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상남자의 프리미엄 SUV 전쟁

컨텐츠 정보

본문

이미지 1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연일 계속되는 폭염 기록을 갈아 치우는 어느 한 여름. 흙먼지를 일으키며 뜨거운 아스팔트를 태워버린 건 BMW X6였다. 2014년이 끝날 즈음 우리에게 처음 얼굴도장을 찍었다.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심술 가득한 얼굴이며 육중한 몸매는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그래도 달리기실력만큼은 화끈했다. 쿠페와 SUV 사이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이종교배는 이율배반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BMW는 그런 X6를 소개하며 자꾸만 창의적인 발상을 강조했다. 세상에 없던 SUV? 아니, 세상에 없던 쿠페는 어떻게든 존재이유가 필요했다.

▲ 누구나 저 커다란 세 꼭지 별을 탐낼 것이다. 뭐? 너무 크다고?

한편, 메르세데스는 느긋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설사 BMW가 성공하더라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듯 여유를 부리면서 SUV 본분에 충실한 GLE를 내보냈다. 최신 메르세데스-벤츠의 정돈된 패밀리룩과 새로운 작명법칙으로 M-클래스의 생명선을 더욱 늘렸고, 안정적인 성능을 또 다시 심도 깊게 가다듬으면서 진정한 중형 SUV 라인업을 꿰찼다. 새로운 디자인과 이름의 효과는 분명했다. 마치 싱글앨범을 발표한 걸그룹처럼 이미지 변신에 대성공. 이미 판매량에서 경쟁모델을 두 배 차이로 압도한다.

▲ 진화하는 아우디의 싱글 프레임 그릴. 보톡스 중독은 아니지?

세 꼭지 별과 비머의 허세를 가만히 두고만 보았다면 결코 아우디가 아니다. 아우디는 10년 동안 고생했던 Q7을 위해 새로운 DNA를 선물했다. 결과적으로 Q7은 아우디의 최신예 SUV로 거듭났다. 그 동안 아무런 보상 없이 장수했던 Q7을 위로하듯 아우디는 최신기술을 아낌없이 담았고, 전통적인 콰트로시스템이 SUV의 자존심을 굳건히 지켜주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부족했다. 아우디는 Q7의 필살기로 반자율주행을 손꼽았다. 과연 이번 경쟁에서 필살기 역할을 톡톡히 했을까?

▲ 볼보 하면 안전이 아니라, 자꾸 망치만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 건 볼보였다. 볼보는 겁도 없이 튀어나와 그들만의 리그에서 도전장을 내던졌다. 사실 볼보의 도약에 놀란 건 우리가 아니라 세 꼭지 별, 비머 그리고 콰트로 군단이었다. 볼보는 도전자답지 않게 너무나 여유로웠고, 실제로 그럴 만한 품질과 성능을 품고 있었다. 더 이상 낄 자리조차 없을 것 같았던 그들의 틈바구니를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브랜드를 대표하는 럭셔리 SUV가 한자리에 모였다. 표면적으로는 서로를 존중하며 정중하게 일면식을 치렀다. 하지만 시작 전부터 팽팽한 기 싸움으로 이내 분위기가 달아오른다. 브랜드 엠블럼 떼고 냉정하게 평가를 시작했다. 신사적인 배려는 더 이상 없다. 폭염조차 그들을 말릴 수 없는, 그야말로 일촉즉발 상황이다.

이미지 2

먼저 패기 있게 도화선에 불을 붙인 건 역시 BMW다. X6는 뜨거운 심장을 펄떡거리며 선두로 나섰다. 이 친구가 보인 자신감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탄 X6는 x드라이브 M50d 모델로 3.0리터 디젤엔진에 3단계 터보차저를 달아 무려 381마력을 뿜어냈다. 0→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5.2초. 고속도로에서 X6는 흥분한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스포츠로 세팅한 주행모드는 서스펜션을 더욱 단단하게 죄었다. 계기반은 바쁘게 변속타이밍을 알렸고, 자동기어는 팽팽한 긴장상태로 기어를 바꿔 물었다. 이토록 커다란 덩치를 단숨에 제압하는 브레이크 성능도 발군이다. BMW의 허세는 결코 설레발이 아니었다. X6는 아스팔트 위에서 쿠페처럼 쏘다녔다. 비록 날렵하지는 않아도 예리하게 코너를 파고들었고, 끈기 있게 노면을 부여잡는 인내심이 대단했다.

이미지 3

날뛰는 X6의 꼬리를 잡은 건 볼보 XC90이다. 가솔린엔진에 수퍼차저와 터보의 콤비네이션. 여기에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힘을 보태 400마력을 뛰어넘었다. 비록 2.0리터 가솔린엔진이지만 3.0리터 트리플 터보엔진을 상대한 셈이다. 둘만의 속도경쟁은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가속과정은 하늘과 땅 차이. X6가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달리는 야생마 같았다면, XC90은 하늘을 나는 근두운처럼 부드럽게 질주했다. XC90은 신사 중에서도 젊은 신사다. 몸놀림이 유난히 가벼웠고 맹렬하게 달릴 때조차 품위를 잃지 않는다. 다만 속도를 줄일 때마다 늘어지는 브레이크페달이 말썽이었다. 하이브리드 특유의 이질적인 감각을 지우기 힘들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제동력에는 큰 불만이 없었다.

둘의 뜨거운 속도경쟁에도 쉼표가 필요했다. X6와 XC90이 서로 주먹을 주고받을 때, 아우디 Q7과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옆에서 여유롭게 몸을 풀고 있었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쉽게 쉽게 그들 둘을 쫓고 있었다. 이 정도 달리기쯤 식은 죽 먹기라는 듯, 부드럽게 때로는 화끈하게 도로를 움켜쥐고 달려간다.

이미지 4

어느덧 모두가 오프로드를 접어든 순간, 아우디와 메르세데스가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Q7은 에어서스펜션을 부풀려 최대로 높이고 차체의 기울기를 비롯해 다양한 주행정보를 3차원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Q7은 파격적인 다이어트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구형보다 325킬로그램의 감량 효과는 험로에서 두드러졌다. 차체는 유기적으로 움직였고 콰트로의 네바퀴굴림이 신뢰를 더한다. 안팎으로 따져봐도 똑똑한 SUV가 틀림없었다.

▲ 누가 메르세데스를 재미없다고 말했나? GLE는 오프로드에서 천하무적이다

한편 GLE는 천부적인 오프로더였다. 말쑥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울퉁불퉁한 험로를 빠르게 씹어 삼켰다. 9G-트로닉 트랜스미션과 결합한 다이내믹 셀렉트는 노면에 따라 컴포트, 스포트, 윈터, 오프로드 중 선택하면 된다. 일단 주행모드가 결정되면 일사천리로 엔진과 서스펜션이 궁합을 맞췄다. 기다란 스트로크를 확보한 서스펜션과 강직한 섀시는 굳건하게 충격을 다스린다. GLE의 4매틱은 앞뒤로 일정하게 50:50의 동력을 전달하는 상시 네바퀴굴림 방식이다. 고운 흙으로 뒤덮인 가파른 비탈을 오를 때 민첩하게 반응하며 기지를 발휘했다. 급기야 울퉁불퉁한 험로를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한다. 물론 다른 SUV도 흙먼지를 일으키며 GLE 뒤를 따랐다. 딱 한 대만 빼고 말이다. 비운의 주인공은 X6였다.

▲ 어라! 고속도로에서 날아다녔던 X6가 겁쟁이가 돼버렸다

X6가 짧은 하체로 애를 먹을 때, 쿠페와 SUV 조합이 얼마나 엽기적인 발상인지 알 수 있었다. 물론 x드라이브는 온·오프로드를 가리지 않고 영민했다. 하지만 다른 SUV가 에어서스펜션으로 차체를 높일 때, 정작 X6는 작은 구덩이 앞에서 망설이며 움찔거리고 있었다.

▲ 에어서스펜션을 요긴하게 쓰고 있는 Q7과 XC90

실내도 사정은 비슷했다. 다른 SUV는 제대로 된 트렁크공간과 심지어 3열 시트를 제공할 때, X6는 비좁은 헤드룸에 간신히 머리를 욱여넣어야 했다. 스타일 하나로 포기할 게 너무나 많은 현실이었다. 차라리 멋을 포기하고 제대로 된 SUV 라이벌들이 실용성을 운운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아우디 Q7은 3열 시트를 품고서 가장 넉넉한 실내공간을 허락했다. 뿐만 아니라 세련된 버추얼 콕핏 등의 단정한 인테리어로 마감실력이 수준급이다. 한편 GLE는 고급스럽되 철저하게 보수적이다. 전통적인 SUV답게 승차공간을 명확하게 확보하고, 한없이 부드러운 가죽시트가 우리를 품었다. 비록 우리가 흘린 땀 때문에 시트가 축축해졌지만 그래도 천만다행이다. 빵빵한 에어컨과 통풍기능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종일 찝찝한 기분으로 SUV 테스트를 진행할 뻔했다.

▲ 라이벌을 압도하는 인포테인먼트. 보고 좀 배워라!

GLE는 넷 중 가장 많은 아날로그 버튼을 남겨두었다. 특히 인포테인먼트를 두고 할 말이 많았다. 터치로 반응하는 컨트롤러는 빠르게 반응하며 GLE의 다양한 편의장비를 똑똑하게 제어했다. Q7도 만만치 않다. 벼루 같은 터치패드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면 정확하게 인식해 복잡한 명령도 척척 전달한다. X6는 i드라이브를 고집했지만, 컨트롤러 상단에 터치패드를 마련했다. 하지만 혁신을 실현한 건 XC90이었다. 마치 태블릿 PC를 그대로 이식한 모니터와 똑똑한 터치 감각조차 칭찬받아 마땅했다. 여기에 직관적인 UI가 우리를 친절하게 반겼다. XC90은 중간 평가에서 기자 여럿으로부터 최고로 인정받았다. 나뭇결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인테리어도 칭찬 일색이다.

이미지 5

모두 XC90을 다시 타보길 원했다. 당돌한 루키의 실력이 궁금하기도 했고, 한계를 의심하기도 했다. XC90은 언제 어디서나 유연하고 여유롭게 순항을 즐겼다. 라이벌 중 유일하게 GLE와 닮은꼴이었는데, 부드러운 승차감과 외부소음을 최대한 단절시킨 주행품질은 GLE와 XC90의 공통분모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볼보는 소심한 겁보였다. 조금만 속도를 높여도 여지없이 미끄러지는 언더스티어에 시달려야 했고, 급차선 변경을 시도하면 온갖 전자장비가 개입하며 유난을 떨었다. 게다가 어찌나 안전벨트를 세게 잡아당기는지 마치 사디스트처럼 나를 학대했다. 때마침 GLE가 가뿐하게 시범을 보인다. 속도를 높여 거침없이 코너를 돌파했는데, 롤링과 피칭이 일기는 했지만 끈질기게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Q7과 X6도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코너를 향해 몇 번이고 몸을 날렸다. 다행히 둘은 체면치레에 성공했다.

이미지 6

한편, 자율주행을 언급하자 Q7이 필살기를 자신 있게 꺼내 보였다. Q7은 액티브레인어시스트를 활성화해 차선을 유지하고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이 속도를 제어했다. 차선을 유지하는 방법도 세팅에 따라 두 가지. 조기개입을 선택하면 차선중앙을 끊임없이 유지했고, 후반 개입을 선택하면 차선을 넘어가는 시점에만 슬쩍 핸들을 돌렸다. 속도가 시속 65km 이하로 떨어지면 교통체증 지원시스템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이때부터 꿈에 그리던 자율주행에 가까웠다. 한껏 상기된 Q7은 완벽한 시범을 마치고서 도전자를 기다렸다. GLE는 최상위 AMG 모델에만 디스트로닉이 달려있고, X6는 오직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만 지원한다. 결국, 유일한 도전자로 XC90이 나섰다.

이미지 7

볼보는 ‘파일럿 어시스트Ⅱ’라는 이름으로 반자율주행을 시작했다. 개념은 Q7과 크게 다르지 않다. 레이더가 앞차와의 거리를 계산해 속도를 유지하고, 카메라와 센서가 차선을 인식해 중앙으로 차를 몰았다. XC90은 차분하게 스스로 운전을 이어갔고, 심지어 ‘인텔리세이프’와 연동해 도로이탈보호시스템, 자동차를 비롯해 사람과 큰 동물까지 감지하는 시티 세이프티가 차를 자동으로 세웠다. 결국, 반자율주행은 Q7의 필살기라고 할 수 없었다. 완성도를 두고 승패를 갈라야 했지만, 우리는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최고의 SUV를 가리는데 반자율주행은 그저 사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미지 8

넉 대의 SUV는 지칠 줄 몰랐다. 누구 하나 쓰러질 때까지 싸울 기세였다. 이제는 엠블럼을 떼고 냉철한 판정을 기다릴 때. 우리는 쟁쟁한 SUV를 앞에 두고 곤혹스러운 심사를 시작했다. 우선, BMW는 도로의 전사였다. 압도적인 파워와 날카로운 주행성능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했다. 하지만 애매한 장르가 마음에 걸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디자인이 눈에 거슬렸다. X6는 실용성과 오프로드 능력 대신 스타일에 집중한 셈인데, 솔직히 외모가 호감형은 아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Q7에게 눈을 돌렸다. 뛰어난 상품성, 믿음직한 주행성능, 똑똑한 편의장비까지 모두 좋은데 가슴 설레게 하는 결정적인 한방이 없었다. 아우디는 비싼 가격을 두고 냉정한 평가를 받아야 했다.

▲ 세 꼭지 별, 비머, 콰트로 군단, 토르의 망치.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결국, 무서운 신예 XC90과 우직한 스테디셀러 GLE를 두고 심사가 길어졌다. XC90은 누구나 후하게 점수를 주고 싶어 했다. 세련미 넘친 디자인이며 똑똑한 인포테인먼트가 제대로 한 몫 했고, 무엇보다 12년 만의 극적인 변화를 높이 샀다. 하지만 우리는 GLE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선한 메르세데스-벤츠 패밀리룩과 고급스러운 실내품질은 정통 SUV에 걸맞은 품위를 약속했다. 주행성능은 다양한 주행모드로 운전자 취향을 존중했고, 오프로드에서 강인함은 흡사 헐크를 연상케 했다. 결국, 상품성을 신중하게 따질수록 우리는 GLE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우리의 심사가 절대적인 지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심사를 마친 우리는 서로 GLE를 탐냈다. 치열한 심사현장을 떠나 조금이라도 편안한 귀갓길을 간절히 바랐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결론은 났지만, 폭염보다 뜨거웠던 SUV 경쟁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 잠시나마 계급장 떼고 붙었던 덩치들의 한판 대결. 그들의 자존심 대결에 우리가 녹아내릴 지경이었다.

김장원 기자
제공
all about gear 기어박스 (www.gearbax.com)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자동차 시승기

최근글


  • 글이 없습니다.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