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개성의 프렌치 SUV, 시트로엥 C4 칵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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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시장에 다소 미적지근했던 프랑스 메이커들의 ‘색다른’ 반격이 시작되었다. 시트로엥 C4 칵투스는 개성 넘치는 디자인에 좋은 연비를 겸비한 도심형 SUV로 답답한 한국 도시 풍경에 신선한 충격을 던질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 자동차에 대한 인상은 ‘평범하지 않은 개성’으로 대변된다. 이것은 프랑스라는 나라가 가지는 예술성, 남과 같음을 불허하는 독창적인 심미안에서 기인된 것이리라. 자동차 분야에서도 그런 특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글로벌화된 오늘날에는 점차 희박해져 가는 추세인 듯하다.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개성도 중요하지만 무난함 역시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 독일차에 비해 개성이 강한 프랑스차들은 시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확실히 요즘 푸조나 르노를 보면 1950~70년대 수준의 색깔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반면 시트로엥은 그런 와중에서도 여전히 프랑스 색채를 유지하고 있는 메이커. 물론 꾸준히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90년대 국내에서 팔렸던 XM은 얼굴이 에스페로와 닮았다는 이유로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두 차 모두 베르토네 디자인이어서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참신한 디자인의 대형 세단 C6나 작으면서도 고급스러운 DS 라인 등 새로운 시도로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시트로엥 가풍 이어받은 신선한 디자인
푸조에 비해 자유롭고 개성 넘치는 가풍은 시트로엥의 개성이자 강점이다. 그런 시트로엥 중에서도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모델이 바로 C4 칵투스. 2014년 시장에 나온 이 콤팩트 SUV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시트로엥 오리지널 디자인의 첫 도심형 SUV(1970년대의 네바퀴굴림 메아리를 제외한다면)이라는 점이다. 이보다 앞서 팔리기 시작한 C-크로서와 후속작 C4 에어크로스는 모두 미쓰비시와의 합작품이었다. 반면 C4 칵투스는 C3, 푸조 2008의 PF1 플랫폼을 바탕으로 뼛속까지 프랑스 향기로 채운 파리지앵이다. 물론 일본색 없는 프랑스차가 상품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프렌치 레스토랑에 왔다면 퓨전보다는 본격 프랑스 요리를 즐기는 게 좋지 않을까? 스시에 프렌치 소스를 부은 퓨전요리가 취향 저격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난해 서울모터쇼에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었던 C4 칵투스는 그 독특한 디자인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연말쯤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는데, 기다림은 예상보다 길어져 1년이 훌쩍 넘고 말았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기자는 파리로 날아가 현지에서 직접 C4 칵투스를 만나볼 수밖에 없었다.
시승차가 있는 시트로엥 본사(Citroen, seige social)는 파리 순환도로 북쪽, 삼성전자 프랑스 건물과 접해 있었다. 전기 컨버터블 E-메르히의 대형 간판이 걸려 있어 순환도로를 달리면서도 금세 눈에 띄었다. 파리에서도 악명이 높은 슬럼가가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 하나를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도 헤드램프 부분에 조명을 박아 넣은, 시트로엥의 센스 넘치는 광고 패널 덕분인 듯했다.
친절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건물 1층 안쪽 시승차를 위한 공간에서 젤리 레드 색상의 C4 피카소를 만날 수 있었다. 블루HDi 100 디젤 엔진에 변속기는 수동 기반의 싱글 클러치 자동인 ETG6의 조합. 불과 하루 전 있었던 항공기 추락사고 때문에 샤를 드골 공항을 빠져나가는 데만도 1시간 가까이 허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금요일 퇴근시간 아슬아슬하게 차를 받은 우리 일행은 저녁식사를 거른 채 빨리 도심을 벗어나 숙소가 있는 파리 남서부 샤를 파스쿠아 쪽으로 향했다.
작은 차체에 넘치는 개성을 담다
본격적인 시승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했다. 지인을 통해 추천받은 코스는 숙소를 떠나 서남쪽으로 이동, 상 헤미 레 슈브후즈를 거쳐 샤토 드 람부이에를 돌아나온 후 파리 시트로엥 본사로 복귀하는 100여 km의 루트였다. 지도에 온통 푸른색인 이 지역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오뜨 발레 드 슈브르즈라는 지방 국립공원의 일부로, 우거진 숲 사이사이 얼굴을 빼꼼 내미는 소박한 마을들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토요일 아침이라 아직 통행량은 적었지만 자전거가 의외로 많았고, 점심시간이 가까울수록 여행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 유명 여행지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제 차를 찬찬히 살펴 볼 시간. 앞서 이야기했듯이 C4 칵투스의 첫 번째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외모다. 시트로엥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아이덴티티 중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다. 한때 상징적인 기술이었던 하이드로뉴매틱 서스펜션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후로 차별화가 힘들어진 때문인지 디자인의 비중이 더욱 높아진 듯하다.
칵투스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10년 전인 2007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였다. C-칵투스 컨셉트는 C4 플랫폼을 바탕으로 애완동물을 연상시키는 타원형 헤드램프에 해치백과 패스트백을 넘나드는 디자인을 제시했다. 길이 4.2m로 양산형 C4 칵투스와 비슷했지만 디자인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5년 후인 2013년에 칵투스 컨셉트라는 이름으로 양산형 디자인이 공개되었는데, 컨셉트라는 타이틀을 달기는 했지만 외형만큼은 양산형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대개 컨셉트카에서 양산화 과정을 거치면 디자인이 단순화되거나 개성이 옅어지게 되지만 이 차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헤드램프 위에 주간주행등을 얹는 방식은 C4 피카소와 공통. 처음 보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 진짜 눈인지 헷갈리기 일쑤다. 게다가 SUV라는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헤드램프 주변을 검은색 범퍼로 감싼 덕분에 진짜 눈은 더욱 오리무중이 다. 범퍼 아래부터 휠 하우스 주변을 거쳐 뒤 범퍼로 이어지는 검은색의 프로텍터는 이 차가 MPV가 아니라 SUV를 지향하고 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컨셉트카에는 없었던 B필러가 생긴 것은 안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 대신 창문 안으로 숨겨 매끈하게 처리했다. 그 밖에 특징적인 C필러 형태나 장식적인 루프레일, 사각형의 휠 디자인(17인치 크로스 휠) 등 2013년 컨셉트카에서 많은 부분을 그대로 가져왔다. 차체 크기는 길이 4,157mm, 너비 1,729mm, 높이 1,480mm에 휠베이스 2,595mm로 쌍용 티볼리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딱히 앙증맞다거나 귀엽다는 느낌은 들지 않고 의외로 당당한 인상이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옆구리 에어범프다. 일종의 범퍼 프로텍터를 차체 측면에 두른 에어범프는 열가소성 우레탄으로 만들었다. 볼록볼록한 부분 안에는 공기가 들어 있는데, 한국에서 매일같이 당하게 되는 문콕 테러를 위한 최고의 장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측면 범퍼는 보통은 얇고 긴 형태에 차체 도색과 통일해 드러나지 않게 하지만 시트로엥은 도어 면적 상당부분을 덮는 디자인으로 보호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승화시켰다. 프랑스 메이커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과감한 발상이다.
차체 색상은 모두 11가지. 여기에 헤드램프 주변과 차체 측면 에어범프를 다른 색(블랙/그레이/초콜릿/듄)으로 고를 수도 있어 20여 가지의 다양한 색 조합이 가능하다. 실제 거리에서 만난 C4 칵투스들 역시 흰 바탕에 초콜릿 범퍼나 검은 바탕에 모래색 범퍼 등 과감한 색 조합이 자주 눈에 띄었다. 여기에 인테리어 색상조합까지 더하면 다양성은 더욱 배가된다. 물론 국내 시장의 특성상 유럽 수준의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말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몸에 착 감기는 시트
실내는 모던한 디자인의 가구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약간 낮고 평평한 대시보드에 계기판과 인포테인먼트용 LCD 모니터를 세워놓은 간결한 운전석은 시트로엥이 제안하는 프랑스풍 미니멀리즘의 극치. 그런 가운데에서도 개성과 세련미를 챙겼다. 스티어링 휠 사이로 들여다보이는 작은 계기판은 눈에 확 띄는 디지털 속도계를 중심으로 운전에 필요한 정보를 간결하게 전한다. 대시보드 중간에 달린 7인치 모니터는 내비게이션과 인포테인먼트, 오디오 등을 조절하기 위한 터치스크린. 도어 잠금과 주행안정장치, 비상등과 자동주차 등 사용빈도가 높은 스위치 몇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모니터를 통해 컨트롤한다.
앞좌석 중간에 코브라 목처럼 보이는 것은 변속레버가 아니라 파킹 브레이크. 변속은 그 앞에 달린 스위치(D/R/N)로 한다. 최근 이런 디자인이 부쩍 늘어나는 추세인데, 기자처럼 80년대에 운전을 배웠던 사람들은 아직 적응이 쉽지 않다. 하지만 시프트패들이 있기 때문에 사용상의 불편함은 없었다.
C4 칵투스를 시승하면서 의외로 인상적이었던 것이 바로 시트다. 시승차는 Feel 트림의 직물시트로 블랙/레드 직물을 씌운 것이었는데 단순한 모습과는 달리 실제로 앉아보면 엉덩이에 착 감기는 것이 승객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줬다. 뒷좌석 역시 마찬가지. 이 시트 덕분에 짧은 휠베이스에 비해서는 실내 거주성이 좋은 편이다. 반면 뒤 도어의 창문을 내리는 방식이 아니라 미니밴처럼 틸트식으로 만든 것은 조금 아쉽다. 플라스틱 부품들의 감촉이나 조립 정밀도도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다.
실내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글로브박스였다. 조수석 대시보드 아래쪽에 달리는 보통의 형태를 버리고 대시보드 위에 커버를 달아 사용편의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흔한 자동차 실내가 아니라 멋진 인테리어 소품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보통은 조수석 에어백이 달리는 자리이기 때문에 시트로엥은 에어백 위치를 천장 쪽으로 옮겨 문제를 해결했다. 트렁크공간은 기본 358L에 6:4로 접히는 뒷좌석 등받이를 접으면 1,170L로 확장된다.
시승차의 엔진은 블루HDi 100이라 불리는 1.6L 직분사 디젤로 최고출력 100마력에 최대토크 25.9kg·m를 낸다. 칵투스는 3기통 1.2L 가솔린 터보 한 가지로 75마력과 82마력, 110마력의 세 가지 출력 세팅을 제공하며 디젤은 100마력 블루HDi 외에 마일드 하이브리드인 e-HDi 92마력형이 있다. 미국에 수출하지 않는 대부분의 프랑스차와 마찬가지로 칵투스 역시 가솔린 엔진은 국내에 들여오지 못한다. 따라서 수입 가능한 카드는 디젤뿐.
시승차의 제원상 성능은 0→시속 100km 가속 11.2초, 최고시속 182km로 무난한 반면 복합연비는 29.4km/L에 이르는 뛰어난 효율을 자랑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수동형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km당 89g. 출력과 토크 숫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가속성능은 그리 활발하지 않다. 하지만 1톤을 살짝 넘는 가벼운 차체와 함께 수동 기반의 자동변속기 ETG6가 맞물려 이 차에 딱 적당한 동력성능을 제공한다. 의외로 경사로에서 답답하지 않고 중저속 영역에서는 반응성이 좋다. 반면 고속도로에 들어서 시속 130km를 넘기니 추월가속이 눈에 띄게 더뎌졌다. 다만 L당 30km 가까이 달리는 좋은 연비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
사실 싱글 클러치를 사용하는 반자동 변속기들은 국내에서의 선호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DSG로 대변되는 듀얼 클러치식에 비해 가격상승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만약의 경우 수리비 폭탄에 대한 걱정도 적은 편. 따라서 이 모든 장단점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가속시의 울컥거림은 클러치가 떨어졌다 다시 연결되는 변속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기 때문인데, 변속 타이밍에 맞추어 액셀 페달을 살짝 떼어주면 한결 부드러워진다. 듀얼 클러치나 일반적인 AT를 달지 않는 것은 결국 돈 문제다. 콤팩트하고 가벼우면서 동력손실도 적은 자동변속기는 가격표가 결코 친절할 리 없기 때문이다.
좋은 연비와 실용성 자랑하는 구동계
시트로엥은 푸조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만큼 비슷할 것 같지만 다른 부분도 많다. 날렵한 핸들링의 푸조에 비해 시트로엥은 움직임이 부드럽고 승차감이 더 좋다. C4 칵투스 역시 이런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앞바퀴굴림(FF) 기반의 SUV로 철저히 도심 주행에 중점을 두었고, 살짝 높은 지상고를 통해 비포장 노면에서의 대응능력을 살짝 높인 수준. 미쓰비시 기반의 C4 에어크로서와 달리 구동방식이 FF뿐인 점도 이 차가 험로 지향 모델이 아님을 보여준다. PF1 플랫폼을 공유하는 푸조 208이나 시트로엥 C3 등 해치백에 비해 무게중심이 높아 롤은 약간 더 있지만 휘청거리거나 불안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엔진출력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도 있지만 프랑스차 특유의 핸들링 기본기는 분명 살아 있다.
그동안 북미 시장에 무관심했던 프랑스 메이커들은 SUV 라인업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이 시장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C4 칵투스는 왜건과 해치백을 높이는 1차원적인 접근법을 버리고 프랑스적 심미안으로 다듬어낸 시트로엥 오리지널의 첫 도심형 SUV다. 게다가 그 디자인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예술 도시 파리의 도심 거리에서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높은 실용성과 빛나는 개성으로 빚어낸 프랑스풍 SUV가 다소 칙칙한 한국 거리에 몰고 올 신선한 충격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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