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GLC와 라이벌 대결,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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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가 2가지 크기의 SUV를 내놓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 3세대에 걸친 M-클래스는 수수한 소형으로 가름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는 덩치가 엄청난 GL을 대형이라 할 만하다. 물론 G바겐을 살 수도 있다. 한데 영국에서는 고객이 없었다. 독일군의 예복을 입은 랜드로버 디펜더와 같기 때문이었다. 메르세데스는 GLK를 만들기도 했다. 그 차는 영국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왼쪽 운전석을 오른쪽으로 옮기기는 너무 까다로웠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말 이후 메르세데스는 갑자기 수요가 늘어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럴 만한 물결을 일으키지 못했다. 2014년 이후 그 흐름은 제대로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A클래스 플랫폼을 바탕으로 만든 콤팩트형 GLA가 그 출발점. 모든 플랫폼에 크로스오버를 만들고 그에 어울리는 이름을 고객들에게 알리고자 했다. 따라서 GLE(그 이전에는 M클래스)가 나왔고, 곧 GLS(구형 GL에 뒤이어)가 등장한다. 그 사이에 들어맞는 이 시승의 초점 신형 GLC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차는 패키징 실패작 GLK의 영적인 후계자다. 따라서 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단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차의 하체(더하여 전체적인 프로포션)는 잘 알려졌다고 하겠다. C클래스 플랫폼을 깔았기 때문이다. 다만 길이와 너비가 다 같이 조금 늘어났다. 어쨌든 GLC는 BMW X3에 대한 메르세데스의 응답이라는 말로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정면대결할 라이벌의 정체에 대해 그동안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다. 인기 높은 BMW가 이제 중년에 들어섰다. 그리고 3시리즈는 비대해졌다. 그 대안이 될 프리미엄으로 파고들기에 딱 좋은 때다.
메르세데스 계획의 굴 껍질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는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트의 모습을 하고 있다. LR-MS 플랫폼(그래서 여전히 포드의 잔재가 묻은)을 깔고도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세단에 신세를 지지 않았다. 때문에 보기에도 이 그룹 가운데 '본격적' SUV로 진지하고 무게가 있어 보인다. 아울러 3대 중 유일한 7인승. 과장된 이점이지만 비용이 추가되지 않는 매력이 있다.
AMG 라인 트림에 감싸인 GLC는 디스커버리 스포트만큼 키가 크지 않으나 그 모습은 알맞게 매력적이었다. 메르세데스 홍보실은 우리 시승차에 450파운드(약 76만원)짜리 발판을 달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이 차의 몸체에 근육질적인 힘을 더했다. 부착형 발판은 토요타 랜드크루저 제품이 아니었다. GLC의 두드러진 크로스오버다움을 한결 부드럽게 하는 사실이 있었다. 아치를 꽉 채운 20인치 옵션 휠을 달고 나온 GLC는 X3보다 확실히 예리하게 다가왔다. X3은 얼굴 치장을 하고 M 스포트 의상을 입고도 테일러 윔피의 볼품없는 투터식 저택처럼 낡기 시작했다.
GLC의 실내는 거의 C클래스에서 빌려와 마무리했다. 그에 비해 X3은 명쾌하게 지고한 BMW의 위상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인체공학, 기능과 나아가 제작 품질마저 우월하다. 근데 외부처럼 전체 디자인과 일부 스위치 기어가 시대에 뒤떨어졌다. GLC의 실내를 한번 훑어보면 당장 알 수 있다. 미끄러운 피아노블랙으로 덮고 배열각이 특별한 실내장비는 3분의 2가 고급시장의 미래형이고, 3분의 1은 영화 <스타워즈>의 타이 파이터 조종실을 연상시킨다. 실로 경탄할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솔직히 털어놔야 할 게 있다. 메르세데스가 고집스레 컬럼 시프터를 써서 신경을 건드린다. 무게를 줄이는 마그네슘 하우징에 들어 있는 최신 9단 토크컨버터 자동박스를 짧은 스틱과 연결했다. 이처럼 21세기의 첨단장비를 영화 <택시>의 토이 단차와 같이 써야 하는지 묻고 싶다. 가령 다른 조절장비를 이런 식으로 써야 할 센터콘솔의 공간이 더 있다고 하자. 그런 여분의 공간은 인포테인먼트 다이얼과 그 위에서 팔 고생을 시키는 수많은 장비를 담아내기에도 부족하다.
아마도 이 때문에 디스커버리 스포트가 계속해서 나를 끌어당기는가 보다. 객관적으로 3대 라이벌 중 가장 변화가 없는 모델이다. 랜드로버 내부에서 레인지로버 배지를 단 이보크 이상으로 특별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견제하고 있다. 심지어 HSE 스펙에도 실용주의적 색채를 덧입혔지만 아주 정답게 다가온다. 디스커버리는 여전히 SUV 가운데 레더맨과 같은 다목적 도구. 비싸고 단단하고 쓸모 있고 믿음직하다. 디스커버리는 프리미엄과 주류 고객층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이처럼 기묘한 위치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장기 시승차로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 온갖 오프로드 행사에 나갔고, 그 뒤에는 턱시도를 입는 행사에도 나갔다. 어느 경우에나 어울렸다.
뒷좌석 공간은 3대 모두 실속 있는 패밀리카다. X3은 GLC보다 머리 공간이 약간 크지만, 다리 공간은 둘 다 똑같이 넉넉하다. 랜드로버는 휠베이스가 더 짧으나 다른 라이벌과 실내공간에 차이가 없다. 2개 보조석에는 꼬마를 앉힐 수 있다. 하지만 디스커버리 스포트는 패키지를 깔끔하게 처리해 문제를 해결했다. 트렁크 용량은 3대 모두 똑같이 칭찬을 받을 만했다. GLC 용량이 C클래스 왜건보다 60L 크다. 이로 미뤄 SUV의 실용성이 더 크다는 사실이 입증됐고, 따라서 가치가 더 올라갔다.
아울러 실용성이 더 올라간 또 다른 지표로 메르세데스의 4매틱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여기서 몰아본 250d의 경우 201마력의 2.1L 4기통 디젤 엔진을 받아들였다. 따라서 GLC는 디스커버리의 178마력 2.0L 인제니움과 BMW의 188마력 4기통 디젤보다 좀 더 강력하다. GLC는 0-시속 97km에 가속에 8.0초 이하, 경쾌하기로 이름 높은 X3도 따를 수 없었다. 랜드로버는 그보다 더 뒤졌다. 9단 자동박스와 좀 더 늘어난 무게가 인제니움 엔진에 더 큰 부하를 걸었다. 이번 비교시승에서 세련된 소음 처리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었다. 메르세데스는 정상 이상으로 두꺼운 방음재로 엔진을 감쌌다. 따라서 이상하게 요란한 엔진음이 급가속할 때에만 드러났다. 한데 디스커버리 스포트와 X3은 GLC보다 엔진 노이즈가 더 컸다. 게다가 디스커버리는 진동이 심했다.
GLC의 페이스는 현대 SUV의 쓸모 있는 장점으로 꼽혔고, 초기에는 잘 살리는 듯했다. 라이벌에 비해 나직이 내려앉았다. 실은 좌고가 너무 낮아 랜드로버보다는 아우디 A4 올로드의 상대로 보였다. 아울러 페달과 스티어링도 세단형이었다. X3의 경우 스티어링은 판타지 작가 조지 RR 마틴의 페이퍼백 허리둘레만큼 굵은 스티어링을 달았다. 따라서 앞바퀴굴림만큼이나 단호한 회전력을 갖췄다. 메르세데스가 뒤따랐다. 가변랙이 그에 못지않게 빨랐으나 활력이 조금 떨어졌다. 디스커버리는 기대대로 앞바퀴를 상큼하고 힘차게 돌렸다. 그에 비해 GLC는 활력이 없다고 할 만큼 무기력했다. 따라서 페달도 스타트-스톱에 다 같이 이상하게 무감각했다.
여기서 GLC가 더 뛰어났다. 주류 크로스오버와 포르쉐 마칸 사이에는 수많은 콤팩트 SUV가 몰려 있다. 그들의 섀시 성격을 가늠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BMW와 랜드로버는 명쾌하게 응답했다. 여기서 시승한 X3은 의외로 가치가 뛰어난 650파운드(약 110만원)짜리 적응형 서스펜션을 제외하고 어울리지 않는 20인치 합금 휠을 달았다. 승차감은 등받이가 뻣뻣한 듯 돌발적이었고, 트럼프 카드 한 벌보다 깊은 노면 요철을 치고 나갔다. 게다가 뒷바퀴 편향적 x드라이브 네바퀴굴림은 중립적으로 코너를 평탄하고 집요하게 물고 돌아갔다.
그에 비해 디스커버리는 중압하에 기울어질 때는 마치 뒹구는 것 같았다. 예상보다 바깥 바퀴에 하중이 실렸고, 폭이 더 좁은 19인치 타이어는 더 빨리 반응했다. 한데 그 평형감각과 침착한 일차적 승차감은 모범적이었다. '컴포트'(Comfort)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끝없이 무게와 스피드와 거동을 조율했다. 마침내 인제니움 엔진이 개성을 발휘했다. 거침없이 감속변환에 열성적인 기어박스 덕분에 중간 회전대에 43.7kg·m를 쉬지 않고 쏟아부었다.
GLC는 이상적으로 상·하향 변환에 다 같이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150파운드(약 25만원)짜리 멀티챔버 에어서스펜션의 정숙성에 역점을 뒀다. 안타깝게도 옵션박스를 시험할 기회는 없었다. 우리 AMG 라인 시승차는 피동적인 '스포츠' 서스펜션을 받아들였다. SE 버전의 '컴포트' 편향적 서스펜션과는 달랐다. 아무튼 열성 면에서 서스펜션은 GLC의 강점이 아니었다.
오른쪽 운전석 버전은 왼쪽 운전석보다 뒷바퀴에 훨씬 많은 파워를 보냈다. 그러나 시승차의 과도한 언더스티어 편향에 밀려 처음에는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 메르세데스의 직접 조향 전동랙의 변덕과 보디컨트롤에 놀랍도록 관대한 스포티 댐퍼가 빚어낸 특성이었다.
하지만 저속에서는 아주 부드러운 거동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이때 GLC의 안락성이 디스커버리보다 빛났다. 빈둥거릴 때는 기묘하게도 초보적이란 느낌이 들었다. 메르세데스의 정교한 기술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데 어느 수준까지만 그랬다. 다시 말해, 이 차의 크고 아름다운 바퀴가 빠지기 알맞은 구덩이를 만나는 순간까지였다.
이와 같은 부조화는 GLC의 얼룩진 성격을 말해줬다. 메르세데스는 그 차급에 에어 보디 컨트롤을 고를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X3이 적응형 서스펜션으로 개선됐듯이 GLC가 더 좋은 차가 되리라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더 비싼 옵션과 반직관적인 대형 휠을 제외한다면 시승차의 어느 스펙이 적합하다고 할 수 없었다. 즉석에서 어느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면 나는 GLC를 찍었을 터이다. 그보다 오래되고 가벼운 X3보다 역동적 성능이 떨어져도 참신성과 미학적인 매력이 앞서는 새 차이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GLC는 더 빨랐다(결코 무시할 수 없는 강점이었다). 메이커 자료에 따르면 아주 미미하지만 유지비가 더 적었다. 하지만 그 점은 선택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펙자료를 어느 각도에서 살펴봐도 디스커버리 스포트를 넘어설 수 없었다. 현대적 SUV 테스트에서 최저속과 비능률은 휠 아치에서 녹슨 자국을 발견했을 때처럼 뜨끔한 약점이다. 그러나 랜드로버의 뛰어난 전통을 따라 스포트를 몰 때는 결함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었다. 스티어링과 완벽한 자신감이 가장 만족스러운 드라이빙 머신과 가장 뛰어난 거주성을 뒷받침했다.
두 라이벌은 특정한 조건에서 빛났다. 그와는 달리 디스커버리는 어떤 조건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다. 2개가 많은 좌석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었다. 그리고 이따금 더 깊은 진창을 공략하는 능력(단연 우월하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GLC와 X3은 각기 스펙 자료를 만드는 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 랜드로버가 이 세그먼트에서 결코 놓칠 수 없는 온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사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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