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 명문가에서 태어난 탐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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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대 있는 가문의 막내 아들은 예상보다 훨씬 잘 났다.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도 명함 내밀기 힘들 정도다. 건장한 체격과, 또렷한 이목구비, 남다른 운동신경과 지적 능력까지 겸비했다. 우성 유전자만을 잔뜩 물려받았다.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지난해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만났다. 수백대가 전시된 모터쇼에서도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유독 돋보였다. 천장에선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고, 특별히 고안된 바닥 구조물은 불규칙하게 오르락 내리락 했다. 굳이 타보지 않아도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균형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몇개월 후, 천년고도 경주에서 디스커버리 스포츠와 조우했다. 토함산 자락에 마련된 오프로드 코스를 체험했고, 진흙을 털어내며 동해바다까지 달렸다. 시승을 마친후, 난 바로 편집장에게 구입을 권유했다. 모험심이 투철하고, 딸내미 둘 키우는 가장에게 이보다 좋은 차는 없어 보였다.
# 랜드로버에 기대하는 모든 것
흙먼지를 날리며, 토함산을 질주할 기대로 가득했는데 아침부터 추적추적 비가 왔다. 빗방울이 굵진 않았지만, 쉬지 않고 내렸다. 경주 시내를 조금 달리다 본격적인 토함산 오프로드에 들어서자, 짙은 안개까지 더해졌다.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마치 영국의 한적한 산속을 떠올리게 했다.
토함산 오프로드 코스는 국내 오프로드 동호회나 선수들이 많이 찾는 곳인데, 랜드로버 인스트럭터들이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 특징을 잘 느낄 수 있게 코스를 꾸몄다.
오프로드를 대비해 시트 포지션을 평소보다 더 바짝 앞으로 당기는데, 손끝으로 느껴지는 각 부분이 새삼 고급스럽다. 레인지로버나 이보크에 비해 가죽 사용은 인색하지만, 부드러우면서도 짱짱한 가죽 질감은 영락없는 랜드로버다. 시트는 히팅 기능은 제공되지만 쿨링 기능은 제공되지 않는다.
스티어링휠은 의외로 묵직하다. 유격도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마냥 오프로드를 위한 모델은 아니란 소리다. 잠깐 경험한 도심 주행에서도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유사한 단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갈길은 대수롭지 않게 통과했다.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을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이 정도 길은 웬만한 국산 SUV도 잘 오른다. 안개 낀 산을 조금 더 오르니, 노면이 질척거리기 시작했다. 도하 체험을 위해 곳곳에 인위적인 웅덩이를 만들었고, 비까지 왔으니 그 물이 점차 번졌다. 무심코 가속페달을 밟다간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가기 십상이었다. 특히 사계절용 타이어는 이미 진흙 코팅이 된 상태라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을 머드 모드로 변경하면 각종 전자장비가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전자식 센터 디퍼렌셜도 가속페달을 밟는 양에 따라 그 강도를 변화시킨다. 기어 변속 시점도 최대한 늦춰 견인력을 극대화시키고 바퀴가 미끄러지면 스스로 제동을 걸어 균형을 잡는다. 이런 뻘밭에서도 방향 전환이 의도대로 된다는 것이 놀랍다. 머드 모드에서는 경사로 밀림 방지 시스템이 자동으로 켜진다. 센서를 통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최저 및 최고속도도 조절이 가능하다.
# 오른발은 그저 거들 뿐
그래도 당연히 진흙 위에선 조금씩 미끄러진다. 이때 앞차의 뒷바퀴 움직임이 눈으로 명확하게 보였다. 신기하게도 불규칙한 노면에 따라 좌우로 조금씩 각도가 꺾이고 있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에서 가져온 인테그랄 멀티 링크 리어 서스펜션은 상황에 따라 뒷바퀴의 각도를 좌우로 튼다. 미세하지만 이를 통해 온로드나 오프로드에서 균형감을 높일 수 있다. 서스펜션의 주요 부분은 알루미늄으로 제작됐고, 좌우 링크의 거리도 멀어 뒷좌석 및 트렁크 공간의 활용성도 높일 수 있었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스웨덴 할덱스의 최신 기술이 적용됐다. 주로 앞바퀴에 많은 힘을 보낸다. 때에 따라 뒷바퀴에 절반까지 힘을 보낼 수 있다. 기계식과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최근엔 이런 전자식 사륜구동이 늘고 있는 추세다.
오프로드에서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또 다른 장점은 디자인이다. 네바퀴를 최대한 각각의 모서리로 몰아세웠다. 안정적인 비율과 함께 접근각, 이탈각 등이 월등히 높아지는 결과를 얻었다. 지상고도 높고, 수심 600mm까지 무리없이 지날 수 있다. 물의 깊이와 최대 도강 능력을 알려주는 도강 수심 감지장치나, 오프로드에서 주변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서라운드 시스템 등은 국내 모델엔 적용되지 않았다.
약 19.8km에 달하는 오프로드 코스를 너무 수월하게 통과했다. 안전을 당부하는 인스트럭터의 무전이 잔소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길을 헤쳐갔다. 마치 토함산 오프로드가 내집 드나드는 통로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난 한일이 별로 없다. 상황에 따라 모드만 변경하고, 일반 도로처럼 달렸다. 특별히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세밀하게 밟지도 않았다. 다 알아서 해줬다.
# 온로드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거대한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로 본 하늘에선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졌고, 우리는 감포읍에 위치한 고아라 해수욕장을 향해 달렸다. 인스트럭터는 오프로드와 달리 온로드에선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빗길에서도 한치의 미끄러짐 없이 한무리의 디스커버리 스포츠가 열을 맞춰 달렸다.
2.2리터 디젤 엔진은 무척 부드럽다. 힘도 충줄하다. 막상 외부에서는 소리가 크지만, 실내론 걸걸한 음색이 거의 스며들지 않는다. 또 회전수를 높여도 듣기 거북하지 않게끔 잘 다듬어졌다. 도심이나 고속도로에서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의 섬세함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었다.
역동적인 탐험가지만 누구보다 차분하고 침착하다. 특히 독일 ZF의 9단 자동변속기는 완성도가 높다. 메르세데스-벤츠, 크라이슬러에 비해 훨씬 똑똑하다. 정속 주행에서는 빠르게 기어를 높인다. 패들시프트를 이용하면 시속 75km에서 8단이 들어가며, 시속 100km 쯤에선 계속 9단으로 달릴 수 있다. 이때 엔진회전수는 1400rpm 정도에 머문다. 가속을 위해 순간적으로 가속페달을 밟으면 재빨리 서너단은 기어를 내린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도 자동모드에서는 9단을 보기 힘들다.
2톤에 육박하는 차체가 굽이진 도로에서도 경쾌하게 움직인다. 스포츠카만큼 빠르진 않아도, 1750rpm부터 발휘되는 최대토크로 인해 호쾌하다. 기어비가 워낙 촘촘하기 때문에 와인딩에서는 답답한 감도 있지만, 수동 모드로 전환하면 충분히 역동성을 발휘한다. 또 차체 밸런스가 우수하고, 코너링 시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거는 토크 백터링, 롤링 억제 시스템 등으로 안정된 자세로 코너를 쉽사리 빠져나간다.
사고에 대한 대비책도 충분하다. 보행자 충돌 시 보닛 윗부분에서 에어백이 솟아 2차 부상을 막는다. 0.06초 만에 에어백이 펼쳐지며, 시속 25-50km에서 작동한다. 견고한 차체는 유로NCAP의 충돌 안전테스트에서 별다섯개 만점을 받았다.
안락한 실내 환경과 승차감은 레인지로버 부럽지 않다. 특히 뒷좌석 공간과 트렁크 공간은 동급 모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다. BMW X3, 아우디 Q5 등에 비해 길이는 짧지만,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전륜구동 플랫폼을 사용하고, 할덱스 커플링은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뒷좌석은 최대 160mm 슬라이딩이 가능하고, 등받이 기울기도 조절할 수 있다. 뒷좌석은 트렁크 안쪽에 위치한 버튼으로 손쉽게 접을 수 있고, 이때의 용량은 1698리터에 달한다. 그냥 한눈으로 봐도 누구나 광활한 공간임을 알아챌 수 있다.
# 매력적인 가격표가 붙었다
프리랜더2에 비해 가격은 조금 올랐다. SE 트림은 5960만원이다. HSE 럭셔리 트림엔 19인치 휠, 열선 스티어링휠, 뒷좌석 열선,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 안개등 등이 추가됐다. 가격은 6660만원이다. 경쟁 모델로 지목되는 BMW X3, 아우디 Q5 등에 비해 특별히 부족함 점도 없지만 가격은 훨씬 저렴하다. 사전계약 넉달만에 1000대 넘게 계약될 정도로 이미 반응은 폭발적이다.
디스커버리 스포츠는 랜드로버의 엔트리 모델로 손색이 없다. 랜드로버의 디자인 특징이 고스란히 담겼고,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르는 주행 성능까지 겸비했다. 또 정숙성과 안락함은 충분히 귀족 SUV의 일원이라 할만하다. 또 2020년까지 판매량을 두배 가까이 늘리겠다는 재규어랜드로버의 야심찬 계획을 견인할 재목이라 판단된다.
* 장점
1. 랜드로버의 주장대로 가장 다재다능한 콤팩트 SUV.
2. 광활한 실내 공간.
3. 최고급 트림이 X3 및 Q5 엔트리 트림보다 저렴하다.
* 단점
1. 이름은 바뀌었지만, 프리랜더2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 9단 변속기, 오토 스타트스톱 등이 있음에도 효율은 그리 좋지 못하다.
3. 이르면 올해 말 2.0리터 신형 엔진이 탑재된 연식변경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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