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의 새로운 시대, XC90 D5 모멘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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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보는 XC90으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기존 모델과 전혀 다른 디자인과 구성이 얼마나 다른 성격을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그런데 직접 만난 XC90은 여전히 볼보답다. 단순함에서 존재감을 끌어내는 모습부터 그렇다. 복잡한 선을 더하지 않고 차체의 면을 담백하게 강조하는 구성. 캐릭터 라인 아래로 펼쳐진 면에는 장식이 없다. 구성 요소를 최대한 줄이는 한편, 단순한 형태가 주는 안정감과 소재의 질감에 집중한 것이다.
새로운 앞모습이 인상적이다. 알파벳 T를 옆으로 눕힌 모양의 헤드램프, 세로 모양의 신형 그릴은 앞으로 펼쳐질 볼보의 새 디자인 언어의 상징이다. '토르의 망치'라는 별명답다. 큼직한 모양의 크롬 띠를 두른 세로 그릴도 인상적이다. 볼보 89년 역사상 최초의 세로 그릴이다. 뒷부분은 세로로 곧게 뻗은 테일램프로 포인트를 줬다. 아래로 향할수록 넓어지는 디자인을 채택해 안정감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실내 또한 그렇다. 아늑한 분위기를 위해 가구 같은 친근한 디자인을 한다는 맥락은 그대로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법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최소주의(Minimalism)적 디자인을 택하게 된 것. 센터 스택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9.0인치 터치스크린이 대시보드 한 가운데를 차지했다. 이제 비상등 스위치를 제외한 모든 기능을 터치스크린으로 다뤄야 한다. 에어컨 조작 버튼도 자취를 감췄다. 터치 방식의 조작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쓰기 쉬웠다.
구성이 아주 직관적이라 사용설명서 없이도 바로 쓸 수 있다. 터치스크린 하단부의 에어컨 부분을 누르면 에어컨 조작화면을 띄우고, 내비게이션 지도를 확대하려면 손가락을 모았다 펼치면 됐다. 홈 버튼을 누르면 언제든 메인화면으로 돌아왔다. 정말 태블릿을 쓰는 느낌이다. 기능을 좀 더 자세하게 설정하려면 설정메뉴를 찾으면 된다. 터치스크린 아래에는 1열로 버튼을 모아두었다. 비상등, 앞뒤 열선, 오디오, 글로브박스 버튼 등이다. 센터 터널 왼쪽으로는 기어 레버, 시동 스위치, 드라이브 모드 스위치를 뒀다. 네모난 시동 스위치를 살짝 비틀어 시동을 건다. 계기판은 12.3인치 디스플레이. 원하는 모드에 따라 화면을 바꿔 쓸 수 있다. 가운데 터치스크린과 연계되는 구성이다. HUD 조정 등의 주행 관련 사항은 터치스크린에서 기능을 선택하고, 계기판을 보며 조정할 수 있기 때문.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볼보의 설명에 따르면 1~3열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고. 극장식 구조를 택해 어느 좌석에 앉더라도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2열 시트 가운데에는 부스터 시트를 뒀다. 2열은 120mm까지 앞뒤 조절이 가능하고, 등받이 각도 조절도 가능하다. 3열 좌석은 편히 앉을 수 있도록 2개로 분리되어 2명만 앉을 수 있다. 키 180cm 성인이 앉기에는 머리 공간이 비좁다. 시트의 착좌감 및 무릎 공간은 적당했다. 3열에 아이들이 주로 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공간은 충분하다.
시승차는 XC90 D5 모멘텀. 직렬 4기통 2.0L 트윈터보 디젤 엔진을 얹었다. 볼보의 신형 구동계 드라이브-e의 최신 버전이다. 최고출력 235마력을 4,000rpm에서, 최대토크 48.9kg·m을 1,750~2,250rpm에서 낸다. 배기량 대 출력비율을 따져보면 상당한 힘을 내는 셈이다. 자동 8단 변속기를 맞물려 네 바퀴 모두에 힘을 전한다. 저회전부터 강력한 힘과 반응 끌어낼 '파워 펄스' 기능을 최초로 도입했다. 공기를 압축해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시 터보차저에 보내는 기술이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엔진 하단부에 2L 용량의 공기압축 탱크를 달고, 압축기를 통해 공기를 저장한다. 저장된 공기는 1단과 2단, 2,000rpm 이하에서 운전자가 가속할 때 배기 매니폴드로 발사된다. 터보랙을 없애기 위해서다. 압축 공기를 추가로 보내니 터보차저가 빨리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반응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것. 부스트압을 바로 끌어내고, 즉각적인 스풀업이 가능하다. 이론만큼 실제 주행에서도 효과가 쏠쏠했다. 멈추고 출발하거나 낮은 속도를 유지해야 할 때 다루기가 편했다.
XC90의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7.8초. 2톤 넘는 공차중량에도 이만큼 달려 나갈 수 있는 것은 자동 8단 변속기와 엔진 세팅의 힘이다. 엔진은 전 영역대에서 균일한 힘을 낸다. 자동모드로 달릴 때는 4,200rpm 선에서 변속하는데, 4,000rpm까지 힘이 쭉 차오르는 감각이 호쾌하다. 어느 회전대에서나 쉽게 힘을 끌어내고 반응이 좋다. 약점을 굳이 찾기 어려운 엔진이다. 또한 촘촘한 기어비의 자동 8단 변속기를 맞물린 덕분에 가속이 쉽게 둔화되지 않는다. 어느 속도에서나 가뿐하게 달릴 수 있다는 것이 장점. 8단으로 두고 달릴 때 시속 100km에서 약 1,500rpm을 기록했다. 기어비 계산시 시속 135km에서 약 2,000rpm이 되니 고속도로에서 추월을 포함한 대부분의 주행을 2,000rpm 아래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승차감은 얼핏 단단한 듯하지만 노면의 충격을 아주 잘 걸러낸다. 노면 충격이 연속되는 구간에서도 자세를 잘 유지하는 것이 대견하다. 속도를 높여 달려도 안정감이 뛰어나다. 운전자를 불안하게 하는 구석이 없다는 것이 좋다. 서스펜션 세팅과 네바퀴굴림의 조합 덕분일 것이다. 분명 서스펜션의 상하 구간이 긴 것 같으면서도, 연속으로 차체를 몰아칠 때 차체가 기우는 양이 꽤 적은 편이다. 단단한 느낌을 강조하진 않지만 코너링을 위해 버틴다. 시승차인 모멘텀의 경우 상위 등급인 R-디자인과 인스크립션에 들어가는 에어 서스펜션을 달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차이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미디어 시승회에서 만났던 T8 인스크립션을 빗대 생각해보면 충격 흡수가 좀 더 부드러웠고, 노면 충격을 좀 더 잘 지워내는 인상을 받았다. 코너링 때의 성격은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의 취향으로는 느긋한 인스크립션을 추천하지만, 모멘텀의 서스펜션 또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스티어링 휠은 정확하지만 노면과의 일체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노면 충격을 크게 분리해서일지도 모른다. 탄력감 및 무게감은 잘 잡혔고, 반응 및 앞바퀴 조향각 또한 예측한 수준으로 정확하다. 방음은 적당한 수준. 그러나 완전히 조용한 수준은 아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잘 걸러냈고, 다른 프리미어 브랜드와 비교할 때 비슷한 수준이다.
XC90에는 볼보의 SPA(Scalable Product Architecture) 플랫폼이 처음으로 적용됐다. 대형차종을 위한 플랫폼. 드라이브-e 구동계 통합 적용 및 네바퀴굴림,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시작이다. 안전을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볼보 XC90은 기본형 모델인 모멘텀부터 모든 안전장비를 기본으로 단다. 안전 시스템은 '시티 세이프티' 등의 능동형 기술을 통합한 '인텔리 세이프'로 발전했다. 보행자 및 자전거 감지, 교차로 자동제동, 대형동물 감지, 차량 전방 보행자 감지 및 자동제동, 교차로 충돌예상 시 자동 제동 등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했다.
다양한 안전장비지만 이보다 인상적인 것이 있다. 2017년식 모델부터 적용된 파일럿 어시스트 2다. 주행 중 앞 차와의 간격을 자동으로 조절하며, 스티어링을 조정해 차선 가운데로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기능이다. 과거의 파일럿 어시스트 1은 앞에 차가 있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이제는 앞에 차가 없더라도 스스로 차선을 읽고 방향을 맞춘다. 시속 15~140km 사이에서 작동한다. 볼보는 파일럿 어시스트 2가 주행을 돕는 장비지만, 어디까지나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다고 했다. 스티어링 휠을 꼭 잡고 전방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서부간선도로와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파일럿 어시스트 2를 각각 시험해봤다. 차선을 잘 인식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지만 기우였다. 스티어링 휠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니 약하게 휘는 구간에서 스티어링이 슬쩍 움직이며 자세를 잡았다. 사이드미러로 확인해보니 꽤 정확하게 차선 가운데를 유지한다. 급한 코너에서는 중앙을 완벽히 유지하진 못해 슬쩍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막히는 도로에서 여유부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어차피 멈추고 서길 반복하니 중앙을 잘 맞추고 갔기 때문. 직선 구간이 긴 고속도로에서도 유용했다. 그래도 스티어링 휠에서 가급적 손을 떼지 않길 바란다. 행여나 싶어 손을 떼니 조금 이후 핸들을 잡으라는 경고가 울린다. 그래도 손을 떼고 있으니 파일럿 어시스트를 해제했다. 꼭 잡고 앞을 봐야한다.
XC90은 지금까지의 볼보와는 다르다. 큼직한 차체, 고급스러운 실내, 편안한 주행을 위한 첨단기술 등이 가득하다. 시장에 통하는 공식을 찾은 것일까. 고집스럽게 안전만을 강조하던 볼보가 아니다. 이제 크고, 멋지고, 안락하고, 세련된 데다, 전자장비도 많다. 여기에 안전까지 더한 것이다. 본형인 D5 모멘텀부터 안전장비를 꽉 채운 것만 봐도 여전히 볼보는 볼보다. 가격과 크기를 비교해 볼 때 XC90은 벤츠 GLE, 아우디 Q7, 폭스바겐 투아렉, BMW X5를 겨냥한다. 직접적인 경쟁자라면 메르세데스-벤츠 GLE 250d 4매틱이 아닐지. 두 모델을 놓고 하나를 선뜻 고르기가 어려워진다. 벤츠 브랜드의 명성과 특유의 감각이 분명 있기 때문. 하지만 볼보의 최신기술과 안전성이라는 가치 또한 GLE를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XC90을 산다면 인스크립션을 선택하겠다. 에어스프링, 고급가죽으로 감싼 실내. B&W 오디오, 360˚ 카메라, 통풍 마사지 시트 등 가격 대비 달리는 장비가 쏠쏠하기 때문. 종합적으로 XC90은 볼보를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차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와 견주다 지는 차가 아니라 앞서는 차다. 비슷한 가격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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