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어쩔 수 없는 고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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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은 무척 높았다. 최근 메르세데스-벤츠는 확실히 젊어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구태의연함을 벗어 던진 디자인이나 앞서가는 첨단기술 등은 새로운 세대의 메르세데스-벤츠를 예고하는 듯 했다. 더욱이 C클래스가 속한 세그먼트는 스포츠세단의 원조, BMW 3시리즈가 굳건히 버티고 있어서 내심 그보다 훨씬 빠른 C클래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신형 C클래스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거나 민첩하진 않았다. 물론, 이전 세대 모델에 비해서는 전반적으로 주행성능이 향상됐지만 치열한 시장에서 두드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 누구보다 조작이 쉽고 안전했으며 속도만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높은 신뢰감이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우리가 오늘날 별다른 의식없이 사용하는 안전벨트나 ABS, 에어백 등을 일반화시켰다. 또 충돌테스트를 가장 먼저 도입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차를 만들려 노력했다. 무려 60년 전의 얘기다. 이런 안전에 대한 그들의 집념과 오랜 기술 개발을 신형 C클래스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자동차성능연구소에서 메르세데스-벤츠 독일 본사의 드라이빙 아카데미팀이 구성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신형 C클래스를 만나봤다.
◆ 슬라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거동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라바콘을 지그재그로 피하면서 주행하는 슬라럼(Slalom)은 거의 모든 드라이빙 스쿨에서 가장 처음 배우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가장 기본적인 교육이지만 그만큼 소홀히 해선 안되는 부분이다. 또 기본이 튼튼해야 빠르면서도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 등을 느끼며 차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고, 속도에 따른 정확한 스티어링 조작 시점이나 하중 이동을 몸에 익힐 수 있다.
슬라럼에서는 C200 익스클루시브에 올랐다. C클래스는 외관 디자인에 따라 아방가르드와 익스클루시브로 나뉜다. 아방가르드는 라디에이터 그릴에 엠블럼이 붙었고, 익스클루시브는 보닛위에 삼각별이 세워져있다.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만 다를 뿐인데 완전히 다른 차라고 느껴질 정도다. 아방가르드가 E클래스를 닮았다면 익스클루시브는 S클래스와 판박이다.
삼각별을 보며 라바콘 사이를 휘저었다. 삼각별이 마치 조준경처럼 느껴진다. 정확도는 독일의 전설적인 저격총 ‘PSG-1’에 필적할 정도다. 매우 유연하게 구렁이 담 넘듯 라바콘을 피해갔다.
속도에 따른 스티어링휠의 무게감이나 일정한 조작에 따라 신속하게 앞머리를 돌리는 느낌은 훌륭하다. 슬라럼을 하다보면 라바콘을 지날수록 속도가 조금씩 높아지고 각도도 커지기 마련이지만 신형 C클래스는 예상보다 움직임이 더 컸다. 하지만 안전 범위를 벗어날 정도까지 가만두진 않는다. 전자장비의 개입으로 바로 중심을 잡고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할 수 있다. 전자장비의 개입이 매우 깔끔한 것도 특징이다.
◆ 차선 변경,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벤츠의 자세
차선 변경(Lane Change)는 가장 인상적인 세션이었다. 위급 상황을 연출해 브레이크 조작 없이 갑작스런 차선변경을 실시하고 재빨리 본래 차선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를 시험했다. 북유럽에서는 도로에 자주 출몰하는 큰사슴을 피하는 것이라며 ‘엘크(Elk) 테스트’ 혹은 ‘무스(Moose) 테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 스웨덴에서 불거진 i30의 스티어링휠 잠김 현상도 이 테스트를 통해 밝혀졌다. 스티어링의 완성도도 중요하겠지만 주로 ESP, VDC 등과 같은 차체자세제어 장비를 시험할 때 활용한다. 공포감은 상당하다. 브레이크 조작 없이 먼저 방향을 바꾸고 되돌려야 하기 때문에 안전할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이 앞선다. 많은 기자들은 지레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얹기도 했다.
일단, 대략 50m 남짓한 거리에서 시속 90km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또 그 과정이 매우 부드럽고 조용하게 전개된다. 변속기는 차근차근 단수를 높이며 힘을 꾸준하게 바퀴에 전달한다. 속도를 높이다 순식간에 왼쪽, 오른쪽으로 연이어 방향을 튼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시속 90km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연속적인 방향 전환을 시도하면 대부분 스핀하거나 무게중심을 잃어 한쪽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신형 C클래스의 안전보조 시스템인 ‘프리-세이프’는 마치 이 상황이 운전자의 운전실력으로 느껴질 정도로 조용하게 개입해 강력하게 차를 붙잡는다. 중심을 쉽게 잃지 않는다. 오히려 차를 스핀시키는게 어렵다고 느껴진다. 브레이크나 스티어링 조작이 미숙해 완벽하게 차선에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는 있었으나 시속 90km에서 스핀하는 경우는 한차례도 없었다. 신뢰가 가는 부분이다.
자세를 잃지 않고 차선으로 복귀한 후 완벽하게 멈춰서 위험 상황을 종료하기까지 불과 몇초 사이에 ECU는 셀수없을 정도로 연산한다. 프리-세이프가 작동하면 안전벨트가 바짝 당겨지며 운전자를 시트에 밀착시키다. 열려있던 창문은 약 3cm를 남기고 닫힌다. 이 틈새는 에어백이 전개됐을때 그 가스를 내보내기 위함이다. 만약 시트가 앞쪽으로 밀착됐었다면 시트도 안전으로 위해 뒤로 조절된다. 또 비상등이 자동으로 점등돼 다른 차에 위험을 알리기도 한다.
◆ 핸들링, 뛰어난 차체와 새로운 서스펜션…그럼에도 부드러워
독일에서 넘어온 메르세데스-벤츠의 드라이빙 아카데미 강사진은 자동차성능연구소의 거대한 공터에 오밀조밀한 간이 서킷을 만들었다. 슬라럼과 시케인, 난해한 헤어핀이 난무했다. 신형 C클래스의 핸들링을 테스트하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신형 C클래스는 이전 세대 모델에 비해 길이는 65mm 길어졌고, 휠베이스는 80mm 늘었지만 무게는 최대 100kg까지 감소했다. 차체의 50% 가량에 알루미늄을 사용했고, 초고장력 강판의 비중도 높였다. 덕분에 강성은 향상됐다. 여기에 가변식 댐핑 시스템인 ‘어질리티(Agility) 컨트롤 서스펜션’이 적용돼 에코, 컴포트, 스포트, 스포트+, 인디비주얼 등 다섯가지 주행모드를 설정할 수 있다.
어질리티 컨트롤 서스펜션을 통해 엔진, 변속기, 스티어링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데 그 변화는 다소 미미하다. 극한의 상황이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부드러움이 짙게 깔려있는 것은 분명하다. 주행 상황에 따라 모드는 변경되지 않지만 서스펜션의 감쇠력은 자동으로 변경된다고 한다. 다 안전을 위함이라고 독일 인스트럭터는 설명했다.
슬라럼에서는 비교적 움직임이 민첩하다고 느꼈는데, 연이은 코속 코너나 헤어핀에서는 몸이 무겁다. 3시리즈에 비해 조금 더 부드럽다. 스티어링의 특성도 매우 여유롭다. 유격은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예상보다 더 스티어링휠을 각도를 크게 조작해야 했다. 과격한 주행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조작폭이 커지니 예리하게 코너를 돌아나가기 힘들다. 차체도 쉬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하지만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후륜구동이지만 누구나 쉽게 운전할 수 있을 만큼 난이도가 보편화됐다.
기본적인 성능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170마력의 디젤 엔진은 욱하는 성격은 아니다. 마치 가솔린 엔진처럼 부드럽게 돌고, 꾸준하게 속도를 높인다. 정숙성도 큰 차이는 없다. 184마력의 가솔린 엔진은 3시리즈의 2.0 가솔린 엔진과 비교해 최고출력은 동일하지만 최대토크가 조금 더 높다. 자동차성능연구소의 일정상 5km 길이의 오버홀 고속테스트는 진행하지 못했지만 순간적인 가속능력만큼은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 전통적인 메르세데스-벤츠의 특징이 그대로
극한의 상황을 설정한 시승이었지만 신형 C클래스에서는 S클래스 못지 않게 메르세데스-벤츠 고유의 성격이 진하게 느껴진다. 굳이 경쟁 모델을 겨냥한 힘 겨루기보다는 자신만의 특징을 더욱 극대화했다. 빠른 것, 운전의 재미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또 일부 소수의 마니아가 아닌 보편 다수의 입장에 섰다.
이름만 남고 모든 것이 변했지만 여전히 여유롭고, 부드럽다. 또 조용하고 편안하다. 운전이 쉽고, 그것도 부족했는지 첨단 안전시스템까지 대거 적용됐다. 실내의 고급스러움이나 디자인의 세련됨은 경쟁 모델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우월하다.
좋은 차를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신형 C클래스는 어떤 기준에 있어서도 누구나 충분히 수긍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아졌다. 여기에 굳이 치료받을 필요없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질병, 안전에 대한 철학이 잘 반영된 모델이기에 국내에서의 반응이 유난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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