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직한 후발주자, 재규어 F-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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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가 81년 역사상 처음으로 SUV를 만들었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세그먼트에서 뒤늦게 뛰어든 재규어가 어떤 무기를 갖고 나왔을지 무척 기대되었다. 한편으로는 흐름에 맞춘 단순한 라인업 확장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도 들었다. 이런 생각은 F-페이스를 타고 온종일 서킷과 고속와인딩, 오프로드를 체험하면서 말끔히 사라졌다. 재규어 특유의 디자인과 F-타입의 날렵한 운동성능, 오프로드 명가 랜드로버 DNA까지 물려받은 F-페이스는 팔색조의 매력을 뽐내며 도로를 휘어잡았고, 브랜드의 미래까지 책임질 주력 모델로 손색이 없었다.
익숙한 첫인상
F-페이스를 경험하기 위해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했다. 서킷 입구에서부터 사선으로 늘어선 F-페이스가 낯설지 않다. 크기가 부쩍 커졌을 뿐 영락없는 재규어의 모습이다. 날렵한 헤드램프와 단정한 격자무늬 그릴, 앞바퀴 뒤 휀더 장식, 테일램프의 형상까지 최신 재규어 패밀리-룩이 짙게 묻어있다.
그래도 곳곳에는 F-페이스 만의 특징이 숨어있다.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유리창과 완만하게 누운 뒷창문은 한결 날렵해 보이고, 크게 부풀린 뒷바퀴 휀더는 얇은 제동등과 어우러져 F-타입을 보는 것 같다. 높아진 지상고와 범퍼 밑에 두른 두툼한 플라스틱 보호대도 차의 성격을 알려준다.
스포츠카의 탈을 쓴 SUV
감상도 잠시 트랙에서 차를 느껴보라는 담당자의 말에 서둘러 운전석에 앉았다. 서킷에는 F-페이스 퍼스트에디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V형 6기통 3.0리터 디젤엔진을 장착한 30d 모델을 바탕으로 몇 가지 고급 옵션을 추가한 한정판 모델이다.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는 71.4kg.m이나 된다. 높은 숫자에 살짝 긴장이 되면서도 인스트럭터 지시에 따라 과감하게 서킷을 돌았다.
사실 F-페이스는 요즘 SUV와 다르게 시트 포지션이 높은 측에 속한다. 험로주행에서는 좋겠지만 고속 주행이 많은 서킷에서는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재규어는 이런 불안감을 완벽한 기계적 세팅으로 감췄다. 높은 성능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각종 주행 보조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재빠르게 구동력을 배분해 주는 AWD를 비롯해 뒷바퀴 조향각을 틀어 보다 안정적인 코너링을 도와주는 토크 백터링 시스템, 차체 움직임과 스티어링 휠 조작을 분석해 댐퍼의 설정을 세밀하게 조정하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시스템까지 다양한 기능이 매 순간 차를 올바른 자세로 유도한다.
덩치 큰 SUV에서 이런 날렵함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금세 SUV라는 생각을 잊고 고성능 스포츠카처럼 짜릿하게 차를 몰아 붙이게 된다. 센터페시아 화면에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중력값 그래프도 이를 뒷받침한다. 물론 욕심이 과하면 여지없이 뒤 꽁무니를 흘리며 경고를 주지만 이런 과정을 알아차리기 전에 재빠르게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다. 운전자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재규어의 앙칼진 성격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묘한 끌림과 매력은 배가 된다.
랜드로버 피는 못 속여
트랙 주행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차를 바꿔 타고 오프로드를 떠났다. 목표는 해발 1,117m 한석산 정상을 찍고 오는 코스, 전날 비가 온 탓에 땅 상태가 좋지 못했다. 올라갈수록 경사도 높아지고 움푹 패인 곳도 늘어났다. 운전 모드를 접지력이 높은 빗길모드로 바꾸고 내리막길에서는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을 이용해 저속 크루즈 기능을 활성화시켜 내려왔다. F-페이스는 차분히 본연의 실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면을 통해 구동력 배분을 보여주는 AWD 시스템과 끊임없이 잡았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오프로드 시스템으로 안전하게 코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한 지붕 식구인 랜드로버의 피는 못 속이는 뛰어난 오프로드 실력이다. 또, 맹렬히 트랙을 달릴 때와는 다른 매력으로 믿음을 준다.
아주 조금의 아쉬움
한석산을 내려와 곧바로 고속와인딩이 이어졌다. 차는 가장 많은 판매가 예상되는 20d 모델로 직렬 4기통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을 넣어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를 발휘한다. 매력적인 숫자는 아니지만 차를 끌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가파른 한계령을 거침없이 올라갔고 8단 자동 변속기 또한 민첩하게 제 위치에 찾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단, 급히 가속페달을 밟으면 터보렉(터보 엔진 특유의 반박자 느린 반응)이 조금씩 일어난다. 기분 좋은 반응은 아니다. 디젤 엔진 특유의 소리도 조금 거슬린다. 앞서 선보인 능력이 뛰어나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에는 조수석에 앉아 여유롭게 실내를 둘러봤다. 온종일 차를 탔는데 이제서야 실내가 눈에 들어온다. 그 만큼 다른 재규어 차에서 보아왔던 너무나 익숙한 디자인을 하고 있다. 익숙함이 지루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단정한 센터페시아와 커다란 모니터, 깔끔한 풀 디지털 계기반 등 감각적인 실내 구성은 재규어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다. 문짝에서 시작해 대시보드를 둥글게 감싸는 랩 어라운드 디자인은 포근한 느낌마저 들고, 강원도 산세를 바라보며 차 안에는 듣는 메르디안 오디오는 마음마저 절로 차분해 진다.
재규어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모델
F-페이스와 함께 정신없이 서킷을 타고,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오르내리며, 한계령 고갯길을 돌아 나왔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찾은 F-페이스의 매력은 피곤함도 잊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어떤 상황에 마주쳐도 차는 의연하게 대처했고 기대 이상의 실력을 발휘해 믿음을 주었다. 후발주자에 대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침착하게 갈고 닦아 완성도 높은 알찬 SUV로 거듭났다. 너도나도 만들고 있는 SUV 시장에서 재규어만의 색깔로 가득 뭉친 이 차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재규어의 미래를 짊어질 F-페이스의 도전을 유심히 지켜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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