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제네시스 오너가 본 현대차 아슬란…같지만 다르다

‘아슬란이 그랜저 판매량을 깎아 먹을 것?’ 현대차를 약올릴 심산인지 모 매체가 이렇게 적었다. 그랜저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도 했다. 소비자들도 동조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아슬란이 그랜저 판매를 대체한다면 사실 현대차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다. 한단계 낮은 차 대신 가격이 비싼 차가 팔릴수록 수익성은 향상된다. 차라리 모든 그랜저가 아슬란으로 대체되는게 가장 행복한 시나리오다.

아슬란의 위치를 보면 신차 출시 이유는 더 명확하다. 만약 그랜저의 상위 트림 값을 이만큼 올린다면 소비자들이 납득 할리가 없지만 이 차는 새로운 차인만큼 비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시각을 조금 달리보면 이 차는 그랜저와 닮은 신차인게 아니라, 모든게 새롭게 변모한 그랜저의 최고급 트림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참 많이 달라지고 정말 많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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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분 좋은 자동차

평소 제네시스를 타면서는 항상 내비게이션에 감탄했다. 오픈소스 안드로이드를 사용한 정전식 디스플레이는 마치 아이패드 미니를 사용하는 것처럼 터치감이 우수하고 반응이 즉각적이다. 순정 장착품에 비해 비교적 품질이 우수한 거치형 내비게이션도 이만큼 좋은건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헤드업 디스플레이와 결합해 활용도와 가치를 훨씬 더 높인다. 수입차들도 상당수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긴 하지만 내비게이션 자체에 불만이 많으니 큰 의미가 없는 경우가 많다. BMW나 신형 메르세데스도 타지만, 그때마다 항상 제네시스의 내비게이션과 헤드업디스플레이를 뚝 떼다 붙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이 내비게이션과 헤드업디스플레이가 아슬란에도 들어왔다는 점은 무엇보다 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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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슬란의 실내

시동을 걸면 또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버튼은 눌렀지만 시동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하고 진동도 없어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페달을 살짝 밟으면 침묵 속에서 밀고 나간다. 그렇다고 사운드가 지나치게 부족한건 아니다. 페달을 깊이 밟으면 “우르릉”하는 스포티한, 분명히 정성들여 가다듬은 듯한 사운드가 난다. 고음으로 앵앵대던 기존 현대차 엔진 사운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엔진은 제네시스 3.3과 같은데 나가는 느낌은 훨씬 좋다. VDC(차체자세제어장치)를 끄고 가속페달을 밟으면 휠스핀을 요란하게 일으키며 최대 출력으로 가속한다. 짜릿하다고 까지는 못해도 호쾌한 수준이다. 제네시스보다 월등히 잘나간다.

렉시콘 오디오도 고급스럽고 좋은 소리를 내준다. 다만 개인적으로 유명 브랜드보다는 서브우퍼 하나를 얹어주는게 훨씬 전체 밸런스가 좋을걸로 본다. 이래저래 브랜드 명성에는 못미치는데 이 부분은 제네시스와 같다. 

어쨌건 이 차는 기분 좋은 쪽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 말은 짜릿하지는 않다는 뜻도 된다. 

◆ 스포티하지는 않은차

서스펜션 구성은 비슷한데 놀랍게도 주행감각은 그랜저와 전혀 다르다. 그랜저보다 탄탄해 가속할 수록 든든한 기분이다. 하지만 제네시스와 비교할 바는 못된다. 제네시스는 유럽차 느낌의 단단한 서스펜션을 통해 노면의 잔진동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쪽으로 구성됐다. 착 가라앉는 느낌이 현대차 중 최고고 세계 수준에서도 좋은 편이지만, 아슬란은 어디까지나 부드러운 느낌이 강한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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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에 앉았을때의 느낌도 출렁임이 큰 편이어서 제네시스와는 거리가 있다. 실내 공간 폭은 제네시스보다 조금 좁은데, 무릎 공간은 오히려 좀 더 넓게 느껴진다. 뒷좌석 가운데 센터 터널도 없어 전륜구동의 장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막연히 전륜구동이라고 후륜구동차보다 못하다고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어지간한 제네시스에도 없던 이중접합유리가 도입된 점은 무척 반갑다. 덕분에 풍절음을 느끼기 어렵고 굉장히 조용하다. 나파 가죽시트도 질감이나 퀼팅 디자인을 보면 제네시스보다 낫다는 느낌이 든다. 제네시스는 독일차처럼 숄더라인이 높아 욕조속에 폭 파고든 느낌이 드는 반면 아슬란은 유리도 더 크고 개방감이 월등히 우수하다. 

아슬란은 모든 면에서 그랜저보다 월등하다. 디자인부터 그랜저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지만, 그랜저가 차급에 맞지 않게 너무 젊은 감각이고 화려한 반면 이 차는 고급차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실내외가 깔끔하고 간결하다. 하지만 양쪽 차 모두 나름의 취향이 있겠다. 중년이 적응하기 어려운 W호텔과 젊은이들이 부담스러워하는 쉐라톤 호텔의 차이 정도로 보면 된다. 

현대차는 그랜저와 제네시스의 사이급이라고 표현 하지만 이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옳은 말이긴 한데 한쪽에 너무 쏠렸다는 말이다. 아슬란은 그랜저와 대부분을 공유하지만 제네시스와 공유하는건 핸들과 주변 부품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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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화된 자동차 

90년대는 뉴 그랜저 3.0이나 3.5가 거의 팔리지 않았다. 당시는 주로 2.4 모델에 3.0 골드라고 앰블럼을 바꿔붙이는게 유행했다. 그러자 현대차는 앞뒤 디자인을 조금씩 바꾸고 배기량을 높인 다이너스티 3.5를 내놓고 뉴 그랜저 3.5를 단종시켰다. 왜 그랬을까 싶지만, 다이너스티가 나오면서 팔리지 않던 3.0과 3.5모델이 상당한 인기를 끌며 팔려나갔다. 디자인 일부와 앰블럼, 이름만 바꿔 붙였을 뿐인데 이렇게나 판매량이 달라진다는건 놀라운 일이었다. 남과 다른차를 탄다는 자부심, 차별화의 힘을 보여준 사례인 동시에 현대차 마케팅 능력을 보여준 결과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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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란의 등장은 마치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얼마전까지 그랜저 3.3이 있었지만 개점 휴업. 거의 팔리지 않았다. 시기적절하게 등장한 상위 모델. 다시 말해 맥이 끊긴 다이너스티 라인을 되살리는 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전 다이너스티가 겉모습만 키우고 과장된 차였다면 이 차는 착실한 고급감과 세련됨으로 무장한 차다. 차별화 된 재력을 갖추고도 '튀는것'은 피해야 하는 일부 소비자들에게 가장 적합한 차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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