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시승] 에비에이터vs그랜드체로키 L "1억이 아깝지 않은 미국산 SUV"
컨텐츠 정보
- 909 조회
- 목록
본문
정말 격세지감이다. 한국에서 1억을 호가하는 미국산 SUV가 꾸준히 팔릴 줄 상상도 못했다. 미국 SUV가 한국 수입차 시장을 선도하는 주류라고 할 수는 없지만, 두 차 모두 의미 있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기준 8월까지의 등록 대수는 링컨 에비에이터 948대(수입차 전체 44위), 지프 그랜드체로키 L 547대(수입차 전체 66위)다.
에비에이터와 그랜드체로키 L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브랜드 철학을 적극 반영한 외관과 국적을 의심케 하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실내, 다양한 주행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에어 서스펜션, 경쟁력 있는 상품성 등 다양한 장점을 갖췄다. 상품성만 놓고 보면 1억 초중반 가격에 판매되는 독일 SUV에 비해 빠지지 않기 때문에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도 받는다.
에비에이터와 그랜드체로키 L을 비교 시승하며, 두 차의 실내 완성도와 종합적인 상품성을 살펴봤다. 개인 주관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게 되는 외관 비교는 생략했으며, 에비에이터(블랙 레이블)와 그랜드체로키 L(서밋 리저브) 두 차 모두 차량 가격이 1억에 가까운 상위 트림 기준으로 비교했음을 알린다.
#럭셔리 에비에이터vs섬세한 그랜드체로키 L
두 차의 실내는 환골탈태라는 표현에 정확히 부합한다. 디자인과 소재에 있어서 상당히 공을 들인 게 느껴진다. 충분히 각 브랜드 대표 플래그십 SUV로 오해할 수 있을 만큼 화려하고, 신경 써서 마무리한 모습이다. 미국차의 특징과도 같았던 장난감 같은 실내 버튼과 다이얼 조작감은 두 차 모두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반면 눈에 띄지 않는 곳의 투박한 마감은 잠시 잊고 있었던 두 차의 국적을 상기시켜 줬다.
에비에이터 실내는 자동차를 주제로 한 예술품을 보는 것 같다. 품질만 놓고 보면 가죽은 BMW 인디비주얼에 버금갈 정도로 시각과 촉각 모두 만족스럽고, 알루미늄과 블랙 하이그로시, 알칸타라 등 고급 소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앞 좌석은 30 방향에 이르는 섬세한 운전 자세를 설정할 수 있고, 28개 스피커로 구성된 레벨 울티마 3D 오디오는 탑승자를 압도할 만큼 탁월한 해상도를 자랑한다. 심지어 주행 중에 발생되는 각종 경고음을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녹음한 웅장한 소리로 전부 대체했다.
그랜드체로키 L 실내는 꼼꼼한 디테일에 끌린다.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10.25인치 계기판은 나이트 비전을 지원하며, 10.1인치 터치스크린 모니터는 태블릿처럼 다루기 쉽다. 에비에이터 대비 휠베이스가 65mm 긴만큼 실내 공간이 한층 여유롭다. 19개 스피커, 10인치 서브우퍼로 구성된 매킨토시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은 차에서 내리기 싫을 만큼 만족스럽다. 개인적으로 USB 단자와 컵 홀더가 위치한 3열 암레스트를 가죽으로 꼼꼼하게 마감한 건 정말 충격적이었다. 3열에 이렇게 진심인 차, 정말 흔치 않다.
두 차의 실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으로는 어떤 게 있을까?
에비에이터는 2열이 아쉽다. 독립식 시트 구성, 앉자마자 몸에 착 감기는 편안한 착좌감, 디스플레이를 통해서 열선 시트와 통풍 시트를 켜고 끌 수 있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사실 편의사양 구성은 플래그십 세단 수준이다. 그러나 리클라이닝 각도가 너무 좁다. 사진은 등받이를 끝까지 젖힌 것으로 최대 15도 정도에 불과하다. 리클라이닝 각도가 무조건적인 편안함으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이건 없느니만 못하다.
그랜 체로키 L은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문제다. 큼지막한 폰트, 직관적인 그래픽 등 보기 좋은 구성을 갖췄고, 시인성도 훌륭하다. 다만 사진처럼 시인성 좋은 폰트와 그래픽이 2개로 겹쳐 보인다. 시인성이 좋다 보니 운전자 입장에서는 단순히 신경 쓰이는 것을 넘어서 어지럽게 느껴진다. 전방 시선 유지를 위해 도입된 능동형 안전사양인데, 주객이 전도된 꼴이다. 결국 시승하는 동안 이 기능을 끄고 다녔다.
#신세대 에비에이터vs구세대 그랜드체로키 L
주행성능 역시 생각 이상으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에비에이터는 링컨이란 브랜드를 다시 돌아보게 될 만큼 강력한 성능과 편안한 승차감과 정숙성이 인상적이었고, 그랜 체로키 L은 노면을 가리지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유럽형 SUV 같다. 미국차임에도 유럽향이 물씬 나는 이유는 조르지오 플랫폼 때문일 것이다. 알파로메오 줄리아와 스텔비오, 출시를 앞둔 마세라티 그리칼레를 만든 그 플랫폼이다.
두 차 모두 V6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다. 에비에이터 성능이 훨씬 높다. 에비에이터의 V6 3.0리터 에코부스트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405마력/5500rpm · 최대토크 57.7kg.m/3000rpm, 그랜드체로키 L의 V6 3.6리터 24V VVT 엔진은 286마력/6400rpm · 최대토크 35.1kg.m/4000rpm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각각 10단 자동, 8단 자동이다. 구동 방식은 AWD, 공차중량은 각각 2395kg, 2325kg이다.
공차중량 2.3톤 초과, 타이어 폭 275mm 등 공통점은 많지만, 운전할 때 느껴지는 반응은 천지차이다.
에비에이터는 여유로움을 넘어 과분한 힘을 가졌다. 덩치 큰 SUV가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시승 중 확인한 0-100km/h 가속 시간은 5.5초. 스포츠 세단에 버금가는 스프린트 실력이다. 물론 이 차는 도로를 여유롭게 항해할 때의 만족감이 훨씬 높다. 에어 글라이드 서스펜션도 마음에 쏙 든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커버할 수 있을 만큼 차체의 롤을 충분히 억제한다.
승차감도 상당히 만족스럽다. 에비에이터는 22인치 휠 · 타이어가 장착됐다는 것을 망각할 만큼 노면 요철을 매끄럽게 요리한다. 정숙성도 수준급이다. 고속 주행 중에 실내로 유입되는 소리는 미약한 타이어 소음 정도에 그친다. 기능 활성화 시에만 사용 가능한 반자율 주행은 차간 거리 유지 및 차선 중앙 유지 모두 완벽히 해낸다. 실연비는 시내 5km/L, 고속도로 12km/L 정도 나온다.
반면 그랜드체로키 L은 시종일관 답답하다. 시승 중 확인한 0-100km/h 가속 시간은 8.5초. 전 세대 그랜드체로키에도 탑재됐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엔진답게 특별한 면모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사실 V6 가솔린 엔진임에도 불구하고, 회전 질감이 꽤 거칠다. 자연흡기 엔진 특성상 회전수를 올려야 힘이 나오는데, 그 힘도 감질나는 편. 올해 국내 출시를 앞둔 그랜드체로키 L 4xe 도입이 시급하다.
쿼드라 리프트 에어 서스펜션은 일상 주행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승차감은 21인치 휠·타이어가 노면을 타고, 노면 요철이 큰 경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조용하지도 않다. 다만 차체는 기울어져도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상당히 높은 편. 운전자 지원 시스템은 수준급인데, 기능을 활성화하고 운전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일순간 급 브레이크를 걸어 위험성을 알린다. 실연비는 시내 5km/L, 고속도로 10km/L 정도.
#어떤 차를 구매해야 할까?
두 차는 미국차로서도 그렇지만, 두 브랜드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입해서 만든 가장 완성도 높은 SUV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에비에이터는 모난 구석이 없는 프리미엄 SUV다. 안팎으로 부각되는 화려함은 물론 주행 성능까지도 완벽한 차였다. 그에 반해 그랜드체로키 L은 높은 완성도와 상품성을 갖춘 세련된 '요즘 지프' 였다. 만약 두 차를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면, 브랜드를 정확히 특정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힐 거라 확신한다.
그렇다면 어떤 차를 사는 게 좋을까? 두 차의 가격 차이는 단돈 20만원이다. 에비에이터 블랙 레이블 9760만원, 그랜드 체로키 L 서밋 리저브 9780만원이다. 사실 그랜드 체로키 L은 최초 출시 가격과 현재 판매 가격 차이가 크다. 스텔란티스코리아에서 부품 수급 문제를 이유로 차량 가격을 크게 올렸기 때문. 그랜드체로키 L 서밋 리저브는 800만원 저렴한 8980만원에 출시됐었다. 만약 이때 에비에이터 블랙 레이블을 구매 후보군에 함께 올려놨다면 정말 많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가격이 똑같다면 그랜드 체로키 L을 고를 이유는 딱히 없어 보인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