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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랜드로버 디스커버리…"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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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판단은 숱한 의심에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심해야 한다. 시승은 의심의 연속이다. 내 감각은 문제가 없는지, 틀에 박힌 사고나 선입견으로 느낌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되묻는다. 그래도 이런 일을 십년 가까이 했으니, 경험은 스스로 쌓였고, 그 위에 의심을 포개며 이성적 판단을 도출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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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뉴 디스커버리’은 그동안 시승했던 여느 SUV보다 더 많은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주행 감각도 그랬고, 근본적인 존재와 방향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으레 생각하는 ‘디스커버리’와 신형 디스커버리는 많은 것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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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는 저렴한 모델이었다. 레인지로버와 섀시, 기술은 공유했지만, 고급스러움을 나눠갖진 않았다. 그렇게 디스커버리와 레인지로버는 엄연히 다른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신형 디스커버리는 갑작스럽게 레인지로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고급스러워졌다. 심지어 랜드로버도 조심스럽게 ‘럭셔리’란 단어를 디스커버리에 쓰기 시작했다. 가죽과 알루미늄, 매끈하게 가공된 플라스틱 등으로 완성된 간결한 실내 디자인은 오프로더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흙투성이 된 신발을 올려놓기 민망한 디스커버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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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체에서 비롯된 넓은 실내 공간은 전혀 변한게 없었다. 얼마나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 2열과 3열 시트를 접을 수도 있다. 또 트렁크에도 시트 폴딩을 위한 많은 버튼이 놓였고, 버튼 조작 만으로 내가 원하는 부분만 접고 펼 수 있다. 클램쉘 게이트는 사라졌지만,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판대기가 생겼다. 성인 남성이 앉아도 부러지거나 주저앉지 않을 만큼 튼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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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열 시트에 누군가를 앉으라 권해도 실례가 아닐 것 같았다. 그곳이 부록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시트의 만듦새도 훌륭했다. 3열 시트까지 모두 접으면 양문형 냉장고를 두개 정도 쌓을만한 공간이 나왔다. 바닥은 아주 반듯했고, 바닥면의 소재도 범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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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피지컬’이 갖는 장점은 많다. 전통적인 ‘깍두기’ 디자인은 버렸지만, 체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버행과 리어행이 짧고, 뒷범퍼의 밑부분이 추켜올라갔다. 덕분에 34도의 진입각과 30도의 탈출각을 확보했고, 27.5도로 기울어진 비탈에 한쪽 두바퀴를 올려놓고, 비스듬하게 달려도 끄떡없다. 에어 서스펜션을 통해 차체를 높이면 90cm 수심의 물웅덩이도 지날 수 있다. 신형 디스커버리가 가지 못하는 길은 여간해선 못간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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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성능에서는 한층 터프해졌지만, 반대로 외모는 곱상해졌다. 디스커버리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변화였다. 각진 부분을 다듬었고, 부분부분에 새로운 정체성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디스커버리가 지켜나가야 할, 이를테면 비대칭 테일게이트 디자인이나 도드라지는 C필러 등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됐을 뿐이지, 그 흔적은 또렷했다. 신형 디스커버리에는 요즘 가장 핫한 디자이너로 지목받고 있는 제리 맥거번 랜드로버 디자인 총책임자의 많은 고민이 담겨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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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심에서도 어울리는, 역사상 가장 세련된 디스커버리를 디자인했고, 엔지니어들은 그의 큰 결심에 부합하도록 신형 디스커버리를 설계했다. 무거운 뼈대를 버렸고, 신형 레인지로버가 그랬듯 가벼운 알루미늄 골격이 사용됐다. 덕분에 신형 디스커버리는 한층 경쾌하게 달렸고 아스팔트 위를 빠르게 달려도 어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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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리터 V6 엔진은 신기할 정도로 조용했다. 최근 랜드로버는 소음, 진동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엔진을 내놓고 있다. 또 디자인을 부드럽게 다듬으면서 풍절음도 많이 줄었다. 풍족한 힘을 가진 디젤 엔진과 ZF 변속기의 조합도 훌륭했다. 크고 무거운 신형 디스커버리가 시속 100km로 달려도 엔진회전수는 1500rpm을 넘지 않았다. 주행 상황에 대한 성격 변화도 즉각적이었다. 힘을 써야할 땐, 마치 재규어처럼 민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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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코너에서의 발돋움이었다. 껑충한 신형 디스커버리의 움직임은 예상을 벗어났다. 코너에서 빠른 속도를 감당할 체형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잘 견뎠다. 상체의 기울어짐이 큰 편인데도 하체는 요동치지 않았다. 신형 디스커버리는 코너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쏠리는 상황에서도 가속할 여지가 있었고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다. 오프로드의 제왕인 디스커버리로 서킷을 달리는, 내 생각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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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채 녹지 않은 겨울산을 오르는 것도 디스커버리에겐 몹시 쉬운 일이었다. 다양한 오프로드 모드의 변화는 몸으로 쉽게 체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잘 오른다. 지상고만 높이면 오토 모드로도 어지간한 임도는 쉽게 지날 수 있다. 덩치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디스커버리는 바위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보단, 넓은 초원이나 황야를 달리는데 더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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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는 한국에서 누적 판매량이 1만대를 넘었다. 랜드로버 라인업 중 가장 높은 판매기록을 갖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신형 디스커버리 역시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2018년형 모델이 출시됐고, 레인지로버가 사용하는 12.3인치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패널이 추가됐다.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이 탑재된 SD4 SE는 8560만원부터, 3.0리터 디젤 엔진이 탑재된 TD6는 9710만원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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