만 GLE는 더 많은 부분에서 만족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악평만 늘어놓는 사람들은 실제 소비자가 아니다. 하지만 여론이라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 GLE를 구입하려고 망설이는 소비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접한다면 일정 부분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재 GLE는 기존 모델과 비슷한 월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이 차의 완성도와 가치를 본다면? 여기서 2배는 더 팔렸어야 한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상품성의 중요성을 깊게 고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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