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시승기]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 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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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테스트한 마세라티 그란 카브리오에 대해 ‘사치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소위 명품에 해당하는 자동차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 바 있다. 또, 그랜드 투어러에 지붕이 열리는 기능까지 더해지면 어떤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이번에는 쿠페형인 그란투리스모다. 지붕이 열리는 낭만을 잠시 접어두고 달리기에 집중한 모델이다. 그랜드 투어러라는 장르는 여전하지만 마세라티 라인업 내에서 달리기 성능을 가장 강조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 달리기 성능, 제대로 확인해보고자 한다.

앞서 테스트한 그란 카브리오에 대해 우아함이나 고급스럽다는 표현을 많이 했다. 반면 그란투리스모는 ‘가장 마세라티’ 다운 모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실제 그란투리스모는 가장 마세라티 다운 그랜드 투어 라이자 마세라티의 역사를 함께 해오고 있는 중심 모델이다.

잠시 역사를 살펴보자. 원래 마세라티는 자동차를 만들기보다 레이싱에 집중했던 회사였다. 회사 설립 후 얼마 안 돼 레이싱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을 정도로 어떻게 하면 잘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업체다. 그리고 이런 노하우를 바탕으로 약 500여 회에 이르는 화려한 우승 경력이 지금의 마세라티를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1957년 밀레밀리아 레이스 도중 페라리 335 S 경기차가 미끄러지면서 관중 무리에 그대로 돌진해 9명이 사망하는 구이디촐로(Guidizzolo)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이탈리아 브랜드 대부분이 경기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경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마세라티는 경주차의 성능을 유지하며 장거리 이동에도 불편하지 않은 그랜드 투어러 양산차를 만드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마세라티 3500GT다. 이를 시작으로 마세라티는 그랜드 투어러를 약 60년간 만들어왔다. 그만큼 마세라티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차가 바로 그란투리스모인 것.

이탈리아 피닌파리나가 담당한 디자인은 그란투리스모의 강렬한 존재감을 키운다. 차량의 생김새와 비율 등이 일반적인 승용차와는 다르다. 전면부의 거대한 그릴과 날카로운 헤드라이트, 거대한 공기흡입구 등이 고성능 차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주고 있다.

측면 실루엣은 오픈탑 버전보다 한층 멋스럽다. 특히 루프라인의 형상이 그렇다. 오픈형 모델인 그란 카브리오 역시 우아한 라인이 돋보였지만 애초부터 고정된 루프에 반영된 실루엣의 완성도 대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전 후륜에 대형 휠과 고성능 브레이크, 카본 사이드미러와 카본 도어 핸들 등으로 멋스러움을 더했다. 도어를 열기 위해서는 도어 핸들 안쪽에 위치한 버튼을 살짝 누르면 된다. 독특한 방식이다.

후면부의 카본 스포일러, 대형 머플러와 디퓨저도 인상적이다. 뒤에서 보니 딱 벌어진 어깨가 더욱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디자인 만족감이 크다.

단지 지붕이 열리고 닫히느냐, 아니면 고정식이냐의 차이로 보일 수 있지만 구조적인 차이도 적지 않다. 우선 차체 하부에서도 차이가 난다. 쿠페형은 루프를 통해 차체 강성이 확보되는 만큼 그란 카브리오에서 볼 수 있던 보강대가 생략돼 있다. 여기에 가변 루프도 빠졌으니 무게도 한층 가볍다.

차체 무게를 확인한 결과 그란카브리오는 2,079kg였으며, 그란투리스모는 1,921kg으로 158kg 가량 가벼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무게 배분도 좋다.

인테리어는 사실상 동일하다. 차이점이라면 변속 레버 오른쪽에 지붕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버튼이 생략됐다는 것 정도. 물론 쿠페형 모델답게 스포티한 감각이 가미됐다. 스티어링 휠의 림을 카본으로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시트 백의 뒷면 전체를 카본으로 마감했다. 이럴 필요가 있을까 정도로 사치스러운 부분이다. 그 밖에 두꺼운 알루미늄 페달을 갖췄는데 이는 페라리와 동일한 구성이다.

고급 가죽으로 마무리 된 시트는 다양한 색 조합으로 멋을 냈다. 도어 안쪽은 물론 천장까지 고급 소재로 마감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다운 모습을 살렸다. 하지만 버튼들의 배치나 조작과 관련된 인터페이스 설계가 아쉽다. 현시대와 다소 동떨어진 모습이기 때문.

뒷좌석 공간은 제한적이다. 아무래도 성인 남성이 앉으면 좁다고 느껴질 수 있다. 반면 그란카브리오와 비교했을 때 머리 공간이 소폭 넓어졌다고 느껴진다. 접이식 루프와 고정식 루프의 차이가 헤드룸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트렁크 공간 역시 오픈형 모델보다 넓어졌지만 그렇다고 세단 트렁크의 넓이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한국 시장을 위한 한정 모델

국내에서 판매되는 그란투리스모 중에는 스페셜 에디션이란 모델도 있다. 한국 시장만을 위해 한정 생산된 모델로, 단 15대만 제작됐다. 스페셜 에디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반 그란투리스모와 차별화된 요소가 곳곳에 적용됐다.

먼저 내 외관에 고성능 모델 MC 스트라달레(MC Stradale)의 일부 요소를 더했다. 엔진 후드와 전륜 펜더에 공기 배출구를 추가해 한층 공격적인 모습을 갖게 했다. 마세라티 로고를 형상화시킨 새로운 휠과 독특한 빛을 발하는 캘리퍼도 적용된다. 특히 브레이크 캘리퍼가 영롱한 빛을 발하는데, 차가 달릴 때 브레이크 패드 분진에 더럽혀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쓰릴 정도였다.

실내로 들어서면 도어 스탭에 MC 로고가 적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두꺼운 알루미늄 페달에도 MC 로고가 추가됐다. 화려한 색 조합을 가졌던 일반 그란투리스모의 시트와 달리 스페셜 에디션 모델의 시트는 어둡게 처리돼 진중한 고성능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카본 패널도 더 많이 썼다. 계기판 주위와 센터 콘솔 주위, 심지어 시프트 패들까지 넓은 부위에 카본을 사용했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 한정 생산 모델임을 보여주는 명판이 자리한다는 것. 실내에 들어설 때마다 보이는 이 명판을 통해 오직 15대 밖에 없는 차를 소유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시동 키를 돌려 엔진을 깨우면 우렁찬 사운드와 함께 각종 부품들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8기통 대배기량 엔진인 만큼 박력 있는 진동도 전달된다. 일반 승용차였으면 NVH에서 아쉬움을 표했겠지만 그란투리스모 같은 차에 사운드나 진동이 없다는 사실은 상상하기 어렵다. 참고로 아이들 정숙성 측정 결과는 51.5dBA을 보였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해도 배기음이 더 커지지는 않는다. 가변 배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엔진 회전수가 2,500rpm 이상으로 상승해야 바뀌는 방식이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지 않아도 그란투리스모의 배기 사운드는 충분히 크고 매력적이다.

묵직한 조작감을 갖는 두꺼운 알루미늄 페달을 밟아 주행을 시작한다. 유압 방식을 고수하는 스티어링 휠과 함께 조작하니 클래식한 감각마저 느껴진다. 동시에 유격 없이 꽉 조여진 느낌이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I.C.E 모드는 일종의 에코 모드로 생각하면 된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제한된 출력만 휠로 전달한다. 페달을 조금 깊이 밟아도 기어 단수를 내리지 않는다. 그란투리스모가 갖는 출력 중 1/5 정도만 쓰는 느낌? 그럼에도 엔진 힘이 좋기에 일상 주행이 답답하지 않았다.

최대한 효율을 높이는 모드지만 높은 연비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물론 대배기량 스포츠카를 기준으로 얘기할 때다. 그란투리스모는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약 11.2km/L, 80km/h의 속도로 정속 주행을 해도 13km/L 이상의 연비를 기록하기 힘들었다. 이렇게 10km/L 이상의 연비를 유지해도 조금만 빠른 주행을 하면 이내 한자리대 연비로 떨어진다. 참고로 평균 속도 15km/L의 도심 정체구간에서는 약 4km/L의 연비를 나타냈다. 물론 심하게 막히는 환경에서는 3km/L 대, 일반적인 시내 소통 환경에서는 6km/L 대까지 향상되기도 한다.

다양한 연비 테스트 결과, 그란투리스모는 약 7km/L 대 연비를 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차량 특성상 천천히 탈 수만은 없기에 실제 연비는 약 6km/L 대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이러한 차량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연비보다 더 좋은 성능과 사운드를 원한다. 설마 이런 차에 일반유 넣을 생각은 하지 않겠지?

노멀 모드의 주행 감각도 I.C.E 모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어느 정도 제한된 출력이 전달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가속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기어 단수를 내리며 필요한 출력을 만들어낸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엔진과 변속기가 가속페달 반응에 민감해진다. 기어 단수도 낮은 단수를 사용하려는 성격으로 바뀐다. 또한 2,500rpm 이상부터 마세라티 특유의 배기 사운드가 시원스럽게 터져 나온다. 이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속 200km 정도는 너무나 쉽사리 오르내린다.

이렇게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엔진은 V8 4.7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사양으로, 이제 몇 안되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그룹에 속한다. 페라리 공장에서 손수 제작되는 코드네임 F136 엔진으로, F430 몬자, 알파로메오 역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한 바 있다. 현재 이 엔진은 460마력을 만들어내며, 최대토크는 53.0kg.m다. 배기량 대비 토크가 상당히 높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변속기는 6단 자동변속기다. ZF 6HP26으로 토크 대응력이 61kg.m 수준으로 그란투리스모의 성능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는 넉넉함이 마음에 든다. 물론 최근에 등장하는 8~9단 변속기와 비교해 다단화에서는 분명 불리하다. 그럼에도 더블 디클러치(Double-Declutching) 기능을 통해 박력 있는 변속 감각을 느낄 수 있어 체감적 불만은 크지 않다.

그란투리스모의 가속성능을 측정했다.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는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장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런치 컨트롤 기능을 지원한다. 마세라티는 이를 MC 스타트 스트레티지(MC Start Strategy)라 부른다.

작동법이 최근의 런치 컨트롤과 달리 조금 까다롭다. 먼저 주행 안전장치를 해제시키고 스포트 모드를 활성화시킨다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변속기는 수동이 아니라 D에 위치시키면 된다.

이후 왼발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오른발로 가속페달을 살며시 밟아야 한다. 엔진 회전수를 약 2,300~2,500rpm 정도까지만 올려야 하는 것이 포인트다. 일반적인 런치 컨트롤처럼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바로 번아웃이 실행된다. 때문에 엔진 회전수가 해당 영역에 도달하면 재빨리 브레이크 페달을 뗌과 동시에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최적의 접지력을 만들어내면서 속도를 올리게 된다.

6단 변속기의 긴 기어비 덕분에 2단에서 100km/h를 기록해버린다. 계측 결과는 4.95초. 제원상 4.8초이니 큰 차이 없는 성능을 만들어낸 것. 2단에서 측정이 끝나니 체감상으로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 최근 자동차들은 보통 3단에서 100km/h를 넘기는 것이 보통이다.

참고로 그란카브리오의 경우 5.29초를 기록한 바 있다. 아무래도 이번 그란투리스모 테스트카의 컨디션이 더 좋아 보인다. 실제 구동 성능 부분에서 차이를 보이는지 섀시다이나모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과는 380마력과 44.6kg.m의 토크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란카브리오와 비교해 4마력과 4kg.m 높은 토크다.

그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다이나모 테스트 때 끊임없이 제어가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는 그란카브리오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으로, 그래프가 지속적으로 물결 모양을 그리며 완벽한 성능을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노면으로 전달하는 출력과 토크는 이보다 더 높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기까지 이동한 제동 성능도 측정했다. 테스트 결과는 34.38m. 우리 팀이 측정한 마세라티 모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또, 모든 모델을 통틀어서도 최상위권을 기록했다.

놀라운 부분은 34m 대의 성능을 제동 테스트가 끝나는 시점까지 일정하게 유지시켰다는 점이다. 까다로운 런치컨트롤 조작에 가속 제동 테스트가 7회까지 연장됐지만 제동 성능은 일정했다. 이 부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그란투리스모 이외에 기블리, 르반떼, 그란카브리오 모두 제동거리는 34m 대를 작성했다.

물론 이러한 제동성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아야 한다. 페달에 발만 올려놓아도 엄청난 제동 성능이 왈칵 쏟아진다거나 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일반 승용차보다는 소폭 무거운 페달 감각에 초반부터 큰 힘이 발생되는 설정도 아니다. 밟으면 밟는 만큼 큰 힘이 발휘되는 성격인 만큼 작동하는 성향에 따라 부드럽거나 때론 강력한 제동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본격적으로 그란투리스모와 달려본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자연흡기 엔진만의 빠른 반응을 시작으로 꾸준한 가속감이 만들어진다. 변속기는 듀얼 클러치까지는 아니지만 이에 준하는 빠른 감각을 전달한다. 6단이라는 고정관념만 없으면 만족감이 높다.

코너에서 적극적으로 주행해도 후륜이 미끄러질 부담은 크지 않다. 기본적으로 후륜의 접지력이 좋기 때문이다. 물론 강력한 출력과 토크로 인해 코너에서 가속 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으면 후륜을 손쉽게 미끄러트릴 수 있다. 휠베이스가 2.9m를 넘어서는 만큼 후륜이 적극적으로 뒤따라오면서도 안정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서스펜션은 전륜과 후륜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더블 위시본 구조이며, 스포트 스카이훅(Sport Skyhook)이란 이름의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이 갖춰진다. 여기에 디퍼렌셜 시스템은 비대칭 구조로, 디퍼렌셜이 잠기면 최대 슬립을 25%까지만 허용하고 풀리면 45%까지 허용하는 구성을 갖는다.

위에서 설명한 배경지식 없이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를 비교하면 보다 안정적으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감각은 그란투리스모가 앞선다. 접지력 부분에서도 그란투리스모 쪽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쿠페와 오픈형 모델간 차이일 수 있고, 시승 차량의 컨디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달리기를 추구한다면 그란투리스모가 확실히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그란투리스모는 체감적인 성능 이외에 정말로 얼마나 잘 달릴 수 있을지 말이다. 아무리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라고 해도 돈값을 못하면 망신이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전인호 기자가 운전대를 잡고 인제 스피디움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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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카브리오를 이미 시승하고 나서 그란투리스모의 운전석에 앉는 것은 그렇게 신선하지 않았다. 이미 그란카브리오를 통해서 많은 것을 알아냈다고 생각했고, 카브리올레와 쿠페의 차이점을 포착해내는 것에 가장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페 모델에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인제 스피디움 랩타임이었다.

그란투리스모는 놀라움과 혼란을 가져다 주었다. 그란카브리오와 완전히 다른 디퍼런셜의 반응과 서스펜션의 단단함 때문이었다. 무게 차이로 인한 차이일까? 또는 시승차들의 상태 차이 때문일까? 아니라면 마세라티가 모델별로 차별화된 셋업을 적용한 것일까?

코너 진입 때 앞 타이어는 더 날렵하게 반응했고, 가속 페달을 밟은 오른발은 더 신중해졌다. 후륜 축에 장착된 디퍼런셜이 언제든 양쪽의 드라이브 샤프트를 움켜잡고 타이어를 미끄러뜨려 버릴 기세였다. 그란투리스모는 상당히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무대가 서킷으로 바뀌어도 여전히 제동 시스템은 믿을 수 있었다. 그란카브리오 시승 때 칭찬을 거듭했던 페달 감각 또한 서킷에서도 그 가치를 발휘했다. 변속은 메뉴얼 모드로 진행했다. 무엇보다 쉬프트 다운을 직접 통제하면 엔진 브레이크로 인한 약간의 이득과 탈출 가속 때 원하는 기어를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그란투리스모의 다운 쉬프트는 정말 빠르기 때문에, 직접 조작하는 보람이 크다.

일반 도로에서 스포츠 모드를 켜고 달려도 서스펜션이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서킷에서 그란투리스모는 정말 날카로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그런 노면 위에서 그란 투리스모는 범프를 가로질러 갈 때마다 연신 후륜 타이어를 미묘하게 미끄러뜨렸다. 스티어링을 바쁘게 움직여야만 트랙에 그리고 싶은 라인을 그려낼 수 있었다. 이러한 서스펜션 셋업은 고속 내리막 코너에서 언더스티어에 시달릴 틈을 주지 않았다. 타이트하고 단단한 서스펜션 셋업이 2톤의 무게를 날렵하게 움직이게 했다. 그란투리스모로 타임어택을 하는 내내 운전자의 용기를 시험했다.

일부 고속 코너를 제외하면 일관적인 언더스티어 성향을 보이며, 전륜과 후륜의 서스펜션 조합은 후륜의 접지력을 높게 느끼게 하여 낮은 출력이 아님에도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는 부담을 줄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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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제 서킷을 달린 그란투리스모의 랩타임 기록은 1분 55초 31이다. 당초 우리 팀의 예상 랩타임은 1분 57초 초반이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로 인해 손해를 봤을 것이란 예상과 달리 충분히 빠른 운동성능을 보여준 것이다. 마세라티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항상 예상보다 뛰어난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타이어는 피렐리 P-ZERO로, 전륜 245mm, 후륜 285mm 를 사용한다. 기본적인 접지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속도가 높은 영역에서도 코너를 돌 때 운전자에게 불안한 감각을 전달하지 않았다. 다만 접지력이 한계를 넘어서면 순간적으로 접지력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운전자에게 불안함을 만들어주는 요소다. 미쉐린이나 브리지스톤과 같이 한계 영역에서도 운전자가 읽기 쉬운 특성을 갖는다면 더욱 운전에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듯하다.

그란투리스모의 가격은 2억 1,770만 원. “이 돈이면 포르쉐를 사지”라는 외침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그뿐일까? 이 차에는 통풍시트도, 무선 충전 시스템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없다. 일반적인 시선에서는 구입할 가치가 없는 차로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란카브리오 때도 그렇지만 이렇게 언급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고객층이 아니다. 차량 자체가 갖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이다. 시계도 5천 원, 1만 원짜리도 시간을 잘 맞춘다. 3분 짜장도 짜장면 맛이 난다. 하지만 ‘사치’라는 개념이 더해지면 시계도 순식간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짜리가 될 수 있으며,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수십만 원 이상의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자동차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평가 기준 자체가 뒤틀어지는 것이 바로 럭셔리 브랜드의 자동차다. 일반적인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브랜드를 소유하는 것 자체에서 이러한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그란카브리오가 이러한 럭셔리에 우아함, 혹은 자유를 연상시킬 수 있는 오픈형 구조를 갖는다면 그란투리스모는 조금 더 진중한 자세로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스포티함이 배가된 모델이다. 그리고 그란투리스모의 실제 달리기 성능은 우리 팀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란투리스모에도 경쟁 모델은 있다. 벤틀리 컨티넨탈 GT(V8), 애스턴마틴 DB9 정도다. 가격 경쟁력은 그란투리스모가 가장 높다. 적게는 2,700만 원부터 4천만 원 이상 저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컨티넨탈이나 DB9과 같은 경우는 사실상 한 세대 전 과거 모델이 됐다. 반면 그란투리스모는 아직 현역이다. 같은 값비싼 돈을 지불하고 과거 모델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극히 드물지만 시장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 이 때문에 우리 팀은 그란투리스모에 별 4점을 부여했다. 팀 리더인 김기태 PD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차 가격의 절반은 엔진과 배기 사운드”라고… 사실 달리지 않아도 이러한 감성적인 측면에서 가치를 높이는 것이 바로 마세라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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