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을 잠재울 찬란한 완성도 : 포르쉐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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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보 엔진의 911 카레라가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출력 상승보다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집중한 포르쉐의 신형 터보 엔진은 어떨까? 정말로 자연흡기 시대에 종지부를 찍을 만큼 뛰어날까?
몇 번이나 그랬다. 포르쉐의 주장에는 도무지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치밀했다. 물론 아직 싱싱한 청춘이라 공랭식 엔진의 은퇴가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는 잘 모른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 아닌가. 하지만 포르쉐의 첫 SUV, 첫 세단, 첫 디젤 엔진, 첫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등을 직접 보고 겪으며 매번 그들에게 설득당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포르쉐가 하는 일에 의심을 갖지 않게 됐다.
하지만 터보 엔진 911 카레라의 데뷔를 보면서 든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의 결정이 조금 의아했다고 할까. 업계를 뒤흔드는 유명 브랜드들의 최신 터보 스포츠카 또는 고성능 터보 모델을 타보면서 ‘자연흡기처럼 빠른 반응’이라는 말이 감언이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확인했기 때문이다. 4기통 고성능 터보 엔진? ‘반응’에서만큼은 언급할 가치가 없다. 페라리의 V8 터보 엔진조차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제아무리 포르쉐라고 해도 무작정 믿을 수는 없었다. 물론 포르쉐는 터보 엔진에 도가 튼 메이커다. 지난 42여 년의 터보 엔진 역사 이야기를 구구절절 끄집어 낼 필요는 없다. 수퍼 스포츠카들을 압박하고 있는 911 터보가 그 생생한 증거니까. 하지만 911 터보와 911 카레라의 색깔은 분명 다르다. 폭력적인 911 터보와 달리 911 카레라는 산뜻한 반응으로 즐거움을 주는 타입이다.
기자가 궁금한 건 딱 하나였다. 포르쉐가 911 카레라 고유의 성격을 버렸을까, 아니면 카레라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을까. “역시 포르쉐야.” 지난해 11월 스페인에서 신형 911 카레라를 경험하고 온 선배가 전해주는 경험담으로는 부족했다. 그런데 이달에 그 의문을 해소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것도 토플리스 버전인 911 카레라 S 카브리올레로.
엔진 변경을 포함한 마이너 체인지
카레라 터보화가 주는 충격은 크다. 마치 자연흡기 엔진 시대의 종말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이번 911 카레라는 엔진 변경이 전부가 아닌 마이너 체인지다. 따라서 엔진 이외에도 주목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일단 분위기부터가 달라졌다. 포르쉐의 진화가 늘 그렇듯, 디자인의 변화는 대부분 기능을 따르고 있다.
인상은 한결 스포티해졌다. 액티브 에어플랩이 자리를 잡으며 범퍼 공기흡입구의 모양새가 다소 과격해졌다. 액티브 에어플랩은 냉각기로 가는 공기량을 조절하며 공기저항과 양력을 낮추는 일종의 가변식 에어로 키트다. 작동에 따라 차체에 작용하는 다운포스가 변하기 때문에 전동식 리어 스포일러와 연동된다.
리어 벤트 디자인도 달라졌다. 엔진에 더 많은 공기를 공급하기 위해 얇고 기다란 에어핀을 세로로 촘촘히 심었다. 덕분에 한층 더 으스스한 분위기다. 뒤 범퍼 아래쪽에는 911 터보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방열구가 생겼다. 리어 스포일러 아래쪽으로 들어와 인터쿨러를 식힌 뜨거운 공기가 이곳을 통해 빠져나간다. 911 터보에 대한 예의였을까? 911 터보의 상징인 뒤 펜더 공기흡입구까지 가져오진 않았다.
디테일도 세밀하게 조정됐다. 헤드램프에 4점식 주간주행등을 심고 테일램프 커버의 가운데를 깎아내 입체감을 살리는 한편, 앞범퍼 LED 띠를 얇게 다지고 도어핸들 안쪽 커버를 떼어내 매끈한 차체를 더 강조했다. 911 디자인이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바로 이런 섬세함에 있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포르쉐 디자인팀은 누구보다도 꼼꼼하고 또 계산적이다.
사실 최근의 911 카레라/카레라 S들은 데뷔와 동시에 아주 또렷한 인상을 남기진 못했다. 그들이 등장할 즈음이면 GTS와 같은 ‘끝물 스포츠 패키지’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이전 GTS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스포티하다. 카레라와 카레라 S가 이 정도면 이후 선보일 GTS는 어떤 분위기를 낼지 궁금하다.
실내 분위기는 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새 스티어링 휠 등이 주도하고 있다. 레이아웃은 그대로라 얼핏 이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변화의 내용만큼은 굉장히 알차다. 사실 구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포르쉐’라서 눈감아 줬던 단점 중의 하나였다. 특히 소프트웨어가 국내 실정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신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확실히 ‘포르쉐’답다. 해상도, 터치 인식률, 반응속도 등 하드웨어도 훌륭하고 포르쉐 TPEG 내비게이션, 애플 카플레이 등 소프트웨어도 흠잡을 데가 없다. 내비게이션 지도를 계기판 한편에 띄울 수도 있고, 주유 경고등이 켜지면 내비게이션이 ‘가까운 주유소를 안내할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스티어링 휠은 918 스파이더에서 가져왔다.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를 선택하면 918 스파이더와 같은 로터리식 드라이브 모드가 스티어링 휠에 추가된다. 다이얼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노말,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순으로 바뀌며, 가운데 버튼을 누르면 20초간 파워트레인의 반응을 최적화(오버부스트)하는 스포츠 리스폰스가 작동된다.
완벽한 반응을 선사하는 신형 파워트레인
신형 911 카레라와 카레라 S의 엔진은 같다. 신형 수평대향 6기통 3.0L다. 컴프레서 휠 직경만 다를 뿐(49mm/51mm) 터빈 휠과 터보차저 하우징까지 고스란히 겹친다. 물론 최대 허용 부스트는 카레라 S가 1.1바로 0.2바 높다. 배기량을 각각 0.4L, 0.8L 줄였지만,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두 모델 모두 20마력, 6.1kg·m 개선됐다. 포르쉐는 성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스포츠카 브랜드. 아마 한계가 낮아진다면 어떤 협박에도 다운사이징을 단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911 카레라는 최고 370마력, 45.9kg·m의 힘을, 911 카레라 S는 420마력, 51.0kg·m의 힘을 낸다.
최대토크는 이전보다 더 빨리(1,700rpm) 나와 더 오랫동안(5,000rpm) 지속된다. 회전수에 상관없이 넉넉한 힘을 쏟아낼 수 있기에 가속감각이 보다 활기차고 운전도 한결 쉽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0.2초 줄었다. 카레라 4.2초, 카레라 S 3.9초다(PDK,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기준, 카브리올레는 +0.2초씩). 참고로 신형 911 카레라 S는 최초로 4초의 벽을 깬 카레라다.
효율 역시 개선됐다. 이전보다 연비가 약 12% 늘었다. 포르쉐는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워터 펌프 작동을 제어해 구동효율과 열효율을 높이는 한편, 틈틈이 동력 전달을 차단해 구름저항을 줄이는 코스팅 기능과 정차시에 엔진의 숨통을 끊는 공회전 방지장치 등을 최대한 활용했다. 에어컨 컴프레서에도 클러치를 달아 사용하지 않을 땐 엔진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기자가 궁금했던 건 이런 수치나 가속감각이 아니다. 바로 반응이다. 최신 다운사이징 엔진이라면 더 높은 출력과 효율을 내는 건 기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형 911 카레라의 파워트레인은 완성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자연흡기와 같은 반응’이라는 말을 붙여도 좋을 정도다. 터보랙이라고 부를 만한 감각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물론, 지금까지 타본 어떤 터보 스포츠카보다도 경쾌하게 회전한다. 특히 리니어한 출력 특성과 민감하게 반응하는 가속 페달이 인상적이다. 코너의 정점에서 필요한 만큼의 힘을 미세하게 꺼내 쓰기에도 전혀 부담이 없다.
물론 포르쉐도 터보 엔진의 구조적인 한계를 완벽하게 극복하진 못했다. 토크가 중반부에 응축된 느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일부러 기어비가 1에 가까운 기어로 고정하고 저회전부터 가속을 시도하지 않는 한 이런 감각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운전자의 의도를 끊임없이 주시하다 여차하면 즉각 기어를 내려 무는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PDK)가 엔진의 이런 성향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리스폰스의 존재감은 사용하지 않을 때 더 뚜렷하다. 20초의 제한시간이 지나면 마치 엔진이 제 힘을 내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오는 건 아니지만, 섀시와 파워트레인의 한계를 끌어낼 수 있는 ‘고수’들에겐 아주 유용한 무기가 될 수 있겠다.
스포츠 플러스로 설정하면 이전처럼 연료 분사 타이밍을 바꾸고 배기 플랩을 열어 파열음을 연출한다. 하지만 사운드의 색깔은 확연히 달라졌다. 터보차저 작동음 때문에 한결 거칠어졌다. 고회전에서는 마치 쇠 빗자루로 돌바닥을 문지르는 듯한 소리를 낸다. 허용 부스트에 도달하면 터보차저의 스윙 밸브가 열리며 배기음도 더 두터워진다. 다르다는 게 나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연흡기 복서 엔진의 카랑카랑한 사운드에 매료된 사람이라면 다소 낯설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중독성이 짙은 사운드임에는 틀림없다.
섀시에도 엔진 못지않게 큰 변화가 스몄다. 움직임은 더 날렵해지고 승차감은 더 편해졌다. 핵심은 911 GT3와 911 터보에서 가져온 리어 액슬 스티어링(카레라 S 옵션). 시속 80km 이하에서는 뒷바퀴를 앞바퀴와 반대로 비틀어 앞머리를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고, 그 이상의 속도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꺾어 주행 안정성을 높이는 후륜 조향 시스템이다. 뒷바퀴는 최대 2도까지 움직이는데 이는 앞바퀴 조향각을 10% 수정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리어 액슬 스티어링에 따른 변화 또한 놀랍다. 골목길을 돌아나갈 때조차 꽁무니가 바깥쪽으로 빠지는 느낌이 날 정도다. 참고로 리어 액슬 스티어링은 회전반경을 0.5m 줄여준다. 고속주행감이 더 나긋해진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 리어 액슬 스티어링을 추가하면서 서스펜션을 더 부드럽게 설정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자세제어장치(PSM)에는 스포츠 모드가 추가됐다. 슬립을 더 많이 허용하기 때문에 보다 안전하게 스릴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원한다면 개입을 완전히 차단할 수도 있다. 옵션이던 전자식 댐핑 컨트롤(PASM)은 이제 기본 장비다. 때문에 최저지상고가 10mm 낮아졌다. 대신 더 단단하고 최저 지상고도 10mm 더 낮은 PASM 스포츠 서스펜션과 필요시 차체 앞쪽을 40mm 높일 수 있는 리프트 시스템이 선택 사양으로 준비된다.
짐작을 뛰어넘는 진화
이번에도 반박의 여지는 없었다. 그렇다. 흔한 결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게 뻔했다. 아마 포르쉐는 확신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납득하게 될 거라는 걸. 엔진 반응의 중요성은 포르쉐가 더 잘 알고 있다. 카레라에 터보 엔진을 얹기로 한 이상, 그 부분만큼은 끝장을 보겠다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로 그런 터보 엔진을 911 카레라에 얹었다.
늘 그랬듯, 911의 진화는 짐작 이상이었다. 새 엔진도 엔진이지만, 그에 맞게 다듬은 섀시의 완성도도 눈부시게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흡기 카레라에 대한 아쉬움은 남는다. 신형 터보 엔진의 완성도가 다시는 자연흡기 시절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뛰어나기에 더욱 그렇다. 손에 닿을 듯했던 자연흡기 엔진의 드림카가 하나 사라진 기분이랄까. 포르쉐가 최근 선보인, 마치 마지막 자연흡기인 듯한 911 R은 기자에게 너무 아득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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