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잡기의 정석! 랜드로버 디펜더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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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오프로더는 분명 대중적이지 못하다. 뭔가 전문지식을 갖춰야 할 것 같고 일반적인 자동차와 차별화된 튜닝과 운전법을 숙련해야 할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디펜더는 다르다. 출퇴근을 위한 패션카부터 정통 오프로더까지 대응할 수 있다. 랜드로버가 개최한 ‘데스티네이션 디펜더’는 이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고, 자신만의 매력을 충분히 잘 보여줬다.
2024년형 디펜더는 사실상 같다고 보면 된다. 90 모델에는 에어서스펜션이 추가됐고 110에는 카운티 에디션이, 130에는 아웃바운드가 더해졌다. 디펜더가 국내에 모습을 드러낸 지 4년이 지난 시점에서 소비자 관심을 끌 수 있는 트림을 추가했다고 이해하면 된다.
‘데스티네이션 디펜더’ 행사는 다양한 주행 환경을 경험하며 디펜더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포장길, 비포장길, 물길, 산길, 진흙 길 등 다양한 지형과 환경에서 디펜더는 일관된 안정감과 실력으로 너무나도 쉽게 모든 구간을 통과했다.
이번 행사에서 만난 모델은 디펜더 중 130 P400 아웃바운드 모델이다. 디펜더 중 가장 큰 130에 3열 시트를 덜어내 넓은 공간을 품은 사양이다. 여기에 400마력을 발휘하는 직렬 6기통 가솔린 터보엔진도 얹었다.
조용하다. 거칠고 터프한 느낌의 오프로더와 거리가 멀다. 소음과 진동 모두 아주 잘 억제돼 고급 SUV가 부럽지 않다. 주행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레임 차체 특유의 불쾌한 잔진동 없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만든다. 올 터레인 타이어로 달려도 여느 고급 세단 부럽지 않은 정숙성과 승차감을 보인다는 게 특히 인상적이다.
힘도 좋다. 6기통 3리터 가솔린 터보 엔진은 400마력과 56.1kgf.m를 발휘한다. 여기에 8단 자동변속기의 촘촘한 기어비 덕분에 공차중량 2.6톤짜리 차체가 제법 가볍게 움직인다. 다양한 환경에서 힘 부족에 의한 아쉬움은 나오지 않았다. 지상고도 높고 시트 포지선까지 높기 때문에 운전할 때 속도감이 둔하게 다가오긴 하지만 분명 추월이나 초반 가속은 일반적인 모델들보다 여유로웠다. 물론 차의 무게를 고려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지 폭발적인 가속감까지 기대하면 안 된다.
나긋나긋하다. 스티어링 휠도 가벼운 편이고 에어서스펜션을 사용한 섀시, 생각보다 힘이 좋은 파워트레인 조합 덕분에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가볍고 편안하게 주행을 즐길 수 있다. 사실 지프 랭글러도 일상 용도로 주행하려면 여러 부분에서 타협이 필요했다. 하지만 디펜더는 정통 오프로더가 아니라 일상 용도로 활용해도 지장이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승차감과 조작감을 전달했다.
여기에는 한가지 차별화 포인트가 있다. 프레임 구조가 아닌 알루미늄으로 만든 모노코크 구조의 차체를 채택한 것. 덕분에 차체에서 발생하는 특유의 승차감 저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차체에 사용한 알루미늄 비중이 제법 높음에도 디펜더는 무겁다. 그 덕분인지 견인 용량은 3.5톤이나 된다. 쉐보레 콜로라도나 쌍용 렉스턴 스포츠와 같은 프레임 차체와 동등한 수치다. 참고로 쉐보레 트래버스나 포드 익스플로러 등과 같은 모노코크 대형 SUV들은 2.2톤 내외 수준의 견인력을 갖는다.
4개의 바퀴를 기계적으로 굴리는 구조를 갖는 모델은 가속페달을 밟거나 떼는 경우 ‘텅’하며 기계적인 충격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센터 디퍼렌셜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유격 혹은 기어비 매칭 등으로 표현되는데, 디펜더에는 이러한 충격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렇듯 승차감 측면에서도 전자식 4륜 시스템은 이점을 갖는다.
하지만 이것이 디펜더의 무서운 점이다. 뛰어난 오프로드 실력을 이처럼 잘 숨겼기 때문이다. 랜드로버가 준비한 오프로드 코스의 시작은 도강부터다. 로우레인지 기어 설정 후 주행모드를 도강모드로 바꾼다. 차체가 순식간에 높아지면서 900mm 수심까지 건널 수 있다고 알려준다. 인포테인먼트 모니터를 통해 도강 중인 수심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웨이드 센싱 기능도 실행된다.
범퍼 윗부분까지 물에 잠긴다. 실내에서는 엔진음이나 배기음보다 옆에서 물이 출렁이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차의 진행 방향과 달리 옆으로 관통해 흐르는 상황이라 자칫 차가 접지력을 잃거나 떠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디펜더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너무도 쉽고 여유롭게 물을 건넌다. 괜한 걱정이었나 싶었을 정도로 말이다.
다음은 다양한 경사로로 이뤄진 비포장길이다. 제법 큰 경사로도 너무 쉽게 통과한다. 디펜더의 등판 각도는 최대 45도에 이른다. 대각선 형상의 급격한 경사를 오른다. 왼쪽 앞바퀴와 오른쪽 뒷바퀴가 공중에 뜬다. 조금 더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바퀴가 헛도는가 싶더니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아무렇지 않게 말이다. 센터 디퍼렌셜과 리어 디퍼렌셜 모두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구동 배분하는 덕에 운전자가 별다른 조작도 할 필요 없다.
진흙 길로 진입한다. 스티어링휠을 조작해도 거의 접지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퀴도 푹푹 빠진다. 일반 SUV로는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이는 환경이다. 주행모드를 진흙으로 설정한다. 천천히 하지만 안전하게 진흙 구간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번에도 역시 운전자가 하는 일은 많지 않다. 가속페달과 스티어링휠을 적당히 조작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결과는 역시나 너무나도 쉽게 통과.
다음은 산길을 포함한 임도 주행 코스다. 차 크기 대비 도로 폭이 좁은 편에 속했다. 큰 차를 운전하면 차폭 감이나 전면 거리감 이 모호해서 불편한데 디펜더는 그렇지 않다. 적당한 시트 높이와 시야각 덕분에 보닛 끝부분이 잘 보일 뿐만 아니라 의외로 차폭 감도 직관적으로 느껴진다. 큰 차를 운전하는 부담이 크게 들지 않아 다루기 쉽다.
‘쉽다’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자동차를 다룬다는 것에 골치 썩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앞에 모래가 있는 것 같으면 다이얼을 모래 모양으로 돌리면 되고 바위가 있으면 바위 모양으로 돌리면 된다. 길이 미끄럽게 생겼으면 미끄러운 길 모양으로 돌리면 끝이다. 나머지는 디펜더가 다 알아서 해준다. 디퍼렌셜이 어떻고 지상고와 램프각이 어떻고를 운전자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과거의 디펜더는 지프 랭글러보다도 더 오프로드 주행 능력에 집중했었다.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했다던 SUV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디펜더는 이름만 유지한 채 모든 것을 바꿨다. 최신 트렌드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덕분에 정통 오프로더라는 분류가 무색하도록 일상 주행에서도 만족감이 높았다.
물론 강력한 오프로드 성능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 성능을 운전자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알아서 매끈하게 해준다. 간단한 조작으로 전문 오프로더 부럽지 않은 주파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반복해 경험해도 늘 새롭다. 그렇기에 디펜더가 독특하고 예뻐서 구입하는 이들도, 디펜더의 궁극적인 성능을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도 모두 만족스러울 것이다.
물론 가격은 좀 비싸다. 이제 디펜더는 모든 등급이 1억 원을 넘는다. 하지만 자동차 세계에서 고급 SUV와 정통 오프로더를 양립할 수 있는 모델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디펜더의 존재 가치는 빛난다. 디자인이 예뻐서, 단순한 출퇴근용 SUV로, 캠핑용으로, 가족과 장거리 주행용으로, 험지 탐험용으로… 디펜더는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 디펜더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과거의 영광을 재현시킨 것이 아니라 지금 대중의 요구를 모두 품을 수 있는 다재다능한 만능 SUV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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