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렉서스 신형 RX450h, 하이브리드 SUV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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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SUV가 굳이 왜 필요할까 싶었다. 그저 남들 다 사는 디젤 SUV를 선택하는게 당연하게 생각 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SUV라도 그저 묵직하고 남성적인 느낌만 추구하는게 아니라 정숙하고 가볍게 치고 나가는 차가 인기다.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단순히 연비만 좋아지는게 아니라, 잘 달리고 강력한 힘을 내기도 한다. 물론 더 가뿐하게 달리고 정숙성을 높이는 등 본연의 장점도 강화됐다. 게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지니 요즘은 덩치 큰 SUV라도 가솔린 하이브리드를 고려해보는게 현명한 일인지 모른다.
렉서스코리아는 신형 RX450h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커지고, 세련되고, 성능도 좋아졌지만 오히려 가격을 300만원이나 낮추며 적극적인 시장 공략에 나섰다(슈프림 트림 기준). 반면 가솔린 모델인 RX350의 가격은 850만원이나 올랐다. 하이브리드를 주력으로 삼겠다는 단호한 결의가 느껴진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 위치한 렉서스 커넥트투(connect to)에서 경기도 가평군 크리스탈 벨리 CC를 왕복하며 렉서스 신형 RX450h를 시승했다. 시승 모델은 엔트리 트림인 슈프림으로, 가격은 7610만원이다.
# 발군의 주행 능력...고요함 속의 기묘한 가속
가솔린이나 디젤 SUV와는 색다른 맛이다. 출발할 때 느껴지는 고요함, 이를 파고 드는 전기모터 특유의 높은 피치의 소리가 들린다. 멈출 때도 마찬가지다. 감속하다보면 어느새 엔진은 먼저 멈춰버린다. 이어 모터 회전이 잦아드는 소리가 들리는건 꽤 기묘한 느낌이다. 하이브리드가 이젠 익숙하지만 어쩐지 색다른 느낌은 여전히 있는 셈이다.
초반 주행감은 기대만큼은 아니다. 모터가 기민하게 움직이지만 2톤 넘는 육중한 무게를 옮기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깊이 밟아도 엔진이 곧바로 개입해 힘을 보탠다. 자동차에 엔진 시동이 걸리는거야 당연하지만 조용한 하이브리드에서 자꾸만 애쓰는 듯한 엔진음이 들리고, 이로 인해 한박자씩 느리게 가속되는 점이 아쉽다.
그러나 속도를 올리고 나서는 넉넉한 힘으로 꾸준히 밀어준다. e-CVT(무단변속기)와 함께 차근차근 부드럽게 속도를 올리는 능력은 발군이다. 풍절음은 경쟁 모델에 비해 꽤 억제된 수준이다. 특히, 60~100km/h 사이를 반복적으로 재가속할 때의 가속감은 SUV임을 잊게 할 정도로 뛰어나다.
엔진과 모터가 더해져 총 313마력의 넉넉한 시스템 출력을 내는 덕분이다. 요즘 대부분 하이브리드카는 엔진이 모터보다 훨씬 강력하다. 작은 배터리만 장착돼 모터는 그저 도울 뿐이다.
그런데 신형 RX450h는 배기량에 비해 엔진의 성능은 억제됐다. 이 차에 탑재된 3.5 가솔린 엔진은 262마력, 34.2kg.m을 내는데, 이는 가솔린 모델인 RX350(301마력, 37.7kg.m)에 비해 10%가량 낮은 수치다. 보다 넉넉하고 여유있게 달리라는데 도움이 되는 듯하다.
신형 RX에는 도요타 특유의 D-4S 연료분사 방식이 적용됐다. 포트분사와 직분사를 함께 사용하는 것으로 저회전식 크루징에서는 포트분사를, 고회전식 가속에서는 직분사를 사용해 정숙성과 성능, 효율성을 모두 만족 시킨다.
# '달리는 맛'나는 하이브리드 SUV, 넉넉하고 여유있는 주행감
차는 커졌지만 시트포지션이 더 낮아졌다. 19mm에 불과한 변화지만 이로 인해 운전자가 얻는 혜택은 꽤 크다. 우선 중심이 낮아 세단과 비슷한 주행감을 얻을 수 있는 데다가, 고속 주행 및 코너링에서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또, 스티어링 휠의 각도를 운전자쪽으로 2도 낮춰 더 편하게 조향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차체 강성과 서스펜션 성능을 개선해 과격한 움직임에서도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고강성 바디는 레이저용접(LSW) 및 구조용접착제 등의 최신 기술을 사용해 만들었으며, 엔진마운트를 재배치해 측면 반응성을 높였다. 또, 서스펜션도 최적화해 민첩한 핸들링과 코너링 능력을 확보했다. SUV로서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쟁쟁한 경쟁 모델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을 정도의 안정감을 보여준다.
일반적인 사륜구동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만 전자사륜구동(e-4) 시스템도 주행에 도움을 준다. 렉서스 측은 주행 상황(평지, 눈길, 빙판길, 코너링 등)에 맞춰 앞뒤 바퀴의 구동력을 적절히 배분한다고 설명했다. 다이내믹 토크 컨트롤 시스템이 바퀴 속도와 회전 각도 등의 주행 데이터를 수집, 종합해 전륜과 후륜에 토크를 자동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보니 연비도 중요하다. 복합 연비는 12.8km/l로, 시승하는 동안은 이보다 조금 부족하게 나왔다. 시승 코스가 가감속을 반복하는 고속 구간 위주다 보니 복합 연비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엔진이 쥐어짠 세팅이 아닌 데다가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틈틈이 힘을 보태니 일반적인 주행에서는 비슷한 수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 렉서스의 파격 행보, 중형 SUV에 이런 디자인?
신형 GS가 그랬던 것처럼 신형 RX도 한단계 아랫급인 NX보다 더욱 파격적인 디자인이 적용됐다. 신규 소비자는 물론 기존 RX 소비자들도 다시 한번 RX를 사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강인한 인상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차체 크기가 커졌는데도 디자인으로 인해 거대해 보이지는 않는다. 본래 렉서스 RX는 '크로스오버 세단'이라는 독특한 방향을 추구했는데, 신형 RX는 이전보다 더욱 SUV에서 멀어진 느낌이다. 다른 SUV에서 찾아보기 힘든 날카롭고 매끈한 라인이 곳곳을 지난다. 특히 C필러를 쿠페 스타일로 뽑아내는 등 보다 세련된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애쓴 모습이다.
어느새 친숙한 렉서스의 상징이 된 스핀들그릴은 RX에 이르러 더욱 크고 과격한 모습이 됐다. 크기뿐 아니라 볼륨감, 세부적인 디테일 등 경쟁 SUV들을 압도할 정도로 화려하다. 스핀들그릴이 처음 나올때만 해도 렉서스의 점잖은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기도 했는데, 이제 꽤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측면은 마치 BMW X6처럼 전형적인 쿠페 형상을 띄고 있다. 프런트 오버행을 늘리고 리어 오버행을 줄이는 디자인으로 스포츠카 같은 느낌마저 보여준다. C필러 중간을 검정색으로 처리해 천장이 떠있는 것 같은 '플루팅 루프'가 인상적이다.
시승회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고성능 느낌의 F 스포츠 트림에는 전용 그릴과 20인치 대구경 휠, 전용 인테리어 컬러와 금속 소재 장식, 계기반, 멀티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 패들시프트, 가죽 소재 스포츠 스티어링 휠, 전용 배지 등이 적용됐다.
# 업그레이드된 실내, 인간공학적 디자인은 숙제
실내도 이전 모델보다 꽤 좋아졌다. 레이아웃을 새롭게 짜고 각종 신규 사양을 적용하는 등 달라진 인상을 주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엔트리 트림이다 보니 렉서스 브랜드에 기대하는 고급감 및 편안함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에 올라타면 센터페시아 중단에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BMW와 비슷한 스타일로, 기어노브 뒤에 위치한 패드(리모트 터치 컨트롤러)를 이용해 조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디스플레이는 터치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패드는 터치보다 더 정확한 조작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시선을 빼앗기 마련이어서 주행 중 위험할 수 있다. 운전 중 조작은 위험하다며 터치를 금하던 BMW조차 신형 7시리즈를 시작으로 전 모델에 터치 기능을 추가하기로 한다는 상황이니 렉서스도 변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RX 최초로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와 오토 홀드가 적용됐고, 그 옆에는 열선 및 쿨링 등 시트 조작 버튼(오토 지원)도 한 곳에 깔끔하게 모아놨다. 편리한 기능들을 새롭게 추가한 것은 칭찬할만한데, 버튼의 배치는 아쉽다. 이들은 기어노브 앞에 위치했는데, 조작할 때마다 손이 기어노브에 걸렸다.
그래도 공간 활용은 마음에 든다. 공조기 이외에 다른 기능이 없지만, 휠베이스가 50mm 늘어나 플래그십 세단인 LS에 버금가는 넓은 뒷좌석 공간을 확보했다. 특히, 시트가 뒤로 기울어질뿐 아니라 120mm까지 움직여 더욱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트렁크 공간도 꽤 넉넉한데, 고급 모델에는 후면 엠블럼 근처에 손을 대면(30mm 이내) 트렁크가 열리는 터치리스 파워 백도어 시스템이 적용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 신형 RX, 엔트리 트림도 소비자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RX450h 슈프림을 시승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기본 트림이다 보니 꽤 많은 편의 사양이 빠졌다는 것이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마크레빈슨 오디오 시스템, 무선 충전 시스템, 테일게이트 핸즈프리, 사각지대 감지 모니터, 후측방 경고 시스템 등을 이용하려면 무조건 고급 트림을 사야 한다. 그런데 고급 트림인 이그제큐티브나 F 스포트 트림의 가격은 모두 8600만원으로 슈프림보다 1000만원이나 비싸다.
▲ 렉서스 신형 RX450h 슈프림의 실내. 고급 모델에는 헤드업 디스플레이, 휴대폰 무선 충전 시스템, 파노라마 썬루프 등이 사양이 추가된다 |
또, 프리미엄 브랜드임에도 일반 브랜드에 적용되는 몇몇 사양들이 장착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렉서스라는 브랜드에 기본적으로 원하는 기대치는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형 RX에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추돌 방지 시스템, 주차 보조 시스템 등 각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선보이는 최신 주행 안전 기술들이 제외됐다. 이에 대해 렉서스코리아 관계자는 “운전자가 의도하지 않는 제어나 거동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게 렉서스의 입장”이라며 “이미 ‘렉서스 세이프티 시스템’이라는 통합 안전장비가 있으며, 다양한 R&D가 진행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하이브리드 장인' 렉서스, 성공적인 선택과 집중
렉서스는 브랜드 이미지처럼 조용하지만 그 누구보다 집요하다. 디젤 SUV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친환경 하이브리드’라는 대한 길다란 로드맵을 그려놓고 전 차급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추가하는 등 끈질기게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하이브리드 장인'이라 부를만하다.
지금껏 도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에 ‘선택과 집중’은 꽤 성공적이었다. 여기 사용된 하이브리드 기술은 추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의 등 친환경차에 원천기술이 된다. 지나고 보면 렉서스가 다른 회사들보다 한발짝씩 더 앞서 있었던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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