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왕복한 아이오닉의 진짜 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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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홍포(거제도)가 아니었다. 통영 정도에서 계기반 연료 잔량이 절반에 이르면 되돌아올 심산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마지막 출구 통영나들목을 지날 때 연료 잔량은 절반에서 두 칸이 남았다. 하는 수 없이 더 달렸다. 거제도가 나왔고 명사십리에 해금강 이정표가 보이더니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 참을 더 달리자 칠흑같은 어둠과 마땅히 묵을 곳 하나 없이 이어지던 길이 뚝 끊겼다. 홍포전망대라는 안내판이 희미하게 보였고 더는 길이 없었다.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 출발지로 되돌아 오기에는 이미 늦었다. 차를 되돌려, 오던 길 기억에 남아있는 불빛을 찾아 거슬러 달렸다. 한 참을 달려 저구마을이라는 쪽으로 들어가 가장 처음 자리를 잡은 펜션에 숙소를 잡았다. 오후 5시 경기도 군포를 출발, 자정이 다 된 시간까지 달린 아이오닉의 트립 컴퓨터는 총 408km의 거리를 5시간 14분 동안 달렸다고 알렸다. 평균 연비는 23.2km/ℓ, 연료계 잔량은 절반에서 한 칸이 더 남았고 더 달릴 수 있는 거리는 531km로 표시됐다.
국내 최고라는 연비를 확인하고 싶었다.
아이오닉은 현대차가 만든 국내 1호 친환경 전용차다. 하이브리드카가 먼저 나왔고 플랫폼을 공유하는 전기차가 이달 나올 예정이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도 연내 나온다. 현대차는 아이오닉이 국내 최고 연비(22.4km/ℓ)의 차라고 소개했다. 시승차는 17인치 타이어를 장착, 복합연비가 20.2km/ℓ다.
그러나 이는 수치에 불과할 뿐, 일상적인 운전에서 이런 연비가 나올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남들 다 가는 부산 또는 땅끝마을을 제외하고 가장 길게 달리면서 연비를 알아보기 위해 마땅한 장소로 고른 것이 통영이다. 연료는 경기도 군포에 있는 주유소에서 가득 채웠다. 출발 시각은 지난달 29일 오후 5시, 이때만 해도 이날 되돌아올 심산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청주 인근까지 110km 정도를 달려서야 연료 게이지의 눈금 하나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당일 귀성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성공룡휴게소에 도착하자 누적 주행 거리는 334.9km로 표시됐다. 이때 평균 연비는 23.2km/ℓ, 통영나들목을 빠져나갈 때까지도 변화가 없다. 표시 연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특성을 고려하면 쉽게 볼 연비가 아니다.
다른 고속도로와 다르게 표고 차가 심하다. 가파른 오르막 경사가 많아 노선버스들도 기름값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꺼리는 코스다. 산을 쪼개지 않고 터널로 길을 이어 놓은 구간이 가장 많은 고속도로가 바로 여기다. 거제도를 들어가 차로 갈 수 있는 막다른 길, 홍포전망대까지 갔을 때 아이오닉의 연비는 23.2km/ℓ를 기록했다.
남아 있는 주행가능 거리(531km)로 보면 출발지로 되돌아 오고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고르고 골라 숙소로 잡은 펜션은 최악이었다. 이날 거제도의 날씨는 바람이 많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난방이 안됐고 옆 방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기타 반주 소리가 들리는 거로 봐서는 노래였다.
기타에 앰프를 달고 김광석이며 김민기의 노래를 밤새 악을 써가며 불러댔다. 그래도 긴 운전에 쌓인 피로가 잠을 불러왔다. 이튿날 느지막하게 눈을 떴다. 서울로 되돌아갈 길이 막막했지만, 숙소인 펜션 바로 아래 대포근포항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서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출발했다. 장사도 해상공원으로 가는 유람선도 이 때 선착장을 벗어나고 있었다.
오는길, 아이오닉은 진가를 보여줬다.
오전 8시, 홍포를 출발해 가라산과 왕조산 자락 사이로 난 거제남사로를 달렸다. 전날 어둠 속에서 거북이 속도로 느리게 달렸던 이 길이 눈에 들어오자 수도권에서는 만나기 힘든 최적의 와인딩 코스가 나타났다. 연비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밟아보자는 유혹이 들었고 거제면사무소가 있는 남동리까지 어이오닉을 거칠게 다뤄봤다.
차체는 견고했다. 타이어가 괴성을 질러대도록 강하게 밀어붙이는데도 하체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자세를 잡는 복원도 빠르고 민첩했다. 멀티링크(후륜) 서스펜션이 갖는 장점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잘 세팅된 디퍼련셜과 함께 회전 구간을 진입하고 빠져나오는 느낌과 안정성이 날렵하고 반듯했다.
내친김에 스포츠 모드로 달려봤다. 순수 내연기관보다 빠른 반응과 묵직한 조향력이 나타난다. D 컷 스티어링 휠, 리어스포일러의 다운포스가 운전을 재미있게 한다. 20km 남짓한 거리를 가능한 최고 속도로 달렸더니 연비가 뚝 떨어졌다. 홍포에서 출발할 때 23.2km/ℓ였던 수치가 18km/ℓ대로 표시됐다.
다시 얌전하게 운전을 시작했다. 거제도를 빠져나와 통영시에 들어서자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더딘 속도가 이어졌다. 차량 정체, 신호등이 이어져도 21km/ℓ대까지 끌어올려 진 연비에는 변화가 없다. 도심 구간이라고 해서 연비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하이브리드카의 특성이자 장점이다.
표시 연비로도 아이오닉의 도심 연비는 20.4km/ℓ로 고속도로 19.9km/ℓ보다 높다. 정지해 있을 때 시동이 꺼지고 출발을 하거나 저속에서 모터의 적극적인 개입이 이뤄지면서 연료 사용을 줄여주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덕분이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서울 쪽 방향으로 내리막 경사로가 더 많다. 연비도 따라 상승한다.
누적 주행거리가 530km로 쌓인 산청휴게소에서 아이오닉의 연비는 21.1km/ℓ로 높아졌고 경부선 신탄진 휴게소에서는 681km에 26.5km/ℓ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도권이 가까워지면서 차량 정체가 시작됐다. 연비는 다시 떨어졌지만, 출발지인 경기도 군포까지 총 813km 주행을 마치고 최종적으로 기록된 트립 컴퓨터의 평균 연비는 24.6km/ℓ였다.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의 외관, 하이브리드 전용 6단 DCT, 95.3%나 되는 전기모터의 효율성, 목적지를 설정하면 관성 주행 안내를 제공하는 내비게이션과 배터리 잔량에 따라 충전과 방전을 계산해 배터리의 효율적인 사용을 돕는 예측 관리 시스템이 이런 연비를 가능케 한다.
군포로 돌아와 처음 출발지였던 주요소에서 사용한 기름을 다시 가득 채워 봤다. 주유한 양은 34ℓ, 리터당 휘발유 가격 1335원으로 계산하면 813km의 거리를 단 4만5390원에 달린 셈이 된다. 연료비만 봤을 때 서울에서 거제도까지 가는 대중교통비보다 저렴하다. 네이버 길 찾기로 검색해 보면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거제에 있는 고현버스터미널까지 교통비는 편도 2만3000원이다.
평균 속도는 83km/h나 됐다. 총 주행 시간은 10시간 23분, 경제 운전은 58%, 보통운전은 40%, 따라서 트립에 표시된 주행 정보로 보면 연비만 생각하고 달린 것이 아니다. 그렇게 달리고도 더 달릴 수 있는 거리는 92km가 남아 있었다.
하이브리드카는 경제적이다.
아이오닉이 아니어도 지금 판매되고 있는 하이브리드카는 대부분 순수 가솔린보다 월등하게 경제적이고 디젤차와도 대등하다. 최근 서울~부산 812km를 왕복하는데 4만1970원을 주유했다는 동급의 디젤차 광고를 봐서도 그렇다. 연료비의 경제성만 갖고 하이브리드카를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디젤차보다 운전 피로도가 적다는 것도 꼭 짚어주고 싶다. 가격이 비싸다는 그리고 배터리 내구성에 대한 걱정도 기우다. 아이오닉의 경우 정부의 친환경 차 보급 정책으로 하이브리드카는 취·등록세 최대 140만 원, 개별소비세 최대 130만 원, 교육세와 공채매입비도 각각 30만 원, 40만 원 감면된다. 환경부 보조금도 100만 원이 지급된다. 다른 하이브리드 모델도 같다.
이렇게 계산을 하면 아이오닉의 주력 트림인 I 플러스는 2383만 원에 살 수 있다. 세제 감면 혜택을 고려하면 동급의 디젤과 같은 수준이다. 타고 다닐 때 도로 통행료와 주차장 이용료 할인 등의 혜택은 별개다. 아이오닉과 같은 하이브리드카에 관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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