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변화에 치중한 아우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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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는 여전히 누가 봐도 TT다. 좋게 말하면 정통성 유지이지만, 달리 보면 미온적 변화다. 신형 TT는 겉보다는 속이 많이 바뀌었다. 급격한 변신보다는 내면의 변화를 추구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프로그램이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1997, 1994, 1988 등 연도를 달리해 시리즈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 먼 과거는 아니지만 이미 잊혀져버린 당시의 문화를 보여줘서 희미해진 추억을 끄집어낸다. 100년도 아니고 고작 20여 년 전 과거가 벌써 잊혀져버린 것은 그만큼 세상이 급격하게 변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간 촌스러워 보이는 추억 속 이야기에 우리가 다시금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신선함 덜한 안정적 변화
아우디 TT가 처음 나온 때는 1998년으로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다. 당시에는 2인승 로드스터가 한창 인기를 끌 때다. 1989년 등장한 마쓰다 미아타가 경량 로드스터 붐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로 BMW Z3, 포르쉐 복스터, 메르세데스 벤츠 SLK 등 독일 브랜드가 가세하면서 2인승 로드스터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TT가 나왔다. 없던 차들이 우르르 쏟아지니 신세계가 열렸다. 충격과 감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로드스터 붐을 주도했던 주인공들은 세대를 바꿔가며 변해갔다. 진화를 거듭하면서 멋과 완성도를 더해갔지만 왠지 처음 나왔을 당시만큼의 감동은 덜하다. 처음이 성공적이었던 차들은 대개 급격한 변화를 자제한다. 이제 겨우 3세대 정도. 차곡차곡 전통을 쌓아가는 과정이다. 초대 모델의 틀을 유지하며 발전시켜 나가기 때문에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새로운 맛은 점차 옅어진다.
신형 TT는 3세대다. TT도 처음 나왔을 때 반응이 대단했다. UFO처럼 앞뒤가 둥근 대칭형 디자인은 파격적인 동시에 독창적이었다. 당시의 밋밋하고 각진 아우디 세단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TT는 아우디 역사에서 디자인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2세대는 1세대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세련미를 더했다. 1세대의 가장 큰 특징인 앞뒤 대칭 요소는 조금 완화됐지만 여전히 마음을 설레게 하는 감동을 안겨줬다.
이번에 나온 3세대는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다. 폭스바겐 그룹이 통합 플랫폼으로 밀고 있는 MQB를 새로 적용하면서도 정작 스타일은 2세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각을 세우고 선을 날카롭게 다듬는 정도에 머물러 페이스리프트처럼 보인다. 요즘 아우디는 다른 모델들도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디테일을 다듬어 세련미와 완성도를 높인다. 이러한 전략은 정체성을 이어가기는 좋은 대신 자칫 지루해지기 쉽다. 마치 왕년의 미스코리아를 보는 듯하다. 수상 당시에는 젊고 풋풋한 매력을 발산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신선함 대신 원숙미를 풍기는 그런 모습이다. 사람들은 해마다 새로운 ‘진’이 누군가에 관심이 있다. 비록 새로운 진은 아니지만, 왕년의 진도 가닥이 있어서 나이가 들어도 미모는 여전하다. TT 역시 초대 모델만큼의 감흥은 덜하지만 스포츠 쿠페의 매력은 계속해서 이어간다.
헤드램프는 LED다. ‘L’자 두 개를 붙여 놓은 듯한 주간등이 새로운 표정을 만든다. 육각형으로 진화한 싱글 프레임 그릴은 각진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뒤는 각을 줬지만 큰 윤곽은 탱탱한 곡면을 살렸다. 1세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은색 연료주입구 캡도 TT의 향수를 자극하는 아이템이다. 테임램프 역시 헤드램프와 마찬가지로 ‘LL’ 형태로 빛난다.
정통성을 유지하기 위해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변화를 최소화한 반면 실내는 큰 폭으로 달라졌다. 대시보드 가운데 세 개의 송풍구가 이전 세대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며, 그 외에는 대부분 바뀌었다.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사라졌다. 차의 등급이 낮아서 모니터가 빠졌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대신 계기판이 모니터 역할을 맡는다. 전체를 디스플레이로 바꾼 계기판은 크기가 12.3인치나 된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MMI의 기능 조작도 담당한다. 아우디는 이를 ‘버추얼 콕핏’이라 부른다. 컴퓨터 모니터와 비슷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래픽도 화려하고 테마도 선택 가능하다. ‘클래식 뷰’는 일반적인 모드로 좌우에 타코미터와 속도계가 자리잡고 가운데 정보창이 뜨는 전통적인 형태다. ‘프로그래시브 뷰’는 타코미터와 속도계가 크기가 확 줄어든 채로 좌우 구석으로 이동하고, 정보창의 비율이 커진다. 가장 신기한 부분은 내비게이션. 스크린 전체를 내비게이션이 채우기도 한다. 계기판 메뉴는 스티어링휠 버튼이나 MMI를 사용해 조절한다. 메뉴는 세부 메뉴까지 합치면 그 수가 매우 많다. 상당히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다루는데, 그 중에는 ‘아우디 심장 박동’이라 부르는 사운드 볼륨 조절도 있다. 시동을 끌 때 특유의 짧은 멜로디가 울려 퍼지는데, 이 소리를 끄거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모니터 뿐 아니라 각종 버튼도 확 줄었다. 공조장치 컨트롤러는 송풍구 가운데 작은 표시창이 달린 다이얼에 집어넣었다. 센터페시아에 버튼이 확 줄면서 공간도 넓어 보이고 느낌도 간결하다. 이전 세대에서 모니터 옆에 작게 달려 있던 MMI 컨트롤러는 기어레버 아래 커다랗게 자리잡았다. 사이드 브레이크가 전자식으로 바뀌어서 센터터널 부분이 한결 확 트인 느낌을 준다.
시트는 스포츠 쿠페답게 널찍한 버킷 타입으로 멋을 냈다. 단단한 편이지만 몸을 잘 잡아줘서 편하다. 늘 궁금한 부분인데 이런 차의 뒷좌석은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 2인승 뒷좌석은 어린아이도 앉기 힘들 만큼 작다. 트렁크에는 트렁크 도어를 닫을 때 뒷좌석에 앉은 사람 머리를 조심하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안전벨트도 달려 있으니 사람이 앉으라고 해놓은 자리는 맞다. 하지만 실제로는 앉을 수 없다. 버린 자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애초에 이 차를 사는 사람은 뒷좌석에 욕심이 없겠지만). 접어놓으면 꽤 넓은 공간이 나온다. 트렁크 도어는 해치 방식으로 짐을 넣고 빼기가 매우 수월하다. 높이가 있는 짐은 싣기 힘들지만 길이가 긴 짐은 충분히 들어간다.
다이내믹 모드에서 드러나는 본성
꽁무니에는 45 TFSI라고 적혀 있다. 처음에는 바뀐 숫자 해석이 어려웠는데 이제는 감이 좀 잡힌다. 가솔린 터보 2.0L 엔진은 22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최대토크는 35.7kg·m로 1,600~4,000rpm 구간을 커버한다. 변속기는 S-트로닉이라고 부르는 6단 더블 클러치. 아우디의 장기인 네바퀴굴림 콰트로는 당연히 들어가고, 여기에 전자식 디퍼렌셜록도 집어넣었다.
요즘 같은 출력 과잉 시대에 220마력은 그리 높은 수치가 아니다. 터보 차가 많아지면서 고출력이 횡횡하다보니 숫자에 대한 감각도 무뎌진다. 하지만 달리면 숫자가 선명해진다. 초반부터 최대 토크가 위력을 발휘하면서 속도계 바늘이 솟구쳐 오른다. 시원스럽게 아스팔트 위를 날아가듯 미끄러진다. 0→100km/h 도달 속도는 5.6초로 아주 빠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달리는 쾌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아울러 S-트로닉 기어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한다. 변속 속도도 빠르고 동력 전달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해낸다. 엔진과 변속기의 반응이 모두 빠르고 터보 랙도 미약해서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맛이 강렬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가속할 때에는 ‘조금만 더’가 절로 튀어 나온다. 4,000rpm까지 절정으로 치달은 후 토크는 급속히 떨어진다. 힘으로 미는 게 아니라 지구력으로 버티는 기분이 든다.
주행모드는 효율·승차감·자동·다이내믹·개별 설정 다섯 가지다. 연료를 절약하는 효율 모드는 불필요한 힘 분출을 억제하기는 하지만, 뒷목 당기는 듯한 급격한 힘의 약화까지는 아니다. 막 밟지만 않으면 적당히 여유롭고 만족스럽게 탈 수 있다. 승차감과 자동은 차이가 애매하다. 승차감 모드라고 해서 아주 편하지는 않다. 대신 다이내믹 모드로 들어가면 TT의 본성이 드러난다. 엔진·변속기·스티어링·콰트로 시스템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한층 예민해진다. 이때부터 가속 페달을 후려 밟으면 스포츠카를 타는 감성에 휩싸인다. 이런 차는 귀로 듣는 맛도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TT는 얌전한 편이다. 일반적인 달리기 때는 조용하고 가속할 때에는 날카롭지만 잘 정제된 엔진 소리를 내뿜는다. 전반적으로 심장을 벌렁벌렁 뛰게 하는 자극적인 사운드는 아니다.
스티어링이나 페달 감각은 빡빡하고 팽팽하기보다는 유연하면서 긴장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스티어링 반응이 정확해서 핸들링은 정교하다. 입력한 값만큼 정확하게 방향을 돌린다. 콰트로는 상황에 맞게 토크를 나눠준다. 자세 잡는 능력이 뛰어나서 원하는 라인을 웬만해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타이어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흐트러졌다가도 빠르게 접지력을 회복하며 원상복귀한다. 코너링 때나 급차선 변경 때 점차 속도를 높여가며 버티는 능력을 테스트 해보는 일도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점차 재미를 더한다. 높은 안정성에 기반한 운전의 재미를 안겨준다.
사실 3세대 TT는 좀 진부한 느낌이 들어서 감흥이 떨어졌다. 초대 TT에 대한 향수가 새삼스럽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현재를 즐겨야 한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재미있다고 정말로 1994년이나 1988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설사 그때 모습을 재연한다고 해도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더러 과거는 추억 속이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법이다. ‘응답하라!’를 외치지 말고 초대 TT는 과거의 향수로 남겨두자.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있어주는 차는 신형 TT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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