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기블리 F/L S 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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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세라티 기블리의 페이스리프트를 시도했다. 2013년 첫 등장했으니 4년만의 변화다. 대중 브랜드도 아니고 도로 위에 많이 노출되는 차도 아니기에 ‘벌써 페이스리프트?’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세라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기블리의 등장부터다. 우선 마세라티의 전세계 판매량을 살펴보자.
마세라티는 2012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6천여대 정도 팔렸다. 소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럭셔리 브랜드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천만의 말씀. 마세라티보다 비싼 가격에 차량을 판매하는 페라리가 같은 2012년에 7,318대를 팔았다. 한마디로 마세라티는 적게 팔았던 것이 아니라 안 팔렸었다.
그런 마세라티가 2013년 기블리를 출시한 이후 전세계 판매량이 1만 5,400대로 2배 이상 상승했다. 2014년에도 다시 2배 이상 상승한 판매량을 이어가며 판매대수 3만 6천여대를 넘겼다. 그리고 마세라티 최초의 SUV, 르반떼가 등장한 2016년에 이르러 전세계 4만대의 벽을 넘어섰다.
럭셔리 브랜드로는 엄청난 판매량이다. 그리고 현재의 마세라티가 있기까지 기블리의 역할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당연히 기블리에 대한 마세라티의 애정은 남다를 것이고,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싶을 것이다. 마세라티는 기블리를 대담하면서 기품이 흐르고 당당하며 우아하다고 말한다.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였다. 실제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이제 기블리는 2가지 모델 라인업을 갖는다. 고급스러움과 편의성에 주력한 그란루소, 역동성에 집중한 그란스포트로 분류한 것. 이는 앞서 출시된 콰트로포르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선보인 라인업 운영법이다. 물론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마세라티가 럭셔리 브랜드임과 동시에 스포츠카 브랜드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이러한 2가지 상반되는 이미지를 모두 갖는 브랜드도 마세라티 뿐이다.
그란스포트는 기블리에 스포티한 매력을 집중시켰다. 어두운 색을 띄는 그릴을 중심으로 3분할 범퍼가 과거 기블리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헤드램프는 어댑티브 LED로 변경되어 보다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까지 갖게 한다.
측면부 앞쪽 부분에는 그란스포트라는 로고가 부착된다. 스포티한 모델답게 휠의 디자인 역시 공격적인 모습이다. 후면부는 어두운 분위기와 공기배출구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담은 범퍼로 마무리 했다.
카본도 많이 썼다. 전면 범퍼 하단, 측면의 사이드미러와 B-필러, 리어스포일러 등 곳곳이 카본으로 꾸며졌다. 특히 B필러의 카본은 사치스럽다는 말을 쉽게 이끌어 낸다.
그란루소 모델은 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한다. LED 헤드램프와 크롬 장식의 그릴, 부드러운 범퍼 등이 그란루소의 특징이다. 페이스리프트 이전 기블리와 상당히 닮았다. 휠의 디자인도 고급스러움에 맞췄다. 단정한 후면부도 범퍼 부분에서 그란스포트와 차이가 난다.
디자인이 2가지로 나눠졌지만 공통적인 변화도 있다. 두 모델 모두 새로운 디자인으로 공기저항계수를 낮춘 것이다. 수치적으로 보면 0.31->0.29Cd로 7% 가량 개선됐다. 휠은 옵션 사양을 기본으로 넣었다. 무려 21인치 크기다. 우리 팀이 작년에 테스트한 기블리 S Q4보다 1인치 더 커진 것. 타이어는 전륜 245mm, 후륜 285mm 규격을 사용한다.
도어에 소프트 도어 클로즈 기능도 넣었다. 특히 소프트 도어 클로즈 기능은 마세라티로는 이례적인 편의장비에 속한다. 고급 차에서 자주 봤음에도 신기하게 여겨졌다고나 할까? 그만큼 마세라티에 대한 이미지가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마세라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에 변화는 없다. 대신 그란스포트와 그란루소의 분위기 차별화가 포인트다. 잘 살펴보면 스티어링휠과 시트가 다르다. 개선점이라면 어색했던 한글화를 수정한 것. 기존 모델은 스포츠 서스펜션 버튼을 눌렀을 때 ‘스포츠 현탄액 모드’라는 이상한 문구를 띄웠다. 하지만 이제 정상적인 문구를 보여준다.
그란스포트는 어두운 가죽 색상을 기초로 붉은색 박음질 장식으로 고성능 이미지를 표현했다. 센터콘솔 주위는 카본 패널로 감쌌다. 금속페달 역시 스포티함을 강조시키는 요소. 사운드 시스템은 10개 스피커를 갖춘 하만 카돈 제품이다. 시트는 버킷 타입이다. 몸을 감싸주는 감각이 훌륭하다. 대신 동그란 형상의 헤드레스트는 머리를 지지해주는 감각 면에서 썩 좋지는 않다.
그란루소는 흰색 박음질 장식과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조합으로 고급차의 매력을 키웠다. 제냐 실크는 추가 비용 없이 적용되는 기본 사양이다. 사실 이름이 실크지 촉각적으로 직물 소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일반 직물이 아니다. 오염에 강하고 방염 기능도 갖춰 일반 가죽대비 이점이 많다. 시각적으로 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다. 특히 이러한 소재를 명품 브랜드에서 제공받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신뢰성도 높다. 가죽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깨트린 것이 바로 이 제냐 실크 소재가 아닐까 한다.
이외에 카본 패널 대신 고광택 블랙 소재로 모던한 감각을 키운다. 그란스포트에 적용됐던 금속 페달도 일반 고무 페달로 변경된다. 대신 사운드 시스템은 15개 스피커를 사용하는 바우어스&윈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고급스러움을 키워낸다.
시트는 세미 버킷 타입이다. 그란스포트의 시트 대비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덜하지만 일반 시트와 비교하자면 여전히 스포티하다. 평평한 헤드레스트는 편안한 머리 지지가 가능했다.
이외에 후방카메라 및 어라운드뷰 카메라의 화질도 개선시켰다. 과거 우리 팀이 기블리를 테스트하며 지적했던 부분 중 하나다. 반면 스티어링휠로부터 방향지시등까지의 거리가 여전히 멀어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휠베이스 3m짜리 대형 세단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뒷좌석이 더 넓어졌으면 한다.
테스트 모델은 기블리의 최상위 버전인 S Q4다. 410마력에서 430마력으로 한층 강력해진 엔진,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4륜 시스템, 새로운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장착돼 주행 성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스티어링휠 왼쪽에 위치한 시동버튼을 눌러 잠자는 엔진을 깨운다. V6 3.0리터 엔진이 부드럽게 회전한다. 고성능 엔에서 예상되는 박력 있는 시동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다. 표현을 하자면 엔진 회전수가 올라선 이후 하강하는 시동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동 사운드다. 막상 들어보면 재미있는 감각이다.
아이들 정숙성부터 다시 측정한다. 측정 결과는 47.5dBA. 마세라티 차량을 접할 때 마다 언급하지만 분명 시끄러운 ‘소음’이 아닌 멋지게 들리는 ‘사운드’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가변 배기 시스템이 열리며 아이들 수치가 60.5dBA까지 높아진다. 부밍음이 느껴지는데 차량에서 공기의 울림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남성 소비자들은 이 울림에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질 것이다.
마세라티를 접하면서 느끼는 부분이지만 일상 주행 환경에서는 일반 승용차처럼 조용하다. 프레임레스 도어에서 발생하는 소음 유입을 막기 위해 2중 차음유리도 사용했다. 21인치에 이르는 휠과 285mm급 타이어가 노면 소음을 키우기도 하는데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마세라티 치고 조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후 배기 사운드를 즐기는 운전자들도 많은데, 차량 밖에서는 상당히 큰 소리가 부각되는 만큼 도심에서는 스포츠 모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연비는 좋다고 볼 수 없다. 시속 100~110km 환경에서 약 11.7km/L, 80km/h 정속 주행 시 약 12.5km/L 수준을 나타냈다. 평속 15km/h의 정체구간에서는 4.7km/L를 나타냈다. 오토스탑 기능을 갖췄지만 연비를 크게 높이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고속도로 연비와 달리 복합적으로 주행하면 약 7km/L가 나온다. 모든 마세라티가 그렇듯 기블리 역시 연료를 많이 먹고 그만큼 출력을 뽑아내는 성격이다. 물론 마세라티 소비자들에게 문제는 아니다. 이와 같은 고성능차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이미 고출력차들의 연비에 익숙하다. 연료비 대신 감성을 택한다는 것이 일반 소비자들과의 차이점이다.
일상 주행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마세라티스답다. 적당히 무거운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에 민첩하면서 꽤 많은 양의 노면 정보를 전달하는 스티어링 감각까지 그렇다. 달라진 점은 스티어링휠이 보다 가벼워졌다는 것. 기존 것은 다소 무거워 여성 운전자들이 유턴을 할 때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성별과 나이에 관계 없이 편하게 스티어링휠을 조작 할 수 있다. 대중적인 성격으로 변모한 것이다.
새로운 기블리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지금까지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고수했지만 기블리부터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한다. 보통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면 뭔가 차량과 스티어링휠이 따로 노는 듯한 감각을 받게 된다. 특유의 이질감이다. 하지만 기블리의 전동식 스티어링은 전통적인 유압 방식이라고 해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것이다. 그만큼 일체감 부분에서 특화된 감각이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치고 조금은 과장된 감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압식 구조처럼 운전자의 조작에 차량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대로 노면 정보를 운전자에게 필터링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감각이다. 때문에 어떤 방식을 사용하던 마세라티만의 감각을 해치는 일은 없었다. 매우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에 다소 무거웠던 스티어링휠이 가볍게 바뀌면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블리를 편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됐다. 스티어링 시스템 하나만 바뀌어도 대중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흔치 않은 사례다. 참고로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스티어링휠의 답력이 유압식 시절로 돌아간다. 2가지 모드 변화에 따라 확실한 답력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이 시스템에 대해 마세라티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어느 업체에서 제공받은 것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본사에서 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 현대모비스는 아니겠지?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제품의 출처를 떠나 완성도,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마세라티 조차 왜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일까? 시대가 액티브 세이프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압 방식으로는 액티브 세이프티, 나아가 자율주행 등 최신 기술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액티브 세이프티의 핵심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스티어링 시스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세라티는 기블리를 시작으로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등에도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과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추가시킬 예정이다. 물론 마세라티 골수팬들은 쿠페인 그란투리스모에서 만큼은 유압식 시스템을 고수해 주질 바란다. 마세라티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한적한 도로에 올라 기블리의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을 확인한다.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기능이 새로운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의 핵심이다. 차량이 차선에 가까워지면 경고를 하고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해준다. 차선에 근접했다고 경고하는 민감도, 스티어링휠이 개입하는 힘 등을 탑승자가 설정할 수 있다. 참고로 스티어링 개입 강도를 가장 높게 설정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스티어링휠이 급작스럽게 작동해 운전자가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동형 사각 지대 어시스트 기능도 있다. 사각지대에 차량이 감지되면 사이드 미러에 경고 표시를 나타난다.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발생시킨다. 그럼에도 차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읽히면 스티어링 시스템이 차량을 차선 중앙으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이때 스티어링휠의 개입 강도를 변경할 수 있다.
정차 및 재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위에서 언급한 액티브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상호 소통하게 되면 하이웨이 어시스트 시스템이란 기능으로 융합된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설정된 속도와 전방 차량과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전방 차량을 따라 감속 및 정지까지 해준다. 사실상 반자율주행에 가까운 기능이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면 이 기능이 중지되도록 설정했다. 편의성보다 안전을 위함이다.
제네시스를 비롯해 수입 프리미엄 플래그십 세단의 경우 손을 놓고 15초에서 많게는 30초 이상까지 스스로 주행이 가능했지만 기블리의 경우 수 초가 지나면 바로 기능이 해제시킨다. 럭셔리 브랜드 특성상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형 기블리는 엔진 출력도 높였다. S Q4를 기준으로 410마력에서 430마력으로 증강된 것. 400마력이 넘는 차량에서 20마력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20마력 낮아도 이미 잘 달렸던 기블리였다.
엔진 스펙상 변화가 실제 성능에 영향을 줬는지 가속 테스트를 실시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로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5.19초. 지난해 이맘때 기존 모델(2017년형)을 테스트한 결과가 5.3초였으니 분명 향상된 성능이다. 차량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실제 속도계가 상승 속도가 상당하다. 시속 200km 정도는 매우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최대 가속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쉽다.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후 차체자세제어장치를 해제시킨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밟아 정지상태에서 엔진회전수를 높인다. 엔진회전수가 최고 시점에 다다른 순간 브레이크페달을 놓으면 마치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쏜살같이 속도가 상승한다. 4륜 시스템인 Q4가 타이어의 미끄러짐 없이 최대 가속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판클러치로 작동하는 Q4 4륜 시스템은 15분의 1초만에 구동력을 배분시킨다. 전륜과 후륜에 50:50부터 0:100까지 구동력 배분을 만들어낸다. 50:50의 경우는 정지상태에서 차량이 이동할 때, 다시 말해 빙판길과 같은 환경에서 최대한 안정적으로 차량을 출발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차량이 움직이면 50:50 구동배분에서 탄력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일반적인 주행 중 구동배분은 25:75 혹은 20:80 정도다. 4륜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후륜의 주행 특성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감각은 와인딩 로드에서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형 세단 답지 않은 움직임이 돋보인다. 코너 진입 시에 약한 오버스티어를 보이다가 이내 곧 언더스티어로 전환되며 안정적인 주행 라인을 만들어준다. 사실상 오버스티어는 느낌에 가까우며 한계에서는 언더스티어가 기본이다.
서스펜션의 처리 능력도 좋다. 2,070kg이라는 차량의 무게를 충분히 받아내며 코너에서도 적당히 차체를 안정화 시키는 모습이 좋다. 일반적인 대형 세단으로 생각할 수 없는 스포티한 감각이다. 휘청거림? 기블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단어다. 푹신한 승차감보다 단단한 느낌이 강하지만 기블리의 성격상 문제는 없다.
변속기 반응도 좋다. 기블리에 탑재된 ZF 8단 자동변속기는 일반 모드에서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절도있는 감각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드러움에 치중된다. 반면 스포츠 모드로 바꿔주면 빠른 변속으로 차량의 동력 성능을 지원한다. 특히 다운시프트의 만족감이 높다.
항상 그렇지만 마세라티의 제동 시스템은 이번에도 최상급 성능을 발휘했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55m. 테스트가 수 차례 반복돼도 제동거리는 35m 를 넘어서지 않았다. 우리 팀 테스트 기록을 살펴보면 제동거리 최상위권은 모두 마세라티가 점거했다시피 했다. 참고로 마세라티 모델들이 그러하듯 브레이크 답력은 조금 무거운 편이다.
테스트를 진행하며 문뜩 궁금증이 생긴다. 350마력의 기블리 후륜구동 모델이 인제 서킷에서 무게를 뛰어넘는 기록(1분 58초 11)을 작성했는데, 그렇다면 430마력에 4륜 시스템까지 추가된 모델은 서킷에서 얼마나 빠를까? 프로드라이버 출신 전인호 기자는 이렇게 언급했다.
마세라티 기블리 F/L S Q4 서킷 리포트
이전에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했던 마세라티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이 차의 스티어링 시스템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새롭게 탑재된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은 기블리와 잘 어울렸다. 다른 마세라티 모델들처럼 복원되려는 답력이 적으며 약간의 묵직한 감각도 그대로 살려냈다.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은 이전 모델 대비 가벼운 답력을 만든다.
마세라티 다운 내구성도 그대로 지켜냈다. 변속기와 엔진 오일 온도는 20분간 서킷 주행에서 미동도 조차 없었다. 제동 성능도 꾸준하게 무거운 차체를 통제 해냈다. 다른 차들은? 일반적인 양산차들은 인제 서킷 안에서 8~1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안전모드로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차들의 문제는 아니다. 인제 서킷이 그만큼 가혹한 조건이라는 것. 심지어 독일 뉘르부르크링 보다 험하다는 얘기도 나돈다. 하지만 마세라티 모델들은 이 서킷에서도 지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S Q4는 서킷에서 어떤 기록을 냈을까? 이전 테스트한 후륜 구동 기블리 모델(350마력)과 비교해 보려 한다. 공식 제원만 보면 S Q4는 후륜 구동 기블리의 랩타임을 1~1.5초 이상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서킷은 이론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서킷에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은 기블리 S Q4에 장착된 사륜 구동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구동 배분 패턴이다. 코너 진입 때는 후륜 구동의 성향으로 날카로운 감각을 선보인다. 하지만 가속 페달에 발을 얹는 코너 탈출 가속 구간에 들어서면 흡사 전륜 구동처럼 언더스티어 성향이 짙어진다.
물론 S Q4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높은 출력을 부담 없이 끌어다 쓸 수 있는 안정감을 부여한다. 적어도 출력에 의해 후륜이 미끄러져 오버스티어를 일으키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반대 성격인 언더스티어가 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Q4라 불리는 사륜 구동 시스템이 만드는 안정감은 후륜 구동 모델에서 주의해야 했던 구간 주행을 마냥 쉽게 만들어 준다. 특히 가속 페달을 밟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럼에도 출력이 낮은 후륜구동의 기블리 보다 랩타임이 늦어진 것은 언더스티어로 인한 속도 손실 때문이다. 언더스티어가 유독 강조되는 구간들을 분석해 보면 스티어링 각도를 일정 수준 유지하며 가속 페달을 밟는 구간들이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시간 대비 유효한 가속력이 발휘되지 못했는데, 스티어링 각도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랩타임 결과와 서킷에서 운동특성 만으로 양산 차량의 운동성능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서킷에서의 빠른 랩타임을 목적으로 한 셋업으로 와인딩 로드 등의 일반 도로에 적용하면, 운전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 불안함을 겪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서킷에서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 운동 성향이 일반 도로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 S Q4는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마세라티 특유의 성향을 마일드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성향으로 조율했다는 것이다. 물론 스포티함을 강조한다면 모델을 원한다면 후륜 구동 버전이 적합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2018년형 기블리 S Q4로 뽑아낸 인제 서킷 랩타임은 1분 58초 73였다. ‘출력이 높으니까 당연히 빨라야 하는거 아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인제 서킷이라는 특수한 주행 조건, 후륜 모델보다 약 60kg가량 무거운 무게, 4륜 시스템으로 인한 언더스티어 부각과 같은 요소들이 후륜 모델과 동등한 결과를 내놓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또한 한가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서킷에서는 언더스티어보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YAW)도 잘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차량이 코너에서 돌고 빠져나가는 과정을 신속하게 도와주는 요소다. 기블리 후륜 모델은 이 부분에서 드라이버의 의도를 잘 따라줬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레이싱 드라이버는 아니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짙어지면 일상 주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S Q4 모델은 더 높은 출력과 4륜 시스템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강력한 성능을 느낄 수 있는 모델이다. 서킷에서 조금 느려질지라도 말이다. 물론 후륜 버전의 기블리가 심한 오버스티어 성향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후륜구동 스포츠세단들처럼 오버스티어를 지향하는 특성으로 운전자의 의도를 잘 따라줬다고 보는 것이 좋다. 참고로 기블리 후륜구동 모델도 기본 운동특성은 언더스티어를 바탕으로 한다.
S Q4는 최근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방향을 잘 보여준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마세라티의 고성능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대중성’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아무나 접근해서는 안 되는,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수의 선택 받은 소비자만이 이 브랜드의 가치를 누릴 수 있고, 그래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마세라티는 여기서 벗어나 소비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다. 기블리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문턱을 낮췄다. 여기에 SUV를 만들어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춰가고자 하고 있다.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또 다른 SUV를 만들겠단다.
새로운 기블리 역시 이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 소수의 마세라티 팬들이 요구하는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고수하는 대신 대중들이 요구하는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도 크게 강화시켰다. 오토 클로징 기능과 같은 대중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도 추가했다. S Q4 모델은 430마력을 더 쉽고 재미있게 달릴 수 있는 셋업을 갖는다.
이것이 현재의 마세라티다. 대중성을 통해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마세라티를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마세라티에 만족감을 표하게 노력한다는 것 말이다. 럭셔리 브랜드라고 도도한지 알았더니 알고 보니 은근히 유행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듯 하다.
마세라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은 기블리의 등장부터다. 우선 마세라티의 전세계 판매량을 살펴보자.
마세라티는 2012년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6천여대 정도 팔렸다. 소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럭셔리 브랜드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천만의 말씀. 마세라티보다 비싼 가격에 차량을 판매하는 페라리가 같은 2012년에 7,318대를 팔았다. 한마디로 마세라티는 적게 팔았던 것이 아니라 안 팔렸었다.
그런 마세라티가 2013년 기블리를 출시한 이후 전세계 판매량이 1만 5,400대로 2배 이상 상승했다. 2014년에도 다시 2배 이상 상승한 판매량을 이어가며 판매대수 3만 6천여대를 넘겼다. 그리고 마세라티 최초의 SUV, 르반떼가 등장한 2016년에 이르러 전세계 4만대의 벽을 넘어섰다.
럭셔리 브랜드로는 엄청난 판매량이다. 그리고 현재의 마세라티가 있기까지 기블리의 역할은 정말이지 엄청났다. 당연히 기블리에 대한 마세라티의 애정은 남다를 것이고, 이번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싶을 것이다. 마세라티는 기블리를 대담하면서 기품이 흐르고 당당하며 우아하다고 말한다. 온갖 미사여구는 다 갖다 붙였다. 실제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자.
이제 기블리는 2가지 모델 라인업을 갖는다. 고급스러움과 편의성에 주력한 그란루소, 역동성에 집중한 그란스포트로 분류한 것. 이는 앞서 출시된 콰트로포르테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선보인 라인업 운영법이다. 물론 이렇게 나눌 수 있는 것은 마세라티가 럭셔리 브랜드임과 동시에 스포츠카 브랜드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다. 이러한 2가지 상반되는 이미지를 모두 갖는 브랜드도 마세라티 뿐이다.
그란스포트는 기블리에 스포티한 매력을 집중시켰다. 어두운 색을 띄는 그릴을 중심으로 3분할 범퍼가 과거 기블리와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헤드램프는 어댑티브 LED로 변경되어 보다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까지 갖게 한다.
측면부 앞쪽 부분에는 그란스포트라는 로고가 부착된다. 스포티한 모델답게 휠의 디자인 역시 공격적인 모습이다. 후면부는 어두운 분위기와 공기배출구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담은 범퍼로 마무리 했다.
카본도 많이 썼다. 전면 범퍼 하단, 측면의 사이드미러와 B-필러, 리어스포일러 등 곳곳이 카본으로 꾸며졌다. 특히 B필러의 카본은 사치스럽다는 말을 쉽게 이끌어 낸다.
그란루소 모델은 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고급스러움을 표현한다. LED 헤드램프와 크롬 장식의 그릴, 부드러운 범퍼 등이 그란루소의 특징이다. 페이스리프트 이전 기블리와 상당히 닮았다. 휠의 디자인도 고급스러움에 맞췄다. 단정한 후면부도 범퍼 부분에서 그란스포트와 차이가 난다.
디자인이 2가지로 나눠졌지만 공통적인 변화도 있다. 두 모델 모두 새로운 디자인으로 공기저항계수를 낮춘 것이다. 수치적으로 보면 0.31->0.29Cd로 7% 가량 개선됐다. 휠은 옵션 사양을 기본으로 넣었다. 무려 21인치 크기다. 우리 팀이 작년에 테스트한 기블리 S Q4보다 1인치 더 커진 것. 타이어는 전륜 245mm, 후륜 285mm 규격을 사용한다.
도어에 소프트 도어 클로즈 기능도 넣었다. 특히 소프트 도어 클로즈 기능은 마세라티로는 이례적인 편의장비에 속한다. 고급 차에서 자주 봤음에도 신기하게 여겨졌다고나 할까? 그만큼 마세라티에 대한 이미지가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어찌됐건 마세라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것이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이지만 인테리어 디자인에 변화는 없다. 대신 그란스포트와 그란루소의 분위기 차별화가 포인트다. 잘 살펴보면 스티어링휠과 시트가 다르다. 개선점이라면 어색했던 한글화를 수정한 것. 기존 모델은 스포츠 서스펜션 버튼을 눌렀을 때 ‘스포츠 현탄액 모드’라는 이상한 문구를 띄웠다. 하지만 이제 정상적인 문구를 보여준다.
그란스포트는 어두운 가죽 색상을 기초로 붉은색 박음질 장식으로 고성능 이미지를 표현했다. 센터콘솔 주위는 카본 패널로 감쌌다. 금속페달 역시 스포티함을 강조시키는 요소. 사운드 시스템은 10개 스피커를 갖춘 하만 카돈 제품이다. 시트는 버킷 타입이다. 몸을 감싸주는 감각이 훌륭하다. 대신 동그란 형상의 헤드레스트는 머리를 지지해주는 감각 면에서 썩 좋지는 않다.
그란루소는 흰색 박음질 장식과 에르메네질도 제냐 실크 조합으로 고급차의 매력을 키웠다. 제냐 실크는 추가 비용 없이 적용되는 기본 사양이다. 사실 이름이 실크지 촉각적으로 직물 소재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일반 직물이 아니다. 오염에 강하고 방염 기능도 갖춰 일반 가죽대비 이점이 많다. 시각적으로 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감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이점이 있다. 특히 이러한 소재를 명품 브랜드에서 제공받아 완성시켰다는 점에서 신뢰성도 높다. 가죽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깨트린 것이 바로 이 제냐 실크 소재가 아닐까 한다.
이외에 카본 패널 대신 고광택 블랙 소재로 모던한 감각을 키운다. 그란스포트에 적용됐던 금속 페달도 일반 고무 페달로 변경된다. 대신 사운드 시스템은 15개 스피커를 사용하는 바우어스&윈킨스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이 고급스러움을 키워낸다.
시트는 세미 버킷 타입이다. 그란스포트의 시트 대비 몸을 잡아주는 느낌이 덜하지만 일반 시트와 비교하자면 여전히 스포티하다. 평평한 헤드레스트는 편안한 머리 지지가 가능했다.
이외에 후방카메라 및 어라운드뷰 카메라의 화질도 개선시켰다. 과거 우리 팀이 기블리를 테스트하며 지적했던 부분 중 하나다. 반면 스티어링휠로부터 방향지시등까지의 거리가 여전히 멀어 개선이 필요하다. 또한 휠베이스 3m짜리 대형 세단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뒷좌석이 더 넓어졌으면 한다.
테스트 모델은 기블리의 최상위 버전인 S Q4다. 410마력에서 430마력으로 한층 강력해진 엔진,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4륜 시스템, 새로운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이 장착돼 주행 성능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스티어링휠 왼쪽에 위치한 시동버튼을 눌러 잠자는 엔진을 깨운다. V6 3.0리터 엔진이 부드럽게 회전한다. 고성능 엔에서 예상되는 박력 있는 시동이 아니라는 점이 의외다. 표현을 하자면 엔진 회전수가 올라선 이후 하강하는 시동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시동 사운드다. 막상 들어보면 재미있는 감각이다.
아이들 정숙성부터 다시 측정한다. 측정 결과는 47.5dBA. 마세라티 차량을 접할 때 마다 언급하지만 분명 시끄러운 ‘소음’이 아닌 멋지게 들리는 ‘사운드’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면 가변 배기 시스템이 열리며 아이들 수치가 60.5dBA까지 높아진다. 부밍음이 느껴지는데 차량에서 공기의 울림이 느껴질 정도다. 물론 남성 소비자들은 이 울림에 심장 박동이 더 빨라질 것이다.
마세라티를 접하면서 느끼는 부분이지만 일상 주행 환경에서는 일반 승용차처럼 조용하다. 프레임레스 도어에서 발생하는 소음 유입을 막기 위해 2중 차음유리도 사용했다. 21인치에 이르는 휠과 285mm급 타이어가 노면 소음을 키우기도 하는데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마세라티 치고 조용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때문에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후 배기 사운드를 즐기는 운전자들도 많은데, 차량 밖에서는 상당히 큰 소리가 부각되는 만큼 도심에서는 스포츠 모드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연비는 좋다고 볼 수 없다. 시속 100~110km 환경에서 약 11.7km/L, 80km/h 정속 주행 시 약 12.5km/L 수준을 나타냈다. 평속 15km/h의 정체구간에서는 4.7km/L를 나타냈다. 오토스탑 기능을 갖췄지만 연비를 크게 높이는 정도까지는 아니다. 고속도로 연비와 달리 복합적으로 주행하면 약 7km/L가 나온다. 모든 마세라티가 그렇듯 기블리 역시 연료를 많이 먹고 그만큼 출력을 뽑아내는 성격이다. 물론 마세라티 소비자들에게 문제는 아니다. 이와 같은 고성능차를 즐기는 소비자들은 이미 고출력차들의 연비에 익숙하다. 연료비 대신 감성을 택한다는 것이 일반 소비자들과의 차이점이다.
일상 주행에서 느껴지는 감각도 마세라티스답다. 적당히 무거운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에 민첩하면서 꽤 많은 양의 노면 정보를 전달하는 스티어링 감각까지 그렇다. 달라진 점은 스티어링휠이 보다 가벼워졌다는 것. 기존 것은 다소 무거워 여성 운전자들이 유턴을 할 때 부담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성별과 나이에 관계 없이 편하게 스티어링휠을 조작 할 수 있다. 대중적인 성격으로 변모한 것이다.
새로운 기블리에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다. 지금까지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고수했지만 기블리부터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한다. 보통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면 뭔가 차량과 스티어링휠이 따로 노는 듯한 감각을 받게 된다. 특유의 이질감이다. 하지만 기블리의 전동식 스티어링은 전통적인 유압 방식이라고 해도 아무런 의심 없이 믿을 것이다. 그만큼 일체감 부분에서 특화된 감각이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실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치고 조금은 과장된 감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유압식 구조처럼 운전자의 조작에 차량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반대로 노면 정보를 운전자에게 필터링 없이 그대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감각이다. 때문에 어떤 방식을 사용하던 마세라티만의 감각을 해치는 일은 없었다. 매우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기존에 다소 무거웠던 스티어링휠이 가볍게 바뀌면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기블리를 편하게 운전할 수 있게 됐다. 스티어링 시스템 하나만 바뀌어도 대중성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흔치 않은 사례다. 참고로 스포츠 버튼을 누르면 스티어링휠의 답력이 유압식 시절로 돌아간다. 2가지 모드 변화에 따라 확실한 답력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
이 시스템에 대해 마세라티에 문의를 했다. 하지만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어느 업체에서 제공받은 것인지 확인 할 수 없었다. 이탈리아 본사에서 이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 현대모비스는 아니겠지?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제품의 출처를 떠나 완성도, 감각을 잃지 않았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서 한가지 알아둘 것이 있다.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인 마세라티 조차 왜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일까? 시대가 액티브 세이프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유압 방식으로는 액티브 세이프티, 나아가 자율주행 등 최신 기술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액티브 세이프티의 핵심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스티어링 시스템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마세라티는 기블리를 시작으로 콰트로포르테, 르반떼 등에도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과 액티브 세이프티 기능을 추가시킬 예정이다. 물론 마세라티 골수팬들은 쿠페인 그란투리스모에서 만큼은 유압식 시스템을 고수해 주질 바란다. 마세라티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한적한 도로에 올라 기블리의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을 확인한다.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기능이 새로운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의 핵심이다. 차량이 차선에 가까워지면 경고를 하고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해준다. 차선에 근접했다고 경고하는 민감도, 스티어링휠이 개입하는 힘 등을 탑승자가 설정할 수 있다. 참고로 스티어링 개입 강도를 가장 높게 설정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스티어링휠이 급작스럽게 작동해 운전자가 놀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동형 사각 지대 어시스트 기능도 있다. 사각지대에 차량이 감지되면 사이드 미러에 경고 표시를 나타난다. 여기서 더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발생시킨다. 그럼에도 차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읽히면 스티어링 시스템이 차량을 차선 중앙으로 이동하도록 돕는다. 이때 스티어링휠의 개입 강도를 변경할 수 있다.
정차 및 재출발을 지원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위에서 언급한 액티브 시스템이 능동적으로 상호 소통하게 되면 하이웨이 어시스트 시스템이란 기능으로 융합된다. 차선 중앙을 유지하며, 설정된 속도와 전방 차량과 차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 전방 차량을 따라 감속 및 정지까지 해준다. 사실상 반자율주행에 가까운 기능이다. 하지만 마세라티는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에서 손을 떼면 이 기능이 중지되도록 설정했다. 편의성보다 안전을 위함이다.
제네시스를 비롯해 수입 프리미엄 플래그십 세단의 경우 손을 놓고 15초에서 많게는 30초 이상까지 스스로 주행이 가능했지만 기블리의 경우 수 초가 지나면 바로 기능이 해제시킨다. 럭셔리 브랜드 특성상 조심스럽고 보수적인 모습으로 신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신형 기블리는 엔진 출력도 높였다. S Q4를 기준으로 410마력에서 430마력으로 증강된 것. 400마력이 넘는 차량에서 20마력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20마력 낮아도 이미 잘 달렸던 기블리였다.
엔진 스펙상 변화가 실제 성능에 영향을 줬는지 가속 테스트를 실시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로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은 5.19초. 지난해 이맘때 기존 모델(2017년형)을 테스트한 결과가 5.3초였으니 분명 향상된 성능이다. 차량의 무게감이 느껴지지만 실제 속도계가 상승 속도가 상당하다. 시속 200km 정도는 매우 쉽게 드나들 수 있다.
정지상태에서 최대 가속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쉽다. 주행모드를 스포츠 모드로 설정한 후 차체자세제어장치를 해제시킨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밟아 정지상태에서 엔진회전수를 높인다. 엔진회전수가 최고 시점에 다다른 순간 브레이크페달을 놓으면 마치 용수철이 튕겨나가듯 쏜살같이 속도가 상승한다. 4륜 시스템인 Q4가 타이어의 미끄러짐 없이 최대 가속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판클러치로 작동하는 Q4 4륜 시스템은 15분의 1초만에 구동력을 배분시킨다. 전륜과 후륜에 50:50부터 0:100까지 구동력 배분을 만들어낸다. 50:50의 경우는 정지상태에서 차량이 이동할 때, 다시 말해 빙판길과 같은 환경에서 최대한 안정적으로 차량을 출발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차량이 움직이면 50:50 구동배분에서 탄력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일반적인 주행 중 구동배분은 25:75 혹은 20:80 정도다. 4륜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후륜의 주행 특성을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이러한 감각은 와인딩 로드에서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형 세단 답지 않은 움직임이 돋보인다. 코너 진입 시에 약한 오버스티어를 보이다가 이내 곧 언더스티어로 전환되며 안정적인 주행 라인을 만들어준다. 사실상 오버스티어는 느낌에 가까우며 한계에서는 언더스티어가 기본이다.
서스펜션의 처리 능력도 좋다. 2,070kg이라는 차량의 무게를 충분히 받아내며 코너에서도 적당히 차체를 안정화 시키는 모습이 좋다. 일반적인 대형 세단으로 생각할 수 없는 스포티한 감각이다. 휘청거림? 기블리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단어다. 푹신한 승차감보다 단단한 느낌이 강하지만 기블리의 성격상 문제는 없다.
변속기 반응도 좋다. 기블리에 탑재된 ZF 8단 자동변속기는 일반 모드에서 부드럽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절도있는 감각이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부드러움에 치중된다. 반면 스포츠 모드로 바꿔주면 빠른 변속으로 차량의 동력 성능을 지원한다. 특히 다운시프트의 만족감이 높다.
항상 그렇지만 마세라티의 제동 시스템은 이번에도 최상급 성능을 발휘했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55m. 테스트가 수 차례 반복돼도 제동거리는 35m 를 넘어서지 않았다. 우리 팀 테스트 기록을 살펴보면 제동거리 최상위권은 모두 마세라티가 점거했다시피 했다. 참고로 마세라티 모델들이 그러하듯 브레이크 답력은 조금 무거운 편이다.
테스트를 진행하며 문뜩 궁금증이 생긴다. 350마력의 기블리 후륜구동 모델이 인제 서킷에서 무게를 뛰어넘는 기록(1분 58초 11)을 작성했는데, 그렇다면 430마력에 4륜 시스템까지 추가된 모델은 서킷에서 얼마나 빠를까? 프로드라이버 출신 전인호 기자는 이렇게 언급했다.
마세라티 기블리 F/L S Q4 서킷 리포트
이전에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했던 마세라티에 대한 경험이 없다면, 이 차의 스티어링 시스템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새롭게 탑재된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은 기블리와 잘 어울렸다. 다른 마세라티 모델들처럼 복원되려는 답력이 적으며 약간의 묵직한 감각도 그대로 살려냈다.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은 이전 모델 대비 가벼운 답력을 만든다.
마세라티 다운 내구성도 그대로 지켜냈다. 변속기와 엔진 오일 온도는 20분간 서킷 주행에서 미동도 조차 없었다. 제동 성능도 꾸준하게 무거운 차체를 통제 해냈다. 다른 차들은? 일반적인 양산차들은 인제 서킷 안에서 8~10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안전모드로 진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차들의 문제는 아니다. 인제 서킷이 그만큼 가혹한 조건이라는 것. 심지어 독일 뉘르부르크링 보다 험하다는 얘기도 나돈다. 하지만 마세라티 모델들은 이 서킷에서도 지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S Q4는 서킷에서 어떤 기록을 냈을까? 이전 테스트한 후륜 구동 기블리 모델(350마력)과 비교해 보려 한다. 공식 제원만 보면 S Q4는 후륜 구동 기블리의 랩타임을 1~1.5초 이상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서킷은 이론만 가지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서킷에서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 것은 기블리 S Q4에 장착된 사륜 구동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구동 배분 패턴이다. 코너 진입 때는 후륜 구동의 성향으로 날카로운 감각을 선보인다. 하지만 가속 페달에 발을 얹는 코너 탈출 가속 구간에 들어서면 흡사 전륜 구동처럼 언더스티어 성향이 짙어진다.
물론 S Q4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높은 출력을 부담 없이 끌어다 쓸 수 있는 안정감을 부여한다. 적어도 출력에 의해 후륜이 미끄러져 오버스티어를 일으키지 않게 해준다. 하지만 반대 성격인 언더스티어가 강조되는 것이 특징이다.
Q4라 불리는 사륜 구동 시스템이 만드는 안정감은 후륜 구동 모델에서 주의해야 했던 구간 주행을 마냥 쉽게 만들어 준다. 특히 가속 페달을 밟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럼에도 출력이 낮은 후륜구동의 기블리 보다 랩타임이 늦어진 것은 언더스티어로 인한 속도 손실 때문이다. 언더스티어가 유독 강조되는 구간들을 분석해 보면 스티어링 각도를 일정 수준 유지하며 가속 페달을 밟는 구간들이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시간 대비 유효한 가속력이 발휘되지 못했는데, 스티어링 각도가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랩타임 결과와 서킷에서 운동특성 만으로 양산 차량의 운동성능 전부를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생각이다. 예를 들어 서킷에서의 빠른 랩타임을 목적으로 한 셋업으로 와인딩 로드 등의 일반 도로에 적용하면, 운전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 불안함을 겪게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서킷에서 인상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한 운동 성향이 일반 도로에서는 이상적일 수 있다.
한가지 분명한 것, S Q4는 자칫 민감할 수 있는 마세라티 특유의 성향을 마일드하게 즐길 수 있도록 안정적인 성향으로 조율했다는 것이다. 물론 스포티함을 강조한다면 모델을 원한다면 후륜 구동 버전이 적합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게 2018년형 기블리 S Q4로 뽑아낸 인제 서킷 랩타임은 1분 58초 73였다. ‘출력이 높으니까 당연히 빨라야 하는거 아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인제 서킷이라는 특수한 주행 조건, 후륜 모델보다 약 60kg가량 무거운 무게, 4륜 시스템으로 인한 언더스티어 부각과 같은 요소들이 후륜 모델과 동등한 결과를 내놓게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또한 한가지 알아야 할 부분이 있다. 서킷에서는 언더스티어보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YAW)도 잘 만들어져야 한다. 이는 차량이 코너에서 돌고 빠져나가는 과정을 신속하게 도와주는 요소다. 기블리 후륜 모델은 이 부분에서 드라이버의 의도를 잘 따라줬다.
하지만 모든 운전자가 레이싱 드라이버는 아니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짙어지면 일상 주행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런 부분에서 S Q4 모델은 더 높은 출력과 4륜 시스템의 안정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이 강력한 성능을 느낄 수 있는 모델이다. 서킷에서 조금 느려질지라도 말이다. 물론 후륜 버전의 기블리가 심한 오버스티어 성향을 갖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후륜구동 스포츠세단들처럼 오버스티어를 지향하는 특성으로 운전자의 의도를 잘 따라줬다고 보는 것이 좋다. 참고로 기블리 후륜구동 모델도 기본 운동특성은 언더스티어를 바탕으로 한다.
S Q4는 최근 마세라티가 추구하는 방향을 잘 보여준다. 더 많은 소비자들이 마세라티의 고성능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대중성’이다. 럭셔리 브랜드는 아무나 접근해서는 안 되는,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소수의 선택 받은 소비자만이 이 브랜드의 가치를 누릴 수 있고, 그래야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지켜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마세라티는 여기서 벗어나 소비자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있다. 기블리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문턱을 낮췄다. 여기에 SUV를 만들어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춰가고자 하고 있다.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또 다른 SUV를 만들겠단다.
새로운 기블리 역시 이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 소수의 마세라티 팬들이 요구하는 유압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고수하는 대신 대중들이 요구하는 전동식 스티어링 시스템을 적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액티브 세이프티 시스템도 크게 강화시켰다. 오토 클로징 기능과 같은 대중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도 추가했다. S Q4 모델은 430마력을 더 쉽고 재미있게 달릴 수 있는 셋업을 갖는다.
이것이 현재의 마세라티다. 대중성을 통해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마세라티를 경험하게 해주겠다는 것. 그리고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마세라티에 만족감을 표하게 노력한다는 것 말이다. 럭셔리 브랜드라고 도도한지 알았더니 알고 보니 은근히 유행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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