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비싼 전기차일까 이미지 리더일까? BMW i7 M7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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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 모델 중 M760i의 존재는 대단했다. 12기통 엔진에서 만들어내는 감미로운 음색과 파워풀함, 여기에 어떤 모델도 따라올 수 없는 고급스러움까지 겸비했기 때문이었다. 외모는 그저 평범한 7시리즈지만 내면은 전혀 다른 반전 매력을 보여준 것이 바로 M760i였다. 그런 BMW가 새로운 도전을 했다. 바로 M760i를 대체할 모델을 전기차로 만든 것이다. 바로 i7 M70이다. 과연 M760i의 감동 이상을 전달해 줄 수 있을까?
디자인은 기존에 시승했던 i7 xDrive60과 차별점이 없다. 두 모델 모두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스포티한 범퍼와 앞 펜더에 자리한 M 배지까지 모두 동일하다. 트렁크에 붙은 ‘M70’이라는 네이밍이 다른 i7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부일 정도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그릴에 M 배지가 추가됐다. 앞 펜더의 M 배지에는 기존에 없던 장식이 더해졌다. 크롬으로 마무리했던 창문 테두리는 하이그로시 블랙으로, 일반적인 형태의 사이드미러에 M 전용 모델을 연상시키는 날개를 추가했다. 이외에 앞·뒤 램프도 블랙 틴팅을 적용해 조금 더 강인한 인상을 준다.
시승차는 투-톤 페인팅을 적용했다. 묘한 느낌의 구리 색(리퀴드 코퍼)과 검정(블랙 사파이어) 조합으로 마감했다. 자세히 보면 롤스로이스를 연상시키도록 헤드램프부터 리어램프까지 한 줄로 연결한 마감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브랜드는 색상이 겹치는 부분의 페인트 마감이 엉성한 때도 있다. 손으로 만져봤을 때 층이 있다는 점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i7 M70은 달랐다. 원래 하나의 색상으로 마감한 것처럼 매끄럽게 마감된 것을 볼 수 있다. 훌륭한 마감 완성도다.
실내 곳곳에서 M70만의 다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M 모델 전용 스티어링 휠을 적용하고 왼쪽에는 부스트 패들도 달았다. 대시보드와 센터 콘솔 주변은 카본으로 마감했다. 풀-사이즈 세단이지만 스포티함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독특하게 직물 소재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울과 캐시미어를 혼용해 썼는데 자칫 첨단 전기차에서 딱딱하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고 포근하게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 고급 가죽만 익숙했던 소비자라면 새로운 느낌을 받기 충분할 것이다. 물론 한국 소비자 특성상 가죽을 더 선호하겠지만 말이다.
바뀐 듯 바뀌지 않은 듯한 i7 M70을 살펴봤으니, 주행에 나설 차례다. 실내에 앉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은 언제나 새롭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한스 짐머가 만든 독특한 사운드와 함께 주행 준비를 알리는 것도 다른 전기차와의 차별점이다. M 엠블럼을 품었지만 여전히 i7의 본본은 잊지 않았다. 주행감각은 여전히 부드럽고 조용하며 고급스럽다.
내연기관 대신 전기 모터를 품은 고성능 기함은 마치 향해를 시작한 요트처럼 잔잔하고 묵직하고 고요하다. 그렇다고 창 밖 세상과의 단절감이 과하게 극명하거나 이질적인 주행 느낌은 아니다. 지금 내가 어떤 상태의 도로를 달리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전한다.
경쟁모델인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나 EQS와 가장 큰 성격 차이다. 그렇다고 승차감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에어 서스펜션 특유의 부드러운 승차감 안에서 운전자가 차와 교감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고 해석할 수 있다.
i7 M70은 힘이 넘친다. 2.8톤의 거구지만 660마력이라는 출력과 112.2kgf.m라는 토크 덕분에 무게에 대한 부담감은 전혀 느낄 수 없다. 게다가 회전하는 순간 최대토크가 만들어지는 전기모터 특성상 힘의 여유는 더 크게 느껴진다. 효율성을 챙기는 이피션시 모드에서조차 가속은 언제나 통쾌하다.
가속페달을 조금만 깊게 밟아도 탑승자의 머리가 헤드레스트로 직행한다. 내연기관 차에서 느끼던 터보 레그나 스로틀 리스펀스 같은 개념 자체가 없는 고출력 전기차이기에 밟는 순간 순간 차체가 움찔거린다.
i7 M70은 BMW의 5세대 전기차 기술 중 최고 사양을 탑재했다. 가장 큰 특징은 고정자에 일반적으로 쓰는 3개의 권선이 아닌 6개 권선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쉽게 3기통 엔진을 6기통 엔진으로 만든 것과 같다. 덕분에 모터 파워 밀도는 기존 대비 25.5% 증강시킨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은 BMW가 특허로 보유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이 모터는 영구자석을 쓰지 않는다. 일반적인 PMSM(Permanent Magnet Synchronous Motor) 방식이 아닌 ESM(Electrically excited Synchronous Motor) 방식으로 만든 덕분이다. 모터의 출력과 토크를 높이는 것은 영구자석을 쓰는 것이 쉽고 편하다. 하지만 BMW는 희토류를 쓰지 않고 친환경적인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영구자석을 쓴 모터보다 더 강력한 ESM 모터를 만들어냈다.
성능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쉽게 지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단순히 일회성 성능이 아니라 지속해서 꾸준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0-100km/h 가속 성능을 계속 반복하는 가속 부하 테스트를 진행했다. 하위 모델인 i7 xDrive60이 10회 반복에서도 거의 차이 없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M70은 20회 반복하기로 했다. 절대 정상적인 주행이 아니다. 오직 얼마만큼 성능을 지속할 수 있지 보기 위함이다.
기온 12도 환경에서 배터리는 90% 가까이 충전된 상태로 테스트를 시작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론치컨트롤이 작동하면서 가속할 준비가 됐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진동까지 울린다. 모터에 전류를 흘렸다 끊기를 반복하며 차가 움찔거리는 것을 표현했는데, 마치 대배기량 엔진으로 론치컨트롤을 하는 것 같은 감각을 만들었다.
첫 기록은 3.56초였다. 제조사 공식 제원이 3.7초였으니 꽤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준 것. 가속을 10회 반복해도 가속 성능 차이는 거의 없었다. 100분의 1초 내에서 소폭 변하는 정도였을 뿐이다. 12회, 13회 반복했을 때 가속 기록이 드디어 제원상 기록과 비슷한 3.7초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14회 가속을 준비한다. 차가 조용하다. 론치컨트롤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부터 측정되는 가속 기록은 약 4.2초 내외. 20번째 마지막 가속 기록은 4.42초로 가장 느렸다. 그런데 ‘느리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론치컨트롤이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부하가 많이 걸린 상태에서 가속을 해도 i7 xDrive60(모터그래프 측정 4.4~4.5초)보다 빨랐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접한 전기차는 가속 테스트를 반복하면 쉽게 지치는 경향을 보였다. 꾸준한 주행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최고 성능을 내고, 짧은 시간 안에 계속 반복하면 배터리와 모터에 많은 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i7 M70은 달랐다. 10회 이상 론치컨트롤을 유지할 수 있었고 이때 발휘되는 가속 성능도 거의 똑같았다. 무엇보다 론치컨트롤 준비를 위해 배터리 온도를 올리는 등 프리-컨디셔닝과 같은 작업도 불필요했다. 그냥 테스트 장소로 이동한 후 바로 가속 테스트를 했는데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배터리 관련 신기술 적용은 확실히 BMW를 포함해 독일 브랜드가 느리다. 하지만 주행과 관련된 부분은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부분은 인정해야 한다.
출력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기존 i7과 동일하다. i7 M70도 크게 3가지 출력 곡선을 갖기 때문이다. 일반 모드에서는 578마력 정도만 만들어낸다. 모터에서 만들어내는 힘이 원체 강력하니 평상시에 운전해도 힘이 넘치는 것이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경하면 이때부터 660마력을 온전히 발휘하도록 출력이 변경된다.
스티어링휠 왼쪽에 Boost라고 쓰여 있는 패들을 당기면 부스트 모드가 시작된다. 똑같이 660마력을 만들어내지만 스포츠 모드에서 약 70km/h의 속도부터 나왔던 최고 출력을 약 60km/h부터 발휘되도록 앞당겨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워낙 성능이 강력하기 때문인지 체감적으로 최고 출력 발휘 구간이 앞당겨졌다는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i7 xDrive60과의 차이점이다.
i7 xDrive60의 최대 에너지 회수량이 220kW였다면 i7 M70은 228kW로 아주 살짝 증가했다. 이 정도는 사실상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300kW대 에너지 회수가 가능한 전기차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228kW라는 성능은 다소 아쉽다. 그보다 최대 에너지 회수가 200km/h 이상에서 만들어진다는 점이 아쉬움을 키운다.
충전은 최대 195kW가 가능하다. 관건은 배터리 충전량이 많은 상태에서도 높은 충전 kW를 유지하느냐다. i7 M70은 배터리 충전 약 40% 이후부터 속도 하락하기 시작하는데, 꽤 급격히 하락하는 그래프를 그린다. 고속 충전 유지력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터리는 삼성 SDS의 5세대 배터리가 쓰인다. 전체 용량 105.7kWh, 실제 가용용량 101.7kWh로 약 3.8%의 버퍼를 갖는다. 5%대 버퍼 용량을 갖는 포르쉐보다 더 공격적인 전략이다. 다만 충전 부분은 많이 보수적인 성격으로 볼 수 있는데, 차세대 배터리인 6세대 배터리가 쓰인다면 충전 속도 부분도 큰 발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은 했지만, 전비는 나쁜 편이다. 2.8톤이 넘는 무게를 660마력으로 달리니 상식적으로도 좋을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전비 인증을 매우 소극적으로 했는지 거의 모든 주행환경에서 공인 전비보다 높게 측정됐다.
가고 서기를 반복하는 답답한 도심 환경에서 i7 M70은 3.9km/kWh를 보였다. 공인 복합 전비인 3.3km/kWh보다 높게 나온 것.
고속도로에서 100km/h 속도로 약 20km 주행하며 얻은 전비는 5.2kWh였다. 공인 고속도로 전비인 3.4km/kWh와 비교하면 큰 차이다.
마지막으로 도심과 고속도로, 간선도로 모두 이용하며 약 33km를 이동했다. 이동시간은 50여 분이 소요됐다.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 후 얻어진 전비는 5.3km/kWh. 역시 복합 전비인 3.3km/kWh보다 높게 나왔다. 분명 전기차로는 뛰어난 전비는 아니지만 차량의 크기와 무게, 출력 등을 따지면 꽤 인상적인 효율을 보여주는 것이 확인됐다.
BMW i7 M70의 가격은 2억3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특히 시승차량인 i7 M70 퍼스트에디션 모델의 가격은 2억6340만원이나 한다. 이 금액을 주고 이렇게 비싼 전기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극소수일 것이다.
BMW에서도 i7 M70을 많이 판매하기 위해 만들지 않았다. 시장에서 i7의 존재 가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BMW의 전기차 기술력을 과시하는 역할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얻은 노하우와 기술력 등은 차세대 전기차에 고스란히 녹아들 것이다.
그렇다. i7 M70은 존재 자체로 BMW 이미지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시승과 다양한 테스트에서 그 정도 역할을 하는 모델이라는 것을 당당히 입증했다. 존재 자체로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모델. 그것이 바로 BMW i7 M7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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