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SL400, 꿈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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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버터블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차에 대한 경험이 늘면서 오픈카에 대한 시선도 시나브로 달라졌다. 소프트톱은 여전히 관심 밖 차종이지만, 하드톱 컨버터블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봐도 좋겠다 싶어졌다. 메인카로도 오픈카가 가능할 수 있다. 1인가구의 오픈카 마니아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꿈과 낭만의 오픈카로 실용성까지 탐하는 건 과한 욕심이다. 말 그대로 오픈카는 실용성 대신 즐거움을 챙겨야 하는 차다.
여기 6세대 페이스리프트 SL이 있다. 모델명은 SL 400. 1952년 태어난 300 SL을 시작으로 60년 넘게 전세계 마니아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주인공이다. 2012년 등장한 6세대 부분변경 모델은 큰 범주에서 형태와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제법 많은 곳이 달라졌다. 전설의 레이싱카 300 SL 파나메리카나의 가파르게 경사진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 디자인한 앞모습은 직각으로 싹둑 자르고 아래로 흘려 도도하면서 다이내믹해졌다. 거기에 다이아몬드 라디에이터 그릴을 채워 넣어 고급스러움에 젊은 감각까지 챙겼다. 차체와 같은 색의 프런트 스플리터와 A-윙 아가미 덕분에 AMG 보디 스타일의 공격적인 카리스마도 비친다.
알다시피 SL은 ‘Super Light’의 약자. 경량화에 신경 많이 쓴 모델이라는 의미다. 6세대 SL부터 사용 중인 알루미늄 차체는 스틸보다 약 110킬로그램 가볍다. 1952년 경량 튜블러 프레임으로 선보인 오리지널 SL의 명성을 잇고 ‘엄청나게 가볍다’는 모델명의 의미를 충실히 따른 증거다. 디자인과 더불어 큰 변화는 파워트레인이다. 3.0리터 V6 가솔린엔진은 기존보다 34마력과 2.0kgm 높아졌다. 최고출력은 367마력, 최대토크는 50.9kgm나 된다. 더 풍족해진 출력성능 덕분에 0→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4.9초면 충분하다. 구형보다 0.3초 빨라졌다. 화끈해진 엔진은 9단 자동변속기와 호흡을 맞추며 부드러우면서도 빠르게 출력을 몰아 쓴다.
크고 육중한 도어를 열고 시트에 오른다. 프레임리스 도어는 문 닫힘과 동시에 살짝 내려갔던 윈도를 ‘착’하고 탄력있게 닫아 마무리한다. 커다란 앞유리뿐 아니라 쪽창 같은 뒷유리도 함께 움직였다. 프리미엄은 세심한 마무리와 남다른 반응으로 차별화를 꾀한다. 옹색하지만 시트 뒤로 수납공간도 챙겨뒀다. 시트 등받이 위에 달린 앞뒤 조절버튼을 꾹 한 번 눌렀다 떼면 자동으로 시트를 최대한 앞으로 밀어 공간을 만든다. 성격 급한 사람이라면 시트가 움직이는 동안 애간장이 타겠지만, 프리미엄은 인내심도 필요한 법이다.
실내에는 요즘 메르세데스-벤츠가 선보이는 그것 대신 구형이 들어찼다. 커다란 모니터를 중심으로 단순하고 직관적인 구성 대신 버튼으로 빼곡하다. 간결한 첨단 센터페시아 대신 클래식한 옛날 구성이지만 불편하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과 구성은 예나 지금이나 나쁜 적이 없다. 검정 가죽으로 두른 대시보드에 스티치가 선명하다. 센터페시아 아래와 도어패널, 시트는 검붉은 가죽으로 치장해 프리미엄을 강조한다. 마감재 하나하나가 최고급 취향을 저격한다. 패들시프트를 품은 두툼한 가죽 스티어링은 손에 착착 감겨 묵직하고 부드럽게 돌았다. 자쿠지처럼 포근한 2인승 시트 뒤의 앙증맞은 선반과 최소한의 공간은 광활한 뒷공간만큼 쓰임새가 요긴하다.
SL이 각인된 조막손 같은 기어노브를 D로 옮겨 가속페달에 무게를 싣는다. 묵직한 바리톤 배기사운드가 차체를 감싼다.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들어간 엔진사운드 제네레이터가 이따금 팝콘 튀기는 소리를 내며 달리는 맛을 자극한다. 2천rpm부터 터지는 최대토크와 6천rpm까지 치솟는 최고출력이 언제든 원하는 만큼 속도를 높였다. 낮고 넓은 차체는 바닥에 달라붙어 부드럽고 우아하게 도로를 누볐다. 루프를 열고 유유자적 드라이빙을 즐기는 그랜드 투어러 성격이 하체에서 도드라졌다. 흡족한 하체는 물렁하지 않으면서 말랑거렸고, 낭창거리면서 도로를 진득하게 움켜쥐고 달렸다. 롤링과 바운싱을 충분히 억제해 속도를 높여도 안정감은 줄지 않았다. 낮고 넓은 차체는 꽤나 날카롭고 절도있게 코너를 잘라 돌며 통쾌하게 내달렸다. 줄곧 일정한 답력으로 예상한 딱 그만큼씩 반응하는 브레이크시스템 또한 마음 놓고 질주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신뢰의 아이템이다.
연일 기록갱신 중인 폭염 속 어느 여름날. 해가 지고 그늘이 들어서야 톱을 열었다. 시속 40km 속도로 달리면서도 하늘을 마주할 수 있다. 바람은 딱 좋을 만큼만 실내로 들이쳤다. 예리하게 조율한 A-필러와 앞유리 경사각, 윈드 리플렉터 등의 기술이 선사하는 오픈에어링의 매력은 열대야의 한 여름 밤을 지중해의 저녁으로 바꿔놓았다. 오픈과 관련한 희소식이 하나 더 있다. 기존에는 루프를 열려면 손수 여닫아야 했던 트렁크 안쪽의 세퍼레이터가 이제는 자동으로 움직인다. 시트에 앉아 가만히 버튼만 누르면 오케이다. 드라이빙 어시스턴트 패키지 플러스까지 기본으로 품어 반자율주행의 호사스런 경험도 가능하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컨버터블 모델로 드림카 군단을 만들 계획이다. 컨버터블을 몰고 유유자적 바람의 노래를 즐기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 중 하나다. 첨단의 산물인 기곗덩어리를 몰고 자연의 소리와 냄새에 취하는 꿈. 당신의 꿈은 생각보다 쉽고 더 훌륭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SL 400만 손에 넣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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