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르노, 클리오 1.5 d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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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르노 브랜드가 들어왔다. 르노삼성 차에 엠블럼만 바꿔 단 르노가 아닌 진짜 르노 자동차 말이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트위지를 통해 국내에 들어왔지만 사실 퍼스널 모빌리티 개념의 생소한 이동 수단이기에 완벽한 자동차로 분류하기엔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다. 때문에 클리오를 첫 르노차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하다.
르노 브랜드. 이 브랜드를 ‘괴짜’라고 표현하고 싶다. 먼저 르노 그룹(르노-닛산-미쓰비시)은 세계에서 3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 GM, 포드, 현대 그룹도 이들보다 규모가 작다.
큰 규모를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지배력이 있다는 뜻이다. 원한다면 자동차 트렌드를 이끌 힘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르노가 주력하는 자동차 시장은 컴팩트급이다. 클리오, 메간이 대표적이다. 소형차가 주특기인 회사(?)를 국내 소비자들은 하찮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르노의 괴짜 본성은 그들의 기술력에 있다. 포뮬러 1, 포뮬러 2, 포뮬러 3, 포뮬러 E, 르망 24, WRC, 파이크스 피크, 각종 투어링카 레이싱 등 모터스포츠마다 안 나간 분야가 없다. 포뮬러 르노, 클리오 컵, 클리오 랠리 등 자체 원메이크 경기도 많이 개최한다.
하지만 이 노하우를 양산차에 적용시킬 생각은 없나 보다. F1에서 우승을 하건 포뮬러 E를 휩쓸건 그들은 경제적인 소형차만 만들어 판다. 그러다가 갑자기 F1 엔진을 이식한 에스파스를 내놓기도 하는 게 르노다. F1 엔진을 이식한 스타렉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르노는 ‘모터스포츠 덕후지만 소형차를 좋아하는 공룡 회사’다. 그리고 ‘소형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리오가 바로 르노가 주력하는 소형차이며, 유럽에서 그야말로 대박 상품이기 때문이다.
유럽 시장은 소형차 중심으로 이뤄진다. 가장 잘 팔린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클리오 이외에 폭스바겐 폴로, 포드 피에스타, 푸조 203, DS(시트로엥) C3, 오펠 코르사, 토요타 야리스, 현대 i20 등이 이 시장에서 싸운다. 하나같이 기라성 같은 모델들이다.
이런 모델들을 제치고 동급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모델이 바로 클리오다.
위와 같이 2012년 4세대 모델이 등장한 이후 동급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델로 자리했다.
단순히 B 세그먼트 안에서만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이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을 통틀어서 TOP 3안에 들어간다. 유럽에서 폭스바겐 골프의 위치는 미국에서 포드 F-150과 같다. 결국 2위 싸움이 치열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클리오가 가장 잘 팔리는 것. 이미 전 세계에서 1400만 대 이상 판매됐다.
배경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클리오를 파악해보자.
디자인은 익숙하다. 국내에서 QM3로 판매된 캡처(Capture)가 클리오의 SUV형 모델이기 때문이다. 클리오는 여기에 젊은 감각을 더했다. 차체에 비해 큰 눈망울을 갖고 있는 헤드램프, 간결한 그릴 디자인과 멋을 낸 범퍼가 시선을 끈다. 소형차임에도 LED 라이트를 갖췄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분이지만 엔진 후드도 가스 리프트식이다. 사치스러울 정도(?)이다. 치열한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클리오는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썼다.
측면부의 로커패널 디자인이 멋지다. 프랑스 차답게 휠 디자인도 좋다. 어설픈 애프터마켓 휠은 필요치 않다. 뒷좌석 도어 핸들이 숨겨진 형태이기에 마치 3도어 모델처럼 보인다.
휠베이스도 인상적이다. 첫눈에도 전후 오버행이 매우 짧아 보인다.
표의 내용처럼 국내에서 팔리는 소형 차 중 가장 긴 휠베이스를 갖고 있다. 휠베이스는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후면부도 꽤나 스포티하다. 치켜 올라간 리어램프와 입체적인 테일게이트, 고성능 모델을 연상시키는 범퍼 덕분이다. 다만 어설프게 숨겨진 머플러 디자인이 아쉽다. 반면 3D 형태의 디자인을 갖고 있는 LED 리어램프의 구성은 좋다.
실내는 QM3 덕분에 익숙한 느낌이다. 익숙한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센터페시아도 그렇다. 그보다 의외인 것은 소재의 고급스러움이다. 사실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보면 싸구려 플라스틱 같다. 하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고급스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다. 적당히 쿠션감 있는 소재의 느낌은 여러 패널에 쓰인다. 가죽 질감도 수준급이다. 소형차에서 이 정도 품질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 바디 색상에 맞춰 실내에도 컬러를 더해 개성을 강조했다.
국내 시장을 위해 T맵 내비게이션도 갖췄다.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는 만큼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도 있다. 기능이 제한적인 애플 카플레이보다 미러링 기능이 더 좋다.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트는 직물을 기본으로 일부에 가죽을 썼다. 직물 감각이 꽤나 좋다. 소형차라지만 그리 저렴하게 생각되는 부분들이 없다. 열선도 있다. 물론 불만도 있다. 등받이 각도를 시트 안쪽 다이얼로 조절한다는 점이다. 손을 반대로 꾸겨 넣어 다이얼을 돌려면 손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폭스바겐도 이런 구성을 즐겨 쓴다. 세밀한 시트 조절이 장점이지만 분명 불편하다.
뒷좌석 공간은 딱 소형차 수준이다. 아무래도 국산차들이 공간을 잘 뽑기에 엑센트 대비 조금 작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급 수입산 소형차와 비교하면 꽤나 넓다. 성인이 탑승해도 불편하지 않았다.
트렁크 공간도 소형차의 틀 안에 있다. 또 뒷좌석 폴딩 기능을 활용해 공간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바닥 안쪽에 추가적인 수납공간도 있어 활용성이 아쉽지 않다.
테스트를 위해 클리오의 도어를 연다. 묵직하다. 다시 닫는다. ‘텅’하며 닫힌다. 다시 열어본다. ‘이거 소형차 맞나?’ 소형차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가벼운 깡통 소리가 아니다. 이 정도 감각은 국산 중형급에서도 느끼기 어렵다. 준대형차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처음 인테리어의 마감에서 언급했지만 클리오는 생각 이상으로 고급스럽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디젤 특유의 음색이 전해진다. 르노삼성 디젤 모델들이 내던 그 음색이다. 실내 정숙성은 디젤로는 표준적인 수준. 소형차인 만큼 크게 아쉽지는 않다. 소음 수치로 보자면 우리 팀이 테스트한 폭스바겐 폴로 1.6 TDI와 유사했다. 수치는 45 dBA 수준. 다만 차가 달리면 약간의 풍절음이 생긴다. 아무래도 차체 대비 윈드실드(앞유리) 면적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61 dBA 수준이라면 소형차로는 타협할 만하다. 대략적으로 중형급 세단들이 60 dBA 내외의 소음을 보이기 때문.
가속감이 경쾌하다. 1.5리터 엔진이 내는 출력은 90마력이다. 최대토크 22.4kg.m를 낼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한 수치다. 하지만 수치 대비 경쾌한 느낌이 운전을 즐겁게 한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발진 가속 성능은 0-100km/h 기준 10~11초 내외?
실제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클리오는 12.16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체감보다 느린 기록이었다. 참고로 이와 같은 성능은 볼보 V40 D2과 유사하다. 하지만 큰 불만은 없다. 체감으로 답답함이 없기 때문.
참고로 저 rpm부터 적극 활성화되는 토크가 일상에서 답답함 없는 느낌을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클리오는 1.5 디젤 엔진을 바탕으로 달린다. 90마력의 출력, 하지만 구동 손실이 거의 없었다. 듀얼 클러치와 매칭 되었다고 해도 1마력 내외의 손실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 인상적이다. 최대 토크에서도 손실이 없었다. 0.2Kg.m의 수치라면 사실상 오차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프에서 나타나 듯 클리오의 엔진은 실용구간, 저 rpm에서 조금 더 높은 효율을 낸다. 저배기량 디젤엔진 특성상 고 rpm으로 갈수록 토크가 떨어지지만 대신 3500 rpm부터 연료 차단 직전까지 지속되는 마력이 꾸준한 가속을 이어가게 되는 특성을 갖는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스펜션의 움직임이다. 조금은 단단한 느낌. 전형적인 유럽차 느낌을 전하면서도 승차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코너링 때 차체를 버텨내는 능력도 좋았지만 다양한 도로에서의 탄력성이 클리오의 경쟁력을 크게 높여주고 있다. 최근에도 프랑스 해치백을 테스트한 바 있는데 서스펜션이 전하는 만족감이 좋았다. 하지만 클리오의 것은 그 차를 능가했다.
승차감은 타이어, 서스펜션, 차체, 시트 등 여러 가지 부분에 의해 결정된다. 클리오는 단단한 성향을 가졌지만 승차감 훼손이 없다. 시트도 장거리 운행에서 편했다. 의외의 고급스러움도 좋았지만 성능과 승차감 사이의 절충선이었다. 지금 현대차는 서스펜션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자사가 추구하던 전통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유럽차 같은 성능 두 가지를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노하우 부족 때문인지 이상적인 조율 값을 찾지 못한 눈치다. 폭스바겐 외에도 르노, 푸조 모델들을 벤치마크해보라 조언하고 싶다.
클리오를 테스트하며 우리 팀의 모든 패널은 핸들링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나 날카로운 스티어링 시스템의 조율이 인상적이다. 통상 스티어링 휠을 쥐었을 때 (직선을 달리기 위한) 센터 영역에 있을 때는 약간의 여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클리오는 미세한 틈도 없이 바로바로 차체의 움직임으로 연결한다. 그렇다고 운전자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핸들링이 좋은 것은 물론, 코너링에서의 미세한 보정마저 쉽사리 끝낸다. 말 그대로 운전이 재미있다. 이번 클리오를 테스트하며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쉐보레의 아베오 RS다. 140마력의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은 아베오의 상급 트림으로 달리기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내부 업무용 차로 1년 정도 이용한 적이 있어 익숙한 모델이다. 물론 현대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등도 비교가 될 수 있겠지만 엔진 출력을 제외하고 차의 완성도나 주행 성능으로 비교하기엔 격차가 크다.
아베오 RS는 핸들링이 좋다. 어지간한 상급 모델들을 그냥 눌러버릴 기세다. 클리오는 그런 아베오 RS의 핸들링을 쉽게 눌러버린다. 그 차이가 큰 것이 아니라 해도 조금 더 민첩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운전자를 설레게 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의 차체 기울기나 각종 상황에서 보여지는 여유로움도 좋다.
다만 타이어 성능이 아쉽다. 코너링 때 나타나는 운동 특성은 언더스티어를 바탕으로 한다. 아무래도 타이어가 클리오의 모든 성능을 감당하기에 벅차다. 타이어는 넥센의 AU5라는 제품으로 4계절 타이어다. 국내 사양을 위한 것으로 사료되는데 클리오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타이어가 만드는 핸들링 및 기본 성능이 다소 밋밋하기 때문. 제조사 차원에서 본다면 넥센으로부터 타이어를 받아오는 것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겠지만 차의 본질을 제대로 살리려면 다른 제품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제동력은 어떨까? 시속 100km로 달리는 도중 최대한의 감속을 진행하면 42.6m 내외의 거리에서 멈춘다. 거리로 보면 평이한 수준이다. 사실 어느 정도 빨리 달릴 때, 또한 일상에서의 다양한 제동 조건에서 불만은 없었는데 최대 제동 때의 거리는 예상보다 길었다. 아마도 르노 그룹이 기준으로 삼는 최대 제동거리 기준을 맞춘 것 같다. 다양한 차들을 테스트하다 보면 특정 브랜드들이 맞추려 하는 기준점이 보일 때가 있다. 르노삼성의 차들은 대략 42m 내외의 거리를 갖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클리오의 최대 제동력은 평범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한 경쟁력은 충분했다. 소형차이지만 나름대로 고급화된 소재를 통해 특화된 모습을 보이려 했고, 특유의 핸들링으로 많은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
고속주행 안정감도 대단하다. 클리오가 낼 수 있는 속도 범위 안에서 불안감은 없었다. 사실 르노삼성 QM3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능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차다. 차체가 전하는 마저 감각도 다르다. 단순 지상고의 차이가 아닌, 클리오 쪽이 더 단단하며 견고한 느낌을 전한다.
아마도 클리오를 첫차로 운전을 배운다면? 대중적인 성격의 국산차를 구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를 바라보는 기준이 높아질 것이며, 특히 차를 다룰 때의 감각에 대한 기준이 어설픈 차들을 눈여겨보지 못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도입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애초 르노삼성이 이 차를 수입하겠다는 얘기는 1~2년 전부터 나돌았다. 조금 더 빨리 왔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되었을 텐데…
르노는 편의장비나 공간의 크기를 차의 잣대로 삼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그리 감흥 없는 브랜드일 수 있다. 인터넷 속 일부 누리꾼들은 르노 따위가 만든 작은 차라며 폄하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운전해보면 짧은 시간 안에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더 폄하할 것을 찾으려 노력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믿음을 져버린 괘씸죄를 묻기 위해서다.
소형차 규모가 작은 국내 자동차 시장. 하지만 그 속에서 클리오가 꽤나 팔려주면 좋겠다. 르노삼성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자동차 문화의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능이나 감각만 좋으냐? 그건 아니다. 최대 가속 때 약간의 아쉬움을 보인 엔진이지만 연비만큼은 대단히 잘 살린다. 공식 연비도 17km/L를 넘어선다. 사실 대충 타도 나올 수 있는 연비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결과 시속 100km 내외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27km/L 이상의 연비를 보였다. 테스트 조건은 고저차가 있는 구간이다. 즉, 평지만 달린다면 이보다 높은 연비를 이끌 수 있다. 시내 주행에서도 쉽사리 10km/L 이상을 넘어선다. 막히는 구간 얘기다.
연비가 최악으로 치닫는 와인딩 로드에서 달릴 때도 13km/L 이상의 연비를 냈다. 클리오는 좋았다. 데뷔가 늦어졌지만 막상 대면하니 만족감이 컸다. 클리오를 겪다 보니 가솔린 모델이 생각난다. 특히나 RS 버전이라면 더 높은 출력으로 재미를 보여줄 것이다.
르노는 이제 출발선에 섰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델들을 선보여 주길 바란다. 아마도 새로운 차들이 들어올 때면 경쟁사들의 여론 조작팀이 활발히 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통한다. 또한 우리 소비자들의 수준도 꽤나 높아져 있다. 단순히 편의장비나 공간으로 차를 평가하는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의 브랜드 밸류다. 이를 갖지 못했기에 예산 범위 안에서 큰 것 또는 다른 장비들을 찾으려 한다.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인 대부분은 유럽을 자동차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곳의 소비자들은 진정한 가성비로 눈에 보이는 몇몇 장비가 아닌 기술에 대한 투자와 그를 통한 가치를 높이 산다. 우리 시장에도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소비자들도 꽤나 많아졌다. 르노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면 된다. 본질을 외치다 한국형 가성비에 지쳐버린 골수 자동차 지지자들도 당신들의 편이 되어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르노 브랜드. 이 브랜드를 ‘괴짜’라고 표현하고 싶다. 먼저 르노 그룹(르노-닛산-미쓰비시)은 세계에서 3번째로 자동차를 많이 판매하고 있다. GM, 포드, 현대 그룹도 이들보다 규모가 작다.
큰 규모를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 지배력이 있다는 뜻이다. 원한다면 자동차 트렌드를 이끌 힘이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르노가 주력하는 자동차 시장은 컴팩트급이다. 클리오, 메간이 대표적이다. 소형차가 주특기인 회사(?)를 국내 소비자들은 하찮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르노의 괴짜 본성은 그들의 기술력에 있다. 포뮬러 1, 포뮬러 2, 포뮬러 3, 포뮬러 E, 르망 24, WRC, 파이크스 피크, 각종 투어링카 레이싱 등 모터스포츠마다 안 나간 분야가 없다. 포뮬러 르노, 클리오 컵, 클리오 랠리 등 자체 원메이크 경기도 많이 개최한다.
하지만 이 노하우를 양산차에 적용시킬 생각은 없나 보다. F1에서 우승을 하건 포뮬러 E를 휩쓸건 그들은 경제적인 소형차만 만들어 판다. 그러다가 갑자기 F1 엔진을 이식한 에스파스를 내놓기도 하는 게 르노다. F1 엔진을 이식한 스타렉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르노는 ‘모터스포츠 덕후지만 소형차를 좋아하는 공룡 회사’다. 그리고 ‘소형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클리오가 바로 르노가 주력하는 소형차이며, 유럽에서 그야말로 대박 상품이기 때문이다.
유럽 시장은 소형차 중심으로 이뤄진다. 가장 잘 팔린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클리오 이외에 폭스바겐 폴로, 포드 피에스타, 푸조 203, DS(시트로엥) C3, 오펠 코르사, 토요타 야리스, 현대 i20 등이 이 시장에서 싸운다. 하나같이 기라성 같은 모델들이다.
이런 모델들을 제치고 동급 판매 1위를 유지하고 있는 모델이 바로 클리오다.
위와 같이 2012년 4세대 모델이 등장한 이후 동급에서 가장 잘 팔리는 모델로 자리했다.
단순히 B 세그먼트 안에서만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위와 같이 유럽에서 판매되는 차량을 통틀어서 TOP 3안에 들어간다. 유럽에서 폭스바겐 골프의 위치는 미국에서 포드 F-150과 같다. 결국 2위 싸움이 치열하다는 것인데, 여기서 클리오가 가장 잘 팔리는 것. 이미 전 세계에서 1400만 대 이상 판매됐다.
배경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클리오를 파악해보자.
디자인은 익숙하다. 국내에서 QM3로 판매된 캡처(Capture)가 클리오의 SUV형 모델이기 때문이다. 클리오는 여기에 젊은 감각을 더했다. 차체에 비해 큰 눈망울을 갖고 있는 헤드램프, 간결한 그릴 디자인과 멋을 낸 범퍼가 시선을 끈다. 소형차임에도 LED 라이트를 갖췄다는 점도 특징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부분이지만 엔진 후드도 가스 리프트식이다. 사치스러울 정도(?)이다. 치열한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클리오는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썼다.
측면부의 로커패널 디자인이 멋지다. 프랑스 차답게 휠 디자인도 좋다. 어설픈 애프터마켓 휠은 필요치 않다. 뒷좌석 도어 핸들이 숨겨진 형태이기에 마치 3도어 모델처럼 보인다.
휠베이스도 인상적이다. 첫눈에도 전후 오버행이 매우 짧아 보인다.
표의 내용처럼 국내에서 팔리는 소형 차 중 가장 긴 휠베이스를 갖고 있다. 휠베이스는 실내 공간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후면부도 꽤나 스포티하다. 치켜 올라간 리어램프와 입체적인 테일게이트, 고성능 모델을 연상시키는 범퍼 덕분이다. 다만 어설프게 숨겨진 머플러 디자인이 아쉽다. 반면 3D 형태의 디자인을 갖고 있는 LED 리어램프의 구성은 좋다.
실내는 QM3 덕분에 익숙한 느낌이다. 익숙한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센터페시아도 그렇다. 그보다 의외인 것은 소재의 고급스러움이다. 사실 카메라의 뷰 파인더로 보면 싸구려 플라스틱 같다. 하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고급스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다. 적당히 쿠션감 있는 소재의 느낌은 여러 패널에 쓰인다. 가죽 질감도 수준급이다. 소형차에서 이 정도 품질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또, 바디 색상에 맞춰 실내에도 컬러를 더해 개성을 강조했다.
국내 시장을 위해 T맵 내비게이션도 갖췄다. 젊은 소비자를 공략하는 만큼 스마트폰 미러링 기능도 있다. 기능이 제한적인 애플 카플레이보다 미러링 기능이 더 좋다.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을 그대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시트는 직물을 기본으로 일부에 가죽을 썼다. 직물 감각이 꽤나 좋다. 소형차라지만 그리 저렴하게 생각되는 부분들이 없다. 열선도 있다. 물론 불만도 있다. 등받이 각도를 시트 안쪽 다이얼로 조절한다는 점이다. 손을 반대로 꾸겨 넣어 다이얼을 돌려면 손에서 쥐가 날 지경이다. 폭스바겐도 이런 구성을 즐겨 쓴다. 세밀한 시트 조절이 장점이지만 분명 불편하다.
뒷좌석 공간은 딱 소형차 수준이다. 아무래도 국산차들이 공간을 잘 뽑기에 엑센트 대비 조금 작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동급 수입산 소형차와 비교하면 꽤나 넓다. 성인이 탑승해도 불편하지 않았다.
트렁크 공간도 소형차의 틀 안에 있다. 또 뒷좌석 폴딩 기능을 활용해 공간을 확장시킬 수도 있다. 바닥 안쪽에 추가적인 수납공간도 있어 활용성이 아쉽지 않다.
테스트를 위해 클리오의 도어를 연다. 묵직하다. 다시 닫는다. ‘텅’하며 닫힌다. 다시 열어본다. ‘이거 소형차 맞나?’ 소형차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가벼운 깡통 소리가 아니다. 이 정도 감각은 국산 중형급에서도 느끼기 어렵다. 준대형차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처음 인테리어의 마감에서 언급했지만 클리오는 생각 이상으로 고급스럽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디젤 특유의 음색이 전해진다. 르노삼성 디젤 모델들이 내던 그 음색이다. 실내 정숙성은 디젤로는 표준적인 수준. 소형차인 만큼 크게 아쉽지는 않다. 소음 수치로 보자면 우리 팀이 테스트한 폭스바겐 폴로 1.6 TDI와 유사했다. 수치는 45 dBA 수준. 다만 차가 달리면 약간의 풍절음이 생긴다. 아무래도 차체 대비 윈드실드(앞유리) 면적이 넓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61 dBA 수준이라면 소형차로는 타협할 만하다. 대략적으로 중형급 세단들이 60 dBA 내외의 소음을 보이기 때문.
가속감이 경쾌하다. 1.5리터 엔진이 내는 출력은 90마력이다. 최대토크 22.4kg.m를 낼 수 있다. 너무나 평범한 수치다. 하지만 수치 대비 경쾌한 느낌이 운전을 즐겁게 한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발진 가속 성능은 0-100km/h 기준 10~11초 내외?
실제 시험 결과는 어땠을까? 클리오는 12.16초 만에 시속 100km에 도달했다. 체감보다 느린 기록이었다. 참고로 이와 같은 성능은 볼보 V40 D2과 유사하다. 하지만 큰 불만은 없다. 체감으로 답답함이 없기 때문.
참고로 저 rpm부터 적극 활성화되는 토크가 일상에서 답답함 없는 느낌을 키우는데 도움을 준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클리오는 1.5 디젤 엔진을 바탕으로 달린다. 90마력의 출력, 하지만 구동 손실이 거의 없었다. 듀얼 클러치와 매칭 되었다고 해도 1마력 내외의 손실을 보였다는 점은 분명 인상적이다. 최대 토크에서도 손실이 없었다. 0.2Kg.m의 수치라면 사실상 오차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프에서 나타나 듯 클리오의 엔진은 실용구간, 저 rpm에서 조금 더 높은 효율을 낸다. 저배기량 디젤엔진 특성상 고 rpm으로 갈수록 토크가 떨어지지만 대신 3500 rpm부터 연료 차단 직전까지 지속되는 마력이 꾸준한 가속을 이어가게 되는 특성을 갖는다.
도로를 달리는 동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스펜션의 움직임이다. 조금은 단단한 느낌. 전형적인 유럽차 느낌을 전하면서도 승차감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코너링 때 차체를 버텨내는 능력도 좋았지만 다양한 도로에서의 탄력성이 클리오의 경쟁력을 크게 높여주고 있다. 최근에도 프랑스 해치백을 테스트한 바 있는데 서스펜션이 전하는 만족감이 좋았다. 하지만 클리오의 것은 그 차를 능가했다.
승차감은 타이어, 서스펜션, 차체, 시트 등 여러 가지 부분에 의해 결정된다. 클리오는 단단한 성향을 가졌지만 승차감 훼손이 없다. 시트도 장거리 운행에서 편했다. 의외의 고급스러움도 좋았지만 성능과 승차감 사이의 절충선이었다. 지금 현대차는 서스펜션에 대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자사가 추구하던 전통적인 부드러움, 그리고 유럽차 같은 성능 두 가지를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노하우 부족 때문인지 이상적인 조율 값을 찾지 못한 눈치다. 폭스바겐 외에도 르노, 푸조 모델들을 벤치마크해보라 조언하고 싶다.
클리오를 테스트하며 우리 팀의 모든 패널은 핸들링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나 날카로운 스티어링 시스템의 조율이 인상적이다. 통상 스티어링 휠을 쥐었을 때 (직선을 달리기 위한) 센터 영역에 있을 때는 약간의 여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클리오는 미세한 틈도 없이 바로바로 차체의 움직임으로 연결한다. 그렇다고 운전자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핸들링이 좋은 것은 물론, 코너링에서의 미세한 보정마저 쉽사리 끝낸다. 말 그대로 운전이 재미있다. 이번 클리오를 테스트하며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쉐보레의 아베오 RS다. 140마력의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은 아베오의 상급 트림으로 달리기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다. 내부 업무용 차로 1년 정도 이용한 적이 있어 익숙한 모델이다. 물론 현대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등도 비교가 될 수 있겠지만 엔진 출력을 제외하고 차의 완성도나 주행 성능으로 비교하기엔 격차가 크다.
아베오 RS는 핸들링이 좋다. 어지간한 상급 모델들을 그냥 눌러버릴 기세다. 클리오는 그런 아베오 RS의 핸들링을 쉽게 눌러버린다. 그 차이가 큰 것이 아니라 해도 조금 더 민첩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운전자를 설레게 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을 때의 차체 기울기나 각종 상황에서 보여지는 여유로움도 좋다.
다만 타이어 성능이 아쉽다. 코너링 때 나타나는 운동 특성은 언더스티어를 바탕으로 한다. 아무래도 타이어가 클리오의 모든 성능을 감당하기에 벅차다. 타이어는 넥센의 AU5라는 제품으로 4계절 타이어다. 국내 사양을 위한 것으로 사료되는데 클리오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타이어가 만드는 핸들링 및 기본 성능이 다소 밋밋하기 때문. 제조사 차원에서 본다면 넥센으로부터 타이어를 받아오는 것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겠지만 차의 본질을 제대로 살리려면 다른 제품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
제동력은 어떨까? 시속 100km로 달리는 도중 최대한의 감속을 진행하면 42.6m 내외의 거리에서 멈춘다. 거리로 보면 평이한 수준이다. 사실 어느 정도 빨리 달릴 때, 또한 일상에서의 다양한 제동 조건에서 불만은 없었는데 최대 제동 때의 거리는 예상보다 길었다. 아마도 르노 그룹이 기준으로 삼는 최대 제동거리 기준을 맞춘 것 같다. 다양한 차들을 테스트하다 보면 특정 브랜드들이 맞추려 하는 기준점이 보일 때가 있다. 르노삼성의 차들은 대략 42m 내외의 거리를 갖도록 하는 경우가 많았다.
클리오의 최대 제동력은 평범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한 경쟁력은 충분했다. 소형차이지만 나름대로 고급화된 소재를 통해 특화된 모습을 보이려 했고, 특유의 핸들링으로 많은 패널들을 놀라게 했다.
고속주행 안정감도 대단하다. 클리오가 낼 수 있는 속도 범위 안에서 불안감은 없었다. 사실 르노삼성 QM3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능을 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완전히 다른 차다. 차체가 전하는 마저 감각도 다르다. 단순 지상고의 차이가 아닌, 클리오 쪽이 더 단단하며 견고한 느낌을 전한다.
아마도 클리오를 첫차로 운전을 배운다면? 대중적인 성격의 국산차를 구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를 바라보는 기준이 높아질 것이며, 특히 차를 다룰 때의 감각에 대한 기준이 어설픈 차들을 눈여겨보지 못하도록 만들 가능성이 크다. 다만 도입 시기가 조금 늦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애초 르노삼성이 이 차를 수입하겠다는 얘기는 1~2년 전부터 나돌았다. 조금 더 빨리 왔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선택되었을 텐데…
르노는 편의장비나 공간의 크기를 차의 잣대로 삼는 국내 소비자들에게 그리 감흥 없는 브랜드일 수 있다. 인터넷 속 일부 누리꾼들은 르노 따위가 만든 작은 차라며 폄하하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운전해보면 짧은 시간 안에 알게 될 것이다. 아마도 더 폄하할 것을 찾으려 노력할지도 모른다. 자신의 믿음을 져버린 괘씸죄를 묻기 위해서다.
소형차 규모가 작은 국내 자동차 시장. 하지만 그 속에서 클리오가 꽤나 팔려주면 좋겠다. 르노삼성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자동차 문화의 발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능이나 감각만 좋으냐? 그건 아니다. 최대 가속 때 약간의 아쉬움을 보인 엔진이지만 연비만큼은 대단히 잘 살린다. 공식 연비도 17km/L를 넘어선다. 사실 대충 타도 나올 수 있는 연비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결과 시속 100km 내외로 고속도로를 달릴 때 27km/L 이상의 연비를 보였다. 테스트 조건은 고저차가 있는 구간이다. 즉, 평지만 달린다면 이보다 높은 연비를 이끌 수 있다. 시내 주행에서도 쉽사리 10km/L 이상을 넘어선다. 막히는 구간 얘기다.
연비가 최악으로 치닫는 와인딩 로드에서 달릴 때도 13km/L 이상의 연비를 냈다. 클리오는 좋았다. 데뷔가 늦어졌지만 막상 대면하니 만족감이 컸다. 클리오를 겪다 보니 가솔린 모델이 생각난다. 특히나 RS 버전이라면 더 높은 출력으로 재미를 보여줄 것이다.
르노는 이제 출발선에 섰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델들을 선보여 주길 바란다. 아마도 새로운 차들이 들어올 때면 경쟁사들의 여론 조작팀이 활발히 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통한다. 또한 우리 소비자들의 수준도 꽤나 높아져 있다. 단순히 편의장비나 공간으로 차를 평가하는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다. 사실 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최고의 브랜드 밸류다. 이를 갖지 못했기에 예산 범위 안에서 큰 것 또는 다른 장비들을 찾으려 한다. 가성비라는 명목으로.
전 세계인 대부분은 유럽을 자동차 선진국으로 분류한다. 그리고 그곳의 소비자들은 진정한 가성비로 눈에 보이는 몇몇 장비가 아닌 기술에 대한 투자와 그를 통한 가치를 높이 산다. 우리 시장에도 이를 바라볼 수 있는 소비자들도 꽤나 많아졌다. 르노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해 나가면 된다. 본질을 외치다 한국형 가성비에 지쳐버린 골수 자동차 지지자들도 당신들의 편이 되어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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