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내연기관과 ‘헤어질 결심’, 폭스바겐 I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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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쏟아지는 새로운 전기차는 전 세계적으로 화젯거리다. 갈수록 늘어나는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짧아지는 충전 시간, 저렴한 유지비 등이 블랙홀처럼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한편으론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이런 급속한 전동화 흐름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운전의 즐거움’ 측면에서 전기차는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막 네베라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포르쉐 911을 모는 즐거움에 비하겠느냐는 굳건한 믿음도 깔려 있었다.
폭스바겐이 최근 한국 시장에 선보인 순수 전기 SUV ID.4는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차다.
ID.4는 폭스바겐의 전기차 플랫폼인 MEB를 바탕으로 한 ID.패밀리의 첫 번째 SUV로, 폭스바겐 그룹에서는 콤팩트 SUV급에 속하고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C 세그먼트(준중형) 급에 속한다.
먼저 차체 크기를 보면, 길이는 4585㎜, 너비 1850㎜, 높이 1620㎜이고, 휠베이스는 2765㎜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비교하면, ID.4의 길이는 50㎜ 짧고 너비는 40㎜ 좁고 높이는 15㎜ 높으며 휠베이스는 235㎜ 짧다.
이런 수치만 보면 ID.4가 열세 같지만, 실제로 타보면 공간의 아쉬움은 크지 않다. 기자단 시승회에서도 작아 보이는 외형에 비해 실내공간이 넓어서 오히려 더 만족스럽다는 반응이 꽤 많았다. 뒷좌석 레그룸은 아이오닉5보다 살짝 좁지만, 트렁크 공간은 더 넓어서 레저 활동을 즐기기에는 더 좋아 보인다. 차체 높이도 일반적인 승용차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어서, 치마 입은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타기에도 불편하지 않다.
대시보드는 단출하다. 스티어링 휠 너머로 보이는 클러스터는 이륜차의 것을 보는 것처럼 아주 단순해 처음에는 실망할 수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정보만 콕 집어서 전달해주는 덕에 운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더군다나 스티어링 휠과 연동해 틸팅되므로 운전자의 키와 상관없이 좋은 시야를 제공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번 시승은 2인 1조로 운영됐는데, 나는 모터리언 박기돈 대표와 같은 차를 탔다. 먼저 시승하게 된 나는 뒷자리에 앉은 박 대표에게 “승차감 괜찮으냐”고 물어보니 “아주 훌륭하다”라면서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평탄한 도로뿐 아니라 과속방지턱을 넘어도 승차감이 아주 좋단다.
전기차에서 승차감을 좋게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무거운 배터리가 하체에 달려 있으므로 승차감을 우선시하면 너무 물렁거릴 수 있고, 주행안전성에 초점을 두면 너무 튀는 느낌을 줄 수 있어서다. 전륜에 맥퍼슨 스트럿, 후륜에 멀티 링크 방식을 쓴 ID.4는 적당히 안락하고 적당히 단단하다.
타이어는 앞 235/50 R20, 뒤 255/50 R20 사이즈이고, 한국타이어와 피렐리, 브리지스톤 제품이 랜덤으로 달린다. 내가 시승한 차에 달린 피렐리 제품도 괜찮았지만, 이날 시승을 도와준 인스트럭터들은 “한국타이어 제품의 횡 강성이 미세하게 우세하다”라고 귀띔한다. 횡 강성이 우수하면 커브 길에서 차체를 더 단단하게 지지해주므로 속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ID.4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정숙성이다. ‘전기차는 당연히 조용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조용한 전기모터 때문에 오히려 풍절음이나 하체 소음이 더 크게 들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ID.4는 풍절음을 아주 잘 잡았을 뿐만 아니라 모터의 화전 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귀를 아주 쫑긋 세워야 타이어 굴러가는 하체 소음이 들리는 정도다.
최고출력은 150㎾(204마력)로, 차체 크기와 비교할 때 적당하다. 영구 자석모터(PSM)가 뒷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이 차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8.5초로 무난한 편. 그러나 전기차 특유의 강력한 초기 가속력으로 체감 가속력은 훨씬 좋다. 국내에는 이 사양 한 가지만 들어오지만, 미국의 경우는 배터리 용량 62㎾h의 표준형부터 사륜구동형인 AWD 프로, 최고출력 295마력(미국 기준)의 프로 S/프로 S 플러스 등 매우 다양한 모델이 출시된다. 폭스바겐이 유럽 이외의 수출국으로 한국을 선택해준 건 아주 고맙지만, 미국 고객들이 현지(미국 채터누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덕에 다양한 라인업을 만날 수 있는 것에 비할 바는 못 된다. 폭스바겐 본사의 지원이 된다면, 한국에도 더 다양한 트림이 공급되면 좋겠다.
ID.4의 1회 충전 주행거리는 도심 426㎞, 고속도로 379㎞, 복합 405㎞다. 앞서 다른 전기차를 장거리 시승해본 경험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400㎞ 이상이면 좋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전남 영암까지 주행한다고 가정하면 300㎞대 주행거리로는 2회 이상 충전을 해야 하지만, 400㎞가 넘어가면 1회 충전만 해도 된다. 주행거리가 그 이상이 되면 더 좋긴 하겠지만, 완충까지 시간이 더 걸리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충전 속도는 135㎾ 충전기로 5%에서 80%까지 36분이 걸린다.
여러모로 괜찮은 전기차이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현대나 기아, 제네시스처럼 회생제동 단계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기능은 이 차에 없다. 대신 D(드라이브) 모드에서 타력 주행을 강화한 코스팅 기능을, B(브레이크) 모드에서는 회생제동 기능을 강화하도록 했다. 만약 회생제동 기능을 더 세분화한다면, 현재의 전비(복합 4.7㎞/㎾)를 더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격은 5490만원이고, 국비 보조금은 651만원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민이라면 여기에 200만원을, 경기도민이라면 300~500만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경상북도에서는 600~1100만원이 지원되므로, 국비 보조금과 합치면 최저 3739만원에 ID.4를 구매할 수 있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충분히 구매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죽을 때까지 내연기관만 타려고 했던 내가 전기차로 갈아타는 걸 고려했다면 말 다 한 거 아니겠나. ID.4는 이미 계약 대수가 7000대를 넘겨 지금 계약해도 올해 안에 받을 수 없다. 그러니 가성비 좋은 수입 전기차를 사려고 했다면 당장 폭스바겐 전시장으로 달려가길 권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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