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 경험, 아우디 아이스 드라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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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를 끄고 얼음호수 위 뱀처럼 꼬인 트랙을 달리는 일은 진땀이 나면서도 재미있다. 차의 무게중심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이에 반응해야 한다.
남극 또는 북극이라는 하나의 극에 해당하는 지역으로의 여행은 왠지 극적인 느낌을 준다. 쉽게 가기 힘든, 미지의, 그래서 동경하는 기분이 든다. 북극권이라고 하면 끝없는 설원과 밤하늘을 찬연하게 수놓는 별들과 오로라를 떠올린다. 아우디 아이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가 펼쳐지는 지역은 핀란드의 북서쪽 무오니오(Muonio). 위도상 북극권을 살짝 넘어서는 곳이다. 얼음호수 위에서의 드라이빙은 굉장히 낭만적일 것 같지만 실제는 하드 트레이닝에 가깝다. 처음 가본 아우디 아이스 익스피리언스 인상기를 전한다. 인천공항에서 핀에어를 타고 헬싱키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비행시간은 10시간 남짓. 여기서 국내선을 갈아타고 키타라(kittala)공항으로 가는데 거리는 2시간 40분. 그런데 이발로(ivalo)라는 경유지가 하나 있다. 다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나 생각했는데, 잠깐 착륙했다가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그런 다음 다시 이륙한다. 종착역이 목적지라면 그대로 기내에 앉아 기다리면 된다. 말하자면 버스 정거장 같은 개념이다.
어느새 목적지에 닿았다. 지상에 내려와 멈추기까지 달리는 속도가 무척 빠른데, 활주로가 거의 빙판이기 때문이다. 오후 7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이미 깊은 밤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몇 걸음만 걸으면 바로 터미널이다. 눈길에서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아우디 신형 A4 사진의 대형 광고판이 먼저 반긴다. 마중 나온 아우디 팀 외에 포르쉐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피켓을 든 이들도 보인다. 숙소로 가는 길, 일행을 태운 버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짙은 어둠 속 눈길을 비추며 긴 하루의 끝을 알린다. 트레이닝 데이 첫째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이지만 새벽보다 더 깊은 어둠, 북극권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본격적인 트랙 주행에 앞서 아우디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팀의 설명을 듣는다. 항공사진으로 본 아이스 트랙은 뱀처럼 꼬불꼬불한 모양의 여러 코스로 나누어 길게 펼쳐져 있다. 오벌(Oval) 코스 0.35km, 스네이크(Snake) 코스 1.15km, 그리고 4개의 파쿠르(parcours) 1a(1.75km), 1b(1.75km), 2(2.47km), 3(3.55km) 코스로 이어진다. 2박3일에 걸쳐 도전해야 할 코스들.
여기서 파쿠르(parcour)는 무슨 뜻일까. 검색해보니 '투사(鬪士)를 위한 코스'라는 뜻으로, 군대의 장애물 통과 훈련을 일컫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개념은 민간의 야외 활동으로 이어졌는데 맨몸으로 빠르게 장애물을 헤치고 달리는 '야마카시'가 대표적. 사실 야마카시는 팀 이름이고 '파쿠르'가 정확한 용어라는데 아무튼 목적지까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운전요령에 대한 설명은 직접 경험해 보고나서야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이론적으로는 이해해도 실제론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슬로 인 패스트 아웃의 원칙을 지키더라도 코너를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코너가 연이어 나타나는 상황에서는 중심을 잡고 컨트롤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드리프트 주행이 빠르기만 한 것도 그립 주행이 효율적인 것만도 아니기 때문이다.
준비된 차는 아우디 S5 TFSI 스포트백 콰트로. 최고출력 333마력을 내고 자동 7단 S 트로닉을 매칭했다. 최고출력은 5,500~6,500rpm의 고회전에서 나오지만 최대토크 440nm은 2,200~5,900rpm의 넓은 영역에서 발휘된다. 0-시속 100km 가속 5.0초, 최고시속 250km의 성능은 사실 얼음호수 위에서는 온전히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네바퀴굴림 콰트로의 구동력 배분은 앞 40%, 뒤 60%로 뒷바퀴굴림 특성이 좀 더 강하다. 아이스 트랙까지 멀지는 않지만 일반도로를 달린다. 사실 일반도로도 거의 빙판에 가깝다. 첫 행군에 나선 긴장감을 안고 서서히 어둠이 걷히는 도로를 달린다. 온통 얼어붙은 마을 풍경이지만 듬성듬성 보이는 불빛들이 희미한 온기를 전해주기 시작한다. 이윽고 드넓은 평야 같은 얼음호수가 펼쳐진다. 호수 아래로 꽁꽁 언 얼음의 두께는 1m가 훨씬 넘는다. 안심하고 달려도 좋다는 얘기. 트랙을 구분 짓는 것은 눈벽(snow wall)이어서 코스를 이탈해도 안전하다.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얼음 서킷. 세계 곳곳에서 긴 비행을 거쳐 이곳을 찾는 이유일 것이다.
첫 단계는 코너를 도는 요령부터 배운다. 먼저 왼쪽 코너를 돌면서 뒷바퀴를 미끄러뜨린다. 스티어링 휠을 평소보다 안쪽으로 더 꺾어 오버 스티어를 유도하는 것. 뒷바퀴가 바깥으로 미끄러질 때 카운트 스티어를 잡아 균형을 잡고 코너를 안정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차의 무게 중심이 어떻게 흐르는가 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시선처리가 중요하다. 차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정작 차가 가야 할 방향을 놓치고 만다. 어쩌면 사고가 났을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시선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운전자의 시선이 가는 방향으로 차가 따라갈 확률이 더 높다. 여러 가지 형태의 드라이빙 스쿨이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사고회피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다음은 출발 가속 스피드를 높이고 코너에 진입하기 직전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이며 코너를 도는 방식이다. 원심력을 이용하는 것인데 운동 에너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중심을 잡아나가야 한다. 카운트 스티어링을 잡는 타이밍이 너무 빠르거나 늦어서도 안 된다. 코너를 벗어나는 지점에서 네 바퀴를 가지런히 만들어 코너를 벗어날 때 직선으로 달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ESC를 켠 상황에서는 운전자의 의도대로 차가 진행하고 있는지를 센서가 끊임없이 체크하고 운전자가 통제력을 잃지 않도록 해준다. 하지만 ESC를 끄고 나면 상황이 달라진다. 노면변화나 바퀴의 미끄러짐을 감지하는 센스의 역할을 운전자 스스로가 해야 하는 것. 처음엔 대책 없이 바퀴가 미끄러지고 이를 바로잡느라 진땀을 흘리게 된다. ESC를 끄고 달리는 스네이크 코스 1.15km 한 바퀴가 길게만 느껴진다. 한 바퀴, 두 바퀴 랩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요령을 익히고 적응해나가지만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는 순간 바퀴는 여지없이 미끄러진다. 인스트럭터는 "실수를 통해 조금씩 실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끄러운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스티어링 휠을 좌우로 자주 돌리게 된다. 스티어링을 짧게 끊어서 돌리게 되면 오히려 반응속도가 느리다. 스티어링 휠을 수평으로 잡은 오른팔과 왼팔이 서로 교차하도록 빠르게 감았다 풀어야 반응이 빠르다. 코너를 돌 때도 미끄러진다고 바로 반응하면 안 된다. 스티어링 휠의 위치는 곧 타이어의 위치다. 스티어링 휠을 돌린 상태를 유지하며 차체가 미끄러지는 것을 몸으로 느껴본다.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직접 체감하며 지금 상태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스티어링 휠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되돌리면 된다. 하지만 마른 노면에서와 달리 중심을 빨리 되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스네이크 코스에 이어 파쿠르1 코스 도전은 무사히 끝났다. 오벌 코스는 아슬아슬했지만 눈밭에 들어가지 않고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트랙을 벗어나 눈밭에 들어가게 되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트랙터를 불러 견인해야 하는데 한번 부를 때마다 부여받은 카드에 펀치로 구멍을 하나씩 뚫게 된다. 벌점인 셈이다. 흐린 날씨는 어디가 눈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경계를 희미하게 했다.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크기의 얼음호수 위에서 아우디 S5 스포트백을 타고 빙판과 씨름하는 순간은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우디 콰트로 시스템, 그리고 피렐리 스터드 타이어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좀 더 기계적인 순수한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노력이 땀으로 젖어들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게 했다. 어쩌면 단순해 보이는 이 이벤트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려는 이유인지 모른다.
빙판 위에서의 운전만이 오롯이 하루의 전부였던 날이 지나고 다음날, 트레이닝 시간은 더 일찍 당겨졌다. 얼음호수 트랙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였지만 사위는 깜깜하다. 파쿠르 1b의 출구와 입구를 바꾸어 달린다. 같은 코스이지만 좌우를 바꾸어 달리는 감각이 사뭇 다르다. 이어서 파쿠르2 코스를 달린다. 한 바퀴 2.47km는 정말 길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만큼 트랙을 정복할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은 많아졌다. 어느 구간에서 드리프트를 하고 어느 구간에서 그립 주행을 해야 하는지 조금씩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운전으로 시작해서 운전으로 끝나는 아우디 아이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는 사실 현장에 있을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생각나는 이벤트다. 빙판길에서 어느새 드리프트 주행에 익숙해져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빙판과 씨름하느라 잘 몰랐지만 어느새 아우디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이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후 아우디를 선택한 비율이 높았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안전하고 빠르며 효율적으로 달리는, 트레이닝의 목표는 아우디 S5와 함께 임무를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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