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370Z, Z 전환기의 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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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국내 데뷔 후 특별한 변화가 없었던 370Z가 2016년형으로 개선판을 내놓았다. 신형이라 부르기 머쓱할 정도로 변화의 폭은 적지만 가격은 크게 낮췄다. 군데군데 나이든 티를 속일 순 없지만, 그냥 끝물로 치부하기엔 달리기의 순도가 너무 높다.
2009년은 370Z가 데뷔한 해다. 데뷔 후 만 6년이 지난 셈이지만 여전히 강렬한 스타일링 덕분에 그닥 나이들어 보이는 차는 아니다. 하지만 구석구석 차를 훑어보면 묘하게 나이 들어 보이는 부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계기판의 디지털 정보를 표시하는 디스플레이 같은 것들 말이다. 단색 매트릭스 LCD는 2000년대 초반의 차에서 주로 보이던 것들이다. 근원을 따지자면 이 차의 실제 데뷔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자동차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나는 스포츠카로 채운 회사가 닛산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수가 사골국 같은 존재인 경우가 좀 있다. 아직도 각종 드리프트에서 현역으로 활동하는 실비아는 3세대가 같은 차대와 엔진을 공유해서 만들어진 모델이고, 6세대에 이른 페어레이디 Z도 2세대와 3세대를 거치는 11년을 겉모습만 손보면서 버텼다. 만약 1세대가 당시 강화된 충돌규정을 통과했다면, 그리고 4세대가 버블경기를 타지 않았다면 Z의 생명연장 프로젝트는 더 늘어났을 수도 있을 것이다. 스포츠카를 바라보는 상황이 훨씬 팍팍해진 2000년대에 와서도 이런 상황은 계속된다. 현재의 6세대 Z, 코드명 Z34가 과거 5세대 Z33을 다듬은 사실상의 빅 마이너 체인지판인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 아니던가.
하지만 변명해주고 싶은 차
그렇다고 이 차를 껍데기만 바꾼 구닥다리로 단정지으면 곤란하다. 실비아도 Z도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당연히 그 시대의 경쟁자 중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며 Z33의 많은 부분을 가져왔지만 그만큼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시간의 격차를 메울 정도의 업데이트는 이루어졌다는 말.
간만에 다시 타본 370Z의 성향은 생각 이상으로 편안하다. 외모에서 느껴지는 단단함만큼이나 돌덩어리 같은 서스펜션을 넣은 차는 아니면서도 입력한 만큼 정확하게 반응하는 날선 핸들링이 그대로 살아 있다. 스티어링 휠을 통해 풍성하게 전해지는 노면정보도 머릿속에서 기억하는 Z와 전혀 다를 바 없다.
다만 최신 스포츠 모델의 기준에서 보면 하체의 무거움도 느껴진다. 두터운 타이어의 관성 모멘트에 댐퍼가 완벽하게 반응하지 않으며, 특히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는 댐퍼의 진동이 차체의 움직임을 진정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느껴진다. 유럽의 고성능 모델처럼 댐퍼를 단단하게 만들어버렸으면 될 일이지만, 그러면 승차감이 망가지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토요타 86은 말끔하게 댐퍼의 움직임만으로 처리하고 있다. 370Z라면 좀 더 단단한 댐퍼를 써도 될 것이다. 나이가 들며 좀처럼 차에 손을 대지 않는 쪽으로 성향이 바뀌었지만 기자가 오너라면 코일오버 서스펜션을 바꾸어 달 것 같다. 순정으로 장착된 요코하마 어드반 스포츠 타이어는 그립만 놓고 보면 보다 윗급인 네오바보다 낮지만 절대 성능은 대단히 높은 타이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낮은 온도에서의 반응으로 영하의 와인딩에서도 시종일관 좋은 그립을 보여줬다.
다운사이징과 터보가 없으면 말도 못 꺼내는 세상에서 V6 3.7L라는 엔진을 7,500rpm까지 돌려야 최고출력이 나오는 자연흡기 유닛은 앞으로는 거의 만날 기회가 없는 근사한 엔진이다. 333마력이라는 출력은 요즘 같은 출력 인플레이션이 심한 세상에서 그리 특출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일반도로에서 이렇게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차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무심코 달리다 계기판의 속도계를 보고 체감속도와 한참 다른 숫자에 깜짝 놀라게 될 정도다. 가속을 할 때마다 VQ같지 않은 엔진 사운드는 역시 스피커를 통해 만들어내는 사운드 제네레이터 킷으로 2016년형부터 새로 투입된 장비다. 튜닝한 V6에서 날법한 날이 선 고음은 꽤 그럴싸해서 운전의 흥을 상당히 돋우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멋진 엔진과 섀시를 깎아 먹는 유일한 흠은 자동변속기. 토크컨버터 방식임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칼 같은 변속을 보여주는 최신 자동변속기의 틈바구니에서 370Z가 쓰는 자트코의 7단 토크컨버터 변속기는 차가 가진 잠재력과 갭이 크다. 회전수 매칭 기능을 갖춘 6단 수동변속기라면 지금보다 훨씬 즐겁게 달릴 수 있을 듯하다.
최신의 터보와 듀얼 클러치로 무장한 고성능 수퍼스포츠 모델이 판치는 세상에서 370Z가 고수하는 방법과 스타일은 조금 오래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숙성을 거듭한 끝에 정점에 다다른 차의 달리기에는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구석이 있다.
스포츠카조차 환경과 효율을 강요받는 세상이다. 넉넉한 배기량의 자연흡기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는 스포츠 쿠페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는 초고가의 수퍼스포츠 브랜드에서나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예전의 좋았던 스포츠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370Z는 진짜로 잘 달리는 스포츠카에 목마른 사람들에게는 보배 같은 존재다. 엔화의 하락에 힘입어 값도 큰 폭으로 낮아졌다. 정말로 달리지 않으면 이 차의 진면목이 보이지 않겠지만, 실제 타보면 당신의 진심에 호소하는 이 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자동차는, 그 중에서 스포츠카는 달리기로 말하는 차가 아니던가.
370Z는 말한다. 달리라고
닛산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Z를 내던진 것이었다. 수년간 후계 모델조차 안 나왔던 적도 있었으니 지금처럼 명맥이라도 잇는 것이 어딘가 싶지만, Z34가 등장한 이후의 상황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매년 착실하게 업데이트를 거듭하는 GT-R 같은 존재를 생각하면 370Z는 거의 방치 상태나 다름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장래에 Z는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라 한다. 성급한 이야기이지만, 가능하다면 현재의 패키징을 그대로 지켜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스포츠카를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닛산은 판매대수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이미지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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