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상냥해진 오픈톱 고카트, 미니 쿠퍼S 컨버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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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미니 컨버터블은 모든 부분에서 진화했다. 이전의 단점을 치밀하게 지우고 장점을 더욱 부각시켰다. 낭만적인 분위기, 운전재미, 실용성, 승차감 어느 하나 양보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미니가 그동안 고민해오던 미니 컨버터블의 완성형이자, 미니 컨버터블 팬들이 기다려온 이상형이라고 할 만하다.
산길로 접어들자 도로는 점점 더 한적해졌다. 오스카 시상식 준비로 교통체증이 극에 달해있는 할리우드 블르버드(대로)를 벗어난 지 불과 5분만이었다. 사실 아까까진 불만이 적지 않았다. ‘아니, LA에서 무슨 시승회야. 하루 종일 차가 막히는 도시에서. 아무리 컨버터블이라지만 미니라면 조금 더 와일드한 곳으로 가야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었다.
여긴 미국 캘리포니아 LA. 기자가 탄 신형 미니 컨버터블은 할리우드 북서쪽 산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날씨는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온도, 습도, 광량, 바람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늘도 그림처럼 파랬다. 그러나 루프를 열 자신은 없었다. 햇볕에 그을리면 기미가 생기는 나이가 됐기 때문이다. 선크림? 강력하다는 제품도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다. 광대와 코끝의 검은 반점. 그거 생각보다 잘 안 없어진다.
풍경 또한 완벽했다. 아름다운 나무들에 둘러싸인 고급 주택들 사이사이로 LA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라는 이름난 부촌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여기에 집이 하나 있다나? 역시 지구를 사랑하는 사나이다. 이런 명당에 집이라니. 그나저나 운이 좋았다면 만날 수도 있었겠다. 오스카에 얼굴을 비추러 와 있었을 테니까(결국 그는 며칠 뒤 염원하던 상을 받았다).
한 10분 정도 더 달리니 집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그리고 도로가 점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상상도 못했다. LA에 이렇게 끝내주는 와인딩 로드가 있을 줄은. ‘미니가 그럼 그렇지’라는 생각과 함께 운전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처음 가본 길에서 그렇게 달리다니. 미국 경찰은 꽤 무서운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미니를 타고 굽이진 길에 접어들면 그럴 수밖에 없다. 경쾌한 엔진, 빠릿빠릿한 스티어링, 탄력 넘치는 서스펜션 등이 달리지 않고는 못 베길 정도의 큰 즐거움을 전달한다. 빠르냐 느리냐의 일차원적인 논쟁은 필요 없다. 또한 운전 실력도 별 상관없다. 속도에 상관없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니까.
이는 어느 한 미니 모델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미니가 그렇다. 신형 미니 컨버터블 역시 영락없는 미니였다. 스티어링 휠을 꺾는 손끝을 따라 앞머리를 잽싸게 비틀며 정신없이 이어지는 코너를 깔끔하게 돌아나갔다. 그러나 이전 세대 컨버터블과는 사뭇 달랐다. 훨씬 여유롭고 푸근했다. 특히 운전대의 반응과 승차감이 부드러웠다.
20여 분간 이어지는 산길을 그렇게 신나게 달렸다. 그러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진 해안도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길 이름은 그 유명한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CA 1, PCH). 지도를 보니 말리부와 산타모니카의 중간쯤이었다. 이쯤 되니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여기서 컨버터블의 루프를 닫고 있는 건 범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자는 지붕을 열고 무책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햇볕과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닷길을 바라보며 ‘왜 하필 LA냐?’는 불만을 가졌던 사실을 반성했다. 정말이지 미니 컨버터블에게 완벽에 가까운 코스였다.
유일한 프리미엄 콤팩트 컨버터블
“미니 컨버터블은 아주 유니크한 존재입니다. 프리미엄 콤팩트카 중에서는 유일한 오픈톱 모델이죠.” 신형 미니 컨버터블의 글로벌 시승회는 이런 자신감에 가득 찬 이야기로 시작됐다.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담당자의 말투 역시 단호했다. 그럴 만도 하다. 미니는 프리미엄 콤팩트카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으니까. 게다가 경쟁 상대조차 없는 컨버터블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미니 컨버터블은 프리미엄 콤팩트 4인승 컨버터블 시장을 꿋꿋이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런 미니 컨버터블이 3세대로 거듭났다. 미니 해치백이 2013년 세대교체를 겪었으니, 예정된 데뷔였다. 물론 세대 구분은 BMW 산하의 미니 컨버터블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다. 클래식 미니까지 따지면 이번 신형은 4세대다. 1993년부터 4년간 딱 1,081대만 생산됐지만, 클래식 미니에도 컨버터블 버전이 있었다.
이번 시승회는 마음이 편했다. 시승 본부가 한인 타운 한복판에 자리한 ‘더 라인’ 호텔에 차려졌기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온 기자들로 북적거렸지만, 주변에는 온통 한국 회사의 간판이었다. 이태원에서의 신차 발표회 같았다면 심한 과장일까? 일정은 미니답게 ‘콤팩트’했다. 제품 설명회와 두 번의 시승을 한나절에 뚝딱 해치워야 했다.
더 편하고 쉽고 즐거워진 오픈톱 미니
시승차는 호텔 앞에 늘어서 있었다. 루프를 연 미니 수 십대가 모여 있으니 굉장히 활기가 넘쳤다. 인상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형 미니 해치백에 소프트톱을 씌운 모양새였다. 차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는 기자에게 한 담당자가 와서 말했다. “더 이상 뭘 바꿀 필요가 없었어요. 신형 미니 해치백의 비율이 워낙 우아하고 스포티하기 때문이죠.”
분위기는 이전보다 한층 더 든든하고 넉넉하다. 사실 실제로도 차체는 커졌다. 신형 미니 해치백이 그랬듯, 이전보다 98mm 길어지고 44mm 넓어졌다. 늘어난 길이 중 28mm는 앞뒤 차축 안쪽에 담겼다. 덕분에 실내 공간 크기가 무려 25%나 커졌다. 당연히 실용성도 함께 늘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뒷좌석이다. 무릎 공간이 40mm 더 여유로워져 성인도 앉을 수 있게 됐다. 짐 공간은 24% 늘어났다. 톱을 열었을 때 160L, 닫았을 때 215L다. 참고로 위에서 아래로 90도로 열리는 트렁크 리드는 80kg의 무게를 지지할 수 있다.
소프트톱의 개선은 닫았을 때의 만족도에 초점을 맞췄다. 안쪽에 방음재를 넣고, 유리(리어 윈도)에 히팅 기능을 추가했다. 루프를 열거나 닫는 데는 18초가 걸린다. 시속 30km 이하라면 언제든지 작동한다. 미니 컨버터블의 가장 큰 매력인 선루프 기능은 물론 그대로다. 롤오버 바를 숨겨 단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변화. 이제는 필요할 때 리어 시트벨트 롤러 안쪽에서 튀어나온다. 사실 이전의 크롬 롤오버 바는 다소 부담스러운 모양새였다.
파워트레인은 신형 미니 해치백과 같다. 시승차는 미니 쿠퍼 S 컨버터블. 최고 192마력, 28.6~30.6kg·m의 힘을 내는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에 6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렸다. 구형과 피크 파워는 비슷하지만 배기량을 0.4L 키운 덕분에 출력(-500rpm)과 토크(-350rpm)를 내는 시점이 앞으로 당겨졌다.
변화의 핵심은 가속 감각이다. 쥐어짜는 느낌이던 이전과는 달리 아주 풍성하다. 터보랙도 상당히 줄어든 편. 가속 페달을 밟자마자 최대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주저 없이 튀어나간다. 초중반 구간은 마치 힘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디젤 터보 엔진과 비슷하고, 중후반 회전구간은 끈질기게 힘을 유지하는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과 유사하기 때문에 운전이 더 쉽고 즐겁다. 실제 가속 성능 역시 개선됐다. 0→ 시속 100km 가속을 이전보다 0.5초 빠른 7.1초 만에 끝낸다.
운전 감각 역시 마찬가지다. 훨씬 나긋나긋해졌다. 스티어링 휠과 서스펜션의 모난 반응을 완만하게 깎아냈다. 구형의 억센 조작감에 놀랐던 사람의 마음도 돌이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짜릿한 핸들링에서 비롯되는 고유의 운전재미는 여전하다. 운전자가 의도한 궤적을 매끈하게 따라 돈다. 서스펜션은 부드러워졌지만 섀시의 완성도와 포용력이 확연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신형 미니 해치백에서도 느낄 수 있는 변화다. 고카트 필링에 대한 미니의 해석이 조금 달라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낭만과 재미 사이
미니 컨버터블은 처음부터 굉장히 낭만적인 차였다. 감성적인 안팎 디자인, 작은 차체, 오픈 에어링 등 컨버터블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요소들을 빠짐없이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의 미니 컨버터블들은 그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4인승이지만 2명밖에 탈 수 없었고 짐 공간도 굉장히 비좁았다. 무엇보다 거친 운전 감각과 승차감이 문제였다. 때문에 디자인에 혹해서 샀다가 되파는 운전자들이 적지 않았다. 기자 주위에도 그런 이가 2명이나 있다.
미니는 1세대 미니 컨버터블을 선보인 뒤, 미니 컨버터블의 핵심 가치인 낭만과 자신들의 존재 당위성인 운전재미(고카트 감성)의 사이에서 적잖이 고민했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과 집중보단 상반된 두 가치 모두를 담아내려 노력했다. 그 증거가 바로 2세대 미니 컨버터블이다. 팬들의 평가야 어쨌든, 2세대는 확실히 1세대에 비해서 눈부신 진화를 이뤘었다.
이번 신형 미니 컨버터블은 미니의 그 고민과 노력의 완성형이자 미니 컨버터블 팬들이 기다려온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다. 승차감, 실용성, 운전재미 등 미니 자신과 미니 팬들이 원하는 모든 것들을 뚜렷하게 개선했기 때문이다. 물론 잡초같이 억센 핸들링이 고카트 감성이라고 믿고 있는 이들은 이 의견에 동의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사실 별 상관없다. 어차피 미니 컨버터블은 동급 유일의 모델. 미니 컨버터블이 가는 곳이 바로 곧 길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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