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SUV, 지프 레니게이드
컨텐츠 정보
- 710 조회
- 목록
본문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차가 있다. 앞 유리를 젖히고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를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강을 건너며 숲속을 헤집고 진흙을 헤쳐나가던 지프, 윌리스 MB다(같은 차를 만들었던 포드는 이 차를 General Purpose의 앞 글자를 따 GP라고 불렀고 이 별칭이 지프(JEEP)가 됐다는 설도 있다).
레니게이드는 윌리스 MB와 랭글러 루비콘의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스타일을 살린 지프 브랜드의 가장 작은 모델이다. 지프의 정통성을 계승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덧댔고 여기에 일탈적이고 반항적인 굵직한 선들로 독특한 외관을 갖게 했다.
야무지고 당돌한, 그리고 독창적인 외관
크고 각진 모델들을 고집해왔던 지프는 레니게이드를 작고 동글동글하게 디자인했다. 일곱 개의 수직 라인으로 채워진 라디에이터 그릴은 고급스러운 광택의 세로형 그릴로 멋을 부렸다. 여기에 동그란 헤드램프, 아주 조금씩 곡선을 보탠 보닛 라인과 휠 하우스, 그리고 후면으로 이어지는 벨트 라인도 수평을 기본으로 했지만 여기에도 엷게 리듬을 줬다.
차체 전부를 휘감은 두툼한 플라스틱 사이드 가니쉬도 리듬을 타게 해 전체적으로 당돌해 보인다. 측면은 비율이 좋다. 전후 오버행을 짧게 배분하고 앞쪽으로 살짝 기운듯한 분위기에 루프 라인은 후면에 포인트를 줘 차체를 길게 보이게 하면서도 역동적인 느낌이 들도록 했다,
후면 테일램프에는 윌리스 MB의 보조 연료통 문양이 들어갔고 두 겹의 테두리로 둘러싸 강인해 보인다. 안개등과 후진등을 포함해 전면과 후면의 램프류만으로도 레니게이드의 개성, 지프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세심한 터치들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같은 급 모델과 비교해 작지 않은 체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전장 4255mm, 전폭 1805mm, 전고 1695mm의 수치는 경쟁모델들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크고 길고 넓다. 덕분에 실내 공간에 꽤 여유가 있다.
응답하라 1941, 첨단과 전통이 어우러진’ 디지로그’
운전석에 앉으면 대시보드 중앙으로 불쑥 튀어나온 에어벤트 바로 아래 ‘SINCE 1941’ 문구가 보인다. 윌리스 MB가 탄생했던 때다. 실내는 군 시절, 가끔 타 봤던 ‘국산 군용 지프’와 전혀 딴판이지만 조수석 핸들, 보닛의 시작 부분이 살짝 보이는 시야, 스피커와 내비게이션 패널에 밀리터리 느낌들이 조금씩 살아있다.
계기반도 감각적이다. 패널에 흙탕물이 튀는 모양으로 표시한 레드존을 표시한 태코미터, 콘솔 매트의 모압 유타 지역 지도, 아날로그의 감성을 살린 냉각수 온도계와 연료 그래프가 지프답다. 센터페시아는 첨단 편의 사양을 조작하는 버튼들로 가득하다.
앙증맞은 크기의 내비게이션 모니터, 공조장치, 시트 및 스티어링 휠 열선이 있고 센터 콘솔 주변에 오토 파킹 브레이크도 자리를 잡았다. 또 지프가 자랑하는 사륜구동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노면 상황에 맞도록 구동력을 배분하는 Selec-Terrain 지형 설정 시스템 버튼도 보인다.
사각지대를 감지하고 경고해주는 장치와 차선이탈 방지 시스템, 후방카메라, 전복방지시스템 등 첨단장치들도 갖춰졌다. 말을 만들자면 아날로그 스타일에 첨단 디지털이 조합된 ‘디지로그’다.
공간은 탑승자에게 여유가 있지만, 트렁크는 상대적으로 용량이 작다. 기본용량은 524ℓ, 대신 2열 시트를 접으면 1438ℓ까지 확보된다. 레니게이드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병기는 마이 스카이 오픈 에어 선루프다. 두 개로 나뉘어 있고 앞쪽은 선루프처럼 여닫거나 뒤쪽과 함께 떼어 낼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내비게이션은 한글 지원에 충실하지만 부정확하고 목적지 검색에 인색한 데다 디자인도 촌스럽다. 중앙 에어벤트의 위치가 너무 높아 방향을 낮춰도 얼굴 쪽으로 계속 바람이 불어와 신경이 쓰인다.
경쾌함 대신 묵직한 반응, 망설임 없는 돌파
시승 차는 1956cc 배기량에서 최고출력 170마력(3750rpm), 최대토크 35.7kg.m(1750rpm)를 발휘하는 2.0ℓ I4 디젤 터보 엔진이 올려진 리미티드 트림이다. 수치상 1750rpm부터 시작하는 토크가 순발력을 보여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굼뜨다.
가속페달을 강하게 압박해도 즉각 속도를 올려주지 않는다. 40km/h 이상 중속에 도달해야 이런 답답함이 사라진다. 그런데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빠른 반응보다 묵직함이 요구되는 차량 특성을 이해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다.
정지해 있을 때, 그리고 저속에서의 엔진 소리도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엔진의 진동이 차체나 운전대로 전달되지는 않는다. 속도가 상승하면 엔진 소음이 잦아들고 차체 움직임도 매끄러워진다. 느리게 반응하지만 신중하고 묵직하게 거동하는 만큼 어디든 헤쳐 나갈 것 같은 믿음이 가는 것도 레니게이드의 장점이다.
맥퍼슨 스트럿으로 전후 서스펜션을 구성하고 있는 샤시의 견고함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1695mm의 전고를 갖고 있지만 차체의 좌우 흔들림이 크지 않고 쇽업쇼버의 댐핑 스트로크도 적당해 험한 길에서도 차체의 요동이 충격적이거나 심하지 않다.
간이 오프로드(채석장)에서 체험한 사륜구동의 맛도 삼삼했다. 차체의 상하 요동을 제어하는 쇽업쇼버는 노면 상태를 가리지 않고 흡수력과 반발력이 적절해 마구잡이로 으깨놓은 자갈길은 물론 진흙 길과 언덕을 부드럽고 진득하게 돌파해 나간다.
셀렉터 레인 지형 설정 시스템은 오토, 스노우, 샌드. 머드로 각각의 지형에 따라 설정할 수 있다. 연료 효율성은 만족스럽지 않다. 여러 형태의 도로를 섞어 가며 달린 시승 거리는 약 230km, 연비는 10km/ℓ를 조금 넘었다. 표시된 복합 연비가 12.3km/ℓ니까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고 동급의 소형 디젤 SUV와 비교하면 분명한 열세다.
총평]
이런 아이코닉 한 차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자동차가 단순한 모빌리티에서 즐기고 느끼는 라이프 개념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에서 눈요기만으로 맛이 나고 배가 부른 차다. 반응이 느리고 9단 변속기의 효율성이 완벽하게 실현되지 않고 촌스럽고 부정확한 내비게이션이 불만이지만 레니게이드는 생김새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만족감을 준다. 올-뉴 레니게이드 리미티드 2.0 AWD의 가격은 4190만원이다.
ⓒ 오토헤럴드(http://www.autoherald.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