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지지 않는 로켓 세단, 캐딜락 CT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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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V가 3세대로 거듭났다. 물론 이전보다 한층 더 강력해졌다. 무려 648마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뒷바퀴에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게 즐거울까?
고성능 모델의 역할은 여러 가지다. 승용차와 스포츠카 사이의 틈새시장 공략을 시작으로 기본이 되는 일반 모델과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CTS-V는 그동안 판매보단 브랜딩에 충실했고, 그 부분에서 꽤 좋은 성과를 남겼다. 경쟁자 중 가장 강력한 엔진으로 뉘르부르크링 북쪽 코스에서 양산 세단 최고기록을 찍었을 때는 캐딜락이 정말 다르게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런 ‘최고’에 집착한 각종 숫자들이 흥행 성공을 끌어내진 못했다. 캐딜락도 큰 욕심은 없었을 것이다. 후발 주자로서 눈앞의 판매보단 고성능 모델의 존재를 알리는 게 더 중요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이번 CTS-V는 3세대째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스펙이나 랩타임보다 높은 완성도로 실적을 내야 할 때가 왔다. 또한 콤팩트와 미드사이즈의 사이를 파고들던 애매모호한 체급 전략도 동생 ATS의 등장으로 인해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이제 CTS-V는 BMW M5, 메르세데스 AMG E63 등과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 더 이상 M3와 M5 사이에서 차체가 커서 또는 작아서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엔진, CTS-V의 날개이자 족쇄
외모는 예상했던 그대로다. 고성능 모델에 어울리는 보닛과 범퍼, 그리고 라디에이터 그릴 등으로 엔진룸 공간을 확보하고 냉각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과격한 분위기까지 냈다. 물론 좌우 바퀴 사이의 간격도 조금 더 넓히고 최저지상고도 낮췄다. 덕분에 CTS의 단점인 좁은 차체가 조금이나마 더 넓어 보인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캐딜락은 ‘아트 앤 사이언스’라는 디자인 철학을 꽤 오래전부터 내려놓고 차세대 철학을 찾아 방황하는 중이다. 현행 CTS가 이전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CTS-V만큼은 CTS와 같이 주저하는 느낌이 없다. 전용 보닛과 범퍼 덕분에 아주 인상이 또렷하다. 시승차는 구석구석에 탄소섬유 패널을 붙인 카본 패키지 모델이라 한층 더 흉흉한 분위기다.
반면 실내는 일반 CTS와 비슷하다. 눈에 띄는 차이라고는 버킷 타입의 스포츠 시트와 다이나미카를 씌운 스티어링 휠과 변속레버, 그리고 헤드 라이너 정도가 전부다. 일반 CTS도 스포티한 느낌을 강조했었기에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가죽과 금속성 패널을 나눠 쓴 덕분에 고급스러운 느낌은 강하지만, 다소 보수적인 레이아웃과 반응이 더딘 센터페시아 터치 패널은 반드시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엔진은 이전과 같은 V8 6,162cc 수퍼차저다. 하지만 직분사 시스템, 단조 알루미늄 피스톤, 단조 커넥팅 로드, 티타늄 흡기 밸브 등을 때려 넣은 후, 압축비를 10.0:1까지 높이고 수퍼차저 용량을 1.9에서 1.7L로 낮춰 출력과 반응을 모두 끌어올린 최신형 버전(LT4)이다. 최고출력 648마력, 최대토크 87.2kg·m로 이전보다 92마력, 11kg·m 더 높다. 참고로 이 엔진은 신형 쉐보레 콜벳 Z06과 카마로 ZL1에도 쓰인다. 2세대 CTS-V 때도 그랬듯, 캐딜락은 CTS-V 엔진에 대한 자부심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보도자료에까지 메르세데스 벤츠의 V8 5.5L 바이터보 엔진과 BMW의 V8 4.4L 트윈 터보 엔진보다 출력과 토크가 높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자부심에 부응이라도 하듯 엔진은 낮은 회전수부터 엄청난 힘을 쏟아낸다. 가속 페달을 콱 밟으면 마치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인 양 차체를 밀어낸다. 제원표의 0→시속 60마일(약 97km) 가속시간 3.7초를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무게가 차체 뒤쪽으로 실렸을 땐 스티어링에도 생기가 깃들고, 턴 인도 상당히 빨라진다.
그러나 CTS-V가 주는 즐거움은 딱 여기까지다. 노면 상태가 조금만 거칠어도 리어 트랙션은 직선, 코너 할 것 없이 급격하게 불안해진다. 한계에 다가서려하거나, 무게이동이 복잡해져도 마찬가지다. 다운시프트 때 간헐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리는 8단 자동변속기도 조금 뜨거워질 만하면 여지없이 찬물을 끼얹는다. 무엇보다 서스펜션이 이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을 만큼 까칠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모든 상황이 예측한 대로 돌아갈 땐 꽤 즐겁지만, 타이어가 비명을 지르고 섀시가 들썩거리기 시작하면 식은땀이 쏟아진다. 스릴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재규어 XFR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무게 이동과정이 뚜렷하고 여유로운 XFR과는 달리, CTS-V는 그 과정이 아주 희미하고 빠듯해 운전이 까다롭다.
물론 캐딜락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들이 648마력이라는 엄청난 힘을 뒷바퀴에 ‘몰빵’하는 세단을 만들려고 했을 땐 이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CTS-V와 같은 구성의 판타지를 꿈꾸는 남자들도 분명 있다. 그런 이들이라면 CTS-V를 호기심과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장난감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강력한 엔진이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저물었다. 또한 고성능 세단을 찾는 사람들의 입맛은 한층 더 까다로워졌다. 과연 BMW, 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경쟁자들이 출력을 높일 줄 몰라서 가만히 있을까? 듀얼 클러치 변속기나 사륜구동 시스템은 바라지도 않는다. 완성차 브랜드가 3세대에 걸쳐 선보이고 있는 고성능 모델이라면 분명 결과가 좀 더 세련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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