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겨울을 가장 쿨하게 보내는 방법: OPEN TOP + A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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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라고 방 안에만 처박혀 있지 말자. 당신의 겨울을 익사이팅하게 만들어줄 차 3대가 여기 있다. 눈길도 개의치 않는 화끈한 사륜구동 오픈톱 모델들의 겨울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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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하 10도에 지붕을 열어젖히고 눈길을 찾아 헤맸다. 이한치한이라며 객기를 부릴 생각은 아니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그남자’ 코스프레도 물론 아니었다. 그저 겨울을 가장 ‘쿨’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예상보다 훨씬 추웠다. 아직도 여기저기 뼈마디가 쑤신다. 그나마 우리가 감기에 몸져눕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오늘 모인 차들이 뜨겁고 상냥했기 때문이다.

#2 사실 오픈에어링은 여름에 즐기는 게 아니다. 땡볕 아래서 루프를 열면 쪄 죽는다. 루프를 열기에는 초봄과 늦가을이 가장 좋다. 겨울에도 나름의 맛이 있다. 요즘 ‘오픈카’들은 스티어링 휠 히터와 시트 히터, 그리고 에어스카프 등으로 무장한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면 한겨울에도 노천탕을 즐기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거, 생각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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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래서 우리는 지붕을 활짝 열 수 있는 차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단서를 하나 달았다. 바로 사륜구동 시스템.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달리기 위한 일종의 보험인 셈이다. 오픈톱과 사륜구동 시스템을 조합한 차종은 생각보다 적었다. 오늘 모인 3종을 포함한 총 7종이 후보에 올랐다. 동생들을 대신 내보낸 아우디 A5 카브리올레와 지프 랭글러는 그렇다 쳐도, BMW 6시리즈 x드라이브 컨버터블과 포르쉐 911 4/4S 카브리올레가 함께 하지 못한 건 못내 아쉬웠다.

AUDI TT ROADSTER : 진정한 낭만주의자의 트로피

아버지께선 말씀하셨다. 맑고 시린 칼바람이 장송(長松)의 위용을 만든다고. 다리엔 굳은 심지를 싣고 가슴엔 푸른 꿈을 담으라고. 그리하여 비바람, 눈보라에도 굳세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이달에 그런 차를 만났다. 아우디 TT 로드스터. 시종일관 노면을 움켜쥐는 콰트로 시스템과 언제고 하늘을 맞이할 준비가 된 캔버스톱을 가진 차. 이 차를 갖기 위해선 차값 6,050만원 그 이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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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삭슥삭. 연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솜씨 좋은 디자이너의 펜 끝 놀림을 3차원 세계에 그대로 옮겨온 듯, 예리한 직선과 풍만한 곡선은 날렵한 헤드램프에서부터 볼륨감 넘치는 테일램프까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며 차체를 휘감는다. 3세대 TT는 한층 더 강렬하고 샤프해졌다. 차체 구석구석 날을 세우고 헤드램프와 테일램프엔 맹수의 발톱 자국 같은 LED 라인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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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퀼팅과 스티치 마감으로 멋을 낸 시트는 앉기 미안할 정도로 아름답다. 하지만 일단 앉고 나면 일어나기 싫을 만큼 착좌감이 훌륭하다. 럼버서포트와 사이드볼스터를 조절할 수 있어 누구에게나 몸에 착 감기는 맞춤 시트가 된다. D컷 스티어링 휠은 림이 손바닥을 향해 각을 세우고 있어 손 안쪽으로 깊이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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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조종석에서 착안한 디지털 계기판(버추얼 콕핏)은 12.3인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안에 운전자가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담아낸다. 최소한의 버튼만을 갖춘 센터페시아는 스포티하면서도 세련미가 넘친다. 제트 엔진을 형상화한 다섯 개의 송풍구는 심미성과 조작성, 그리고 시안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특히 각 송풍구 중앙에 자리한 공조장치 디스플레이는 햇빛 아래 톱을 열고 봐도 무척이나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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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QB 플랫폼을 기반으로 만든 TT 로드스터는 짧은 보닛 안에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과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품는다. 3세대에 들어 휠베이스는 그대로 유지하며 차체 길이는 줄여 바퀴들을 네 귀퉁이로 더 밀어냈다. 스티어링 휠의 록투록은 정확히 2회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앞바퀴가 더 많이 꺾이는 가변식 스티어링 덕분에, 최소의 스티어링 조작으로도 앞머리가 가뿐하게 돌아간다.

출력은 이전보다 9마력 늘었을 뿐이지만 가속 감각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콰트로 시스템의 체질개선 덕분이다. TT 로드스터의 콰트로 시스템은 평소엔 앞바퀴에 더 많은 토크를 싣지만, 상황에 따른 앞뒤 토크배분이 더욱 유연해져 시종일관 뉴트럴에 가까운 감각을 만든다. 폭 245mm의 컨티넨탈 타이어가 주는 믿음직한 노면 그립감은 계절을 잊은 듯하다. 노면이 차가운 겨울철에도 코너를 좀 더 빠르게 돌아보라고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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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안정성도 만족스럽다. 제한 최고속도도 기존 모델보다 40km/h늘어난 시속 250km로 상향 조정되었다. 배기음은 짐승의 포효나 폭력적인 타격음과는 거리가 먼, 부드러운 바리톤 사운드다. 주행모드를 다이내믹으로 바꿔 울림통을 키우고 왼손 중지로 시프트패들을 튕겨 기어를 두 단쯤 내려 물면,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중후한 바리톤 아리아를 들을 수 있다.

TT 로드스터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톱을 열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과는 다른 셈법으로 사는, 특별한 사람이 되는 데 단 10초면 충분하다. 시속 50km 이하라면 언제든 작동한다. 한겨울에 톱을 열고 달리다보면 혼자만 다른 계절을 사는 기분이다. 평범한 겨울나기에 저항하는 체 게바라이자 갑남을녀들의 시선에 반항하는 제임스 딘이 된 것 같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윈드 디플렉터, 히터, 히팅 시트, 에어 스카프 등 온갖 온열장비에 의지하고 여유롭게 달리고 있노라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그러나 속도를 높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속주행시엔 주행풍이 더욱 거세게 들이치기 때문이다. 스티어링 휠엔 열선이 없어 손마디가 시리다. 찬바람은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데 히터의 더운 바람은 시냇물 수준, 몸이 굳고 오들오들 떨린다. 들이치는 칼바람에 비하면 에어스카프는 고작 성냥팔이 소녀의 입김 정도. 뒤통수가 뜨뜻해진 것은 에어스카프보다는 시기와 조롱 섞인 주변의 시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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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도 이 미친 짓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붉게 물든 두 볼이 찬바람에 튼 건지 흥분감에 익은 건지 모를 정도로, 그리고 머리털이 바람에 일어섰는지 추위에 곤두섰는지 모를 정도로 즐겁기 때문이다. 하늘을 향해 가슴을 열고 달리다보면 나도 몰래 입꼬리가 저 하늘을 향한다.

TT 로드스터는 쉴 새 없이 말초신경을 자극해대는 스포츠카가 아니다. 귀곡성을 지르며 질주본능을 각성시키거나 동승자의 오장육부를 좌우앞뒤로 뒤흔들어 멀미를 일으킬 만한 차도 아니다. 과하지 않되 그 완성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린 디자인처럼 충분하되 넘치지 않는 달리기 실력을 가진 스포츠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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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TT 로드스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차값 그 이상이 필요하다. 같은 값으로 넓고 안락한 프리미엄 중형 세단을 선택할 수도 있다. 눈, 비, 매연, 미세먼지 등 오픈에어링을 방해하는 요소는 많고 많다. 하지만 같은 값으로 살 수 있는 차들 중 TT 로드스터만큼 시선을 빼앗을 수 있는 차도 드물다. 또한 오픈에어링이 주는 개방감과 자유로움, 수치화할 수 없는 만족감은 대체하기 어렵다.

TT는 영국에서 열리는 모터사이클 경주 투어리스트 트로피(Tourist Trophy)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기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겨울 오픈에어링을 부추기는 TT 로드스터는 진정한 낭만주의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트로피(True romanticist’s Trophy)라고. 또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신스틸러이자 청춘의 마음을 훔치는 심(心)스틸러다.

JEEP RENEGADE : 눈 덮인 자연에서의 오픈에어링

레니게이드는 2015년 지프를 웃게 만든 주인공이다. 콤팩트한 차체와 개성 넘치는 디자인, 그리고 지프의 4륜구동 시스템으로 아웃도어를 즐기는 이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얻었다. 외모는 얼핏 아이들이 스케치북에 그린 자동차와 비슷하게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남성미가 넘치는 디자인 요소가 가득하다. 마치 ‘터프가이’를 꿈꾸는 꼬마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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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박스로 구성된 차체와 볼록 솟은 두툼한 펜더는 이 차의 인상을 한층 강하게 만든다. 7슬롯 라디에이터 그릴과 둥근 헤드램프는 지프의 ‘마초’ 랭글러가 떠오른다. 테일램프 중앙에 포인트를 준 X자 모양은 반항적인 느낌마저 든다. 단단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차체 옆면 아래쪽의 검정색 패널들은 험로에서의 상처를 염두에 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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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공간 크기는 차체 사이즈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A필러가 운전자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 공간감이 느껴지며 탁 트인 시야가 좋다. 사이드미러 사이즈도 커 사각지대가 거의 없다. 다만 가끔씩 왼쪽 A필러가 시야를 가릴 때가 있으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한 느낌의 3스포크 타입이다. 하지만 오프로드 주행을 고려한 탓인지 림의 굴곡이 많은 편은 아니다. 센터페시아 위에 붙은 로봇 눈 모양의 송풍구는 개성이 넘친다. 트렁크공간은 넉넉하며 바닥을 열어보면 탈착한 루프를 넣을 수 있는 수납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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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170마력, 최대토크 35.7kg·m의 2.0L 디젤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의 구성. 시동을 걸면 거친 디젤음이 실내로 들려온다. 엔진 소음은 오디오 볼륨으로 커버할 수 있지만 스티어링 휠을 타고 넘어오는 진동은 어쩔 수가 없다. 터프가이의 피가 흐르는 레니게이드를 타려면 섬세함보단 곰처럼 무딘 성격이 제격이다.

서스펜션은 평소에는 단단하지만 과격한 코너링이나 급제동에서는 상당히 물러진다. 하지만 그저 그런 소형 크로스오버가 아닌, 꽤 진지한 오프로더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한 수준이다. 또한 차체가 높고 공기저항이 큰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안정성은 뛰어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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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멀끔한 포장도로에서는 레니게이드의 진가를 알 수 없다. 레니게이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연이다. 몇 년째 아웃도어 열풍이 식을 줄 모르고 캠핑족들이 늘어가고 있다. 도심 속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있지만 진정한 캠핑은 자연과 함께 할 때가 제맛이다. 오픈에어링으로 자연의 맑은 공기를 느끼며 캠핑을 떠날 수 있는 차가 바로 레니게이드다.

컨버터블 모델의 대부분은 지상고가 낮고 트렁크공간이 좁은 스포츠카다. 비포장을 마음껏 달리지도, 트렁크에 캠핑 장비를 실기도 어렵다. 레니게이드는 트렁크에 루프 수납공간이 따로 있기 때문에 지붕을 수납하고도 여유 있는 트렁크공간을 자랑한다. 또한 전용열쇠로 간단하게 탈착되는 루프는 여자 앞에서 형광등을 교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들에겐 재미있는 요소다. 앞뒤 두 조각으로 나뉜 루프를 뜯어내면, 제대로 된 컨버터블 못지않은 개방감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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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을 하고 속도를 높이더라도 바람이 실내로 들이치는 양은 그다지 많지 않다. 윈드 리플렉터가 바람을 잘 튕겨 내기 때문. 종종 컨버터블이나 로드스터를 타는 이들 중에는 실내로 바람이 들이닥쳐 톱을 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레니게이드는 바람이 머리카락을 살랑일 정도의 기분 좋은 오픈에어링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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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레니게이드는 엄연히 지프 혈통이다. 최근 사륜구동 시스템을 장착하는 스포츠카나 세단들이 많아졌지만 레니게이드에 달린 사륜구동 시스템은 험로탈출을 위한 진정한 오프로드형이다. 온로드에서도 안정감을 높여주지만 오프로드에서 더 진가를 발휘한다. 오늘 모인 3대의 차 중 아스팔트 위가 아닌 거친 험로에서 오픈에어링을 즐길 수 있는 차는 레니게이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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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에서는 매연과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오픈 에어링을 마음껏 즐기기가 힘들다. 하지만 레니게이드는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유유자적 즐길 수 있다. 스티어링 휠 히팅과 시트 히팅 버튼을 누르고 히터의 풍량과 오디오의 볼륨을 높인 후 겨울공기를 맘껏 들이키자. 단언컨대, 머리 위를 스치는 겨울바람을 느끼며 자연으로 떠날 때만큼 ‘짜릿한 힐링’도 흔치않다.

JAGUAR F-TYPE S AWD : 짜릿하고 우아한 토플리스 재규어

다행이다. F-타입 S AWD가 우리 초대에 응해줘서. 이처럼 성격이 뚜렷한 사륜구동 컨버터블이 또 있을까? F-타입 S AWD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은 흔치않다. 우아한 디자인, 짜릿한 성능, 황홀한 엔진 사운드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비교 대상도 드물다. 우리가 생각했던 그림에도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클래식 스포츠카 감성의 최신 사륜구동 컨버터블. F-타입 S AWD는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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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퀴를 굴리는 F-타입은 2015년에 등장했다. 데뷔 목적은 명확하다. 독일제 미드십 스포츠카와 같은 안정성을 원하는 팬들을 위해서다. 재규어는 누구보다 스포츠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 차를 제어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스릴을 유독 강조한다. 하지만 이를 부담스러워 하는 부자들이 적지 않았고, 결국 재규어는 사륜구동 시스템을 달았다. 덕분에 이제 한계에 다가가기가 한층 더 쉬워졌다.

F-타입의 사륜구동 시스템은 평소 뒷바퀴만 굴린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의 구동력을 정확히 앞바퀴에 전달한다. 앞뒤 구동력 배분율은 스티어링 각도와 스로틀 개방각도, 그리고 트랙션 상황 등을 면밀히 살피다가 결정한다. 0:100~30:70 사이를 넘나든다. 때문에 운전감각은 뒷바퀴를 굴리는 F-타입과 큰 차이가 없다. 원한다면 엉덩이를 슬쩍슬쩍 날릴 수도 있다. 한마디로 더 완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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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인상은 조금 달라졌다. 이전보다 한결 날카로운 분위기다. 변속기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붙이며 엔진 위치가 10mm 높아져 보닛을 새로 짰기 때문이다. 보닛의 굴곡이 더 강렬해졌고, 방열구의 형상과 위치도 달라졌다. 개인적으로는 환영할 만한 변화다. 사실 F-타입의 얼굴은 지나치게 신사적이었다.

섹시한 옆모습과 뒷모습은 여전하다. 굳이 재규어의 전설적인 스포츠카 E-타입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다. 차에 관심 없는 사람도 알 수 있다. 롱노즈 숏데크의 비율과 납작한 꽁무니가 굉장히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특히 뒤 펜더를 타고 트렁크 리드로 흐르는 곡선이 눈부시다. 보통 컨버터블은 쿠페에서 파생되지만 F-타입은 그 반대다. 따라서 컨버터블의 디자인이 한층 더 자연스럽다. 차체 강성 역시 마찬가지. 루프를 잘라내면서 차체가 물러지기 마련이지만, F-타입은 컨버터블부터 개발됐기 때문에 충분히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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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라 직물로 짜여졌다. 관리가 까다롭긴 하지만 작고 가볍다. 만약 하드톱을 달았다면 이를 접어 넣을 공간 때문에 뇌쇄적인 뒤태가 망가졌을지도 모른다. 소프트톱의 장점은 또 있다. 몸놀림이 일정하다. 이와 달리 하드톱 컨버터블은 루프 개폐 여부에 따른 거동의 변화가 크다. 수십 kg에 달하는 철판 덩어리들이 머리 위에 펼쳐져 있을 때와 차곡차곡 포개져 차체 뒤로 들어갔을 때의 운전감각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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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아주 특별하다. 디테일과 구성이 모두 철저히 스포티함에 초점을 맞췄다. 또한 ‘일반’ 재규어와는 사뭇 다르다. 패밀리룩이라는 미명을 뒤집어 쓴, ‘공유’의 흔적이 거의 없다. 부품을 나눠 쓰기 위해 레이아웃까지 비슷하게 가져가는 일부 브랜드와는 전혀 딴판이다. 디젤 소형 해치백에서 가격이 3배 비싼 가솔린 대형 2인승 컨버터블로 옮겨 탔는데, 판박이나 다름없는 실내를 마주했을 때의 그 실망감이란……. 국내에서 판매 1, 2위를 다툰다는 모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차종 시승회에서 겪었던 일이다.

엔진을 깨우면 F-타입의 분위기는 한층 더 특별해진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과격한 소리와 진동이 온몸을 자극한다. 공회전 방지장치가 시동을 걸 땐 얌전한 걸 보면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의도적인 설정이 분명하다. 기어를 물리고 속도를 높이면 울림은 더욱 웅장해진다. 자연흡기 레이스카와 비슷한 하이 톤의 엔진 사운드와 파열음이 섞인 거칠고 낮은 톤의 배기 사운드가 캐빈룸을 사이에 두고 뒤엉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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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감각에는 날이 바짝 서 있다. 380마력, 46.9kg·m의 힘을 노면에 온전히 전달한다. 적지 않은 출력과 토크이지만 꺼내 쓰는 데는 큰 부담이 없다. 힘을 왜곡 없이 쏟아내기 때문이다. V6 3.0L 수퍼차저 엔진은 치솟는 회전수에 비례해 힘을 점진적으로 늘린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5.1초. F-타입 R AWD보다 1.0초 느리지만, 큰 아쉬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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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페달을 밟으면 무게가 순식간에 뒤쪽으로 실린다. 전형적인 후륜구동 스포츠카와 비슷한 감각이다. 사륜구동이라는 무기를 갖추고 이렇게 스포티한 느낌을 전달하는 차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꽁무니에 무게를 싣고 코너를 돌아나갈 때 특히 짜릿하다. 사륜구동은 철저히 한계에 다다르기 직전이나, 더 나은 가속을 위해서만 개입한다. 물론 눈길이나 빙판길에서는 조종안정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8단 자동변속기도 흠 잡을 곳이 별로 없다. 동력전달 감각이 뚜렷하고 변속시간도 꽤 짧다.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등장하고서도 토크컨버터 타입의 자동변속기는 계속 진화 중이다. 기어를 쉬지 않고 바꿀 때는 듀얼 클러치에 대한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도 하지만 재규어 특유의 풍부한 몸짓과의 묘한 시너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내 잦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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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를 열어두면 바람이 꽤 들이친다. 윈드실드와 A필러의 설계가 스타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실용성에 목멘 듯한 이미지가 싫어서일까, 윈드 디플렉터도 옵션으로 빼 두었다. 그러나 재규어는 컨버터블을 제대로 만들 줄 아는 브랜드다. 시트 히터의 성능과 송풍구 설계가 기가 막히다. 이를 잘 활용하면 속도를 높여도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마치 반신욕을 하듯이.

영하 10도의 날씨에 루프를 열고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산길을 하루 종일 헤집고 다녔음에도, 기자가 아직 살아 있는 건 바로 F-타입의 이런 상냥함 때문이다.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기자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가속 페달을 밟을 때마다, 스티어링 휠을 꺾을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도파민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기자는 이날 눈 덮인 길도 개의치 않고 F-타입의 강렬한 가속과 짜릿한 손맛, 그리고 황홀한 사운드를 정신없이 즐겼다. 한겨울 F-타입과 함께한 환상적인 하루. 꽤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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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 김성래, 안진욱 기자
사진
민성필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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