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EQS "전기차도 역시 S는 S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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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메르세데스-벤츠의 전동화 전략은 SUV 중심으로 이뤄졌다. 비록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브랜드 최초 순수전기차인 EQC와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는 EQA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EQC와 EQA는 내연기관 플랫폼의 한계로 인해 디자인과 주행거리 등에서 벤츠답지 못하다는 악평이 쏟아졌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진짜 전기차'를 준비하며 칼을 갈았다. 그렇게 선보이는 신차에는 브랜드 자존심과도 같은 알파벳 S까지 붙이며 자신만만한 모양새다. 브랜드 전기차 전용 모듈 플랫폼을 최초로 적용한 럭셔리 전기 세단 EQS를 독일 뮌헨에서 만나봤다.
시승차는 EQS 580 4매틱 모델이다. S라는 알파벳과 580이라는 숫자에 걸맞게 길쭉길쭉하고 화려하다. 그러나 디자인 요소를 하나하나씩 뜯어보면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우선 운전석 위치가 앞바퀴 바로 뒤까지 전진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다. 보닛은 완만하게 A필러와 이어지며, 루프에서 테일게이트까지 자연스럽게 흐르는 라인은 마치 컴퓨터 마우스를 보는듯하다.
옆면은 별다른 특징 없이 단순하다. 희미한 캐릭터 라인이 도어 하단부를 가로지르며, 창문 테두리도 검은색으로 마감해 강조점이 없다. 앞·뒤 오버행은 너무 짧고 휠베이스는 매우 넓어 낯선 느낌이 더 크게 다가온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독일의 개, 닥스훈트가 연상되는 몸매다.
그럼에도 눈매는 예쁘다. 보닛 끝단에 크롬 라인이 길게 이어지고, 그 아래로 거대한 헤드램프가 자리 잡고 있다. 방향지시등과 주간주행등은 헤드램프 위쪽에 얇고 길게 배치해 날렵한 눈매를 완성한다. 전면부 그릴은 절개된 곳 없이 평평하게 설계됐다.
옥에 티는 엠블럼 내부에 위치한 전방 카메라다. 나름대로 삼각별 안쪽 빈 공간에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브랜드의 얼굴과도 같은 엠블럼에 뾰루지가 난 것처럼 튀어나온 모습은 예쁘지 않다.
운전석 쪽 펜더에 정체불명의 직사각형 틀도 호불호가 나뉜다. 이곳에는 황당하게도 워셔액 주입구가 위치한다. 단순하고 깔끔하게 설계한 옆면에 뜬금없이 워셔액 주입구라니,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다.
뒷면은 최신 디자인 트렌드를 충실히 따른 모양새다. 테일램프는 역삼각형 모양의 S클래스 테일램프를 연상케 하지만, 내부 그래픽이 백열전구 안 필라멘트처럼 더 역동적이다. 긴 램프로 좌우를 이어놓았고, 그 위에 자그마한 리어 스포일러가 다운포스 효과와 더불어 디자인적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전한다.
호불호가 나뉘는 외관과 달리 실내는 가히 '전기차 끝판왕'이라 부를 만하다. 옵션으로 제공되는 MBUX 하이퍼스크린 덕분에 총 세 개의 거대한 화면이 하나로 이어진 듯 연출됐다.
디스플레이가 광활해지며 메르세데스-벤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상징과도 같던 넓은 터치패드는 사라졌다. 이를 대신해 센터 콘솔에는 전원부터 주행 모드, 비상등, 볼륨 버튼, 지문인식 센서 등이 깔끔하게 배치됐다.
S클래스와 형제임을 입증하듯 손이 닿는 거의 모든 곳이 부드러운 가죽으로 마감됐다. 디스플레이에 밀려난 나무 장식은 도어 패널과 센터콘솔로, 송풍구는 디스플레이 위쪽으로 이동했다. 송풍구와 함께 엠비언트 라이트가 차량 전체를 두르고 있어 밝은 대낮에도 감각적인 실내 분위기를 형성한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디지털 클러스터 위 햇빛 가리개가 부활했다는 점이다. 그간 메르세데스-벤츠는 가림막 없이 디지털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를 하나의 유리로 잇는 디자인을 주로 사용해왔다.
디지털 클러스터 뒤편에는 증강 현실(AR) 기술이 동원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적용됐다. 밝고 선명한 것은 물론, 내비게이션과 연동되어 갈림길이 나타나면 가야 할 방향에 파란색 화살표를 띄워준다. 이 화면은 센터 디스플레이에서 합성되어 볼 수 있는데, 앞에서 보던 풍경이 화면에 그대로 표시되니 신선하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활성화하면 앞차와의 간격을 HUD에 표시한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디스플레이나 HUD보다 더 반가운 것은 계기판에 표시되는 주행가능거리다. 배터리가 약 81% 남은 상태임에도 557km나 달릴 수 있다고 표시된다.
EQS 배터리 용량은 무려 107.8kWh다. 단적으로 비교하자면 르노 조에(54.5kWh)나 푸조 e-208(47.4kWh)과 같은 도심형 전기차의 두 배가 넘는 거대한 배터리가 탑재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높은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었던 이유로 '에너지 밀도 향상'을 꼽았다. 앞서 EQC에 탑재됐던 배터리보다 밀도가 26%나 향상됐다.
'용량 깡패' 배터리에 힘입은 WLTP 기준 주행거리는 770km에 달한다. 유럽 전기차들이 한국 환경부의 인증 절차를 거치면 주행거리가 칼로 썰려 나가듯 줄어드는데, 이를 감안해도 EQS는 상당한 주행거리가 기대된다.
여기에 매끈한 디자인으로 얻어진 0.20Cd에 불과한 공기저항 계수까지, 운전 중 남은 주행 가능 거리를 볼 때마다 앞서 디자인에 불만을 가졌던 것이 미안할 정도다.
한참을 감탄한 후 자세를 고쳐 앉았다. S클래스에 걸맞은 부드럽고 푹신한 시트가 몸을 반긴다. 전원을 켜고 벤츠 특유의 변속 레버를 아래로 당기자 차량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몇 미터 움직이지 않아 "역시 S는 S다"란 생각이 절로 든다. 부드러운 서스펜션과 시작부터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전기모터가 만나 깃털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가벼운 몸놀림이 인상적이다. 게다가 이중 접합 유리까지 꼼꼼하게 둘러 실내는 바깥세상과 격리된 느낌이다. 공조기 소리를 제외한다면 마치 도서관에 온듯하다.
EQS 580은 앞·뒤축에 각각 한 개의 전기모터가 탑재되어 최고출력 385kW(약 523마력)를 발휘한다. 모터의 힘이 워낙 출중한 탓에 거대한 배터리가 바닥에 깔린 2.5톤의 육중한 차체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주행 모드는 에코, 컴포트, 스포츠, 인디비주얼 등 4가지가 마련됐다. 에코 모드에서 스포츠 모드로 갈수록 스티어링 휠의 무게는 확연하게 무거워지지만, 서스펜션은 한결같이 낭창낭창 부드럽다.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다음 가속 페달을 가볍게 밟으면 차량은 당연하게도 강하게 지면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가며 몸을 시트에 밀착시킨다. 그러나 가속력보다 놀라운 것은 소리다. SF영화에서 우주선이 발진할 때 나는 듯한 소리가 차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포르쉐 타이칸과 살짝 비슷한 듯 하면서도 엔진의 진동처럼 떨리는 소리가 매력적이다.
스티어링 휠 뒤에 붙어있는 패들시프터로 회생 제동 단계를 D-, D, D+, D++, 오토 등 총 5단계로 조절할 수도 있다. 회생제동이 가장 강하게 걸리는 D- 모드에서는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할 정도로 강력하게 잡아준다. D++ 모드에서는 회생 제동이 작동하지 않아 고속도로에서 타력 주행을 할 수 있으며, 오토 모드에서는 차량이 차간 거리나 속도 등을 고려해 스스로 회생 제동 강도를 조절한다.
S클래스의 킬링 콘텐츠와도 같은 후륜 조향 역시 EQS에 탑재됐다. 다만, 차량 하부 배터리 때문인지 최대 조향각이 기존 S클래스의 10도에서 4.5도로 줄었다. 그래도 4.5도 만으로도 거대한 차체를 움직이는데 한결 수월하다.
많은 사람이 벤츠의 첫 전기차 EQC를 보고 애매한 디자인과 짧은 주행거리로 인해 실망했었다. 심지어는 '삼각별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메르세데스-벤츠가 앞으로 내놓을 전기차에 대한 기대를 접겠다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메르세데스-벤츠는 S라는 글자를 자신 있게 다시 꺼냈고, 직접 경험해본 EQS는 벤츠의 그러한 자신감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는 차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이번 IAA 모빌리티 2021에서 고성능 브랜드 AMG의 첫 전기차 EQS 53은 물론, 마이바흐 EQS SUV 콘셉트까지 내놓았다. 앞서 벤츠 전기차에 실망한 적이 있더라도, EQS는 다시금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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