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르노삼성 SM6, 예상치 못한 강력한 선수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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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뭔가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면 현대기아차가 가장 가격대비 성능이 우수한 제품을 내놓는다고 세뇌 됐던건 아닐까. SM6는 그래서 충격적이다. 실내는 고급스럽고, 디자인은 아름다운 럭셔리카니 당연히 현대 그랜저나 기아 K7의 상대로 봤는데 르노삼성은 이 차를 쏘나타급으로 내놨다. 상상했던 것보다 저렴한 가격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물론 여기까지는 매우 성공적이다. 하지만 이 차에는 넘어야 할 벽이 너무나 많다.
‘중형차란 무엇인가’ 교훈
“와인딩로드에서 이렇게 속도를 내도 되나요?” 동승자가 놀라서 묻는다. “괜찮아요 이 차, 굉장히 안정적이잖아요”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멈춰선 차들이 나타났다. 동승자를 쳐다보느라 브레이크를 제대로 못밟았는데 “삑삑삑” 소리와 함께 ABS가 “두두두둑”하고 소리를 내고 멈춰섰다. 자동긴급제동 시스템이었다. 워낙 잘 동작해서 깜짝 놀랐다.
이미 10분 정도 타보고 단번에 감탄했다. 놀랍게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선다. 중형 세단이라면 이 정도 성능을 내는게, 첨단 기능이 잘 작동하는게 어쩌면 당연한데도 이전까지는 이 부분이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차가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모터그래프 김한용기자가 빨간색 SM6를 몰고 있다/사진=르노삼성
사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그동안 부족한 차를 참고 타왔다. 한쪽으로 쏠리는걸 지적해도 원래 도로가 기울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는 착한(?) 소비자들이다. 그 결과 현대차 쏘나타나 싼타페, 기아차 K5는 미국 NHTSA의 소비자 불만 조사에서 ’미국서 가장 쏠림이 심한 차’라는 불명예를 줄줄이 꿰찼다. 소비자들이 차에 대해 잘 알고 개선 요구를 해야 더 나은 자동차도 만들어질텐데, 우리 자동차시장을 한개 회사가 독식하니 소비자의 평가 기준이 부족해졌던 것이다.
르노삼성 SM6는 그런 면에서 대안이 될 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주행 감각에 목숨이라도 건 듯 하다. 우선 핸들 구조부터 완전히 다르다. 그전까지 국산차에선 제네시스(G80)와 제네시스 EQ900에만 생색내듯 장착하던 고급 장비인 벨트타입 R-EPS(현대차는 벨트타입 R-MDPS라고 한다)를 전차종에 적용했다. 모듈 부품 또한 BMW나 포르쉐 같은 최고의 핸들링 자동차에 장착되는 ZF-TRW(ZF가 지난해 TRW를 인수했다)의 제품이다. 덕분에 핸들 감각은 매우 민감하고 든든하다.
평상시 노면의 잔충격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부드러운 서스펜션임에도 코너링은 매우 기민하게 돌아나간다. 때론 스포츠카를 타는 기분까지 든다.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혹은 단단하게 조절해주는 가변식 댐퍼가 장착돼 있기 때문이다. 가변식 댐퍼의 조절폭은 꽤 크고 명확해서 운전에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에선 토션빔 리어서스펜션에 대한 말이 많은데, 이 정도라면 결코 깔볼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토션빔 덕분에 코너링에서 더욱 안정적인 거동을 보여주기도 한다. 잘 만든 토션빔이 어설픈 멀티링크보다 훨씬 낫다는걸 몸소 보여주고 있다.
두가지 파워트레인과 기분좋은 마술
1.6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은 190마력을 내고 습식 듀얼클러치(EDC) 변속기까지 장착됐으니 직결감도 우수해 신나게 달려나간다. 쏘나타나 K5의 엔진이 168마력에 토크컨버터 변속기가 달렸는데 그에 비해 숫자상 출력은 약간 높을 뿐이지만 가속감에선 큰 차이가 난다. 여기 우수한 서스펜션과 핸들이 조합되면 신이 나서 자칫 과속을 부르게 된다.
다만 스포츠모드는 가속페달 초반에 ‘왈칵’하고 달려나가는 느낌을 만들어 뒀는데, 이 부분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지나치게 날카로워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2.0리터 가솔린 GDe 모델의 경우 닛산에선 아직 쓰지 않았던 직분사 엔진인데 150마력으로 경쟁사에 비해 숫자는 적지만 놀랍게도 초반에 밀고 나가는 느낌은 훨씬 좋다. 아마 가벼운 차체와 동력 손실 적은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힘인걸로 보인다.
SM6는 각종 실내외 첨단 장치를 더하고도 핫스템핑을 이용한 기가파스칼 단위의 초고장력 철강과 알루미늄과 플라스틱 등 경량소재를 적극 이용해 무게도 경쟁사 중형차에 비해 50kg 가량 가볍다. 이 정도면 사람 한명이 타는 무게라서 실제 주행 느낌에는 큰 차이가 느껴진다.
실제보다 더 잘 달리는 느낌도 든다. 스피커를 통해 가상의 엔진 소리가 더해지는데, 이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정도로 잘 튜닝 돼 있었다. 특히 출력이 낮은 2.0 모델에서 가상 사운드가 더 크게 나오는데, 그 덕분에 2.0이 더 스포티하다고 얘기하는 기자들도 많았다. 비록 1.6리터 터보 엔진의 출력이 더 높긴 하지만 느낌에서 큰 차이가 없다면 구매 가격면에서 유리한 2.0리터 모델을 선택하는게 나아 보인다.
아쉬운 점도 적지 않아
이 차의 실내는 꽤 고급스런 소재로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그 단차나 플라스틱 사출 등 마감 품질에서는 조금 미진한 부분도 있다. 사실 다른 나라에선 문제되지 않을 지점이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눈높이는 매우 높아져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것이다. 센터페이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이그로시 블랙베젤의 경우 표면의 평활도(Smoothness)가 다소 떨어지고, 손때가 쉽게 드러나 보인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불만을 살만하다.
AV 시스템을 세로로 만든것 까지는 좋은데 볼륨 스위치가 기계식 다이얼이 아닌 터치식으로 돼 있는 점이나 버튼 하나를 눌러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즉각 들어가지 못하는 점도 불편하다.
하지만 주로 파워트레인이나 주행성능 같은 자동차의 근본적인 면에 특화돼 있고 훌륭한 성능을 보이는 반면 내비게이션의 조작 방법이나 센터페이시아 패널 소재 등은 쉽게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부분이어서 앞으로 금세 나아질 걸로 기대된다. 전반적으로 매우 고급스럽기 때문에 사소한 흠결이 더 커보이는지도 모른다.
르노삼성의 SM6 판매 목표는 3개월간 2만대, 10개월간 5만대다. 택시 판매가 늦어질걸 감안하면 기아 K5를 훌쩍 넘고 쏘나타까지 위협하는 숫자다. 얼핏 들어도 말이 안되는 걸로 느껴지는데 르노삼성은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다. 단 3개월간 2만대 팔아야 하는데, 게트락 변속기 등 부품이 제때 공급되지 못한다고 하니 이를 비행기로 실어 날랐다. 대체 수백킬로그램의 변속기를 항공기로 나르는 운송료가 얼만가. 마치 세상 물정 모르는 돈키호테 같다.
하지만 차를 타보니 이만하면 자신감을 가질만하다는 생각도 든다. 르노삼성은 이 차에 최선을 다했고 모든걸 걸었다. 소비자에겐 매우 좋은 일이다. 경쟁은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새롭고 강력한 선수의 등장을 적극 환영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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