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브랜드 개척자들의 당찬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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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를 타면서 AT를 카렌스를 닮은 전륜구동 BMW 더 이상 미니(MINI)스럽게 작지 않은 당당한 체구의 5도어(아니면 6도어) 해치백(아니면 왜건) 세단의 키를 껑충 높인 S60 크로스 컨트리, 그것도 사륜구동이 아닌 전륜구동 이들은 업계에서 혹은 각각의 브랜드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들이다. 각 브랜드의 파격적인 시도로 태어난 이들은 니치마켓을 노린 변종일 수도 있지만 때론 볼륨모델의 자리까지 넘보는 개성 넘치는 녀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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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TUS EXIGE S ROADSTER AT: 퍼스트카를 꿈꾸는 퓨어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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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스는 괴짜다. 성능을 지상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무게, 강성, 구조 등에 집착한다. 특히 가벼운 차체에 목을 맨다. 알루미늄 섀시, FRP 패널 등으로 무게를 g단위로 덜어낸다. 장비도 반드시 필요한 것만 단다. 사실 이런저런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실내만 한번 스윽 훑어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대시보드 아래쪽에 자리잡은 철제 뼈대가 바로 그 생생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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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로터스가 무겁고 동력손실이 많다는 자동변속기를 달았다. 이제는 스포츠카도 시장의 요구에 발맞출 수밖에 없는 세상이다. 최신 스포츠카에게 자동변속기는 필수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의 수퍼 스포츠카도, 포르쉐 911 GT3와 같이 트랙을 위한 스포츠카도 자동변속기를 단다. 아무리 고집이 센 로터스라고 해도 별 수 없다.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동변속기의 기술발전도 한몫 하고 있다. 만약 자동변속기가 이전 그대로라면 대부분의 스포츠카들은 여전히 수동변속기를 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스포츠카 회사들이 쓰는 최신 자동변속기는 수동변속기만큼 가볍고 정확하게 움직인다. 엑시지의 자동변속기도 마찬가지다. 공차중량은 겨우 6kg 늘었고,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같거나(로드스터, 4.0초), 오히려 0.1초 줄었다(쿠페, 3.9초). 토크컨버터 방식의 자동변속기라기에는 믿을 수 없는 수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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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터스의 자동변속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의 에보라 IPS가 먼저였다. 하지만 GT카인 에보라와는 달리, 엑시지는 퓨어 스포츠카다. 엑시지는 현재 로터스의 핵심 모델. 이전에는 엘리스의 고성능 버전이었지만, 세대교체를 거치며 엘리스보다 길이 243mm, 휠베이스 70mm가 긴 독자 모델로 거듭났다. 엔진 역시 V6 3.5L 수퍼차저로 키웠다. 엑시지 S의 경우 무려 345마력, 40.8kg·m의 힘을 낸다.

엑시지는 현재 로터스가 양산하는 합법적인(국내 법규를 만족하는) 로드카 중 가장 강력하다. 따라서 엑시지 오토매틱이 가지는 의미는 에보라 IPS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로터스가 대중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해석할 수 있다. 어쩌면 에보라 IPS는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 모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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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모델과 자동 모델의 눈에 띄는 차이는 변속기와 관련된 것이 전부이다. 알루미늄제 변속 레버가 솟아 있던 센터터널에는 버튼식 시프트 셀렉터가 자리를 잡았다. 전자식이기 때문에 아래쪽에는 수납공간도 생겼다. 하지만 이처럼 턱이 낮은 수납공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엑시지의 실내는 중력이 전후좌우로 요동치는 전쟁터다. 도마뱀을 넣는다고 해도 몇 초 견디지 못하고 어딘가로 날아갈 게 뻔하다. 알루미늄으로 깎은 근사한 시프트패들을 스티어링 휠이 아닌, 칼럼에 달았다는 것도 아쉽다. 길게 이어지는 코너에서 변속을 하려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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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는 일반 엑시지와 다른 게 없다. 시승차가 화려해 보이는 건 각종 옵션으로 치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제 기계에 올라타는 느낌도, 잠수함 해치의 핸들처럼 무거운 기계식 스티어링도, 도로의 이음매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서스펜션과 버킷시트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전통적인 와이어 방식의 가속 페달도 모두 그대로다.

변속기는 아이신의 6단 AT이다. 로터스가 토요타의 엔진을 사용하고 있으니 당연한 이야기다. ZF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BMW도 가로 배치 레이아웃에는 아이신의 변속기를 사용한다. 시프트 셀렉터는 P, R, N, D의 일반적인 구성이다. 수동 모드는 시프트패들로 진입한다. 로터스의 주행모드인 DPM의 투어(노말) 모드에서는 6,500rpm에서 스스로 변속하지만, 스포트 모드에서는 연료가 끊기는 7,000rpm에서도 운전자의 지시를 기다린다. 기어를 내려 물면 회전수 보상도 하는데, 투어 모드에서는 회전차가 큰 경우에만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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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변함없이 날카롭다. 스타트모터가 크랭크를 돌리는 순간, 토요타의 엔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뾰족한 사운드를 쏟아낸다. 회전질감도 마찬가지. 상승과 하락 속도가 빠르고 끈끈하다. 출력 특성은 자연흡기 엔진에 가깝다. 치솟는 회전수에 비례해 힘이 점진적으로 늘어난다. 로터스가 수퍼차저를 사랑하는 건 의미 없는 수치보다 반응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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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운전재미도 여전하다. 스티어링은 손끝으로 타이어의 그립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투명하고 반응도 굉장히 빠르다. 단단하고 가벼운 섀시와 정교한 서스펜션은 끊임없이 타이어를 노면에 짓누른다. 물론 차를 적극적으로 다루기엔 수동변속기가 더 좋다. 자동변속기는 저회전에서의 동력전달이 거칠고, 고회전에서의 시프트다운이 다소 버벅거린다. 하지만 변속에 신경을 끄고 스티어링 감각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대단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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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가죽 패키지, 시트 히터, 크루즈 컨트롤, 주차 센서 등을 갖춘 호화로운 사양이었다. 그런데 이게 서드카 또는 세컨드카를 넘어 퍼스트카로 올라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느껴졌다. 물론 자동변속기 하나 달았다고 엑시지가 당장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로터스의 의도만큼은 성공적으로 전달됐다. 이제 수동변속기를 다루는 기술이나 수동 운전면허가 없어도 일반도로 최강의 코너링 머신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레이싱 슈즈 따위도 필요 없다. 야들야들한 소가죽 로퍼나 하이힐도 문제없다.

BMW 218d ACTIVE TOURER : 슈퍼맨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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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재는 ‘잘 나가는’ 남자였다. 훤칠한 키, 말끔한 얼굴, 재치 있는 언변까지 갖춘 매력남이었다. 요즘 그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의 여성편력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던 것도, 그래서 이바람이라고 불렸던 것도 이제 다 옛일이다. 쌍둥이의 아빠가 된 그는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헐렁한 옷을 입은 채 두 아이를 돌본다. 지금 그에게 태풍처럼 몰아치던 이바람의 매력이라곤 입김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슈퍼맨이 되어 여전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BMW는 ‘잘 나가는’ 자동차를 만든다. 진정한 운전의 즐거움(Sheer Diving Pleasure)을 외쳐온 BMW는 평범해 보이는 세단도 늘 정상급 코너링 머신으로 만들어 내놨다. 그들의 확고한 철학은 탄탄한 서스펜션과 후륜구동으로 실현되고 예리한 코너링으로 완성되었다. 2014년 3월, BMW는 제네바모터쇼를 통해 파란 엠블럼과 어울리지 않는 신차를 공개했다. BMW 최초의 전륜구동 MPV 액티브 투어러다. 아마도 그들은 멋과 재미를 내려놓고 슈퍼맨이 된, 이휘재와 같은 차를 만들고 싶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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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 카렌스에 키드니 그릴을 달면 이런 모습일까? 액티브 투어러의 원박스 디자인은 BMW 엠블럼을 무색하게 한다. 짧은 오버행, 코로나 링, 키드니 그릴, 호프마이스터 킨크와 L형 테일램프까지 BMW만의 디자인 요소를 잔뜩 담았지만 펑퍼짐한 몸매 탓에 한눈에 BMW인 걸 알아채긴 쉽지 않다.

BMW답지 않은 외모에 놀라고 나니, 미니밴답지 않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또 한번 놀래킨다. 겉모습은 영락없는 생계형 미니밴인데 내장은 고급스러운 소재와 화려한 편의기능으로 치장돼 있다. 무릎 부분이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가 사실은 식스팩과 새빨간 팬티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마치 슈퍼맨처럼. 2세대 X1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스티어링 휠, 기계식 변속레버 등 기존 BMW에서 볼 수 없던 실내 파츠들은 신선하다. 디자이너는 실내 가득 햇빛을 채우는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를 설계하며 가족들의 웃음이 차 안에 가득한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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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에서 눈길을 떼면 넓은 공간감이 또 한번 “서프라이즈!”를 외친다. 실내공간은 성인 네 명을 태우고 장거리 크루징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수준.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x드라이브에조차도 뒷바퀴에 더 많은 토크를 싣는 BMW가 대뜸 전륜구동 차를 만든 것도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전륜구동을 채택하면 차체 중심부를 지나는 드라이브 샤프트가 필요 없고, 엔진을 가로로 배치해 실내공간을 더 넓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넉넉한 2열 좌석은 똑똑하기까지 하다. 최대 130mm까지 앞뒤로 조정할 수 있는 덕분에 적재 및 탑승공간 배분이 자유자재다. 4:2:4 비율로 분할 폴딩이 가능한 2열 시트는 트렁크에 자리한 버튼을 누르면 전동식으로 접히며, 스마트 액세스·전동식 트렁크 덕분에 발놀림 한 번이면 트렁크를 열 수 있다. 적재공간도 넉넉하다. 트렁크공간은 평소엔 465L이지만, 뒷좌석을 접으면 1,510L까지 확장된다. 트렁크 바닥의 폴딩플로어를 들추면 숨어 있던 70L의 추가 적재공간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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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닛이 짧고 시트는 높은 덕분에 운전석 시야가 무척 좋다. A필러엔 쿼터글라스까지 있어 사각지대를 더욱 줄여준다. 3세대 미니와 플랫폼(UKL1)을 공유하기 때문인지 둥근 스티치가 들어간 시트 디자인도 BMW보다는 미니의 그것에 가깝다. 힙 포인트는 치마 입은 여성이나 아이가 타고 내리기에도 편한 높이. 세단보단 높고 SUV 보단 낮다.

직렬 4기통 2.0L 디젤 직분사 터보 엔진(B47)에 ZF 미션 대신 전륜구동 전용 아이신 8단 미션을 조합했다. 저회전 가속이 탁월한 디젤 엔진 특유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소음과 진동은 잘 걸러내 실내는 쾌적하다.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3.6kg·m, 0→시속 100km 가속 8.9초. 짐과 사람을 가득 싣고도 가뿐하게 달릴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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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바퀴로 구동해도 BMW는 BMW. 겉보기엔 살림꾼이 다 됐지만 하체는 놀던 가락을 아직 못 버렸다. 몸집은 불었어도 하체가 탄탄하니 코너를 다소 거칠게 돌아도 롤링과 피칭을 거의 느낄 수 없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면 패밀리맨의 탈을 쓴 날라리가 되어 한바탕 삼바춤을 출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BMW는 이미 미니를 통해 전륜구동으로도 운전재미를 추구할 수 있음을 증명해왔다. 물론 전륜구동과 높은 차체가 주는 물리적 한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건 아니다. 뒷바퀴굴림 BMW에 비하면 코너링 라인이 뭉툭하며, 편의성과 안락함을 위주로 세팅된 차인 만큼 스프츠 모드의 주행감도 다른 BMW에 비해 자극이 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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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힘쓰느라 멋 부릴 겨를이 없는 이휘재처럼 안락한 주행감과 넓은 공간을 취하느라 날렵한 몸매와 예리한 코너링을 포기한 최초의 BMW, 액티브 투어러는 지난해 국내에서 1,268대가 팔렸다. 전륜구동을 단 변절자치곤 기대 이상의 성과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BMW는 앞으로 10종 이상의 앞바퀴굴림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며, 올 상반기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2세대 X1 역시 전륜구동을 기본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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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는 액티브 투어러를 런칭하며 세계적인 모델 캐롤리나 쿠르코바를 홍보대사로 삼았다. 그녀는 톱 모델인 동시에 한 아이의 엄마다. 이 차는 그녀를 꼭 닮았다. 뭇 남성들이 선망하는 섹시한 타이틀을 가졌지만, 정작 본질은 일상성과 실용성에 집중하고 있다. 최고출력 400마력이 넘는 BMW M3를 탄다면 누구라도 수퍼맨이 된 기분이겠지만, 기분일 뿐이다. 액티브 투어러를 타는 패밀리맨은 누군가의 진정한 슈퍼맨이 될 수 있다. 그가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의 아이가 외칠 것이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고.

VOLVO S60 D4 CROSS COUNTRY : 이런 개성 넘치는 녀석을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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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일반 승용차를 베이스로 차체를 조금 높여 험로주행 능력을 높인 크로스 컨트리를 다양한 모델에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키높이 모델들은 이제 제법 많은 브랜드에서 선보이고 있지만 이 시장을 과감하게 개척한 것은 볼보였다. 1997년 선보인 V70 크로스 컨트리(V70 XC)는 850 에스테이트를 개선한 1세대 V70 AWD의 키를 높이고 플라스틱 색상의 앞뒤 범퍼 및 사이드 몰딩을 덧댄 후 CROSS COUNTRY란 데칼과 V70 XC AWD란 이름을 붙인 모델이었다. 2000년 2세대에 와서는 범퍼뿐 아니라 그릴과 휠하우스까지 검정색으로 처리해 좀 더 강인한 모습이 되었고, 2003년 XC70이란 이름으로 XC 라인에 편입되었다. SUV 느낌이 강한 이 라인에서 XC70은 XC90과 아랫급 XC60 사이를 메우는 역할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크로스 컨트리 시장을 개척한 V70 XC가 이젠 XC70이 되었지만 볼보는 차고를 높이고 오프로드 대응능력을 키운 별도의 크로스 컨트리 버전을 V40에 이어 V60에도 더했다. XC와의 혼돈을 줄이기 위해 줄임말도 이전의 XC에서 CC로 바꾸었다. 여기까지는 출발점인 V70처럼 왜건의 키를 높인 것이었는데, 지난 2015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볼보는 세단인 S60의 키를 높인 크로스 컨트리 버전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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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S60 크로스 컨트리의 사진을 보았을 때는 과연 세단의 키를 높인 것이 시장에서 얼마나 통할지 궁금했다. CC 라인업을 확장하려는 볼보의 노림수는 알겠지만 ‘이렇게까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러한 선입견 때문일까? 실물로 대했을 때도 처음에는 눈에 익지 않았다.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니 의외의 실루엣이 보인다. S60 자체가 트렁크가 짧은 콤팩트 세단 스타일을 추구한 탓에 옆에서 보면 언뜻 BMW X6나 메르세데스 벤츠 GLE 쿠페 같은 크로스오버로 보이는 게 아닌가! 물론 이들을 위쪽에서 좀 눌러놓은 모양에 가깝기는 하다.

키가 세단보다 65mm 높아진 덕분에 승하차 때 일반적인 세단처럼 몸을 아래로 구겨넣는다거나 SUV처럼 올라타는 느낌 없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다. 시트에 몸을 실으면 SUV만큼은 아니지만 일반 세단보다 훨씬 좋은 시야가 눈에 들어온다. 특히 밤에 바짝 뒤따라오는 차의 헤드램프 불빛이 룸미러로 시야를 거의 괴롭히지 않는 것이 기분 좋다. 시트 높이가 웬만한 크로스오버 스타일의 SUV와 비슷할 정도이지만 운전감각은 지극히 세단스럽다. 이러한 묘한 분위기 덕분에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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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서 내려 이젠 호감어린 눈빛으로 CC를 바라본다. 크로스 컨트리의 전유물인 플라스틱 가드를 휠하우스 부근에만 살짝 덧댔을 뿐 그 어디에서도 과장된 치장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시승차를 찬찬히 살펴보니 험한 길을 많이 달린 듯 휠과 가드에 잔상처가 많다. 크로스 컨트리의 진가를 맛보려 한 운전자가 많았던 탓일까? 이 차는 AWD가 아니라 FF인데. 그러나 오프로드를 달려보니 앞서 운전한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저 65mm의 차이일 뿐인데 갈 수 있는 길이 확연하게 많아진다. 웬만한 오프로드를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CC의 모습에서 FF냐 AWD냐는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린다. 어차피 사륜으로나 달릴 수 있는 하드코어를 찾는 이들은 CC에 눈길도 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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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 모델은 지금도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5기통이 아닌 신형 4기통 디젤을 얹은 D4다. 2.0L의 배기량에 트윈 터보를 물려 190마력의 출력과 40.8kg·m의 넉넉한 토크를 낸다. 그러면서도 8단 자동변속기로 연비까지 챙긴 볼보의 차세대 드라이브 트레인이다. 0→시속 100km 가속이 세단보다 0.1초 늦은 7.7초이지만 차이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평균연비는 15.3km/L로 세단보다 1.0km/L 낮고 최고시속은 S60의 230km에 못 미치는 210km에서 제한된다. 고속 영역에서의 가속은 S60보다 근소하게 뒤지지만 꾸준한 뒷심으로 제원상 최고속도에 손쉽게 다다른다. 8단 자동변속기는 7~8단이 오버드라이브. 표준 모드에서는 다소 빨리 기어를 올리면서 연료를 아끼는데, 낮은 rpm에서도 큰 토크 덕에 가속이 부담스럽진 않다. 반면 S 모드에서는 아이들링 때에도 회전수를 높이고 변속 타이밍을 상당히 늦게 가져간다. 이렇게 적극적인 S 모드는 흔히 말하는 스포츠 세단에서나 볼 수 있는 설정이다. 세단에 비해 불리한 구조임에도 고속에서 바람소리가 거슬리지 않고 코너에서도 차가 기우뚱거리는 일이 없다. 뒤 서스펜션이 세단의 독립식과 달리 트레일링 암 방식이지만 거동의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키높이 모델임에도 주행감각은 스포츠 세단을 표방하는 S60과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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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60 D4 CC의 값은 4,970만원으로 S60 D4(4,770만원)보다 200만원 비싸고 V60 D4 크로스 컨트리(5,220만원)보다는 250만원 싸다. S60보다 200만원을 더 투자할 가치는 차고 넘친다. 다만 트렁크 바닥이 S60처럼 평평하지 않은 건 좀 의외다. 템포러리 스페어 휠 키트 때문에 바닥이 표준형보다 120mm 높고 화물공간은 80L 적다. S60 자체가 트렁크가 큰 모델은 아닌 만큼 이 키트를 덜어내고 펑크 수리키트만 넣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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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만 하더라도 크로스 컨트리와 비슷한 차는 스바루 아웃백이나 아우디 올로드 콰트로 등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요즘에는 여러 브랜드에서 다양한 차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 초 국내에 데뷔한 푸조 508 RXH도 바로 이런 류의 자동차다. 그리고 이런 차들은 볼보가 만든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지상고를 높이면서 플라스틱 보강재를 두르고 디자인을 기본형보다 강인하게 다듬는다. 특히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왜건이나 해치백의 키를 키운다. 이런 상황에서 볼보는 시장을 개척한 브랜드답게 이번에는 과감하게 세단의 키를 높였다. 19년 전부터 크로스 컨트리를 만들고 있는 볼보의 내공과 자신감이 곁들여진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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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컨트리가 더해진 볼보자동차코리아의 판매도 순풍을 타고 있다. 지난해 V40과 V60, S60 등 3개 모델에 크로스 컨트리를 더한 볼보차코리아는 전년 대비 42.4%나 성장한 4,238대의 차를 팔았다. 아직 크로스 컨트리 3종의 판매비중은 낮지만, 한국에서 볼보차를 찾는 수요가 30대와 40대의 개인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성장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여겨진다. 틀에 박힌 SUV나 왜건형 크로스오버에 눈길이 가지 않는다면 꼭 한번 S60 크로스 컨트리를 시승해보길 바란다.

MINI CLUBMAN : 크고 넉넉하게 즐기는 미니

미니스커트, 아이패드 미니, 미니어처 등에서 말하는 미니는 작고 짧은 것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처럼 미니 브랜드는 그동안 자동차 업계에서 ‘작고 재미있는 차’를 주로 만들어왔다.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귀여운 외모로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외모와 다른 반전의 퍼포먼스로 남성들에게도 인기를 얻었다. 허나 무거운 스티어링 휠과 딱딱한 승차감,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고속안정감과 비실용성 등으로 차는 예쁘고 매력적이지만 실제 미니 브랜드에 입문하는 것은 주저하는 이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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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MINI)라는 브랜드는 작고 재밌는 차를 만든다. 작아서 재빠르고 딱딱해서 재미있는 차를 말이다. 이러한 미니의 캐릭터는 마니아들 사이에서 박수갈채를 받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진입장벽이 되기도 했다. 훌쩍 커지고 편해진 클럽맨은 넓은 공간과 실용성, 부드러운 승차감과 가벼운 스티어링 감각이 돋보인다. 그렇다면 클럽맨은 미니다움을 포기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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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맨을 앞에서 보면 영락없는 미니, 옆에서 보면 길어진 미니이고 뒷모습은 낯설다. 미니 역사상 가장 큰 테일램프를 포함해 양문형 냉장고처럼 문을 여닫는 스플릿 도어가 특징적이다. 늘 트렁크 가운데 자리잡고 있던 커다란 미니 배지가 반으로 나뉘는 해치게이트 모양 때문에 왼쪽 가장자리에 작게 자리했다. 머플러 역시 미니는 가운데 놓인 게 익숙한데 이젠 차체 양쪽 끝단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차가 커진 느낌을 주는 데 일조한다. 덩치가 커지긴 했지만 그리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다. 아역배우가 예쁘게 잘 자라 성인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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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도 미니가 추구하는 아기자기한 감성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미니라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는 작고 귀여운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작은 스티어링 휠에서부터 센터페시아에 자리한 동글동글한 디스플레이, 비행기 스위치처럼 생긴 각종 버튼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일반적인 차가 아니라 귀엽고 장난감 같은 차를 타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클럽맨은 미니다운 요소로 가득하면서도 훌쩍 커진 덕에 이젠 제법 넓은 실내공간을 제공한다. 기존의 미니 해치백은 4명이 타면 2명은 즐겁고 2명은 괴로웠다. 그러나 클럽맨은 4명 모두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뒷좌석 레그룸이 성인 남자가 타더라도 부족함이 없고 헤드룸도 여유가 있어 장거리에도 끄떡없다. 거기에 커다란 파노라마 선루프로 개방감까지 확보했다. 트렁크 역시 널찍해 유모차와 기타 짐들이 많은 아기를 둔 가족들에게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다. 트렁크 도어 안쪽에는 수납공간이 있어 세차용품들을 넣어 놓기에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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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을 둘러보던 중 가장 눈길이 간 곳이 바로 타이어다. 보통 출고 타이어를 보면 그 모델이 지향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닛산 전기차 리프에는 에코 타이어인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가, 포르쉐 911 GT3엔 세미 슬릭 타이어인 미쉐린 파일럿 수퍼 스포츠 컵2 타이어가 장착되어 있다. 클럽맨에는 브리지스톤의 스포츠 라인업인 포텐자 시리즈 중에서도 상급 모델인 S001이 끼워져 있다. 이는 단순히 커진 덩치로 인해 다이내믹한 움직임을 포기했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줄 만한 세팅이다. 격정적인 운동을 하기 전에 미리 좋은 운동화를 신겨놓은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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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통 2.0L 터보 엔진은 8단 자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192마력, 최대토크 28.6kg·m를 앞바퀴에 전달한다. 놀라운 점은 정말 조용하다는 것. ‘미니’ 하면 온갖 잡소리와 하부소음, 풍절음 등으로 유명한데 클럽맨은 다이내믹 모드로 설정한 후 가속 페달을 밟아 시원하게 달려도 앙칼진 엔진 사운드만을 운전자에게 들려줄 뿐이다. 거기에 ZF 8단 자동변속기는 변속충격도 없고 빠른 변속까지 선사한다. 과거 미니는 에프터마켓용 코일오버 서스펜션 수준으로 딱딱했다. 그만큼 스포츠 드라이빙에는 적합하지만 노면이 좋지 않은 일반도로에서는 불편하고 각종 잡소리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클럽맨의 서스펜션은 통통 튀지 않으면서 요철의 충격은 잘 걸러주고, 그러면서도 급격한 핸들링을 할 때엔 커진 차체를 잘 잡아준다. 사실 예전에 미니를 즐기려면 고속도로보다는 산길을 달려야 했다. 짧은 휠베이스가 코너링에는 유리했지만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반면 클럽맨은 길어진 휠베이스로 독일산 세단 부럽지 않은 고속안정감을 보여준다. 고속 코너에서도 안정감 있게 라인을 타고 돌 수 있다. 살짝 무겁게 느껴지는 스티어링 휠은 운전자가 원하는 라인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그려준다. 보통차보다 무겁다는 것이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져 이젠 여성 운전자들도 쉽게 미니를 운전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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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브랜드는 기존의 마니아들 외에 더 많은 미니팬들을 확보할 생각이다. 그 중심에는 변종 같은 클럽맨이 있다. 그동안 미니는 너무 미니스러운 것을 고집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때문에 마니아들이 미니에 높은 충성도를 보여왔던 것도 사실이다. 리쌍의 개리 같은 경우 과거 힙합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래퍼였다. 그가 예능을 시작했을 때 우려의 시선을 보냈던 팬들이 많았다. 그의 음악이 변할까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런닝맨’에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여전히 개리다운 음악을 하고 있다. 래퍼의 DNA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클럽맨 역시 커졌지만 미니의 색깔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단지 거칠고 모났던 성격을 조금 순하게 만들었을 뿐 여전히 박력 있다. 게다가 넉넉한 뒷좌석과 트렁크공간으로 실용성까지 겸비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차가 되었다. 누구나 편하고 쉽게 즐길 수 있는 미니 클럽맨. 앞으로 미니의 바람대로 팬클럽 회원수가 늘어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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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편집장, 류민, 김성래, 안진욱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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