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르반떼 S & 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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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는 기블리를 시작으로 콧대 높은 럭셔리 브랜드에서 소비자를 위해 자세를 낮춘 럭셔리 브랜드로 성격을 바꿨다. 또한 기블리의 성공 이후 대세로 떠오른 SUV 장르에 도전하며 르반떼를 내놨다. 덕분에 판매 볼륨을 더 확대시킬 수 있었다. 2016년 국내 시장의 판매량은 1,300여 대 규모였다. 하지만 2017년에 2천여 대까지 크게 상승했다. 기블리와 르반떼는 마세라티의 성공을 부추긴 소위 ‘대박 상품’이 됐다.
그리고 2018년을 바라보며 르반떼도 부분 변경을 진행했다. 그런 르반떼가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이참에 고성능 모델인 르반떼 S와 성능과 효율을 겸비한 르반떼 디젤을 함께 만나봤다.
새롭게 변경됐다지만 막상 만나보니 생김새는 같았다. 그렇다고 100% 동일한 것은 아니다. 앞좌석 도어 하단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GranLusso’라는 배지가 부착돼 있다. 기블리를 시작으로 르반떼도 그란루소와 그란스포트 모델로 나뉘게 된 것. 그리고 구성에 맞춰 배지를 차량 옆면에 부착시킨 것이다. 그란루소는 고급스러움에, 그란스포트는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모델은 모두 그란루소 트림이었다.
기존 모델 대비 디자인의 차별화는 없다. 가솔린과 디젤 모델 간 차이도 없다. 어떤 엔진을 사용하건 그저 마세라티의 르반떼로 보인다는 것. 디자인은 여전히 대담하다. 그리고 날카로운 헤드램프와 그릴 디자인이 마세라티의 일원임을 알게 한다.
공기를 집어삼킬듯한 디자인을 갖지만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도입해 공기저항계수는 0.31Cd 수준을 갖도록 했다. 여기에는 액티브 셔터 그릴 같은 기술도 역시 한몫한다. 이 그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열리고 닫히는 것 뿐 아니라 차량 상태에 따라 열리거나 닫히는 각도를 가변적으로 제어해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덕분에 기계임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르반떼 S와 디젤의 모델 간 차이는 타이어와 브레이크에 있다. 디젤은 전후 265mm 너비의 타이어를 사용하며, 르반떼 S는 고성능 모델에 맞춰 전륜 265mm, 후륜 295mm 너비의 타이어를 사용한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르반떼 S 쪽이 더 크다. 타공 디스크 적용도 특징이 된다.
문을 살짝 걸치도록 닫으면 전동 모터가 완전히 닫아주도록 돕는 소프트 클로즈 도어도 적용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정도면 ‘당연하지’라고 여기겠지만 마세라티가 이런 기능을 지원하니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라도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크다.
다만 작동 과정이 조금은 느리다. 벤츠는 도어가 닫히는 순간 빠르고 매끄럽게 작동한다. 하지만 마세라티의 시스템은 문이 걸쳐지고 나서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천천히 문을 당기는 방식이다. 한편으로 고급스럽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격 급한 사람들에게는 답답함이 되겠다.
인테리어의 변화도 없다. 하지만 수작업으로 바느질한 고급 가죽, 실제 금속을 사용한 마감,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등에서 마세라티만의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마세라티는 고급 가죽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죽 이외에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인테리어다. 제냐 실크라는 이름의 소재가 시트와 도어 패널, 선바이저 등에 골고루 적용된다. 사실 이름이 실크지 촉각적으로 직물 소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일반적인 직물은 아니다. 오염에 강하며 방염 기능도 갖춰져 일반 가죽 대비 이점이 많다. 시각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재를 명품 브랜드에서 제공받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마세라티에 따르면 차량 1대분에 사용된 제냐 실크가 제냐 정장 4벌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고급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7인치 계기판 모니터와 8.4인치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로 첨단 이미지도 갖췄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크라이슬러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 여기에 마세라티의 테마를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 과거엔 ‘스포츠 현탄액’이란 알 수 없는 문구가 나오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한글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 상황에 맞는 정상적인 한글 문구를 보여준다. 이 밖에 애플 카플레이 같은 최신 트렌드도 잘 따랐다.
스티어링 휠은 림의 사이즈가 큰 편이다. 그립감도 두툼하다. 그리고 뒤에 커다란 시프트 패들이 자리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방향지시등이 너무 멀리 있다는 것. 오토 하이빔 기능 구현을 위해 앞으로 밀려 있는 상황이라면 거리감이 더 커진다. 물론 손이 큰 운전자에겐 별것 아니지만 일부 불편을 느낄 소비자들도 있겠다.
뒷좌석은 충분하다. 성인 남성이 탑승해도 불만이 없다. 체감적으로도 기블리 보다 여유롭다. 하지만 3m가 넘는 휠베이스를 생각했을 때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부족한 공간은 아니지만 휠베이스 길이를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것.
트렁크 공간은 여유롭다. 하지만 본격적인 중형급 이상의 SUV를 기준으로 보자면 평범한 수준이다. 루프라인을 비롯해 테일게이트의 형상이 둥글게 처리돼 부분적으로 공간 훼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동식 테일게이트의 버튼은 트렁크 왼쪽 벽면에 자리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티어링 시스템이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변경됐다.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이식받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능이 많아졌다. 먼저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 기능은 차선에 가까워지면 경고를 하고 다시금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시스템을 스스로 작동시킨다. 이때의 감도를 3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데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가장 민감하게 설정하면 반자율 주행에 가까운 느낌으로 스티어링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차선을 유지시킨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너무 민감한 설정을 유지해 운전에 방해가 되는 차들도 있다. 소비자 취향에 따른 선택을 유도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
능동형 사각 지대 어시스트도 지원한다. 사각지대에 차량이 감지되면 사이드 미러에 경고 표시를 띄우고 더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울린다. 그럼에도 차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읽히면 스티어링 시스템이 차량을 차선 중앙으로 이끌도록 돕는다.
정차 및 재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위에서 언급한 액티브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상호 소통하게 되면 하이웨이 어시스트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통합된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설정된 속도로 차간 거리를 유지하고 달린다. 또한 전방 차량을 따라 감속 및 정지까지 해준다.
액티브 세이프티 이외에 SUV라는 성격에 맞춰 준비된 기능들도 있다. 먼저 에어 서스펜션을 통해 차량의 지상고를 6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빠르게 달리면 지상고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면 다시 정상 지상고로 되돌린다. 문을 열면 지상고를 낮춰 승하차를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4륜 시스템은 전륜과 후륜의 구동 배분을 50:50부터 0:100까지 상황에 맞춰 조절시켜준다. 후륜에는 기계식 LSD까지 갖춰졌다. 이 3가지 기능이 빛을 발하는 시점은 오프로드 모드에서다. 지상고를 높이고 구동 배분을 50:50으로 고정시켜 험로에서의 대응 능력을 키운다. 물론 르반떼로 오프로드를 달릴 소비자가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오프로드 모드로 설정하면 어지간한 험로도 두렵지 않다. 심지어 경사가 심한 눈길을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르반떼에는 여름용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하지만 눈 쌓인 언덕길을 어렵지 않게 오르내렸다. 또한 HDC(Hill Decent Control) 기능을 활용하면 설정된 속도에 맞춰 안전하게 내려올 수도 있다. 운전자가 어설프게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해 바퀴가 잠기는 것 보다 안전하다.
본격적으로 주행에 나설 차례다. 르반떼 S의 엔진은 페라리 공장에서 조립되는 V6 3.0리터 트윈터보를 바탕으로 430마력과 59.1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르반떼 디젤은 VM 모토리의 V6 3.0 디젤을 통해 275마력과 61.2kg.m의 토크를 뽑는다. 두 차량 모두 4륜 시스템인 Q4와 ZF의 8단 자동변속기가 기본이다.
시동을 건다. 르반떼 S는 마세라티 특유의 우렁찬 배기 사운드를 토해낸다. 디젤 엔진도 타사 것들처럼 ‘겔겔’거리는 사운드가 아닌 두텁고 거친 배기음을 만들어냈다. 두 모델 간 정숙성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차량이라면 가솔린 모델이 정숙성에서 앞선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달랐다. 디젤은 배기 사운드를 부각시키는데 제한적인 모습이었지만 가솔린 모델은 거침없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물론 실내로 유입되는 사운드도 크다. 소음이 아니다. 멋진 사운드다.
두 차량의 차이는 엔진, 휠 타이어, 브레이크 시스템 정도다. 그렇다면 두 차량의 무게 차이는 얼마나 날까?
결과는 르반떼 S가 88kg 가량 가벼웠다. 가벼우면서 출력은 155마력이나 높다. 가속 성능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가속시간은 당연히 르반떼 S가 더 빠르다. 쉐보레 카마로 SS가 4.86초, 메르세데스-벤츠 C450 AMG 4MATIC(現 AMG C 43)이 5.08초를 기록했으니 큰덩치의 르반떼 S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르반떼 디젤이 느릴까? 포르쉐 마칸 S 디젤이 6.7초, 재규어 F-페이스 S 디젤이 6.8초를 기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게 대비 상당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가속력에서 차이를 갖는 만큼 안정적인 제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르반떼 S에는 전륜 전륜 6피스톤, 후륜 4피스톤의 브렘보 시스템을 사용한다. 빠른 열 배출을 위해 디스크도 타공 제품이 기본이다.
두 차량의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수치적으로 디젤 모델이 더 짧아 보인다. 하지만 차량의 브레이크 길들이기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편차에 속한다. 두 차량 모두 브레이크 성능만큼은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테스트를 수차례 반복해도 제동거리가 1m 이내에서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세라티 브레이크 시스템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4륜 시스템인 Q4는 다양한 환경서 능동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했다. 출발 때는 전후 50:50에서 시작된다. 이후 주행 상황에 따라 40:60에서 30:70 수준을 오간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20:80 또는 후륜에 더 많은 구동력을 전달한다.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하는 상황이라면 구동력을 후륜에 100% 보내 동력 손실을 줄인다. 이와 같은 과정은 계기판 중앙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는 상당히 길다. SUV이기 때문에 당연한 구조다. 하지만 주행 상황에 따라 스포츠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짧아지기도, 비포장도로를 주행하기에 적합할 정도로 길어지기도 한다. 댐퍼의 감쇄력도 이에 맞춰 다양하게 바뀐다.
굽이치는 코너가 즐비한 와인딩 로드에서도 2.3톤이 넘는 차체를 거뜬하게 지지해준다. SUV로는 조금 과하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단단함이 기초가 될 때는 노면의 작은 굴곡도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반면 차체를 들어 오프로드 모드로 바꾸면 어지간한 돌을 넘어도 대수롭지 않은 듯 통과한다. 또, 차량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적정 수준에서 잡아주기도 했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차체 반응도 빠르다. 하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도 거의 없다. 이것이 장점이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차량은 날카로운 움직임을 갖지만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반면 르반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르반떼의 차체는 탄탄하게 각종 노면에 대응했다. 특유의 견고함도 좋다. 마세라티는 기블리 차체를 기초로 했지만 르반떼는 차체 강성을 20% 높여 만들어졌다. 사실 차체는 무거운 편이다. 하지만 차체가 전하는 만족도가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일반적인 도로 위에서 르반떼 S와 디젤 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단지 출력 차이에 의한 가속력 차이 정도라 느껴질 뿐이다. 감각적인 부분에서는 가솔린과 디젤 모두 SUV로는 놀라울 정도 수준을 보였다.
여기서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가솔린 모델과 디젤 모델 간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 팀 전인호 기자가 2대의 르반떼로 인제 스피디움 공략에 나섰다.
마세라티 르반떼 서킷 리포트
세상에 만들어진 마세라티 중 가장 높은 차고를 가진 르반떼. 서킷에서 주행을 하기에 앞서 내심 걱정이 생겼다. 부담스럽게 높은 인제 스피디움의 연석 때문이다. 높아진 시야 때문에 속도감이 기블리 보다 극적으로 다가온다.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다가서는 내리막 구간, 그리고 첫 코너, 턴 17 지점의 헤어핀 코너에 진입하는 순간 저절로 긴장해 입술을 살짝 깨물 정도다.
하지만 온로드 주행에 특화된 넓은 사이즈의 OE 타이어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의 조타 각도를 넓혀 나갈 때 앞서 생기던 긴장감을 덜어내 준다. 타이어의 예열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 르반떼는 4륜 구동임에도 코너 탈출 가속에서 후륜 타이어를 살짝 미끄러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구동 배분이 후륜에 집중돼 있음을 알리는 요소다. 겨울철 낮은 노면 온도가 오히려 차량의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차량의 운동 성향은 일관적인 언더스티어다. 운전자가 의도한 스티어링 조타 각에 맞춰 궤적을 유지해 나가면서 앞 타이어에 접지력 부하를 유지해가는 모습이다. 마세라티가 만든 대부분 모델들은 위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델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해도 그 폭이 크지 않다.
코너 진입부터 앞 타이어의 부하가 상승하면 스티어링 축으로 전달되는 답력도 자연스레 커진다. SUV 모델이지만 사실 세단 모델인 기블리와 대부분의 조작계 감각이 매우 흡사했다.
가솔린 모델은 속도가 뚝 떨어지는 헤어핀 구간에서 재가속을 시도할 때 엔진의 높은 출력을 바탕으로 전륜 차고를 들어 올린다. 이때 스티어링 휠의 반응이 다소 둔감해지며 약간의 조종성이 저하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아쉬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특성으로 봐야 한다. 포르쉐 마칸과 같은 고출력 SUV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세제어장치는 마세라티 모델로는 상당히 세심하게 설정돼 있는 편이다. 고성능 SUV 모델인 만큼 어느 정도 차량이 가진 운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서킷 주행을 통해 자세제어장치가 두 가지 패턴을 갖췄다는 점을 확인했다.
첫 번째, 자세제어장치의 개입은 인제 스피디움의 가장 긴 코너인 턴 5 지점을 지나 오르막 코너인 턴 6를 만날 때 이뤄진다. 호텔 건물 전경이 윈드 실드에 담기고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감은 채 가속하게 되는 이곳에서 언더스티어를 예상했지만 가속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코너 안쪽 방향의 전, 후륜 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토크 벡터링 역할로 언더스티어를 감소시키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두 번째는 전복 방지 시스템의 개입에 의한 출력 제어다. 약 수초 가량 완전하게 가속 페달 입력을 차단하는 이 패턴은 서킷 주행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의 자세제어장치에는 특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강하게 압박하거나 노면의 기울어짐이 커질 때, 혹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너무 강하게 밟는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개입이 이루어진다.
일반 도로와 달리 서킷은 달려야 할 코너의 형태가 고정돼 있다. 덕분에 자세제어장치의 개입 패턴을 이해하기 쉽다.
자세제어장치는 의외로 연석을 넘나드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르반떼의 구성은 독일 SUV 모델을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완전히 차별된 성향을 갖고 있었다. 부드러움 보다는 반응성을 의식한 단단함으로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서스펜션들과 비슷한 성격을 보였다. 럭셔리 SUV로서 승차감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스포츠 주행 때 반응성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연석을 밟아 넘어갈 때 타이어가 공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꽤 길다. 방금 무엇을 넘었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조절 대응 범위가 넓은 다른 차종의 에어 서스펜션의 성격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보다는 일관적으로 서스펜션의 스트로크와 댐퍼 압력을 유지한다. 마치 일반적으로 계수가 정해진 스프링과 댐퍼를 탑재한 느낌조차 받을 정도다. 모처럼 에어 서스펜션을 선택한 만큼 유연함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가솔린 엔진은 4,000rpm 후반부터 출력을 강하게 밀어붙여 레드존에 이를 때까지 끈기 있게 추진력을 발휘한다. 반면 디젤 모델은 자연 흡기 엔진의 느낌처럼 선형적이고 부드러웠다. 참고로 가솔린 모델의 배기 사운드가 서킷을 온통 울렸다. 역시 마세라티의 배기음은…
가솔린과 디젤 두 모델은 브레이크 시스템이 다르다. 가솔린 모델에는 모터스포츠 이벤트에 어울리는 마세라티다운 시스템이 장착됐다. 디젤 모델에는 관리 및 내구 측면에서 유리한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하지만 이 역시 성능을 고려해 메탈 함유량이 높은 패드를 선택했다. 물론 제동력은 충분하다.
두 모델 모두 서킷 주행 간 만족스러운 제동 성능을 발휘했다. 동급이라 불릴 수 있는 타 모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능, 무엇보다 열에 대한 내구성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마세라티가 보유한 세단 및 쿠페에 비해 버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패드와 디스크의 마찰력을 통해 작동되는 자세제어장치 개입이 브레이크에 일부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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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대의 거대한 SUV가 인제 스피디움을 달려 기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무게 2.2톤이 넘어서는 SUV가 작성한 기록이다. 기아 스팅어 2.0 터보 후륜구동 모델이 2분 00초를 작성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SUV로써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무겁고 둔하며, 무게중심이 높은 SUV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 한계를 잘 극복한 모습이었다. 여담이지만 모회사의 고성능 SUV로 인제 스피디움을 달리다 포기했던 사례도 있었다.
물론 잘 달리는 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가솔린 모델의 연비가 꽤 괜찮아 보일 정도다. 물론 가속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연비는 급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마세라티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 기름값보다 중요한 것은 달릴 때의 즐거움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 팀은 르반떼 디젤보다 르반떼 S가 더 마세라티다운 모델이라고 소비자들에게 말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할 일부 누리꾼도 있을 것이다. “차 값이 1억 5천이 넘는데, 그 돈이면 다른 차를 사지”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마세라티는 벤츠나 BMW와 비교해 편의장비 등에서 앞서지 않는다. 사실 르반떼가 갖추고 있는 다양한 장비 부분은 국산 브랜드의 고급차와 비교할 때 평범한 수준이다.
하지만 분명 그 부분은 마세라티의 가치를 깎는 요소가 아니다. 마세라티를 찾는 소비자들은 자동차로써 마세라티를 구입하려는 것이지 전자기기로써 마세라티를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나만을 위한 맞춤 제작, 남들과 다른 디자인, 남들은 넘볼 수 없는 브랜드, 언제 어디서나 부각되는 존재감 등을 원한다. 그렇다고 르반떼가 허울만 좋은 차는 아니다. 마세라티가 만든 SUV답게 주행 완성도는 무척 뛰어났다. 그것이 르반떼를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2018년을 바라보며 르반떼도 부분 변경을 진행했다. 그런 르반떼가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이참에 고성능 모델인 르반떼 S와 성능과 효율을 겸비한 르반떼 디젤을 함께 만나봤다.
새롭게 변경됐다지만 막상 만나보니 생김새는 같았다. 그렇다고 100% 동일한 것은 아니다. 앞좌석 도어 하단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GranLusso’라는 배지가 부착돼 있다. 기블리를 시작으로 르반떼도 그란루소와 그란스포트 모델로 나뉘게 된 것. 그리고 구성에 맞춰 배지를 차량 옆면에 부착시킨 것이다. 그란루소는 고급스러움에, 그란스포트는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모델은 모두 그란루소 트림이었다.
기존 모델 대비 디자인의 차별화는 없다. 가솔린과 디젤 모델 간 차이도 없다. 어떤 엔진을 사용하건 그저 마세라티의 르반떼로 보인다는 것. 디자인은 여전히 대담하다. 그리고 날카로운 헤드램프와 그릴 디자인이 마세라티의 일원임을 알게 한다.
공기를 집어삼킬듯한 디자인을 갖지만 공기역학적 디자인을 도입해 공기저항계수는 0.31Cd 수준을 갖도록 했다. 여기에는 액티브 셔터 그릴 같은 기술도 역시 한몫한다. 이 그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단순히 열리고 닫히는 것 뿐 아니라 차량 상태에 따라 열리거나 닫히는 각도를 가변적으로 제어해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덕분에 기계임에도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르반떼 S와 디젤의 모델 간 차이는 타이어와 브레이크에 있다. 디젤은 전후 265mm 너비의 타이어를 사용하며, 르반떼 S는 고성능 모델에 맞춰 전륜 265mm, 후륜 295mm 너비의 타이어를 사용한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르반떼 S 쪽이 더 크다. 타공 디스크 적용도 특징이 된다.
문을 살짝 걸치도록 닫으면 전동 모터가 완전히 닫아주도록 돕는 소프트 클로즈 도어도 적용된다.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정도면 ‘당연하지’라고 여기겠지만 마세라티가 이런 기능을 지원하니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라도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보인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크다.
다만 작동 과정이 조금은 느리다. 벤츠는 도어가 닫히는 순간 빠르고 매끄럽게 작동한다. 하지만 마세라티의 시스템은 문이 걸쳐지고 나서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천천히 문을 당기는 방식이다. 한편으로 고급스럽다고 볼 수 있겠지만 성격 급한 사람들에게는 답답함이 되겠다.
인테리어의 변화도 없다. 하지만 수작업으로 바느질한 고급 가죽, 실제 금속을 사용한 마감,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등에서 마세라티만의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마세라티는 고급 가죽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가죽 이외에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에르메네질도 제냐 인테리어다. 제냐 실크라는 이름의 소재가 시트와 도어 패널, 선바이저 등에 골고루 적용된다. 사실 이름이 실크지 촉각적으로 직물 소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일반적인 직물은 아니다. 오염에 강하며 방염 기능도 갖춰져 일반 가죽 대비 이점이 많다. 시각적으로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소재를 명품 브랜드에서 제공받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마세라티에 따르면 차량 1대분에 사용된 제냐 실크가 제냐 정장 4벌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고급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7인치 계기판 모니터와 8.4인치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로 첨단 이미지도 갖췄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크라이슬러의 인터페이스를 사용한다. 여기에 마세라티의 테마를 사용했다고 보면 된다. 과거엔 ‘스포츠 현탄액’이란 알 수 없는 문구가 나오기도 했다. 어처구니없는 한글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각 상황에 맞는 정상적인 한글 문구를 보여준다. 이 밖에 애플 카플레이 같은 최신 트렌드도 잘 따랐다.
스티어링 휠은 림의 사이즈가 큰 편이다. 그립감도 두툼하다. 그리고 뒤에 커다란 시프트 패들이 자리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문제는 방향지시등이 너무 멀리 있다는 것. 오토 하이빔 기능 구현을 위해 앞으로 밀려 있는 상황이라면 거리감이 더 커진다. 물론 손이 큰 운전자에겐 별것 아니지만 일부 불편을 느낄 소비자들도 있겠다.
뒷좌석은 충분하다. 성인 남성이 탑승해도 불만이 없다. 체감적으로도 기블리 보다 여유롭다. 하지만 3m가 넘는 휠베이스를 생각했을 때 다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부족한 공간은 아니지만 휠베이스 길이를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것.
트렁크 공간은 여유롭다. 하지만 본격적인 중형급 이상의 SUV를 기준으로 보자면 평범한 수준이다. 루프라인을 비롯해 테일게이트의 형상이 둥글게 처리돼 부분적으로 공간 훼손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전동식 테일게이트의 버튼은 트렁크 왼쪽 벽면에 자리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스티어링 시스템이 유압식에서 전동식으로 변경됐다.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이식받음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능이 많아졌다. 먼저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 기능은 차선에 가까워지면 경고를 하고 다시금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시스템을 스스로 작동시킨다. 이때의 감도를 3단계로 설정할 수 있는데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가장 민감하게 설정하면 반자율 주행에 가까운 느낌으로 스티어링 시스템이 지속적으로 차선을 유지시킨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너무 민감한 설정을 유지해 운전에 방해가 되는 차들도 있다. 소비자 취향에 따른 선택을 유도했다는 점에 의미가 크다.
능동형 사각 지대 어시스트도 지원한다. 사각지대에 차량이 감지되면 사이드 미러에 경고 표시를 띄우고 더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울린다. 그럼에도 차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읽히면 스티어링 시스템이 차량을 차선 중앙으로 이끌도록 돕는다.
정차 및 재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위에서 언급한 액티브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상호 소통하게 되면 하이웨이 어시스트 시스템이란 이름으로 통합된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설정된 속도로 차간 거리를 유지하고 달린다. 또한 전방 차량을 따라 감속 및 정지까지 해준다.
액티브 세이프티 이외에 SUV라는 성격에 맞춰 준비된 기능들도 있다. 먼저 에어 서스펜션을 통해 차량의 지상고를 6가지로 설정할 수 있다. 빠르게 달리면 지상고를 낮추고 속도를 줄이면 다시 정상 지상고로 되돌린다. 문을 열면 지상고를 낮춰 승하차를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4륜 시스템은 전륜과 후륜의 구동 배분을 50:50부터 0:100까지 상황에 맞춰 조절시켜준다. 후륜에는 기계식 LSD까지 갖춰졌다. 이 3가지 기능이 빛을 발하는 시점은 오프로드 모드에서다. 지상고를 높이고 구동 배분을 50:50으로 고정시켜 험로에서의 대응 능력을 키운다. 물론 르반떼로 오프로드를 달릴 소비자가 있을까 싶지만.
이렇게 오프로드 모드로 설정하면 어지간한 험로도 두렵지 않다. 심지어 경사가 심한 눈길을 올라가는 것도 가능하다. 르반떼에는 여름용 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하지만 눈 쌓인 언덕길을 어렵지 않게 오르내렸다. 또한 HDC(Hill Decent Control) 기능을 활용하면 설정된 속도에 맞춰 안전하게 내려올 수도 있다. 운전자가 어설프게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해 바퀴가 잠기는 것 보다 안전하다.
본격적으로 주행에 나설 차례다. 르반떼 S의 엔진은 페라리 공장에서 조립되는 V6 3.0리터 트윈터보를 바탕으로 430마력과 59.1kg.m의 토크를 발휘한다. 르반떼 디젤은 VM 모토리의 V6 3.0 디젤을 통해 275마력과 61.2kg.m의 토크를 뽑는다. 두 차량 모두 4륜 시스템인 Q4와 ZF의 8단 자동변속기가 기본이다.
시동을 건다. 르반떼 S는 마세라티 특유의 우렁찬 배기 사운드를 토해낸다. 디젤 엔진도 타사 것들처럼 ‘겔겔’거리는 사운드가 아닌 두텁고 거친 배기음을 만들어냈다. 두 모델 간 정숙성 차이는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차량이라면 가솔린 모델이 정숙성에서 앞선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달랐다. 디젤은 배기 사운드를 부각시키는데 제한적인 모습이었지만 가솔린 모델은 거침없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물론 실내로 유입되는 사운드도 크다. 소음이 아니다. 멋진 사운드다.
두 차량의 차이는 엔진, 휠 타이어, 브레이크 시스템 정도다. 그렇다면 두 차량의 무게 차이는 얼마나 날까?
결과는 르반떼 S가 88kg 가량 가벼웠다. 가벼우면서 출력은 155마력이나 높다. 가속 성능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가속시간은 당연히 르반떼 S가 더 빠르다. 쉐보레 카마로 SS가 4.86초, 메르세데스-벤츠 C450 AMG 4MATIC(現 AMG C 43)이 5.08초를 기록했으니 큰덩치의 르반떼 S가 얼마나 빠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르반떼 디젤이 느릴까? 포르쉐 마칸 S 디젤이 6.7초, 재규어 F-페이스 S 디젤이 6.8초를 기록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게 대비 상당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가속력에서 차이를 갖는 만큼 안정적인 제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르반떼 S에는 전륜 전륜 6피스톤, 후륜 4피스톤의 브렘보 시스템을 사용한다. 빠른 열 배출을 위해 디스크도 타공 제품이 기본이다.
두 차량의 시속 100km의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다음과 같았다.
수치적으로 디젤 모델이 더 짧아 보인다. 하지만 차량의 브레이크 길들이기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정도의 편차에 속한다. 두 차량 모두 브레이크 성능만큼은 수준급이다. 무엇보다 테스트를 수차례 반복해도 제동거리가 1m 이내에서 변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마세라티 브레이크 시스템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4륜 시스템인 Q4는 다양한 환경서 능동적으로 구동력을 배분했다. 출발 때는 전후 50:50에서 시작된다. 이후 주행 상황에 따라 40:60에서 30:70 수준을 오간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20:80 또는 후륜에 더 많은 구동력을 전달한다. 고속도로에서 정속 주행하는 상황이라면 구동력을 후륜에 100% 보내 동력 손실을 줄인다. 이와 같은 과정은 계기판 중앙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스펜션의 스트로크는 상당히 길다. SUV이기 때문에 당연한 구조다. 하지만 주행 상황에 따라 스포츠카를 연상시킬 정도로 짧아지기도, 비포장도로를 주행하기에 적합할 정도로 길어지기도 한다. 댐퍼의 감쇄력도 이에 맞춰 다양하게 바뀐다.
굽이치는 코너가 즐비한 와인딩 로드에서도 2.3톤이 넘는 차체를 거뜬하게 지지해준다. SUV로는 조금 과하지 않나 생각될 정도다. 단단함이 기초가 될 때는 노면의 작은 굴곡도 운전자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반면 차체를 들어 오프로드 모드로 바꾸면 어지간한 돌을 넘어도 대수롭지 않은 듯 통과한다. 또, 차량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적정 수준에서 잡아주기도 했다.
스티어링 조작에 따른 차체 반응도 빠르다. 하지만 운전자가 느끼는 불안감도 거의 없다. 이것이 장점이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차량은 날카로운 움직임을 갖지만 운전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반면 르반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르반떼의 차체는 탄탄하게 각종 노면에 대응했다. 특유의 견고함도 좋다. 마세라티는 기블리 차체를 기초로 했지만 르반떼는 차체 강성을 20% 높여 만들어졌다. 사실 차체는 무거운 편이다. 하지만 차체가 전하는 만족도가 아쉬움을 상쇄시킨다.
일반적인 도로 위에서 르반떼 S와 디젤 간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단지 출력 차이에 의한 가속력 차이 정도라 느껴질 뿐이다. 감각적인 부분에서는 가솔린과 디젤 모두 SUV로는 놀라울 정도 수준을 보였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우리 팀 전인호 기자가 2대의 르반떼로 인제 스피디움 공략에 나섰다.
마세라티 르반떼 서킷 리포트
세상에 만들어진 마세라티 중 가장 높은 차고를 가진 르반떼. 서킷에서 주행을 하기에 앞서 내심 걱정이 생겼다. 부담스럽게 높은 인제 스피디움의 연석 때문이다. 높아진 시야 때문에 속도감이 기블리 보다 극적으로 다가온다.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다가서는 내리막 구간, 그리고 첫 코너, 턴 17 지점의 헤어핀 코너에 진입하는 순간 저절로 긴장해 입술을 살짝 깨물 정도다.
하지만 온로드 주행에 특화된 넓은 사이즈의 OE 타이어는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스티어링 휠의 조타 각도를 넓혀 나갈 때 앞서 생기던 긴장감을 덜어내 준다. 타이어의 예열이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 르반떼는 4륜 구동임에도 코너 탈출 가속에서 후륜 타이어를 살짝 미끄러뜨리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구동 배분이 후륜에 집중돼 있음을 알리는 요소다. 겨울철 낮은 노면 온도가 오히려 차량의 성향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차량의 운동 성향은 일관적인 언더스티어다. 운전자가 의도한 스티어링 조타 각에 맞춰 궤적을 유지해 나가면서 앞 타이어에 접지력 부하를 유지해가는 모습이다. 마세라티가 만든 대부분 모델들은 위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모델 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긴 해도 그 폭이 크지 않다.
코너 진입부터 앞 타이어의 부하가 상승하면 스티어링 축으로 전달되는 답력도 자연스레 커진다. SUV 모델이지만 사실 세단 모델인 기블리와 대부분의 조작계 감각이 매우 흡사했다.
가솔린 모델은 속도가 뚝 떨어지는 헤어핀 구간에서 재가속을 시도할 때 엔진의 높은 출력을 바탕으로 전륜 차고를 들어 올린다. 이때 스티어링 휠의 반응이 다소 둔감해지며 약간의 조종성이 저하되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아쉬움이 될 수도 있지만 이는 특성으로 봐야 한다. 포르쉐 마칸과 같은 고출력 SUV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세제어장치는 마세라티 모델로는 상당히 세심하게 설정돼 있는 편이다. 고성능 SUV 모델인 만큼 어느 정도 차량이 가진 운동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서킷 주행을 통해 자세제어장치가 두 가지 패턴을 갖췄다는 점을 확인했다.
첫 번째, 자세제어장치의 개입은 인제 스피디움의 가장 긴 코너인 턴 5 지점을 지나 오르막 코너인 턴 6를 만날 때 이뤄진다. 호텔 건물 전경이 윈드 실드에 담기고 스티어링 휠을 왼쪽으로 감은 채 가속하게 되는 이곳에서 언더스티어를 예상했지만 가속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시스템이 코너 안쪽 방향의 전, 후륜 축에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토크 벡터링 역할로 언더스티어를 감소시키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두 번째는 전복 방지 시스템의 개입에 의한 출력 제어다. 약 수초 가량 완전하게 가속 페달 입력을 차단하는 이 패턴은 서킷 주행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다.
대부분의 자세제어장치에는 특정한 패턴이 존재한다. 일정 속도 이상으로 스티어링 휠을 조작, 브레이크 페달을 너무 강하게 압박하거나 노면의 기울어짐이 커질 때, 혹은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너무 강하게 밟는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개입이 이루어진다.
일반 도로와 달리 서킷은 달려야 할 코너의 형태가 고정돼 있다. 덕분에 자세제어장치의 개입 패턴을 이해하기 쉽다.
자세제어장치는 의외로 연석을 넘나드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르반떼의 구성은 독일 SUV 모델을 떠올리게 만들었지만 완전히 차별된 성향을 갖고 있었다. 부드러움 보다는 반응성을 의식한 단단함으로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서스펜션들과 비슷한 성격을 보였다. 럭셔리 SUV로서 승차감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스포츠 주행 때 반응성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연석을 밟아 넘어갈 때 타이어가 공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꽤 길다. 방금 무엇을 넘었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조절 대응 범위가 넓은 다른 차종의 에어 서스펜션의 성격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보다는 일관적으로 서스펜션의 스트로크와 댐퍼 압력을 유지한다. 마치 일반적으로 계수가 정해진 스프링과 댐퍼를 탑재한 느낌조차 받을 정도다. 모처럼 에어 서스펜션을 선택한 만큼 유연함을 강조했으면 어땠을까?
가솔린 엔진은 4,000rpm 후반부터 출력을 강하게 밀어붙여 레드존에 이를 때까지 끈기 있게 추진력을 발휘한다. 반면 디젤 모델은 자연 흡기 엔진의 느낌처럼 선형적이고 부드러웠다. 참고로 가솔린 모델의 배기 사운드가 서킷을 온통 울렸다. 역시 마세라티의 배기음은…
가솔린과 디젤 두 모델은 브레이크 시스템이 다르다. 가솔린 모델에는 모터스포츠 이벤트에 어울리는 마세라티다운 시스템이 장착됐다. 디젤 모델에는 관리 및 내구 측면에서 유리한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하지만 이 역시 성능을 고려해 메탈 함유량이 높은 패드를 선택했다. 물론 제동력은 충분하다.
두 모델 모두 서킷 주행 간 만족스러운 제동 성능을 발휘했다. 동급이라 불릴 수 있는 타 모델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능, 무엇보다 열에 대한 내구성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마세라티가 보유한 세단 및 쿠페에 비해 버거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패드와 디스크의 마찰력을 통해 작동되는 자세제어장치 개입이 브레이크에 일부 부담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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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대의 거대한 SUV가 인제 스피디움을 달려 기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무게 2.2톤이 넘어서는 SUV가 작성한 기록이다. 기아 스팅어 2.0 터보 후륜구동 모델이 2분 00초를 작성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SUV로써 어느 정도의 성능을 발휘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태생적으로 무겁고 둔하며, 무게중심이 높은 SUV의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 한계를 잘 극복한 모습이었다. 여담이지만 모회사의 고성능 SUV로 인제 스피디움을 달리다 포기했던 사례도 있었다.
물론 잘 달리는 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가솔린 모델의 연비가 꽤 괜찮아 보일 정도다. 물론 가속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연비는 급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마세라티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 기름값보다 중요한 것은 달릴 때의 즐거움일 것이다. 때문에 우리 팀은 르반떼 디젤보다 르반떼 S가 더 마세라티다운 모델이라고 소비자들에게 말한다.
물론 이런 말을 할 일부 누리꾼도 있을 것이다. “차 값이 1억 5천이 넘는데, 그 돈이면 다른 차를 사지”라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마세라티는 벤츠나 BMW와 비교해 편의장비 등에서 앞서지 않는다. 사실 르반떼가 갖추고 있는 다양한 장비 부분은 국산 브랜드의 고급차와 비교할 때 평범한 수준이다.
하지만 분명 그 부분은 마세라티의 가치를 깎는 요소가 아니다. 마세라티를 찾는 소비자들은 자동차로써 마세라티를 구입하려는 것이지 전자기기로써 마세라티를 구입하려 하지 않는다. 나만을 위한 맞춤 제작, 남들과 다른 디자인, 남들은 넘볼 수 없는 브랜드, 언제 어디서나 부각되는 존재감 등을 원한다. 그렇다고 르반떼가 허울만 좋은 차는 아니다. 마세라티가 만든 SUV답게 주행 완성도는 무척 뛰어났다. 그것이 르반떼를 함부로 깎아내릴 수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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