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재다능한, 메르세데스-벤츠 E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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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 벤츠 뉴 E300 4매틱을 처음 만난 날 아침, 날씨는 잔뜩 흐렸다.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어서 서둘러 촬영팀이 기다리고 있는 송도로 향했다. 강변북로를 타고 가다 인천공항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달리기는 부드럽고 조용하다. 시트는 쾌적하면서도 단단하게 자세를 잡아준다. 차들의 통행이 뜸해진 틈을 타 속도를 높이려는데 차창으로 빗방울이 튀기 시작한다. 이윽고 굵어진 빗방울들이 엄청난 속도를 내며 지상으로 질주한다. 그야말로 폭우다. 그 속에서도 E300 4매틱은 네바퀴굴림답게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한다. 타이어의 그립도 믿음직하다. 비어 있는 1차선에서 속도를 조금 높여도 빗길을 잘 치고 나간다. 섀시의 균형 감각이 안정적인 주행을 뒷받침한다. 근데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든 것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다. 윈도에 밀착되지 못하는 가냘픈 와이퍼는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파르르 떨면서 커다란 소음을 냈다. 이는 와이퍼 블레이드 또는 시승차만의 문제일 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의 신차에서도 종종 발견하는 문제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온갖 첨단장비에 열중하면서도 오히려 이런 기본적인 부분에 소홀한 건 아닌지.
비 그친 다음날 마치 처음 만난 것처럼 E300 앞에 섰다. E300은 그 자체로 보면 그다지 커보지는 않고 콤팩트한 느낌인데 다른 중형차 옆에 같이 서 있으면 확실히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이전 세대보다 차체 길이가 45mm 길어지고 휠베이스는 65mm 늘어났다. 짧은 오버행과 긴 보닛, 쿠페 라인으로 떨어지는 루프 등 비즈니스 세단이면서 스포티한 감성은 살아있다. 모두들 낮아지는 공기저항계수(Cd)를 자랑하지만 신형 E 클래스의 0.23Cd라는 수치는 그중에서도 빼어난 수준이다.
신형 E 클래스(W213 시리즈)는 이번이 10세대 모델. 1947년 처음 선보인 170 V(W136 시리즈)를 그 출발점으로 잡아 70년의 기나긴 여정이 스며들어 있다. 화려하고 장식적이었던 초창기 시리즈를 지나 현대적으로 변모해온 세대별 모델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다른 클래스와 차별점이 뚜렷했다. 그러나 10세대 모델에 이르러서는 C클래스 디자인과 유사하고 S클래스와도 비슷한 이미지다. 클래스별 디자인 차이가 희미해지는 추세는 아우디, BMW 등 독일차들의 공통적인 현상이기도 한데, 이게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결국 고객들이 더 비싼 값을 지불하는 이유는 차별화 때문이 아닌가?
E300 4매틱 시승차는 굵은 라디에이터 그릴과 보닛 위에 배지를 붙인 아방가르드 모델이다. -촘촘한 그릴과 삼각별 엠블럼을 보닛 위에 세운 익스클루시브(S 클래스 분위기에 더 가깝다) 모델은 200만 원 더 비싸다- 도어를 열고 실내에 들어서면 신형 E 클래스가 얼마나 새로워졌는지 즉각 알 수 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고, 첨단 감각을 가미했다. 태블릿 PC를 가로로 2개 연결한 듯한 디스플레이는 수평 기조로 계기반과 내비게이션 영역이 구분된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형식이다. 그래픽은 선명하고 직관적이다. 스티어링 휠 왼쪽 그리고 오른쪽 엄지손가락 닿는 곳에 터치 패드가 있어 각각의 메뉴들을 선택하고 클릭한다. 벤츠의 설명에 따르면 세계 최초의 기능이다.
보이는 곳 손닿는 곳 모두 가죽과 나무의 질감이 고급스런 분위기를 더한다. 플라스틱 재질은 도어 손잡이 뒷면(만져보기 전에는 모른다)이나 파워 윈도 스위치 주변 등에 일부 쓰이긴 했지만 최대한 억제했다. 센터페시아 아래 깊숙한 컵홀더는 수납공간 기능을 겸하는데 안쪽으로 덮개가 달린 재떨이가 마련되어 있다. 재떨이는 센터콘솔 뒷면 뒷좌석용 송풍구 아래에도 마련되어 있다. 최근의 신차들에 비해서는 애연가를 많이 배려(?)하는 구성이다.
벤츠가 뉴 E 클래스를 내놓으며 가장 자랑한 부분 중 하나가 자율주행에 근접한 기술이다. 과연 어떤지 체크해 보기로 한다. 먼저 스티어링 휠 왼쪽 아래의 스티어링 휠 모양 버튼과 차선유지 버튼을 켠다. 그리고 크루즈 컨트롤 스틱을 당겨 속도를 맞춰야 기능이 활성화된다. 이때 헤드업 디스플레이 주변에 파란색 원이 그려진다. 속도제한 90km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시속 88km에 맞추고 달렸다. 스티어링 휠에서 손을 떼고 페달에서 발도 뗀 상태. 앞차가 속도를 올리자 그에 맞춰 속도를 올리고 반대로 늦추는 경우에도 따라 늦춘다. 이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다. 신호등 앞에서는 긴장하며 브레이크를 밟을 준비를 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앞차를 따라 정확하게 멈춰 선다. 사람이 브레이크를 직접 밟을 때보다 더 충격이 없다. 그리고 다시 출발할 때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 한다.
스티어링 휠에서 오래 손을 떼고 있으면 경고등이 살짝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경고음을 울리지는 않는다. 나중에는 팔짱을 끼고 달릴 만큼 여유를 부렸다. 그만큼 믿음이 생겼다. 그럼에도 운전하는 동안 스티어링 휠을 잡고 운전자가 차를 온전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기술들이 진전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드라이브 파일럿 기능 외에 교차로 어시스트 기능이 들어간 브레이크 어시스트, 조향회피 어시스트, 프리-세이프 임펄스 사이드 기능 등이 입체적으로 운전자를 보호한다. 물론 기계적인 장치에 안전을 모두 맡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만큼 사고 회피능력이 커졌다는 얘기다.
직렬 4기통 터보 휘발유 엔진은 마치 6기통처럼 부드럽고 힘 있게 뻗어나간다. 트랜스미션은 이전 7G-트로닉 대신 9G-트로닉을 얹었다. 기존보다 2단이 추가되었지만 차지하는 공간은 그대로이고 무게는 1kg 줄었다는 설명. 기어비 폭이 넓어진 만큼 낮은 rpm에서 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다. 실제 달리면서 확인했을 때는 시속 120km에서 1천800rpm 정도를 나타냈다. 웬만한 속도에서는 2천rpm 내외에서 충분히 커버한다. 거의 디젤 엔진에 가까운 효율성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리고 고속주행으로 꾸준히 밀고나갈 때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이 장점이다.
에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의 드라이브 모드의 전환은 그 차이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모드 변경이 성가시다면 인디비주얼 모드에서 세팅하면 된다. 드라이브 파일럿이라는 자율주행에 가까운 기능도 좋았지만 역시 속도를 조절하며 달리는 재미가 있다. 달리기의 질감은 부드러우면서 때로 스포티하다. 그 경계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속도를 높이거나 줄일 때 차체의 거동이 진중한 것이 벤츠의 장점이라면 신형 E300은 그런 특성이 더 향상된 느낌이다. 시속 80km에서 120km 가속이 무척 가뿐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가속도 경쾌하고 매끈하다. 경쾌한데 가볍지는 않고 어느 속도에서나 안정감을 유지한다. 네바퀴굴림의 코너링은 민첩함보다는 정확하다는 인상이다. 코너에 진입할 때보다 빠져나올 때 움직임이 더 활기차다. 고속에서도 승차감은 부드럽고 안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다. 속도에 어울리는 바람소리만 들릴 뿐 전반적으로 조용하다. 10세대 E 클래스는 역대 어느 모델보다 혁신적이지만 운전성능도 더 한층 세련된 느낌. 한마디로 다재다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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