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끝판왕, 포르쉐 911 터보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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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포르쉐 911 터보 S를 시승했다. 코드네임 991의 7세대 911 카레라 시리즈는 최근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엔진을 3.0L 터보로 다운사이징했다. 반면 911 터보 시리즈의 배기량은 3.8L 그대로다. 하지만 이번 역시 힘과 연비를 동시에 높였다. 911 터보 S의 경우 이전보다 20마력 높은 580마력을 낸다.
도박에 가까운 모험이었다. 1973년 10월 16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 가격 인상과 감산을 선언했다. 다음날 세계 경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듬해 3월까지 이어진 1차 오일쇼크였다. 포르쉐는 하필 1974년 911 터보를 선보였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특별하고 폭발적이며 비싼.’ 포르쉐가 2년 뒤 911 터보의 지면 광고에 앞세운 카피였다.
당시 포르쉐 최고경영진 가운데 일부조차 양산 터보 프로젝트에 확신을 갖지 못했다. 오일파동으로 위축된 소비심리의 역풍을 우려한 탓이었다. 그러나 기우였다. 1세대 911 터보 3.0의 판매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데뷔 후 첫 3년 동안 2,850대가 팔려 나갔다. 또한 터보차저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성능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911의 숙명에 숨통을 터줬다.
그런데 포르쉐는 911 터보를 진화시키면서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에만 집착하지 않았다. 늘 성능과 효율(연비)을 동시에 높이는 ‘마법’에 도전해왔다. 그리고 매번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올해 초 포르쉐 911 터보 시리즈가 다시 한번 신형으로 거듭났다. 코드네임 991의 후기형이다. 911의 구분으로는 7세대, 911 터보로는 여덟 번째 모델이다.
포르쉐 역사상 여덟 번째 911 터보
지난 1월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최신 911 터보 시리즈를 시승했다. 쿠페와 카브리올레, 타르가로 구성된 포르쉐 카레라 4 시리즈도 더불어 만날 기회였다. 911의 ‘끝판왕’을 만나러 가는 과정은 아득했다. 서울~홍콩 3시간 반, 홍콩~남아공 12시간 반, 홍콩에서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 20시간 가까운 여정이었다.
태어나 처음 방문하는 남아공. 그나마의 정보도 영화 ‘디스트릭트 나인’이나 ‘채피’로 엿본 것들로, 영화 속 남아공은 치안이 불안한 혼돈의 나라였다. 남아공의 면적은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5배다. 그런데 인구는 5,000만 명에 불과하다. 요하네스버그의 연간 10만 명 당 살인율은 30여 명. 나쁜 의미에서 전세계 상위권이다.
착륙 직전 내려다 본 요하네스버그는 예상과 딴판이었다. 사자와 얼룩말이 쫓고 쫓기는 대자연은 없었다. 빽빽이 늘어선 건물 사이로 널찍한 도로가 쭉쭉 뻗은 대도시였다.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며 요하네스버그를 한층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썩은 고물차와 최신 고급차가 사이좋게 달렸다. 빈부격차가 심한 남아공 사회의 단면이 도로 풍경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우리를 태운 버스가 신호대기에 멈춰 서자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도로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분무기로 자동차 앞 유리에 물을 뿌린 뒤 돈을 요구하거나 이것저것 잡다한 물건을 팔았다. 내일 같은 길을 포르쉐 911 터보로 지날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포르쉐가 왜 굳이 남아공까지 와서 행사를 치르나 원망스럽기도 했다.
도로 양쪽의 상가는 가게마다 촘촘한 쇠창살을 씌웠다. 주택가 대문과 담벼락엔 ‘전기 주의, 무장경비’란 경고문을 붙여놓았다. 거리에서 백인은 코빼기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우린 잔뜩 주눅이 든 채 숙소에 들어섰다. 설상가상으로 포르쉐 스태프가 긴장을 부채질한다. “개별적으로 절대 숙소 밖에 나가지 마세요.” 리조트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이 수호천사로 보였다.
남반구에 자리한 남아공은 우리와 계절이 반대다. 따라서 지금은 기온이 25℃를 넘나드는 초여름. 우린 잠시 에어컨으로 더위를 식힌 뒤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음날 시승에 앞서 포르쉐가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듣기 위해서다. 버스는 호객꾼과 잡상인을 묵묵히 헤치며 요하네스버그를 빠져 나갔다. 한 시간 정도 달려 우린 ‘키알라미’(Kyalami) 서킷에 도착했다.
911 시리즈 중 가장 넓은 차체
키알라미는 줄루족 언어로 ‘집’이란 뜻. 우리에게 낯설 뿐 이 서킷은 꽤 유명하다. 1961년 문을 연 이후 아프리칸 그랑프리와 F1 등의 경주를 치렀다. 그런데 몇 년 전 이 서킷이 경매에 나왔다. 그걸 포르쉐 남아공 임포터가 덥석 사들였다. 그리고 최근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쳤다. 새 단장 이후 첫 행사가 바로 이번 시승회다. 대충 스토리가 나온다.
아마도 남아공 임포터 사장이 포르쉐 본사에 제안했을 것이다. “우리 끝내주는 서킷을 완성했는데, 여기서 행사해서 홍보해주면 안 될까?” 덕분에 전세계 기자들이 911 터보를 만나러 남아공까지 날아왔다. 물론 남아공을 찾은 보람은 충분했다. 시내는 마뜩찮았으나 서킷은 최고였다. 포르쉐는 버스에 우릴 태운 채 한 랩을 돌았다. 서킷과 나눈 첫인사였다.
포르쉐는 서킷 피트에 행사장을 차렸다. 이날 포르쉐는 신형 911 터보의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신형 911 터보는 외모를 좀 더 날카롭게 다듬었다. 911 카레라 시리즈와 맥을 같이 한 변화다. 가령 헤드램프를 위아래 두 개의 광원으로 나눴다. 도어 핸들은 테두리처럼 주변을 에워싼 테두리 없이 문짝에 바로 붙였다. 그래서 한층 깔끔해졌다.
앞 범퍼는 흡기구를 키웠다. 가운데 흡기구 좌우엔 열을 빼내기 위해 가로로 칼집을 냈다. 꽁무니 엔진룸 커버엔 기존의 가로 대신 세로 그릴을 씌웠다. 911 카레라 시리즈에서는 왠지 참빗이 떠올라 아쉬웠다. 반면 터보 시리즈는 우람한 뒤 범퍼가 시선을 압도해 그나마 낫다. 머플러는 네 가닥으로 뽑았다. 터보는 크롬, 터보 S는 블랙크롬으로 단장했다.
테일램프는 마칸처럼 표면을 울룩불룩 다듬었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램프 하나 당 네 군데에서 불을 밝힌다. 힙은 역대 911을 통틀어 가장 빵빵하다. 911 카레라의 차체 너비는 1,808mm, 사륜구동 방식의 카레라 4는 1,852mm. 반면 911 터보는 1,880mm로 자연흡기 911의 꼭짓점인 GT3 RS와 같다. 카레라보단 72mm, 카레라 4보단 28mm 더 넓적하다.
지난해 911 카레라 시리즈는 코드네임 991의 후기형으로 진화했다. 7.5세대인 셈이다. 이때 심장을 바꿨다. 배기량을 3,436㏄(카레라)와 3,800㏄(카레라 S)에서 3.0L(2,981㏄)로 ‘다운사이징’했다. 대신 터보차저를 얹었다. 그 결과 성능과 연비를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이제 카레라는 370마력, 카레라 S는 420마력을 낸다. 각각 20마력씩 올라갔다.
이제 카레라도 모두 터보. 따라서 기존 911 터보의 상징적 위상이 다소 모호해졌다. 하지만 포르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다. 포르쉐가 스포츠카를 업그레이드하는 전략을 보면, 당구 고수가 점수 빼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번 진화만 해도 그렇다. 더도 덜도 말고 딱 20마력씩 올렸다. 시야를 확장해 보면 단지 출력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911 모델 전략 자체가 그렇다. 밑바탕 하나 잘 만든 다음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지, 어떤 쪽 바퀴에 동력을 전하는지, 출력을 얼마나 부풀렸는지에 따라 세세하게 쪼갠다. 그리고 그 하나하나 모델에 나름의 개성과 의미를 부여한다. 심지어 911 터보도 굳이 터보 S를 만들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전형적인 다품종 소량판매 전략이다. 한 마디로, 장사의 달인이다.
580마력 품고 시속 330km까지 달려
이번 911 터보의 엔진은 수평대향 6기통 3.8L 트윈 터보. 기존과 같다. 그러나 출력은 터보 540마력, 터보 S 580마력으로 이전보다 각각 20마력씩 높였다. 둘은 터보차저에 차별을 뒀다. 하지만 둘 다 상황에 맞춰 터빈의 날개 각도를 무단으로 바꾸는 VGT가 기본이다. 최대토크는 터보가 72.3㎏·m로 5.09kg·m 늘었고, 터보 S는 76.4kg·m 그대로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론치컨트롤 기준)은 0.2초씩 줄였다. 터보는 3.0초, 터보 S는 2.9초다. 최고속도는 터보가 시속 315에서 320km, 터보 S가 시속 318에서 330km로 늘었다. 동시에 연비는 6% 개선했다. 워낙 까마득한 성능이라 감이 잘 안 올 수 있다. 시속 330km로 달리는 911 터보 S가 1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는 얼마나 될까? 무려 91m다.
실내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운전대다. 지름을 360mm로 줄여 감싸쥐기에 한층 좋다. 스티어링 휠엔 918 스파이더처럼 다이얼을 달았다. 0이 노말, S가 스포트, S+는 스포트 플러스, I는 인디비주얼의 약자다. 가운데 빨간 버튼을 누르면 차가 미쳐 날뛴다. 어떤 모드에서건 20초 동안 스포트 플러스 모드로 변한다. 20초씩 반복해서 계속 쓸 수 있다.
911 터보의 변속기는 자동 7단 PDK(포르쉐 더블 클러치의 독일어 이니셜)다. 수동 모드에서의 조작법은 경주차처럼 위=다운시프트, 아래=업시프트로 바꿨다. 사륜구동 시스템인 포르쉐 트랙션 매니지먼트(PTM)는 구동력 옮기는 과정을 좀 더 빠르고 정교하게 개선했다.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지니먼트(PCM)는 드디어 애플 카플레이를 품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요하네스버그 포시즌즈 리조트 앞마당에 911이 도열했다. 터보와 터보 S, 카레라 4 각각의 쿠페와 카브리올레가 섞였다. 기자는 터보 S 쿠페를 배정받았다. 이날 키알라미 트랙에서 역시 터보 S 쿠페를 탄다니, ‘뽑기’ 운이 제대로 작용한 셈이다. 준비를 마친 911 터보와 카레라 4가 리조트를 빠져 나갔다. 걸걸한 배기음에 고막이 얼얼했다.
남아공은 한때 영국령이었다. 따라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량은 좌측으로 통행한다. 다행히 포르쉐가 가져온 시승차는 죄다 왼쪽 운전석. 우회전 때 반대차선으로만 들어서지 않으면 된다. 실수할 기회는 드물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는 이른 아침부터 꽉꽉 막혔다. 공포의 교차로에 멈춰 섰다. 역시나 ‘흑형’들이 다가온다. 우린 바짝 얼은 채 앞차 꽁무니만 노려봤다.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의외로 911 터보 S에 쏟아진 관심은 뜨겁지 않았다. 도로 위에 좋은 차가 워낙 많았기 때문. 괄괄한 배기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면 둘 중 하나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쌔끈한 신차이거나 머플러가 터진 똥차다. 911 터보와 카레라 4 시리즈들은 거대한 정체 행렬 사이사이에 박힌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다 압도적이되 한층 다루기 쉬워
드디어 키알라미 서킷에 두 번째로 들어섰다. 카레라 4로 먼저 예습 삼아 서킷을 돌았다. 3.0L 터보 엔진의 느낌이 정말 궁금했다. 역시 포르쉐였다. SUV에 스포츠카의 느낌을 감쪽같이 담은 솜씨는 녹슬지 않았다. 터보차저를 붙이고도 자연흡기 엔진의 특성을 기가 막히게 흉내냈다. 이를테면 최대토크를 뿜는 시점을 슬그머니 고회전으로 미뤄놓았다.
다만 새 엔진의 존재를 숨길 수 없는 단서가 있었다. 바로 사운드다. 고회전으로 접어들면 터빈의 예리한 금속성 회전음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가슴 철렁하게 빠른 반응 때문이다. 가속 페달을 칠 때마다 꽁무니의 엔진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힘을 뿜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터보 S를 몰면서 카레라 4의 감흥은 까맣게 잊었다.
드디어 911 터보 S의 운전석에 앉았다. 포르쉐의 정예 교관은 911 GT3 RS를 몰고 우릴 이끌었다. 첫 랩은 탐색전이라며 안심시키더니, 911 GT3 RS는 출발과 동시에 아득히 사라졌다. 911 터보 S의 행렬이 반사적으로 페이스카를 뒤쫓기 시작했다. 소위 ‘제로백’ 2.9초의 가속은 살벌했다. 911 GT3 RS의 펑퍼짐한 엉덩이를 순식간에 ‘줌인’하듯 당겼다.
911 터보 S는 스로틀을 열 때마다 76.4㎏·m의 토크를 콸콸 쏟아냈다. 트랙 주행 때 코너에서 타이밍을 놓쳐 엔진회전수를 떨구면 김빠진 가속을 이어가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911 터보 S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어떤 속도나 어떤 회전수에서도 등짝을 걷어차듯 격렬한 가속을 이어갔다. 콱콱 치솟는 파워를 어떻게 다독이느냐가 매끈한 주행의 관건일 정도였다.
이번 911 터보의 엔진은 가속하다 잠시 액셀 페달에서 발을 떼도 스로틀 밸브를 연 채 기다린다. 터보차저의 부스트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재가속 때 엔진에 보다 신속하게 흡기를 쑤셔 넣을 수 있다. 오버부스트 기능도 담았다. 대략 2,100~4,000rpm에서 부스트압을 0.15바 더 높인다. 물론 운전자는 이 과정을 알 필요도, 알 수도 없다.
신형 911 터보 S는 스티어링 조작의 스트레스 또한 한층 적었다. 가령 접지력의 한계를 가늠하며 예쁘장하게 궤적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웠다. 코너를 오려내는 라인이 삐뚤빼뚤해져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저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으면, 모난 라인은 뭉개고 흐릿한 궤적은 뾰족이 다듬어 달렸다. 정교한 전자장비와 사륜구동 시스템이 내는 시너지였다.
이번 911부터 더한 4WS(네바퀴 조향 시스템)도 좌우 방향의 ‘순간이동’을 돕는 일등공신이다. 911 터보와 터보 S의 경우 뒷바퀴를 시속 0~40km에서는 앞바퀴와 반대, 시속 80~330km에서는 앞바퀴와 같은 방향으로 0~2.8° 꺾는다. 한편, 가속만큼 제동 성능도 개선했다. 시속 100→0km 제동 거리를 0.7m 더 줄였다. 브레이크와 타이어를 손질한 결과다.
문득 제동성능은 어떻게 측정하는지 궁금했다. 엔지니어의 이야기는 놀라웠다. “시속 240→90km 제동을 25회 반복해 브레이크를 충분히 예열시킨 뒤 시속 100→0km 제동 테스트에 나서죠. 탑승자 무게는 좌우 70kg씩 총 140kg으로 맞추고요.” 말이 좋아 예열이지 평범한 차라면 준비하다 뻗을 만큼 가혹한 조건. 포르쉐 브레이크 성능의 신뢰성을 엿볼 단서였다.
운전자를 가리지 않는 911의 끝판왕
911 터보 S는 궁극의 욕심쟁이였다. 압도적인 힘과 위상, 쉬운 운전까지 한번에 거머쥘 수 있는 911계의 ‘지름길’이자 ‘치트키’다. 부분변경으로 거듭나면서 911 터보 S의 성능은 이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수퍼급으로 무르익었다. 그러나 왕초보부터 왕년의 레이서까지 너그럽게 받아준다. 나아가 비슷한 성능의 소위 ‘수퍼카’와 달리 매일 타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한편으로 앞으로 911 터보의 성능을 얼마나 더 높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을 10분의 1초 단위로 줄여나가는 걸 보면, 물리적으로 성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온 듯해서다. 서킷 시승을 마친 뒤 911 터보와 카레라 4 개발을 총괄한 에르하르트 뫼슬레 박사에게 물었다. 과연 911 터보의 ‘제로백’을 얼마나 더 줄일 수 있을지.
그가 말했다. “기술적으로는 아직 더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해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을 2.6초 밑으로 줄이면, 경주용이 아닌 일반 판매용 타이어로는 노면을 움켜쥘 방법이 마땅치 않아요. 아울러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다음 세대 911 터보 역시 전기 모터의 도움 없이 내연기관만으로 성능을 개선할 예정이에요.”
다음 세대 911 터보 S를 예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아마도 출력은 또 다시 20마력 높이고, ‘제로백’ 역시 0.2초 정도 줄일 것이다. 수치로 드러난 911 끝판왕의 진화는 감질이 나서 늘 여운을 남긴다. 그러나 일단 몰아보면 그 이상을 상상하기 어렵다.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충격을 안겨줘서다. 그래서 911 터보의 진화는, 겪고 또 겪어도 물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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