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생활 롱텀, 기아 쏘렌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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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UV의 인기가 대단하다. SUV를 다양하게 구비한 브랜드는 판매 성적이 좋고 그렇지 못한 브랜드는 판매 성적이 부진하다고 한다. 이런 SUV 유행은 남의 일인 줄만 알았는데, 작고 날렵한 차를 좋아하는 내가 그 시류에 동참하게 되었다.
지난 9월 1일, 기아 쏘렌토를 계약했다. 6년 전 새 차로 구입한 BMW 320d에 만족하고 지냈지만, 최근 들어서 짐 실을 일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학생 때처럼 작은 승용차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 계약 전, 필자가 새 차를 고르는 조건은 간단했다. 넉넉한 트렁크와 3,000만~4,000만원의 예산이 전부였다. 후보는 포드 익스플로러, 기아 쏘렌토, 현대 맥스크루즈, 혼다 CR-V, BMW 320d 투어링 정도로 좁혀졌다. 기아 모하비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유로6’ 시행을 앞두고 단종되어 후보에서 애당초 제외했다.
익스플로러는 계약 직전까지 갔었으나 부분변경을 거치며 값이 많이 올라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CR-V는 혼다 브랜드가 주는 신뢰성은 뛰어났지만 감가가 크고 차체가 조금 작았다. 또한 서울에 서비스센터가 몇 곳 없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320d 투어링은 트렁크 공간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필자가 타던 320d(E90)보다 고급스러운 맛도 떨어져 차를 바꾸는 의미가 없었다.
맥스크루즈는 인테리어가 허술했다.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의 질감이 떨어졌고 센터터널이 낮아 한 급 낮은 모델에 올라앉은 기분이 들었다. 데뷔 3년차라는 사실도 외면의 이유였다. 반면, 쏘렌토는 따끈따끈한 신차였다. 또한 구형과 비교해 공간이 꽤 넉넉해졌고 안팎 품질도 만족스러웠다. 특히 센터터널과 암레스트가 적당히 높아 프리미엄 브랜드 모델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값이 BMW X3, 메르세데스 벤츠 GLK 등 프리미엄 수입 SUV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도 큰 매력이었다. 역시 국내에서 ‘가성비’를 따지면 국산차만 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리던 차에 때마침 개별소비세도 인하되어 결정을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었다.
갖고 있던 320d는 20만km라는 적지 않은 누적 주행거리 때문에 시세보다 낮은 값에 내놓았더니 예상보다 빨리 새 주인을 찾아갔다. 팔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쏘렌토가 출고되기 전 일찌감치 내 곁을 떠나버린 것이다. 사실 차를 떠나보낼 때 속이 적잖이 쓰렸다. 석 달 전 변속기 오일, 댐퍼, 부싱, 로어 암 등 눈에 안 띄는 소모품을 모조리 교환했기 때문이다. 열 물길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내 속이지만 변덕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변덕 때문에 고생을 톡톡히 해야 했다. 집과 직장간의 거리가 멀어 차가 꼭 필요한데, 쏘렌토의 출고 예정일자가 세 번이나 미뤄지며 두 달이나 차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헐값을 받더라도 급하게 팔지 않았을 텐데……. 필자에겐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메르세데스 벤츠 E300과 현대 포터2가 있으나 이 차들은 모두 몸에 맞지 않는 옷이나 다름없다. E300은 V6 가솔린 엔진이라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들고(늘어나는 마일리지도 부담), 포터2로 고속도로 통근을 한다는 건 위험한 데다 직장 주차장의 높이가 낮아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필자는 불편에 시달리다 아반떼 렌터카를 2주간 빌려 타기도 했다.
차 없는 생활이 기약 없이 이어지며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쯤 필자는 다시 한번 값이 비슷한 일본 브랜드의 SUV나 프리미어 브랜드의 중고 SUV로 눈을 돌려봤다. 하지만 역시 유지비와 감가 등을 포함한 가격 대비 가치가 쏘렌토만큼 뛰어난 차는 없었다.
화성 출고사무소에서 직접 받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10월 21일 드디어 차가 나왔다. 필자가 구매한 차는 2016년형 2.2 FWD 모델이다. AWD는 출력손실과 무게증가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선택하지 않았다. SUV이지만 조금이나마 가볍고 잘 달리는 차가 취향에 맞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럽과 북미 모델에는 데뷔 초부터 달리던 LED 4구 안개등이 국내에서는 2016년형부터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기아차는 이를 아이스큐브라고 부른다. 외모가 꽤 달라 보여서인지, 장식에 불과한 옵션인데도 대부분의 소비자가 39만원을 지불하고 이를 선택한다고 한다.
이전에 구입했던 320d는 수입차였기 때문에 번호판, 보험, 등록, 심지어 선팅까지 완료된 상태로 대리점에서 인도받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출고와 등록 절차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영업사원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장에 가서 차를 직접 받아왔다. 나이가 더 들면 이런 구매와 등록 과정이 더 귀찮게 느껴질 거란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론 덕분에 탁송비와 각종 수수료도 굳었다.
기아 쏘렌토는 화성공장에서 생산된다. 출고사무소도 물론 화성공장에 있다. 출고사무소에서 인도받기 위해 미리 영업사원을 통해 시간을 예약했다. 기아차는 수원역 근처에서 출고사무소까지 10시, 11시, 13시, 15시 등 하루 네 번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셔틀버스는 정각에 출발했다. 단 1분도 기다리지 않았다. 버스를 놓치면 하염없이 다음차를 기다려야 한다. 수원역에서 화성공장까지는 한 시간이 걸렸다. 출고사무소는 16시 30분에 근무시간이 끝나니 셔틀버스를 타고 이곳을 찾는 이들은 서둘러야 할 듯. 교통편이 많지 않고 접근성도 떨어지다보니 출고사무소 안에는 필자처럼 직접 차를 받으러 온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글로비스 탁송기사들이었다.
출고사무소 대기실에는 정수기 물만 공짜였다. 커피와 음료는 자판기에 돈을 넣고 사먹어야 했다. 이 먼 곳까지 직접 찾아온 고객들인데……. 이 대목에서 갑자기 약 10년 전 온 가족이 에쿠스를 계약하러 현대차 전시장에 갔다가 아버지가 커피 한 잔 안 타준 것에 빈정이 상해 다음날 기아 뉴 오피러스 3.8 풀옵션(당시 두 차의 값은 비슷했다)을 산 기억이 떠올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현대·기아차의 모습에 화가 났다.
값이 비싼 프리미엄 브랜드이긴 하지만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는 전시장은 물론 서비스센터에서조차도 각종 음료와 간식이 공짜다. 심지어 리셉션 직원들이 직접 생과일주스도 갈아준다. 필자가 산 차는 쏘렌토(라고 쓰고 싼 차라고 읽는다)라 그러려니 하겠지만, K9(이라고 쓰고 비싼 차라고 읽는다) 고객이라면 이런 수입차의 서비스와 기아차의 서비스를 맞비교할 것이다.
출고장 한 편에 마련된 검사 장소에서 직접 검수한 후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출고를 마쳤다. 필자의 운전 스타일은 비교적 거친 편이지만, 제조사가 권장하는 신차 길들이기는 꼭 지키는 편이다. 기아차 매뉴얼에는 누적 주행거리 3,000km까지 급가속과 급제동을 자제하고 엔진회전수를 3,000rpm 이하로 유지하라고 권장한다.
출고 전 이런 내용을 숙지하고 차에 올랐다. 아까부터 같이 온 가족들은 배가 고프다며 성화다. 화성공장은 바닷가 쪽에 있다. 출고사무소에서 알려준 근처 횟집을 향해 해안선을 따라 난 좁은 길을 새색시 다루듯 조심스레 달렸다. 다음호부터 본격적으로 연재될 쏘렌토 롱텀 시승기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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