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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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자동차들도 수천만 원의 가격을 갖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좋고 값비싼 차량들은 1억 원 이상의 가격을 갖기도 한다. 다시금 가격이 2억 원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세상 속 자동차로 분류된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무슨 자동차에 금칠이라도 했나?’ 아니면 ‘그 돈이면 다른 걸 하지 그런 차를 사?’
고가의 자동차들. 이런 차량들을 구입한 후 시트에 앉아 시동만 걸어도 수천만 원의 감가가 발생한다. 또, 이런 차량들의 상당수가 출퇴근 용도로 이용되지 않기도 한다. 약 1달간 차고 속에 보관됐다가 한번 드라이빙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차량들은 ‘자동차’라기보다 ‘명품’, ‘사치품’으로 분류된다. 이번에는 그런 사치스러운 자동차에 대한 시각으로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GranCabrio)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2억 4천만 원짜리 오픈카다. 장르를 따지자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다. 스포츠카와는 다르다. 스포츠카는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는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두 장르 간 공통점은 ‘고성능’이 전부이며, 나머지 지향점은 다르다.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장르에 속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긴 역사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드 밸류, 전통을 기반으로 한 클래식함, 존재 자체만으로 차별화되는 디자인,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 등이 꼽힌다. 아, 일반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가격대도 포함된다.
사실 위와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차량은 손에 꼽힌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애스턴마틴 밴티지 혹은 DB11, 그리고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있다. 이들 모두 호텔 로비에 유유히 진입해 가장 멋진 모습으로 하차할 수 있는 차들이다. 또, 일반적인 차의 존재 목적과 다르게 운전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레저의 일종으로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차량이기도 하다.
그란카브리오는 이름 그대로 그란투리스모의 오픈형 모델이다. 첫인상부터 일반적인 자동차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마세라티는 그란카브리오 디자인에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문구에 매료되는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을 살펴보자. 마세라티 특유의 강인한 그릴과 헤드램프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섭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실제로 보면 차량의 전면부가 매우 낮게 위치하기 때문에 차량의 헤드램프와 눈높이를 맞추려면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측면부에서는 쿠페와 오픈카의 멋 모두를 느낄 수 있다. 탑이 닫혀 있을 때는 대형 쿠페의 모습이다. 그란카브리오는 4,880mm의 길이를 가지며, 휠베이스만 2,945mm에 이른다. 벤틀리 컨티넨탈 GT(4,806mm, 2,747mm)보다도 크다. 여기에 앞부분이 길고 뒷부분이 짧아 클래식한 쿠페의 모습도 느낄 수 있다.
탑을 열면 매끄러운 바디를 가진 오픈카(컨버터블)로 변한다. 실내를 감싼 특유의 디자인은 고급 요트를 떠올리게 해준다. 참고로 전동 접이식 루프를 갖춘 컨버터블인 만큼 쿠페 모델보다 약 100kg 가량 무겁다. 탑이 열리고 닫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8초.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카브리올레가 20초, 벤틀리 컨티넨탈 GTC가 23초이니 다소 느린 편이다. 참고로 이 탑은 시속 30km 이하의 속도에서 작동시킬 수 있다. 최근 신차들이 40~50km/h의 속도에서도 작동하도록 개발되는 만큼 향후 작동 속도를 높여주면 좋겠다.
후면부에는 삼각형 형태의 리어램프가 자리하는데, 후미등에 사용된 LED만 96개에 이른다. 고성능을 상징하는 머플러와 디퓨저 디자인을 갖췄다. 트렁크는 충분치 않다. 탑의 수납공간을 위해 공간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용 캐리어 수납은 어렵고, 가방 정도만 넣을 수준이다.
하부를 살펴보자. 고성능 모델인 만큼 언더 패널이 넓게 자리한다. 여기에 차량 축을 중심으로 전후에 두꺼운 막대를 넣어 차체 강성을 높이고자 한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전륜과 후륜 모두 더블 위시본 형식의 서스펜션이 장착되는데 상당히 크고 튼실하게 생겼다.
인테리어는 디테일이 강조된 모습이다. 대충 훑어보면 붉은색 가죽과 카본 장식 정도가 눈에 들어오는 정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고급 가죽이 시트는 물론, 도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심지어 선바이저에도 적용됐으며 박음질까지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시트 뒷부분은 플라스틱 소재가 덮고 있는 것이 보통. 하지만 그란카브리오에는 이 부분마저 가죽으로 덮어놨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것은 아날로그 시계. 자세히 들어보면 기계가 째깍 째깍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준다.
실내 곳곳에 사용된 가죽은 이탈리아의 유명 가구 회사 폴트로나 프라우(Poltrona Frau)의 것이다. 기블리나 콰트로포르테의 가죽이 조금 뻣뻣했던 느낌이라면 이쪽은 보다 부드럽고 푹신하다.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나파 가죽과 비교하자면 조금 더 두껍고 질긴듯한 감각이다.
디테일적으로 놀라운 완성도를 보이지만 구성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면 아쉬움이 나올 수 있겠다. 그 아쉬움은 센터페시아에서 나온다. 먼저 디스플레이는 정전식도 아닌 감압식이다. 때문에 난반사도 심하다. 게다가 사이즈도 작다. 그 아래에 놓인 버튼들은 최근 디자인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손톱보다도 작은 버튼들도 실용성과 거리가 멀다. 이상하리만큼 집요하게 디테일을 중시하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허술한 부분이 나온다는 점, 이탈리아나 프랑스 차의 매력 아닌 매력이다.
시트는 편하다. 그랜드 투어러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스포츠카처럼 긴장감을 높이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잘 지지해준다. 시트 설정값은 3개의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헤드레스트가 둥글다는 것이다. 머리가 닿는 부분도 둥글게 튀어나와있다. 시각적인 디자인은 멋지지만 편안함과 안전을 생각해서 헤드레스트 디자인을 개선해주면 좋겠다.
뒷좌석 공간은 성인 남성이 앉기에 제한이 따른다. 특히 탑을 닫았을 때 헤드룸에 한계가 있다. 반면 레그룸에는 제법 여유가 있다. 탑을 열면 헤드룸의 제약이 사라지는 만큼 승객을 태운 경우 탑을 오픈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도어를 여는 방법이 독특하다. 도어 핸들이 고정된 상태로 안쪽에 위치한 버튼을 눌러 문을 여는 방식이다. 그리고 시동을 걸려면 키를 꼽고 돌려야 한다.
뭔가 시동을 거는 방식이 구식이라고 느껴질 찰나. 순간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엔진이 깨어난다. 냉간 시동 때 꽤 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이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존재감?
그란카브리오에는 V8 4.7리터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다. 그렇다 자연흡기 엔진이다. 현재와 같은 다운사이징 트렌드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고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엔진이다. 이 엔진은 페라리 공장에서 손수 제작되는 코드네임 F136 엔진이다. 페라리는 F430 몬자, 알파로메오 역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한 바 있다. 초창기에는 4.2리터 배기량에 390마력을 발휘했지만 현재는 배기량이 4.7리터까지 커지고 출력도 460마력까지 높아졌다. 그란카브리오는 460마력 사양의 엔진을 사용한다. 최대토크는 53.0kg.m.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상당히 높은 토크다. 배기량 대비 효율성이 높다.
8기통 대배기량 엔진이기에 무게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마세라티는 아직 경량화에 본격 투자를 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엔진 무게는 175kg에 불과하다. BMW의 직렬 6기통 터보 엔진인 N55 엔진이 177kg, 과거 아우디가 사용했던 8기통 4.2리터 엔진이 195kg의 무게를 가졌으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가벼운 엔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우면서 아쉬운 부분은 한때 페라리가 사용했던 8기통 자연흡기 엔진이지만 이제 페라리도 12기통 엔진을 제외하고 모두 터보 엔진으로 바꿨다는 것. 페라리의 마지막 8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마세라티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 사운드는 우렁차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아이들링에서 49.5 dBA 수준을 보였다. 정말 시끄러운 디젤 엔진을 가진 차들도 이보다 조용하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얼마나 더 사운드가 커지는지 확인해봤다. 스포츠 버튼을 눌러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란카브리오는 아이들링이 아닌 주행 중, 엔진 회전수가 2,500 rpm 이상으로 상승할 때부터 우렁한 사운드를 뿜어낸다.
두꺼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페달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의 조작감이 매우 묵직한 느낌이다. 이렇게 묵직한 페달은 보다 세밀한 조작이 가능하며 감각적으로도 보다 스포티한 면모를 키운다. 물론 여성 운전자들이 버거워할 정도는 아니다.
스티어링 휠 사이즈는 다소 크다. 여기에서도 클래식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차량 성격상 조금 더 작아도 좋을 듯싶다. 대신 스티어링 휠이 크니 차량에서 전달되는 감각이 한층 여유롭게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편안함과 차체 강성이었다. 먼저 운전하기 편하다. 차량에서 신경질적인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긋나긋하다. 여기에 승차감까지 좋다고 하면 믿을까? 2.9 m가 넘는 휠베이스와 묵직한 무게감에 서스펜션 셋업도 잘 돼있어 분명 단단하지만 승차감이 좋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조금은 큰 스티어링 휠에서 전달되는 피드백도 신경질적이지 않아 운전하기 편하다. 이러한 설정에 반응이 빠른 자연흡기 엔진, 460마력이라는 넉넉한 출력까지 더해지면서 장거리 운전이 여유롭고 편하다. 이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러다.
차체 강성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오픈형 모델은 강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실내 여기저기서 잡소리가 많이 들린다. 하지만 그란카브리오는 이러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 강성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빠른 주행을 진행하다 보면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정도 크기의 오픈형 모델에서 이 정도 강성을 갖는다는 점에 놀랐다.
물론 이 차를 나들이용으로만 쓸 수는 없다. 이제 동력 성능을 확인해 보자. 우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참고로 그란카브리오는 MC 스타트 스트레티지(MC Start Strategy)라는 이름의 런치 컨트롤 모드를 지원한다. 측정 결과는 5.29초. 제원상 그란카브리오 스포트의 가속시간은 5.0초였다. 실제로는 그에 조금 못 미치는 결과였지만 환경이란 변수가 있으니 수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시속 100km를 2단에서 도달한다. 그럼에도 엔진 회전 영역에서 여유가 있다. 그대로 계속 달리면 120km 부근에서 3단으로 넘어간다. 그란카브리오는 6단 변속기를 사용하고 있어 기어비가 넓은 편이다.
변속기는 ZF 6HP26 6단 자동변속기다. 최근에 출시되는 8~9단 변속기 대비 다단화에서 불리하다. 하지만 전용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성능 강화로 아쉬움을 최소화시킨다. 먼저 변속기의 토크 대응력은 61kg.m 수준이다. 그란투리스모나 그란카브리오의 엔진 토크(53.0kg.m)를 넉넉하게 받아낼 수 있는 사양이다. 여기에 MC 오토 시프트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다운시프트를 0.1초 만에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더블 디클러치(Double-Declutching) 기능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토크컨버터를 사용하는 자동변속기에서 주로 언급되는 레브 매칭(Rev-Matching) 기능은 기어 단수를 내림과 동시에 엔진 회전수를 올려주는 기능을 말한다. 레브 매칭과 달리 더블 디클러치는 실제로 동력을 끊은 뒤 엔진 회전수를 올림과 동시에 변속을 하고 다시 동력을 연결한다. 그만큼 끊고 맺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반 자동변속기에서 느낄 수 없는 박력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그란카브리오 스포트와 달려보기로 한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자연흡기 엔진만의 빠른 반응을 시작으로 꾸준한 가속감이 만들어진다. 터보차저 엔진의 대중화로 저회전 영역에서 한 번에 쏟아지는 토크감에 익숙해진 소비자라면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은 가속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2톤이 넘는 무게와 제한적인 기어비를 갖는 변속기 역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배기 사운드와 터보 엔진은 흉내 낼 수 없는 빠른 반응 등으로 체감 성능을 높여준다.
코너에서 적극적으로 주행해도 후륜이 미끄러질 부담이 크지 않다. 후륜의 접지력이 좋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티어링 휠을 많이 돌려도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여기에 휠베이스가 2.9 m를 넘어서는 만큼 후륜이 적극적으로 뒤따라오면서도 안정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인 스티어 특성은 언더스티어. 그렇다고 오버스티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높은 출력과 토크 덕분에 가속 페달만 깊숙하게 밟으면 언제든지 리어 휠이 미끄러진다.
서스펜션은 전륜과 후륜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더블 위시본 구조이며, 스포트 스카이훅(Sport Skyhook)이란 이름의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이 갖춰진다. 이 서스펜션에 의한 차량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팀 전인호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스펜션은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과격한 요철 처리에 있어서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세한 노면을 모두 읽어내어 상쇄 없이 운전자에게 진동을 전달한다.
스포츠 주행 페이스로 코너에 뛰어들게 되면, 가장 먼저 뒤쪽 서스펜션의 기울어짐이 커진다. 이후 코너의 정점에 들어서야 앞 타이어가 제대로 접지력을 끌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 모델들의 일반적인 핸들링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 그란카브리오는 앞 타이어의 반응이 대체로 늦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운전자의 입장에서 앞 타이어의 반응이 빠를수록 주행 궤적의 예측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성향은 마세라티가 선보이는 대부분의 모델들이 취하는 셋업이다.
자세 제어장치는 차량의 회전보다는 뒤쪽 타이어 접지력 확보를 우선시한다. 가속 페달을 밟아서 미끄러지는 상황을 항상 예의 주시하며 즉각, 제어한다.
단, 횡 가속도가 강하게 발생하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는 스포츠 주행일지라도 가속 시점 외에는 자세제어장치가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 ESP를 완전히 해제하면 LSD와 엔진 출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타이어는 피렐리 P-ZERO로, 전륜 245mm, 후륜 285mm 너비를 사용한다. 그란카브리오와 궁합은 꽤나 좋았다. 속도가 높은 영역에서도 코너를 돌 때 운전자에게 불안한 감각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엔진의 출력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타이어의 접지력도 수준급이었다. 사실 피렐리 타이어가 만족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 팀 패널들은 노면 온도와 타이어의 성능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한 만장일치 최고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제동 성능이다. 그란카브리오의 시속 100km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84 m. 마세라티의 제원상 제동거리가 35 m이니 이보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 것. 최초 테스트(냉간)시 36 m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테스트에서 34 m 대를 끊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성능적인 부분 이외에 내구성능 역시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만 올려놓아도 엄청난 제동성능이 왈칵 쏟아진다거나 하진 않는다. 일반 승용차보다는 소폭 무거운 페달 감각에 초반부터 큰 힘이 발생되는 설정은 아니다. 밟으면 밟는 만큼 큰 힘이 발휘되는 성격인 만큼 작동하는 성향에 따라 부드럽거나 때론 강력한 제동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참고로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륜 6피스톤, 후론 4피스톤 캘리퍼를 사용한다. 브레이크 디스크의 경우 주철과 알루미늄을 조합해 만들었는데 일반적인 주철 디스크와 비교해 최대 20%의 경량화가 이뤄져 있다.
물론 그란카브리오에도 단점은 있다. 먼저 경량화가 아쉽다. 차체 무게를 측정한 결과 2,079 kg으로 나타났다. 대형 럭셔리 오픈카라지만 몸무게를 덜어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전후 배분 49:51의 무게 비율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칭찬할만하다.
무게에서 불리한 만큼 연비 역시 제한적이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면 약 12km/L,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달릴 때도 약 10km/L의 연비를 나타냈다. 물론 가속페달을 밟으면 연비는 매우 빠르게 떨어진다. 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정체구간인 평균 속도 15km/h에서의 연비는 3km/L 내외를 보이는데 그쳤다. 대배기량 엔진이니 어쩔 수 없다.
최신 기능과 조금 동떨어진 구성을 갖춘 점 역시 단점 중 하나다. 편의장비는 크루즈 컨트롤과 오토 에어컨, 후방 카메라 정도랄까? 최신 액티브 세이프티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물론 그란카브리오와 같은 차량에는 이러한 단점들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차량이 갖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란 카브리오를 바라보자. 멋진 배기 사운드를 가졌지만 이렇다 할 기능도 없고 연비도 나쁘다. 그런데 가격은 2억 4천만 원이나 한다. 그렇다면 이 차는 구입할 가치조차 없는 비싼 차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 기준 자체가 뒤틀어지는 것이 바로 럭셔리 브랜드의 자동차다. 일반적인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브랜드를 소유하기 위해 그들은 이러한 차량을 구입한다. 차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시동을 끄고 내릴 때까지 자신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사치품이다.
자동차가 사치품일 때 갖는 의미는 ‘남들과 다르고 나만을 위한 무엇인가’를 충족시켜줄 때다. 롤스로이스 팬텀이나 벤틀리 뮬산느를 구입하는(럭셔리 브랜드) 소비자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분명 다르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동급 경쟁 모델 중 최고라는 점이 중요하다. 밸류, 기능, 안전, 고급스러움 등 모든 부분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는 이러한 부분은 당연하게 넘어가고 자신을 위한 특별한 무엇인가에 더 집중한다. 모기조차 접근할 수 없는 고산지대에서 기른 어린 양의 가죽을 사용한다던가, 2천만 원이 넘는 모니터가 달린 피크닉 테이블을 옵션으로 추가한다는 등이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트 역시 사치품으로써 가치를 갖는다. 남들과 다른 오픈카를 소유한다는 것. 페라리 엔진을 느낄 수 있는 차라는 것, 마세라티라는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자동차를 평가하는 입장에서 그란카브리오 스포트를 바라보자. 국내에서 판매되는 오픈탑을 갖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는 벤틀리 컨티넨탈 GTC, 애스턴마틴 뱅퀴시 볼란테 & DB9 볼란테, 페라리 캘리포니아 T,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정도다.
먼저 벤틀리 컨티넨탈은 3세대로 모델 체인지가 코앞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 모델을 구입할 이유가 없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는 2004년 등장한 모델로 해외에서는 단종됐으며, 국내에서 다른 대안을 찾으려면 4억 원에 육박하는 뱅퀴시 볼란테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페라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국내의 이러한 상황의 선택지를 받게 된다면 그란카브리오의 평가 점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종 평가 때 우리 팀은 그란카브리오에 별 4점을 부여했다. 일반 차량들의 가성비로 본다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태생, 그리고 경쟁 모델과 비교한다면 의외로 가성비가 좋은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2억 4천만 원이란 가격을 바탕으로 ‘그 돈으로 포르쉐 911을 사지’라고 말하는, 혹은 댓글을 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자금을 차에 쓸 수 있는 소비자라면 이미 포르쉐와 마세라티의 용도를 잘 알고 있다. 수십만 원짜리 명품 운동화를 구입하는 것, 유사 가격대의 명품 구두를 구입할 때의 용도가 다르다는 것을 실제 수요층은 안다는 얘기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무슨 자동차에 금칠이라도 했나?’ 아니면 ‘그 돈이면 다른 걸 하지 그런 차를 사?’
고가의 자동차들. 이런 차량들을 구입한 후 시트에 앉아 시동만 걸어도 수천만 원의 감가가 발생한다. 또, 이런 차량들의 상당수가 출퇴근 용도로 이용되지 않기도 한다. 약 1달간 차고 속에 보관됐다가 한번 드라이빙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차량들은 ‘자동차’라기보다 ‘명품’, ‘사치품’으로 분류된다. 이번에는 그런 사치스러운 자동차에 대한 시각으로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GranCabrio)에 접근해보고자 한다.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2억 4천만 원짜리 오픈카다. 장르를 따지자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Grand Tourer)다. 스포츠카와는 다르다. 스포츠카는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달릴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는 어떻게 하면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두 장르 간 공통점은 ‘고성능’이 전부이며, 나머지 지향점은 다르다.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 장르에 속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긴 역사를 통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브랜드 밸류, 전통을 기반으로 한 클래식함, 존재 자체만으로 차별화되는 디자인, 고성능 자연흡기 엔진 등이 꼽힌다. 아, 일반인들은 범접할 수 없는 높은 가격대도 포함된다.
사실 위와 같은 조건을 만족시키는 차량은 손에 꼽힌다. 벤틀리 컨티넨탈 GT, 애스턴마틴 밴티지 혹은 DB11, 그리고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와 그란카브리오가 있다. 이들 모두 호텔 로비에 유유히 진입해 가장 멋진 모습으로 하차할 수 있는 차들이다. 또, 일반적인 차의 존재 목적과 다르게 운전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두고 레저의 일종으로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는 차량이기도 하다.
그란카브리오는 이름 그대로 그란투리스모의 오픈형 모델이다. 첫인상부터 일반적인 자동차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 눈에 들어온다. 마세라티는 그란카브리오 디자인에 지중해의 바람과 태양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문구에 매료되는 소비자들도 있을 것이다.
디자인을 살펴보자. 마세라티 특유의 강인한 그릴과 헤드램프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매섭고 날카로운 느낌이다. 실제로 보면 차량의 전면부가 매우 낮게 위치하기 때문에 차량의 헤드램프와 눈높이를 맞추려면 낮은 자세를 취해야 한다.
측면부에서는 쿠페와 오픈카의 멋 모두를 느낄 수 있다. 탑이 닫혀 있을 때는 대형 쿠페의 모습이다. 그란카브리오는 4,880mm의 길이를 가지며, 휠베이스만 2,945mm에 이른다. 벤틀리 컨티넨탈 GT(4,806mm, 2,747mm)보다도 크다. 여기에 앞부분이 길고 뒷부분이 짧아 클래식한 쿠페의 모습도 느낄 수 있다.
탑을 열면 매끄러운 바디를 가진 오픈카(컨버터블)로 변한다. 실내를 감싼 특유의 디자인은 고급 요트를 떠올리게 해준다. 참고로 전동 접이식 루프를 갖춘 컨버터블인 만큼 쿠페 모델보다 약 100kg 가량 무겁다. 탑이 열리고 닫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28초.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카브리올레가 20초, 벤틀리 컨티넨탈 GTC가 23초이니 다소 느린 편이다. 참고로 이 탑은 시속 30km 이하의 속도에서 작동시킬 수 있다. 최근 신차들이 40~50km/h의 속도에서도 작동하도록 개발되는 만큼 향후 작동 속도를 높여주면 좋겠다.
후면부에는 삼각형 형태의 리어램프가 자리하는데, 후미등에 사용된 LED만 96개에 이른다. 고성능을 상징하는 머플러와 디퓨저 디자인을 갖췄다. 트렁크는 충분치 않다. 탑의 수납공간을 위해 공간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용 캐리어 수납은 어렵고, 가방 정도만 넣을 수준이다.
하부를 살펴보자. 고성능 모델인 만큼 언더 패널이 넓게 자리한다. 여기에 차량 축을 중심으로 전후에 두꺼운 막대를 넣어 차체 강성을 높이고자 한 흔적도 살펴볼 수 있다. 전륜과 후륜 모두 더블 위시본 형식의 서스펜션이 장착되는데 상당히 크고 튼실하게 생겼다.
인테리어는 디테일이 강조된 모습이다. 대충 훑어보면 붉은색 가죽과 카본 장식 정도가 눈에 들어오는 정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고급 가죽이 시트는 물론, 도어 전체를 감싸고 있다. 심지어 선바이저에도 적용됐으며 박음질까지 이뤄졌다. 일반적으로 시트 뒷부분은 플라스틱 소재가 덮고 있는 것이 보통. 하지만 그란카브리오에는 이 부분마저 가죽으로 덮어놨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것은 아날로그 시계. 자세히 들어보면 기계가 째깍 째깍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소리까지 들려준다.
실내 곳곳에 사용된 가죽은 이탈리아의 유명 가구 회사 폴트로나 프라우(Poltrona Frau)의 것이다. 기블리나 콰트로포르테의 가죽이 조금 뻣뻣했던 느낌이라면 이쪽은 보다 부드럽고 푹신하다. 우리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나파 가죽과 비교하자면 조금 더 두껍고 질긴듯한 감각이다.
디테일적으로 놀라운 완성도를 보이지만 구성적인 측면으로 바라보면 아쉬움이 나올 수 있겠다. 그 아쉬움은 센터페시아에서 나온다. 먼저 디스플레이는 정전식도 아닌 감압식이다. 때문에 난반사도 심하다. 게다가 사이즈도 작다. 그 아래에 놓인 버튼들은 최근 디자인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손톱보다도 작은 버튼들도 실용성과 거리가 멀다. 이상하리만큼 집요하게 디테일을 중시하면서도 엉뚱한 곳에서 허술한 부분이 나온다는 점, 이탈리아나 프랑스 차의 매력 아닌 매력이다.
시트는 편하다. 그랜드 투어러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스포츠카처럼 긴장감을 높이는 성격도 아니다. 하지만 잘 지지해준다. 시트 설정값은 3개의 메모리에 저장할 수 있다.
재미있는 부분은 헤드레스트가 둥글다는 것이다. 머리가 닿는 부분도 둥글게 튀어나와있다. 시각적인 디자인은 멋지지만 편안함과 안전을 생각해서 헤드레스트 디자인을 개선해주면 좋겠다.
뒷좌석 공간은 성인 남성이 앉기에 제한이 따른다. 특히 탑을 닫았을 때 헤드룸에 한계가 있다. 반면 레그룸에는 제법 여유가 있다. 탑을 열면 헤드룸의 제약이 사라지는 만큼 승객을 태운 경우 탑을 오픈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도어를 여는 방법이 독특하다. 도어 핸들이 고정된 상태로 안쪽에 위치한 버튼을 눌러 문을 여는 방식이다. 그리고 시동을 걸려면 키를 꼽고 돌려야 한다.
뭔가 시동을 거는 방식이 구식이라고 느껴질 찰나. 순간 우렁찬 배기음과 함께 엔진이 깨어난다. 냉간 시동 때 꽤 큰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 이것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존재감?
그란카브리오에는 V8 4.7리터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다. 그렇다 자연흡기 엔진이다. 현재와 같은 다운사이징 트렌드의 영향은 전혀 받지 않고 가진 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그런 엔진이다. 이 엔진은 페라리 공장에서 손수 제작되는 코드네임 F136 엔진이다. 페라리는 F430 몬자, 알파로메오 역시 동일한 엔진을 사용한 바 있다. 초창기에는 4.2리터 배기량에 390마력을 발휘했지만 현재는 배기량이 4.7리터까지 커지고 출력도 460마력까지 높아졌다. 그란카브리오는 460마력 사양의 엔진을 사용한다. 최대토크는 53.0kg.m.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상당히 높은 토크다. 배기량 대비 효율성이 높다.
8기통 대배기량 엔진이기에 무게에서 불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히 마세라티는 아직 경량화에 본격 투자를 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엔진 무게는 175kg에 불과하다. BMW의 직렬 6기통 터보 엔진인 N55 엔진이 177kg, 과거 아우디가 사용했던 8기통 4.2리터 엔진이 195kg의 무게를 가졌으니 상대적으로 얼마나 가벼운 엔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우면서 아쉬운 부분은 한때 페라리가 사용했던 8기통 자연흡기 엔진이지만 이제 페라리도 12기통 엔진을 제외하고 모두 터보 엔진으로 바꿨다는 것. 페라리의 마지막 8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마세라티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이들 사운드는 우렁차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아이들링에서 49.5 dBA 수준을 보였다. 정말 시끄러운 디젤 엔진을 가진 차들도 이보다 조용하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얼마나 더 사운드가 커지는지 확인해봤다. 스포츠 버튼을 눌러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란카브리오는 아이들링이 아닌 주행 중, 엔진 회전수가 2,500 rpm 이상으로 상승할 때부터 우렁한 사운드를 뿜어낸다.
두꺼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페달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의 조작감이 매우 묵직한 느낌이다. 이렇게 묵직한 페달은 보다 세밀한 조작이 가능하며 감각적으로도 보다 스포티한 면모를 키운다. 물론 여성 운전자들이 버거워할 정도는 아니다.
스티어링 휠 사이즈는 다소 크다. 여기에서도 클래식한 감각이 느껴지는데, 차량 성격상 조금 더 작아도 좋을 듯싶다. 대신 스티어링 휠이 크니 차량에서 전달되는 감각이 한층 여유롭게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상외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것은 편안함과 차체 강성이었다. 먼저 운전하기 편하다. 차량에서 신경질적인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긋나긋하다. 여기에 승차감까지 좋다고 하면 믿을까? 2.9 m가 넘는 휠베이스와 묵직한 무게감에 서스펜션 셋업도 잘 돼있어 분명 단단하지만 승차감이 좋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조금은 큰 스티어링 휠에서 전달되는 피드백도 신경질적이지 않아 운전하기 편하다. 이러한 설정에 반응이 빠른 자연흡기 엔진, 460마력이라는 넉넉한 출력까지 더해지면서 장거리 운전이 여유롭고 편하다. 이것이 바로 그랜드 투어러다.
차체 강성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오픈형 모델은 강성이 부족한 것은 물론 실내 여기저기서 잡소리가 많이 들린다. 하지만 그란카브리오는 이러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일반적인 주행 상황에서 강성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빠른 주행을 진행하다 보면 부분적으로 아쉬움이 발생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 정도 크기의 오픈형 모델에서 이 정도 강성을 갖는다는 점에 놀랐다.
물론 이 차를 나들이용으로만 쓸 수는 없다. 이제 동력 성능을 확인해 보자. 우선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참고로 그란카브리오는 MC 스타트 스트레티지(MC Start Strategy)라는 이름의 런치 컨트롤 모드를 지원한다. 측정 결과는 5.29초. 제원상 그란카브리오 스포트의 가속시간은 5.0초였다. 실제로는 그에 조금 못 미치는 결과였지만 환경이란 변수가 있으니 수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시속 100km를 2단에서 도달한다. 그럼에도 엔진 회전 영역에서 여유가 있다. 그대로 계속 달리면 120km 부근에서 3단으로 넘어간다. 그란카브리오는 6단 변속기를 사용하고 있어 기어비가 넓은 편이다.
변속기는 ZF 6HP26 6단 자동변속기다. 최근에 출시되는 8~9단 변속기 대비 다단화에서 불리하다. 하지만 전용 프로그램과 하드웨어 성능 강화로 아쉬움을 최소화시킨다. 먼저 변속기의 토크 대응력은 61kg.m 수준이다. 그란투리스모나 그란카브리오의 엔진 토크(53.0kg.m)를 넉넉하게 받아낼 수 있는 사양이다. 여기에 MC 오토 시프트라는 소프트웨어를 통해 다운시프트를 0.1초 만에 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더블 디클러치(Double-Declutching) 기능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토크컨버터를 사용하는 자동변속기에서 주로 언급되는 레브 매칭(Rev-Matching) 기능은 기어 단수를 내림과 동시에 엔진 회전수를 올려주는 기능을 말한다. 레브 매칭과 달리 더블 디클러치는 실제로 동력을 끊은 뒤 엔진 회전수를 올림과 동시에 변속을 하고 다시 동력을 연결한다. 그만큼 끊고 맺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일반 자동변속기에서 느낄 수 없는 박력 있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그란카브리오 스포트와 달려보기로 한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자연흡기 엔진만의 빠른 반응을 시작으로 꾸준한 가속감이 만들어진다. 터보차저 엔진의 대중화로 저회전 영역에서 한 번에 쏟아지는 토크감에 익숙해진 소비자라면 생각보다 강력하지 않은 가속감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2톤이 넘는 무게와 제한적인 기어비를 갖는 변속기 역시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감각적인 배기 사운드와 터보 엔진은 흉내 낼 수 없는 빠른 반응 등으로 체감 성능을 높여준다.
코너에서 적극적으로 주행해도 후륜이 미끄러질 부담이 크지 않다. 후륜의 접지력이 좋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티어링 휠을 많이 돌려도 불안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여기에 휠베이스가 2.9 m를 넘어서는 만큼 후륜이 적극적으로 뒤따라오면서도 안정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인 스티어 특성은 언더스티어. 그렇다고 오버스티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높은 출력과 토크 덕분에 가속 페달만 깊숙하게 밟으면 언제든지 리어 휠이 미끄러진다.
서스펜션은 전륜과 후륜 모두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더블 위시본 구조이며, 스포트 스카이훅(Sport Skyhook)이란 이름의 액티브 서스펜션 시스템이 갖춰진다. 이 서스펜션에 의한 차량의 움직임에 대해 우리 팀 전인호 기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서스펜션은 큰 충격이 발생할 수 있는 과격한 요철 처리에 있어서 약점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세세한 노면을 모두 읽어내어 상쇄 없이 운전자에게 진동을 전달한다.
스포츠 주행 페이스로 코너에 뛰어들게 되면, 가장 먼저 뒤쪽 서스펜션의 기울어짐이 커진다. 이후 코너의 정점에 들어서야 앞 타이어가 제대로 접지력을 끌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포츠 모델들의 일반적인 핸들링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 그란카브리오는 앞 타이어의 반응이 대체로 늦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운전자의 입장에서 앞 타이어의 반응이 빠를수록 주행 궤적의 예측에 도움이 된다. 이러한 성향은 마세라티가 선보이는 대부분의 모델들이 취하는 셋업이다.
자세 제어장치는 차량의 회전보다는 뒤쪽 타이어 접지력 확보를 우선시한다. 가속 페달을 밟아서 미끄러지는 상황을 항상 예의 주시하며 즉각, 제어한다.
단, 횡 가속도가 강하게 발생하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는 스포츠 주행일지라도 가속 시점 외에는 자세제어장치가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 ESP를 완전히 해제하면 LSD와 엔진 출력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타이어는 피렐리 P-ZERO로, 전륜 245mm, 후륜 285mm 너비를 사용한다. 그란카브리오와 궁합은 꽤나 좋았다. 속도가 높은 영역에서도 코너를 돌 때 운전자에게 불안한 감각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엔진의 출력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타이어의 접지력도 수준급이었다. 사실 피렐리 타이어가 만족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 팀 패널들은 노면 온도와 타이어의 성능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또한 만장일치 최고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제동 성능이다. 그란카브리오의 시속 100km 속도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84 m. 마세라티의 제원상 제동거리가 35 m이니 이보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 것. 최초 테스트(냉간)시 36 m를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모든 테스트에서 34 m 대를 끊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성능적인 부분 이외에 내구성능 역시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그렇다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만 올려놓아도 엄청난 제동성능이 왈칵 쏟아진다거나 하진 않는다. 일반 승용차보다는 소폭 무거운 페달 감각에 초반부터 큰 힘이 발생되는 설정은 아니다. 밟으면 밟는 만큼 큰 힘이 발휘되는 성격인 만큼 작동하는 성향에 따라 부드럽거나 때론 강력한 제동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참고로 브레이크 시스템은 전륜 6피스톤, 후론 4피스톤 캘리퍼를 사용한다. 브레이크 디스크의 경우 주철과 알루미늄을 조합해 만들었는데 일반적인 주철 디스크와 비교해 최대 20%의 경량화가 이뤄져 있다.
물론 그란카브리오에도 단점은 있다. 먼저 경량화가 아쉽다. 차체 무게를 측정한 결과 2,079 kg으로 나타났다. 대형 럭셔리 오픈카라지만 몸무게를 덜어낼 필요가 있다. 그래도 전후 배분 49:51의 무게 비율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칭찬할만하다.
무게에서 불리한 만큼 연비 역시 제한적이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면 약 12km/L,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달릴 때도 약 10km/L의 연비를 나타냈다. 물론 가속페달을 밟으면 연비는 매우 빠르게 떨어진다. 또,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도심 정체구간인 평균 속도 15km/h에서의 연비는 3km/L 내외를 보이는데 그쳤다. 대배기량 엔진이니 어쩔 수 없다.
최신 기능과 조금 동떨어진 구성을 갖춘 점 역시 단점 중 하나다. 편의장비는 크루즈 컨트롤과 오토 에어컨, 후방 카메라 정도랄까? 최신 액티브 세이프티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
물론 그란카브리오와 같은 차량에는 이러한 단점들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차량이 갖는 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그란 카브리오를 바라보자. 멋진 배기 사운드를 가졌지만 이렇다 할 기능도 없고 연비도 나쁘다. 그런데 가격은 2억 4천만 원이나 한다. 그렇다면 이 차는 구입할 가치조차 없는 비싼 차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 기준 자체가 뒤틀어지는 것이 바로 럭셔리 브랜드의 자동차다. 일반적인 사람은 접근할 수 없는 가격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브랜드를 소유하기 위해 그들은 이러한 차량을 구입한다. 차 문을 열고 운전대를 잡을 때부터 시동을 끄고 내릴 때까지 자신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선택하는 사치품이다.
자동차가 사치품일 때 갖는 의미는 ‘남들과 다르고 나만을 위한 무엇인가’를 충족시켜줄 때다. 롤스로이스 팬텀이나 벤틀리 뮬산느를 구입하는(럭셔리 브랜드) 소비자와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은 분명 다르다. 프리미엄 브랜드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동급 경쟁 모델 중 최고라는 점이 중요하다. 밸류, 기능, 안전, 고급스러움 등 모든 부분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지만 럭셔리 브랜드 소비자는 이러한 부분은 당연하게 넘어가고 자신을 위한 특별한 무엇인가에 더 집중한다. 모기조차 접근할 수 없는 고산지대에서 기른 어린 양의 가죽을 사용한다던가, 2천만 원이 넘는 모니터가 달린 피크닉 테이블을 옵션으로 추가한다는 등이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트 역시 사치품으로써 가치를 갖는다. 남들과 다른 오픈카를 소유한다는 것. 페라리 엔진을 느낄 수 있는 차라는 것, 마세라티라는 브랜드를 소유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다시 자동차를 평가하는 입장에서 그란카브리오 스포트를 바라보자. 국내에서 판매되는 오픈탑을 갖춘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는 벤틀리 컨티넨탈 GTC, 애스턴마틴 뱅퀴시 볼란테 & DB9 볼란테, 페라리 캘리포니아 T,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정도다.
먼저 벤틀리 컨티넨탈은 3세대로 모델 체인지가 코앞이다. 현재 시점에서 과거 모델을 구입할 이유가 없다. 애스턴마틴 DB9 볼란테는 2004년 등장한 모델로 해외에서는 단종됐으며, 국내에서 다른 대안을 찾으려면 4억 원에 육박하는 뱅퀴시 볼란테 모델을 선택해야 한다. 물론 페라리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지만 국내의 이러한 상황의 선택지를 받게 된다면 그란카브리오의 평가 점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최종 평가 때 우리 팀은 그란카브리오에 별 4점을 부여했다. 일반 차량들의 가성비로 본다면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야 하겠지만 태생, 그리고 경쟁 모델과 비교한다면 의외로 가성비가 좋은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2억 4천만 원이란 가격을 바탕으로 ‘그 돈으로 포르쉐 911을 사지’라고 말하는, 혹은 댓글을 다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자금을 차에 쓸 수 있는 소비자라면 이미 포르쉐와 마세라티의 용도를 잘 알고 있다. 수십만 원짜리 명품 운동화를 구입하는 것, 유사 가격대의 명품 구두를 구입할 때의 용도가 다르다는 것을 실제 수요층은 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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