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육질 비주얼에 숨겨진 포근함, 2016 렉서스 RX 450h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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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디젤 게이트의 여파가 금새 가라앉았지만, 꼭 디젤 게이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하이브리드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혹한 배출가스 규제에 디젤보다는 가솔린 하이브리드가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까닭이다. 디젤에 사활을 걸어 온 독일 완성차 업계도 디젤 게이트의 충격으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라인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나 꾸준히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여 온 렉서스에게 이런 추세는 반가운 일이다. 지난 해 한국에서 7,956대를 판매한 렉서스는 전체 판매량 중 하이브리드 모델의 비중이 82%에 달해 명실상부한 하이브리드 명가임을 증명했다.
이번에 출시한 4세대 RX는 올해를 이끌어갈 렉서스의 야심작이다. 지난 해 컴팩트 SUV인 NX가 추가되면서 RX는 체급을 키우고 BMW X5나 메르세데스-벤츠 GLE와 제대로 붙어볼 수 있게 됐다. 보다 강렬해진 비주얼과 넓고 고급스러워진 실내는 새롭지만, 합리적인 가격과 높은 완성도의 하이브리드 심장은 그대로다.
RX는 북미에서 렉서스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안착시킨 일등공신이면서, 렉서스 도심형 SUV의 대명사와도 같은 존재다. 토요타 랜드크루저 기반이자, 렉서스 최초의 SUV였던 LX는 지극히 미국적인 SUV였다. 1996년 당시만 해도 랜드로버 정도를 제외하면 프리미엄 SUV라는 개념이 거의 없던 시기였기 때문에 LX의 성적표는 영 신통치 못했다.
이에 렉서스는 모노코크 바디에 유선형 디자인을 씌운 승용 감성의 도심형 SUV를 1999년 선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RX다. RX는 렉서스가 강조해 온 안락함과 정숙성을 내세워 첫 해에 8만 9,000대가 넘게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매년 7~10만 대가 판매됐으며, 2005년부터는 동급 최초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까지 추가해 렉서스를 대표하는 모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렉서스는 RX의 이러한 헤리티지를 계승하기 위해, "RX이면서 RX를 뛰어넘는다"는 모토로 4세대 모델을 개발했다. 우선 앞서 언급했듯이 몸집을 한껏 키운 점이 가장 돋보인다. 이전에는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사이즈였지만, 막내 SUV인 NX가 추가된 덕분에 RX는 한 체급을 높일 수 있었다.
전장·전폭·전고가 각각 구형 대비 120mm·10mm·20mm씩 늘어났고, 휠베이스도 50mm나 늘어났다. 이제 전장은 4,890mm에 달해 BMW X5(4,886mm)와 비슷해진 셈이다. 다만 휠베이스는 2,790mm로 X5의 2,933mm보다 143mm 짧다. 전륜구동 기반에 하이브리드 시스템 탑재를 고려하면 어쩔 수 없다지만, 측면의 비례가 다소 뭉툭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전면부는 스핀들 그릴이 매우 강조된 형태로, 조형미가 돋보이는 미래적인 페이스다. 이제 렉서스의 패밀리 룩도 조금 눈에 익는다. 헤드라이트는 동생 NX와 같은 3-코어 LED 타입이 적용되는데, NX는 전 트림에 LED 헤드라이트가 적용되지만 RX의 경우 최하위 트림인 "슈프림"에는 HID 프로젝션 타입이 적용되는 점은 다소 의아하다. LED 테일램프는 기본이지만, 마찬가지로 슈프림 트림에서는 방향지시등이 LED가 아닌 벌브 타입이다.
어쨌거나 이전 세대보다 훨씬 강렬해진 스타일임은 부정할 수 없다. C 필러를 플로팅 루프 스타일로 처리해 보다 속도감이 느껴지고 차체도 더 커 보이는 효과가 난다.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비례에 개성을 살려주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숄더 라인과 사이드 스커트 주변의 캐릭터 라인도 곡선보다는 직선을 살려 마치 손을 대면 베일 것 같은 분위기다.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는 외관을 둘러보고 문을 열면 "역시 렉서스"라는 안도의 감탄사가 나온다. NX에서는 입체감을 살린 센터페시아로 젊은 감성을 자극했다면, RX에서는 보수적인 수요층을 고려해 상당히 차분하게 정리돼 있다. 버튼과 다이얼은 정갈하게 정리돼 있고, 무려 12.3인치의 와이드 디스플레이가 최상단에 위치한다.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과 함께 다른 정보를 띄울 수 있어 상당히 편리하다. 복잡한 메뉴 없이 깔끔하게 3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와이드 HUD 역시 편리하다. 다만 BMW 것에 비해 시인성은 다소 약한 것 같다.
NX에서 사용됐던 터치패드 형태의 리모트 터치는 반응이 신통찮은 지, 다시 마우스처럼 움직일 수 있는 리모트 터치가 채택됐다. 아담한 시프트 노브 뒷편으로는 공조기와 연동해 시트 온열 및 통풍 기능을 풀 오토로 조작할 수 있는 스위치와 휴대폰 무선충전 패드가 위치한다. 트림에는 레이저 컷 알루미늄 우드라는 소재가 렉서스 최초로 적용됐는데, 나뭇결과 알루미늄이 교차하는 패턴이 썩 고급스럽다.
명불허전 렉서스 답게 마감 품질은 우수하고, 시트는 한 없이 편안하다. 시트 포지션이 기존 대비 19mm 낮아져 확연하게 낮은 포지션까지 내려간다. 이전에는 다소 껑충하게 앉은 기분이었다면 이제는 보다 세단스럽다.
뒷좌석은 수동식으로 120mm 슬라이딩이 가능하고, 전동식 틸팅 또한 제공된다. 가운데 자리도 바닥이 평평해 5명이 타기에 지장이 없다. 시트를 접을 때 역시 트렁크에서 스위치를 당기면 전동식으로 작동한다. 빠르진 않지만 고급스럽다.
키를 소지하고 트렁크 테일게이트의 엠블렘 가까이 손을 대면 트렁크가 전동으로 열리는 터치리스 파워 트렁크 기능도 추가됐다. 경쟁 모델들은 범퍼 밑에 발을 넣으면 트렁크가 열리도록 만든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인식률이 신통치 않았다. 테스트 때는 원활히 작동했는데, 과연 테일게이트 표면이 많이 더러워졌을 때도 잘 작동할 지 궁금하다.
시승차는 RX 350과 RX 450h 중 무작위로 선택됐는데, 기자는 RX 450h 이그제큐티브 모델을 탔다. 둘 다 2GR 계열의 3.5L V6 엔진이지만, 하이브리드 쪽에는 앳킨슨 사이클이 적용된 점이 차이다. RX 450h의 엔진은 2GR-FXS 3.5L V6로, 최고출력 262마력을 낸다. 여기에 3개의 전기모터가 더해져 시스템 출력은 313마력, 시스템 토크는 34.2kg.m이다. 변속기는 하이브리드 전용 e-CVT가 탑재되며, 앞에 모터 2개, 뒤에 모터 1개가 배치된 e-Four 가변 AWD가 기본 적용된다.
Rx 450h의 엔진은 렉서스 하이브리드 기술의 결정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앳킨슨 사이클에, 직분사·포트분사 혼합을 통해 연비와 성능을 동시에 잡은 D-4S 시스템이 얹혔다. 4기통 하이브리드는 앳킨슨 사이클 때문에 특유의 걸걸한 회전질감이 느껴지는데, V6 엔진인 만큼 그런 이질감은 없고 매끄러운 감각이 일품이다. 풍부한 6기통의 토크는 덤이다.
시내에서는 급가속만 하지 않으면 60km/h 정도까지 모터만으로 가속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직병렬 혼합식 하이브리드이기 때문에 배터리 충전량이 넉넉히 확보돼 가능한 일이다. 조금 깊게 가속 페달을 밟으면 전기모터와 엔진이 힘을 더해 쏜살같이 치고 나간다. 하이브리드는 힘이 없다는 편견도 깨기에 충분하다. 가파른 언덕에서 힘에 부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기모터가 강력하게 차를 밀어주는 느낌이 되려 일반 모델보다 여유가 느껴진다.
변속기 역시 기존 렉서스 하이브리드보다 많이 개선됐는데, CVT 특유의 허당 느낌이 억제되고 직결감이 향상됐다. 수동 모드에서는 제법 적극적으로 변속까지 해 준다. 스포츠 모드의 D 레인지에서도 알아서 수동 모드처럼 변속해준다면 좋을텐데, 스포츠 모드에서는 거동이 날카로워 지지만 스로틀 리스폰스는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잘 달리고 잘 서지만 가슴 뛰는 운전 재미를 찾기는 힘들다.
서스펜션은 상당히 오묘한 느낌이다. 요철이나 진동은 매우 부드럽게 걸러주는데, 코너에서는 롤이 철저히 억제되고 안정된 자세를 유지한다. 높은 지상고나 2.1톤이 넘는 무게, 거대한 차체를 생각했을 때 상당히 의외다. 포근한 침대같지만 불안하지는 않다. 게다가 속도를 높여도 풍절음과 노면소음은 대부분 여과되고, 실내는 평화롭다. 섬세한 세팅 뿐 아니라 차체 강성이 좋아진 덕도 있다. 어쨌거나 렉서스가 지향하는 바와 RX의 타게팅이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공인연비는 복합 12.8km/L, 도심 13.4km/L, 고속 12.1km/L이다. 시승 간 연비는 10km/L 정도를 기록했는데, 연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고속 위주의 주행인 점을 감안하면 일상 주행에서는 훨씬 좋은 연비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동급 디젤 SUV들도 생각보다 연비가 좋지 않다. 특히 시내에서는 잘 해야 10km/L 안팎의 연비가 나올 뿐이다. 시내 주행이 많다면 오히려 RX 450h가 훨씬 좋은 연비를 낼 수 있겠다.
여느 렉서스와 마찬가지로, RX 450h 역시 날카로운 눈매와 카리스마 넘치는 근육질 바디를 자랑하지만 그 속내는 부드럽고 포근하다. 한 없이 무르기만 한 것도 아니고, 기본기에 충실하며 만듦새 또한 뛰어나다. 특히 렉서스의 자랑인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경쾌하고 부드러우며 효율적이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외모 외에는 흠잡을 곳을 찾기 어렵다. 물론, 보다 운전 재미를 원한다면 RX 350 쪽이 더 잘 어울릴 것이다.
RX의 마지막 장점 하나 더. 렉서스 RX의 가격은 7,610~8,600만 원으로 동급 중 가장 합리적인 가격대로 책정됐다. 특히 7,000만 원대에 중형 프리미엄 SUV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다. 10-에어백과 사각지대 경보, 후방교행 경보 등이 전 모델에 기본 적용된 만큼 기본형 트림 역시 높은 가격 대비 가치를 지녔다.
RX 450h는 많은 부분에서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아이덴티티를 확고히 이어가고 있다. 렉서스의 고집이 브랜드의 정체성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독보적인 하이브리드와 남다른 안락함으로 대변되는 렉서스만의 가치는 환골탈태한 RX에서도 오롯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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