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많이 팔린 전기차, 2016년 한국에서의 경쟁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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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양산 전기차. 닛산 리프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기록이다. 2010년 시판 이래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20만 대 이상 판매되었고, 국내에는 2014년 제주도에 먼저 상륙한 뒤 조금씩 판매지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곳곳에 충전소가 들어서고 국산 전기차까지 경쟁 모델로 등장하는 현재 상황에서 원조 전기차는 여전한 경쟁력을 갖고 있을까?
수없이 많은 차를 갈아타는 자동차 저널리스트의 일상에서도 가끔씩 소유욕을 자극하는 차가 나타날 때가 있으니, 리프가 그러했다. 2011년 2월 제네바모터쇼 취재 때 이제 막 유럽 판매를 시작한 리프를 몰고 제네바 시내를 달렸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다른 회사들이 아직 실험적인 성격의 전기차로 데모나 하고 있던 시절, 양산을 선언한 전기차의 완성도가 주는 충격은 굉장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 뒤인 2013년 여름, 드디어 한국닛산이 인증과 시험을 위해 반입한 리프를 만날 수 있었다. 변변한 충전 인프라조차 없던 시절, 쪄죽지 않을 정도로만 에어컨을 켠 채 겨우 서울 시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만들어내기도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리프에 대한 각별한 애착이 담긴 리프의 상세 분석기사는 자동차생활 2013년 9월호에 고스란히 실렸다.
2014년 드디어 리프의 한국 판매가 결정되었지만 제주도에만 한정판매하는 조건이었다. 한국닛산은 ‘충전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졌다고 판단되는 곳’에만 리프를 시판한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이 기자는 2015년, 개인적인 기다림을 접고 다른 전기차를 샀다. 그렇게 전기차의 즐거움과 괴로움을 듬뿍 경험한 뒤, 오늘 다시 리프를 마주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무척이나 경이로운 존재였었는데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이제 이 차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음이 느껴진다.
시판 당시 리프는 패밀리카로 활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양산 전기차였다. 그때는 시장을 독식할 수 있었지만 이제 시장은 쟁쟁한 경쟁자들로 가득하다. 기술발전 속도가 빠른 전기차 시장에서 발매된 지 6년이 지난 리프의 저력이 아직도 먹힐 수 있을까?
소소한 마이너 체인지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차는 2012년 11월에 발표된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다. 뒷좌석 뒤에 놓여 있던 충전기를 소형화해 앞으로 보내면서 트렁크공간이 늘어났으며, 전기차의 주요 부품을 소형 및 경량화하면서 무게도 이전보다 60kg 정도 가벼워졌다. 모터의 최대토크는 24.9kg·m로 이전의 28.6kg·m에 비해 조금 줄었으나 효율은 더 좋아졌다. 바닥에 탑재되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용량(24kWh)은 그대로이지만 이런 저런 개선 덕분에 주행가능 거리도 조금 늘어났다.
가끔씩 만나는 차임에도 무척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차가 전통척인 차 만들기 방식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전기차임에도 준중형 해치백의 포맷을 그대로 지킨 공간 배치, 엔진차와 다를 바 없는 조작방식이 그러하다. 따라서 처음 운전하는 사람조차도 위화감 없이 바로 ‘전기차’를 몰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전기차를 처음 타게 되면 전혀 다른 반응 때문에 당황하게 한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어도 차는 클리핑 없이 가만히 서 있고, 가속 페달에서 발을 빼면 마치 브레이크를 밟듯 감속을 한다. 회생에너지 발전을 하는 것은 리프도 마찬가지이지만, 액셀과 브레이크의 반응은 훨씬 엔진차 쪽에 가깝다. ‘소리’가 없다는 부분을 제외하면 말이다.
달리기는 여전히 매력적
2만1,000km를 달린 시승차는 완충 상태에서 130km의 주행가능 거리를 표시한다. 표시되는 주행거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온도와 이전의 달리기를 통해 판단한 주행거리이므로 전기차에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부분은 12개 레벨과 %로 표시되는 배터리 잔량 쪽이다. 달리기 시작하자 역시 전기차 특유의 조용하고 힘찬 가속이 돋보인다. 최대토크가 약간 줄었지만 수치상 가속은 0.2초 정도 빨라졌다. 시작부터 최대토크가 왈칵 터져나오는 전기모터의 특성상 체감가속은 이보다 훨씬 좋게 느껴진다. 다만 이 성능은 최근 전기차들 중에서 평균적인 수준으로, 현재 시중에는 이보다 빠른 가속을 자랑하는 전기차들이 있다. 리프는 카본파이버 같은 신소재를 쓰지 않은 전통적인 강판 프레스 모노코크 방식을 사용한다. 300kg에 이르는 배터리로 인해 무게가 1.5톤이 넘어 무겁고 둔한 차로 속단할 수 있지만, 리프의 핸들링은 꽤 준수하다. 정확히 휠베이스의 중간을 기준으로 바닥에 깐 배터리 덕분에 무게중심이 낮고 차의 앞머리가 가볍게 움직인다. 진득한 트랙션으로 ‘소리 없이’ 코너를 도는 차가 주는 감흥이 여전히 색다르게 다가온다. 스티어링이 너무 가벼운 것만 제외하면 앞바퀴굴림 차 중에서도 나무랄 데 없는 코너링 실력이다.
기본기가 좋지만 몰아붙이기보다는 에너지절약 모드를 잘 활용하는 게 전기차를 운전하는 요령이다. 주행 모드가 이전보다 세분화되어서 회생효과가 더 커지는 B모드가 생겼고, 최고효율 모드인 에코 모드는 이제 스티어링 휠의 버튼을 누르면 활성화된다. 에코 모드만으로도 주행거리가 160km 정도로 늘어나는 대신 답답할 정도로 굼뜬 움직임은 감수해야 한다.
시승한 날은 아직 혹한이 물러가지 않은 2월 초순. 히터를 작동시키면 주행거리가 짧아진다는 사실에도 아랑곳 않고 별 걱정 없이 틀고 다녔다. 수도권 주변에 꽤 많은 충전소가 생겼기 때문인데, 그 중에는 환경부가 운영하는 급속 충전소도 꽤 많이 있다. 리프는 현대와 기아의 전기차와 같은 차데모(CHAdeMO) 방식이어서 국내의 모든 급속 충전소를 사용할 수 있다. 67km를 주행한 뒤 남은 배터리 잔량은 20%. 20분 가량 충전하니 배터리가 80%까지 차올랐다. 충전 커넥터를 제자리에 꽂아놓은 뒤 마음 편하게 다시 길을 나섰다. 사용할 수 있는 충전기가 곳곳에 있는 한 리프의 주행거리를 두고 불평할 일은 없을 듯하다.
최신의 전기차와 비교한다면 계기판이나 터치 인터페이스에서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지만, 간만에 다시 만난 리프는 여전히 전기차로서의 매력과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문제라면 한국에서는 리프의 제 기능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것. 차량과 네트워크를 연동하는 커넥티드카 기능은 처음부터 리프의 핵심으로 강조된 것이지만 한국에서는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는다. 계기판과 터치스크린 모니터는 모든 정보를 영어로 쏟아내며, 가까운 충전소를 안내해야 할 내비게이션 기능은 미국의 이름 모를 동네를 비추며 에러만 띄워댄다. 차량과 통신하며 충전상태를 확인하고 냉온방을 원격 조작하는 앱인 닛산 커넥티드 EV(Nissan Connected EV)는 한국 앱스토어에서는 아예 검색조차 안 된다. 앱과 통신해야 할 차량 장치에 국내 전파 인증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충전 인프라 확충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충전기 설치에 경쟁회사들이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붇고 있는 동안 닛산은 제주도에 완속 충전기 2대를 기증한 뒤 뒷짐만 지고 있다.
분명 리프는 한국에서 많은 판매량을 기대할 수 있는 차는 아니다. 그렇다고 로컬라이징을 위한 돈과 노력을 외면한 채 덜 채워진 상품을 슬쩍 내미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이럴 거라면 그냥 처음부터 안 들여오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전기차 리프, 과연 한국에서 탈 만한가?리프는 준중형 해치백으로서의 실용성과 전기차로서의 매력이 잘 담겨 있는 차다. 이 차를 실제로 손에 넣으려면 어떤 고민을 거쳐야 할까? 리프만이 아닌 모든 전기차의 고민을 들여다보았다.
불안감한국의 도시 거주자가 하루 운전하는 평균거리는 70km 안팎. 리프가 달릴 수 있는 평균 주행가능 거리 132km면 도시에서의 하루 일과 정도는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한번 주유로 400km 가량을 달리는 내연기관 자동차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십km로 떨어진 잔여 주행가능 거리를 표시하는 차가 마음 편할 리 만무하다. 처음엔 가슴 졸이며 차를 몰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동선 주변의 충전소를 머릿속으로 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다.
전기차 충전은 급속과 완속 충전방식 두 가지로 나뉜다. 급속충전소는 환경부가, 완속충전소는 민간업체 주도로 보급이 진행 중이다. 4시간 정도 걸리는 완속과 달리 급속은 30여 분이면 배터리의 85%를 채운다. 잦은 급속 충전이 배터리에 무리를 줄지언정 급속충전기가 많아질수록 전기차의 운행범위도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한편 지금까지는 무료로 운영되던 공공충전소가 올해부터 유료화된다. 환경부는 현재 337개의 급속충전시설을 전국적으로 운영 중이며 2017년까지 총 637기의 급속충전시설을 설치해 전국 어디든 전기차로 갈 수 있는 충전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고속도로 충전시설 간 최장거리는 경부고속도로의 경우 87km, 서해안고속도로의 경우 78km이다. 당장이라도 서울에서 리프를 타고 부산에 갈 수 있다. 다른 차보다 좀 더 오래 걸려서 그렇지.
엔진이 없으니 에어컨과 히터는 고스란히 배터리에 부담이 된다. 조금만 켜도 주행가능 거리가 짧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이다. 그래도 둘 중에 고르라면 더운 게 낫다. 배터리는 30도 가량의 더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며, 고효율 에어컨이 개발되면서 배터리의 부담도 조금은 줄어들었다. 전기차의 진짜 적은 추위다. 영하 10도쯤 되면 배터리의 효율이 70% 수준으로 떨어지며 최소의 효율유지를 위해 배터리 히터를 따로 작동시키기 때문에 효율은 더 떨어진다. 승객을 위한 히터는 언감생심, 조금만 켜도 미친 듯이 떨어지는 배터리 레벨을 보면 겁이 나서 켤 수가 없다. 겨울철 전기차 사용자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필수장비가 ‘담요’라면 말 다한 것 아닐까?
제 돈을 다 주고 사기엔 전기차는 엄청나게 비싸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전기차 시장은 철저하게 지원금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원금은 환경부와 지자체 두 곳에서 나오므로 자신이 사는 지역의 사업을 기다려야 하며, 리프의 경우 지원금 사업이 전개 중인 일부 지역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초기에는 제주도와 서울시만 의욕을 보였지만 지금은 창원, 광주, 성남 등 전국 각 지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2016년에는 환경부 지원금 1,200만원에 지자체 지원금 수백만원 수준이 지원되며, 가정용 완속 충전기 비용 400만원도 별도로 지원된다. 전기차에 관심이 있다면 일단 자신이 사는 도시의 환경정책과에 문의해 보자.
가정용 플러그에 꽂아 쓰는 모바일 충전기는 완충에 10시간 정도 걸리며 일반 가정용 전기를 계속 썼다간 누진세 폭탄을 맞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지원사업과 함께 따라오는 완속충전기가 꼭 필요하다. 7KWh로 충전하므로 4시간 정도면 완충되며 충전기 지원비 400만원을 넘지 않는 경우 설치비도 지원된다. 단, 아파트 거주자라면 충전기 설치를 위한 주민동의서를 받는 일이 쉽지 않으며 주차공간이 모자란 곳이라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기차 지원사업에 당첨된 사람들이 결국 포기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을 뛰어넘게 만드는 것이 ‘충전비용’이다. 완속충전기는 한전 전기차 전용 요금제를 사용하며 한 달 2,000km 주행시 4만원 미만의 전기세로 운행할 수 있다. 오타가 절대 아니다. 4만원!(봄~여름, 경부하 기준).
결론4인 이하의 가족과 생활하며 하루 주행거리가 100km 안팎이고, 가정에 완속 충전기를 설치하는 데 문제가 없으며, 집 근처에 환경부 급속충전기가 있다면, 그리고 무엇보다도 거주 지역에서 전기차 지원금 사업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면 리프는 꽤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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