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열린 고성능 크로스오버, 인피니티 뉴 QX5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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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인 세단은 꾸준히 사랑받는 패밀리 카지만, SUV와 크로스오버가 맹렬한 성장세로 패밀리 카의 권좌에 도전하고 있다. 올해 한국시장에서 SUV의 시장 점유율은 37%에 육박할 전망이다. 신차 3대 중 한 대는 SUV인 셈이다. 특히 소형차 시장에서도 SUV가 득세하면서 생애 첫 차부터 패밀리 카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그 영향력은 점차 막대해질 것으로 보인다.
SUV의 장점이라면 높은 시야 덕에 운전이 편리하고 트렁크가 세단보다 넓다는 점이겠다. 일반적으로 레저를 즐기거나, 아이를 위한 유모차 등을 싣어야 하는 부모들에게 SUV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세단에 비해 정작 탑승 공간은 좁은 편이고, 무엇보다 운전 재미에 대해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세컨드 카를 둘 여력이 있다면 괜찮겠지만, 달리기를 즐기는 젊은 아빠라면 미련이 남는 것이다.
새롭게 바뀐 인피니티 QX50은 더 이상 달리기를 포기하는 취사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고성능 크로스오버다. 스포츠 세단에 기반한 탄탄한 차체와 동급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3.7L V6 엔진을 갖췄다. 또 부분변경과 함께 전장이 110mm 늘어나면서 컴팩트 SUV에서 아쉬웠던 거주성을 크게 향상시킨 점도 돋보인다. 패밀리 카로도, 스포츠 카로도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겠다.
QX50이라는 모델은 알아도, 인피니티 내에서 어떤 컨셉을 담당하고 있는 지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2007년 출시 당시의 이름은 EX로, 컴팩트한 D-세그먼트 크로스오버로 개발돼 BMW X3, 아우디 Q5 등과의 경쟁을 염두에 뒀다. 우리나라는 2008년 1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EX가 런칭했던 시장으로, 인피니티의 한국 진출 선봉에 섰던 모델이기도 하다.
특히 스포츠 세단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피니티 G 세단(코드명 V36)에 기반해 개발됐다는 점이 특징이다. G 세단은 일본 내수에서는 전설적인 스포츠 모델, 닛산 스카이라인의 이름을 잇는 모델이다. EX 역시 일본 내수에서는 "스카이라인 크로스오버"라는 이름으로 판매될 정도로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강조한 차다.
인피니티의 네이밍 정책이 바뀌면서 기존 EX에 새롭게 붙여진 이름이 바로 QX50이다. 2014년부터 새 이름으로 판매됐지만 최신 트렌드에 맞춰 부분변경된 것은 지난 해의 일이다. 앞뒤 범퍼가 보다 스포티한 형상으로 바뀐 점이 외관 상 가장 큰 특징이다. 금속 느낌의 스키드 플레이트가 앞뒤로 추가되고, LED 주간 주행등과 LED 안개등이 적용됐다. 라디에이터 그릴 역시 인피니티 패밀리 룩에 맞춘 더블 아치 디자인에 메쉬 타입이 적용됐다.
뒷편에서는 리어 스포일러가 보다 커지고 범퍼 모서리에 각을 세워 근육질 이미지를 강조했다. 앞쪽에 비하면 극적인 변화는 없다. 기존 모델의 스타일이 워낙 세련된 덕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요즘 트렌드에는 조금 뒤쳐진 스타일의 헤드라이트 그래픽을 손보면 훨씬 세련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뉴 QX50의 가장 극적인 반전은, 가장 티가 나지 않는 측면에 숨어있다. 전장이 4,640mm에서 4,750mm로 110mm나 늘어난 것. 휠베이스 역시 80mm 늘어났다. 렉서스 NX, BMW X3, 아우디 Q5 등 경쟁 모델들이 모두 4,650mm에 못 미치는 만큼 공간 확보 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페 스타일의 바디 라인은 거의 해치지 않았다.
사실 롱 휠베이스 모델은 중국의 수요에 따라 중국에서 2014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북미 등 주요 시장에서 모두 시판 중이다. 실용성때문에 SUV를 구입했는데 역설적으로 뒷좌석 공간의 부족함을 호소하는 소비자가 많은데, 특히나 패밀리 카 수요가 많은 국내 시장에서는 상당히 경쟁력이 있는 부분이다.
늘어난 전장은 고스란히 실내공간 확장에 기여한다. 실내 공간은 235L나 늘어났고, 2열 레그룸이 110mm 넓어졌다. 거의 국산 준대형 세단과 맞먹는 뒷좌석 공간 덕에 성인 남성이 타도 불편하지 않다. 트렁크 용량은 평상 시 527L, 2열 폴딩 시 1,495L에 달한다. 루프에서부터 포물선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라인 덕에 트렁크 공간은 아랫쪽이 넓어 실용성이 뛰어나다. 공간에 관한 한 경쟁자를 찾기 어렵다.
반면 앞좌석에서는 인테리어 완성도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다. 기존 QX50, 아니 EX 시절로부터 거의 변화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 버튼이나 시프트 레버의 작동감은 투박하고 레이아웃은 트렌드에 뒤쳐지며 디스플레이는 사용법이 까다롭다. 디스플레이 메뉴 작동 시 해상도가 매우 떨어지는 점이나 계기판 클러스터 사이의 액정이 풀컬러가 아닌 점은 상당히 아쉽다. 부분변경 시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던 부분들이라 더욱 불만이다.
불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가죽이나 우드의 재질감은 프리미엄 브랜드답게 비교적 고급스럽고, 무엇보다 QX50의 보스 오디오 시스템은 동급 어떤 경쟁 모델보다 음향이 뛰어나다. 오디오에서 오는 만족감이 상당해서 시승 내내 귀가 즐거웠다는 데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자, QX50과의 첫 만남에서는 놀라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동급 최대의 공간은 매력적이지만 인테리어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달리기 실력 뿐이다. 제원 상으로는 꽤나 놀라운 성능이다. 세계적인 엔진으로 명성이 자자한 VQ 엔진은 3.7L V6 고회전 사양(엔진명 VQ37VHR)이다. 모델 별로 약간의 세팅 차이는 있지만 닛산 370Z, 인피니티 G37, Q70, QX70 등 다양한 고성능 모델에 두루 적용돼 그 신뢰성과 성능을 인정받았다. 최고출력은 329마력, 최대토크는 37.0kg.m이다.
변속기는 변속 시 회전수를 보정해 주는 DRM(Downshift Rev. Matching) 기능이 포함된 자트코제 7속 자동변속기가 적용됐으며, 패들 시프트는 탑재되지 않았다. 여기에 닛산 고유의 전자식 4륜구동 시스템인 아테사(ATTESA) E-TS AWD가 탑재돼 평상 시에는 뒷바퀴를 굴리다가 최대 50:50까지 앞바퀴로 구동력을 배분한다.
국내에서 동급 중에 이런 성능을 내는 모델은 거의 없다. 이 정도 크기에 300마력이 넘는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이라니! 디젤이 주류인 시장에서 당연히 이단아적인 존재다. 순수한 수치로만 보자면 313마력을 내는 아우디 SQ5나 340마력의 가솔린 터보 엔진을 탑재한 포르쉐 마칸 정도만 떠오른다.
출력만 높고 어설픈 달리기 실력을 가진 모델은 더욱이 아니다. 인피니티는 모든 라인업에 걸쳐 스포티한 주행감각을 강조하고 있다. QX50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상당히 탄탄하게 세팅됐고, 최저 지상고도 163.7mm로 낮은 편이라 승용 스포츠 모델을 운전하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약간 시야가 넓은 점을 제외하면 일상 주행에서 이 차가 SUV라는 것을 종종 잊어버릴 정도다.
탁 트인 도로에 들어섰다. 시내의 막히는 길과 요철들을 지나며, 이미 QX50의 달리기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좀 더 제대로 달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일상 주행에서 한없이 부드러웠던 엔진이 스포츠카의 본성을 드러내며 우렁찬 소리를 낸다. 터보와는 달리 일관되게 이어지는 토크가 매끄럽게 차를 밀어낸다.
VQ 엔진의 회전수는 날카롭게 치솟아 순식간에 7,000rpm을 넘어섰고, 차는 번개같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변속기는 상당히 영리해 듀얼클러치 못지 않게 빠른 변속을 이뤄내고 물샐 틈 없이 동력을 네 바퀴로 전달했다. 가속 시에는 후륜의 슬립이 일어나지 않도록 앞바퀴에 구동력이 분배되지만, 속도가 붙은 뒤에는 후륜구동 차와 다를 바가 없어 상당히 예리하게 코너를 파고 든다. 그러다가도 자세가 무너질 성 싶으면 앞바퀴가 다시금 자세를 잡아 준다.
0-100km/h 가속 시간은 공식 제원은 없지만 측정에 따르면 6초 내외로 웬만한 스포츠카들과 견줄 만하다. 1,855kg의 중량을 생각하면 실로 대단한 가속력이다. SUV형 차체가 무색하게 속도를 높여도 좀처럼 불안감은 느껴지지 않고 노면에 달라붙는다. 초고속 영역에서의 안정감은 독일차와 견줘도 손색이 없다. "이 차에 왜 이런 엔진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평범한 SUV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강력한 퍼포먼스다.
다만 흠이라면 연비다. 공인연비는 복합 8.3km/L, 도심 7.2km/L, 고속 10.1km/L이다.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태생적 한계로, 최근 트렌드인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들의 훌륭한 연비에 비하자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실연비는 공인연비보다 다소 낮았지만 조금 더 연비에 집중한다면 공인연비 정도를 기록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찔한 드라이빙 성능을 맛보면 나쁜 연비는 너그러이 용서가 된다.
"참 오묘한 차", QX50을 시승한 뒤에 내린 평가다. 내외관 디자인이나 파워트레인 모두 최신 트렌드와는 약간 거리가 있지만, 그런 유별남 때문에 더 끌리는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아쉬웠던 인테리어도 계속 타다 보니 큰 불만은 없었다. 어쩌면 동급 최강의 달리기 실력 때문에 부족한 부분들조차 예뻐 보이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성장판을 열어 허리가 길어지면서 퍼포먼스를 위해 거주성을 희생할 필요도 없어졌다.
또 한 가지 매력 포인트는 가격이다. QX50은 부분변경과 함께 5,090만 원의 단일 트림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쟁 모델들이 6,000만 원대부터 포진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이다. 게다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드넓은 실내 공간은 성인 가족을 위한 패밀리 카로 사용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없다.
저유가 덕에 조금 나쁜 연비도 부담이 크지 않고, 착한 가격은 자꾸만 QX50을 돌아보게 만든다. 한 번 운전대를 잡으면 여느 경쟁자에서도 느끼지 못한 스릴도 맛볼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QX50만의 매력적인 색채는 직접 타 보지 않으면 느끼기 어렵다.
QX50은 상당히 개성이 강한 차지만, 그렇기에 뚜렷한 매력을 발산하는 차다. 보다 넓고 실용적인 SUV를 원하는 소비자에게는 롱 휠베이스의 탁월한 거주성이, 주말에는 자유롭게 질주하고 싶은 소비자에게는 강력한 VQ 엔진이 어필한다. 스포츠카의 주행 감각과 SUV의 실용성이 이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차는 결코 흔치 않다. 가족과 질주본능 사이에서 고민하는 열혈 아빠를 위한 최고의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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