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낯설지만 성공적인 이종교배, 볼보 S60 크로스컨트리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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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잠시 유전학의 이야기를 해 보자. 우리는 대개 "혼혈"에 대해 순수하지 못한 혈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혼혈은 유전적 다양성이 강화된 매우 건강한 개체라고 한다. 가령 동물의 경우를 보더라도, 인위적으로 특정 품종의 혈통을 유지한 개체보다 소위 "잡종"이라고 불리는, 혼혈 개체가 훨씬 건강하고 유전질환 등으로부터 자유롭다. 또한 이처럼 다양한 혈통이 섞이면서 장점들을 흡수하는 것이야말로 종의 진화를 촉진시킨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자동차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기계이기 때문에 특정한 스타일을 고수한다고 해서 유전병이 생기거나 하는 부작용은 없다. 하지만 두 가지 이상의 차종이 혼합된 혼혈종, 이른바 크로스오버 모델들은 자동차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존재들이다. 더욱이 개성을 중요시하는 요즘 소비자들에게 개성이 넘치는 크로스오버는 퍽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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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볼보 S60 크로스컨트리는 파격 그 자체였다. 물과 기름처럼 영원히 나눠져 있을 것 같았던 세단과 SUV의 극적인 이종교배가 이뤄진 것이다. 이것 또한 자동차의 진화의 한 방향일까? 너무 진보적인 컨셉때문에 과연 국내에 출시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지난 10월 예상보다 빨리 한국 땅을 밟았다.

본론에 앞서 크로스컨트리에 대해 첨언하자면, 볼보는 세단인 S 라인업과 왜건인 V 라인업, 그리고 SUV인 XC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크로스컨트리는 S와 V의 차체를 기반으로 지상고를 살짝 높여 가벼운 오프로드 주행과 일상의 실용성을 염두에 둔 라인업이다. 이번에 시승한 모델의 정확한 국내 명칭은 크로스컨트리(S60)이다. 볼보 라인업의 큰 축을 담당하게 된 크로스컨트리를 더 강조하겠다는 계획인데, V40과 V60에도 크로스컨트리 모델이 존재하는 만큼 편의 상 S60 크로스컨트리로 부르는 것이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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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면 S60 크로스컨트리가 완전히 최초의 크로스오버 세단은 아니다. 2000년대 초 스바루에서 지상고가 높은 아웃백 세단을 선보인 바 있다. 물론 볼보만큼 온전히 차별화되지는 못했고 조용히 사라졌지만, 세단과 SUV의 이종교배는 예전부터 시도돼 온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SUV 전문 브랜드인 지프나 랜드로버가 이런 컨셉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수적인 이미지의 볼보가 이런 파격적인 양산차를 선보인 것은 퍽 의외라 해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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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크로스오버를 "해괴하다"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요즘 보편화된 SUV 역시 트럭 프레임에 왜건 바디를 얹은 크로스오버로 시작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고민하듯 많은 소비자들은 세단과 SUV의 선택의 기로에 서기 마련이고, 어쩌면 볼보는 S60 크로스컨트리를 통해 그 고민의 해답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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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각설하고, 차를 볼 시간이다. S60 크로스컨트리를 처음 마주하면 낯익은 S60 세단의 모습이 보인다. 정갈한 램프의 디자인, 잘 알고 있는 세단의 3-박스 차체 등이 그렇다. 다만 예전보다 눈높이가 조금 높아졌다는 차이만 느껴질 뿐이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영락없는 볼보 세단의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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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파격이 시작된다. 스크래치를 막기 위해 무광 검정으로 마감된 휀더, 오프로드도 문제 없는 두툼한 타이어와 앞뒤의 스키드 플레이트. 그리고 무엇보다 높아진 차고. S60 크로스컨트리는 S60 세단 대비 65mm 높은 지상고(201mm)와 55mm 높은 전고(1,540mm)를 갖췄다.

이를테면 깔끔한 슈트를 빼입은 신사가 두툼하고 투박한 등산화를 신고 있는 것 같다. 어딘가 낯설다. 왜건 기반의 형제 모델인 V60 크로스컨트리와 비슷하게 곳곳을 꾸몄지만 훨씬 거칠어보이는 것도, 세단 바디이기에 변화가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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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차고는 오프로드를 위해서라기보단 실용성을 염두에 둔 설계다. 타고 내릴 때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고, 짐을 싣기도 편리하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얼핏 보면 얌전하다가도 꼼꼼히 살펴보면 어떤 차 보다도 개성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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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전통적인 볼보의 것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S60, V60, S60 크로스컨트리 등 형제들과 차이를 찾기 어렵다. 크로스컨트리만을 위한 우드 트림은 고급스럽고 가죽은 포근하다. 하지만 와일드함을 강조한다면 우드보다는 메탈이나 카본패턴같은 스포티한 터치를 더해도 멋스럽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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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변화라면 시트 정도. 볼보에 따르면 오프로드 주행에서도 요동치는 몸을 잘 잡아줄 수 있도록 새롭게 시트를 설계했다고 한다. 사이드 볼스터가 보다 두툼하게 바뀌어 살짝 스포츠 버킷 시트 느낌도 난다. 시트포지션 자체도 세단보다 조금 높아져 시야 확보에 유리하다. 헤드레스트 각도와 높이 조절이 되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전반적인 시트의 착좌감은 매우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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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볼보 모델답게 AV 시스템 또한 한글화된 새 버전으로 바뀌었다. 인터페이스는 깔끔하고 예전보다 직관적이다. 좀처럼 블루투스 신호를 잡지 못하던 것도 다 옛날 이야기다. 내비게이션, 오디오 뿐 아니라 차량 정보창에서는 볼보가 자랑하는 첨단 장비들이 잘 작동하고 있는지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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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트렁크 용량이다. 험로 주행에 필요하다고 여긴 까닭인지, S60 세단의 타이어 리페어 킷 대신 스페어 타이어가 들어가고, 이로 인해 트렁크 용량은 496L에서 380L로 줄어든다. 이를 제거하고 일반적인 S60 세단의 트렁크 플로어를 장착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괜시리 번거롭다. 폴딩을 하더라도 세단 바디이기 때문에 적재용량이 극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짐을 싣을 일이 많다면 차라리 V60 크로스컨트리 쪽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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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도입되는 파워트레인은 D4 전륜구동 한 가지이다. AWD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가까운 시일 내로 AWD 역시 추가될 것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세단의 정숙성을 중시하는 소비자를 위해 가솔린 엔진도 추가됐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쨌든 드라이브-e 아키텍처가 적용된 파워트레인의 성능은 출중하다. 2.0L 직렬 4기통 트윈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40.8kg.m을 발휘한다. 일상 주행에는 차고 넘치는 성능이다. 여기에 아이신 8속 자동변속기가 맞물려 고성능 고효율의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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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질감은 상당히 경쾌하다. 드라이브-e 엔진은 가솔린의 경우 회전질감이 다소 칼칼하다고 느꼈는데, 되려 디젤에서는 비교적 매끄러운 편이다. 다단화된 변속기와 저회전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넉넉한 토크 덕분에 일상 영역에서는 수치 이상으로 잘 나가는 느낌이다. 묵직한 독일차의 가속과는 다른 경쾌함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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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시내 주행에서는 아쉬움과 만족이 공존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실용영역대 주행감각은 탁월하지만, 변속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아이신 8속 변속기는 토크컨버터 방식이지만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마치 듀얼클러치 변속기처럼 낮은 회전수에서 재빨리 락업 클러치를 활용하고 액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면 즉시 코스트 모드(타성주행)에 돌입하는데, 그 변속충격이 터보 래그와 합쳐지면서 막히는 시내에서 불쾌한 울컥임이 반복된다. 특히나 지상고가 높은 차체의 특성 상 울컥임이 강하게 느껴진다. 변속기의 세팅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막히는 구간을 벗어나면 차량의 거동은 상당히 고급스럽다. 높은 차체가 무색하게 요철은 탄탄하게 걸러내면서도 통통 튀지 않는다. 단단한 하체에서 미처 거르지 못한 충격을 흡수하는 데에는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시트도 일조한다. 세단과 다를 바 없는 승차감을 유지하면서 시야는 SUV 못지 않게 넓으니 운전하기에 더 없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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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구동에 일반 사계절 타이어가 끼워져 있어 본격적인 오프로드에 도전하지는 않았지만, 모래사장이나 가벼운 임도 정도는 무리가 없다. 어쨌든 높아진 지상고와 스키드 플레이트 덕에 바닥에 깔려있는 돌이나 자갈도 걱정되지 않고, 조금 깊은 모래 정도는 스스로 헤쳐 나올 수 있다. 도시에서도 매력적이지만 길이 험한 곳에 산다면 더 없이 매력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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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볼보답게 동급 최고수준의 안전 및 편의사양을 두루 갖추고 있다. 볼보 전차종에 적용된 시티 세이프티와 사각지대 경보(BLIS)는 기본이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과 충돌경고, 운전자 주의 경보, 차선이탈 경고 및 차선유지 보조(LKA), 도로 표지판 정보 시스템까지 탑재돼 있다. 동급, 동가격대 수입차 중 이 정도 사양을 갖춘 모델은 드물다. 액티브 하이빔과 코너링 라이트, 액티브 벤딩 라이트 등 운전 편의사양도 포함이다. 안 그래도 안락한 주행감각에 풍부한 편의사양과 고급스러운 실내까지 합쳐지니 풍요로움이 가득하다.

풍요로운 실내와 대조적으로 공인연비는 복합 15.3km/L에 달해 매우 알뜰하다. 실연비 역시 공인연비 정도를 내는 것은 어렵지 않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면 22km/L 가량을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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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60 크로스컨트리는 낯선 모습과는 달리 놀라운 만족도를 주는 크로스오버다. 일반적으로 크로스오버는 두 세그먼트를 합치면서 각자의 뚜렷한 장점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하지만 S60 크로스컨트리는 안락하고 우아한 세단에 SUV의 높은 지상고라는 장점만을 더한 것 같다. 정확히는 크로스오버가 아니라 더욱 진보된 세단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세단과 크로스오버는 어울리지 않는 궁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다. 볼보는 노련한 세팅을 통해 세단의 장점을 오롯이 유지하면서 편안한 운전과 실용성을 더했다. 이제 남은 건 이 낯선 이종교배의 결과물을 새로운 세그먼트로 소비자들에게 안착시키는 것 뿐이다. 워낙 개성있는 스타일이라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과제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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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왜건 기반의 V60 크로스컨트리가 있는데, 세단 크로스오버가 왜 필요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공간활용도는 세단 정도면 충분하면서 높은 지상고에서 오는 여유와 편의성을 원하는 수요는 분명 존재한다. 비좁지만 지상고가 높은 B-세그먼트 SUV들이 왜 인기를 끄는 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더욱이 테일게이트 타입의 SUV나 왜건보다 세단 바디를 선호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단지 S60 크로스컨트리는 그런 수요에 대한 보다 품격있는 대안이 될 뿐이다.

글을 열면서 이야기했지만, 이런 이종교배는 궁극적으로 종의 진화를 이뤄내기도 한다. 어쩌면 S60 크로스컨트리의 도전이 자동차의 진화를 이끌고 미래 세단의 판도를 바꿔놓을 지도 모른다. 20년 전만 해도 오늘날처럼 SUV가 전 세계의 도로를 점령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앞으로 20년 뒤에는 S60 크로스컨트리같은 키높이 세단들이 온 도로를 뒤덮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S60 크로스컨트리는 그런 믿음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흥미롭고 탁월한 혼혈종이다.

이재욱기자 siegussr@naver.com
제공
자동차와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터리언 (www.motori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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