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재규어, XE 20t Prestige & 20d R-Sport


럭셔리 컴펙트 스포츠 세단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BMW 3시리즈다. 대형 럭셔리 세단의 기준이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 럭셔리 SUV의 기준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라면 이 세그먼트의 기준은 3시리즈가 만들어 왔다.

모든 자동차 시장의 경쟁이 치열하다지만 특히 이 시장은 더 치열하다. 3시리즈를 중심으로 C-클래스, A4, IS, ATS, Q50 등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죽음의 조’다. 그런 시장에 재규어가 출사표를 던졌다. ‘XE’로 말이다. 첨단 기술로 무장했다고 주장하는 XE가 쟁쟁한 경쟁모델 사이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끌어낼 수 있을까? 강릉에서 개최된 미디어 시승회를 통해 그 가능성을 느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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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첫눈에도 재규어 가족임을 알 수 있게 한다. ‘J’ 형상의 LED 주간주행등과 날카로운 디자인의 헤드램프, 돌출된 사각형의 그릴 등에서 기함급 모델인 XJ를 떠올리게 한다. 디자인의 호불호를 떠나 짧은 시간에 브랜드 정체성을 갖도록 디자인한 이안 칼럼 디자이너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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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는 단정한 라인을 갖는다. 최근에는 화려한 캐릭터라인이 유행이지만 XE는 간결하게 한 줄만 처리했다. 반면 루프라인은 쿠페를 연상시킨다. 이 정도면 도어만 4개일 뿐 거의 쿠페나 다름없어 보인다. 하지만 뒷좌석 헤드룸이 충분할지 걱정된다. 전륜 펜더 상단에는 재규어 특유의 가니시 장식도 더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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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부에는 F-타입을 연상시키는 리어램프를 갖췄다. 이 모습은 2세대로 모델체인지 될 XF에도 적용될 예정으로 재규어의 공통적인 디자인으로 자리잡게 된다. 스포일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트렁크 리드를 다듬는 등 최신 유행을 따랐다. 범퍼는 기교를 최소화 시키고 화려함보다는 깔끔함을 선택했다.

XE의 공기저항지수는 0.26Cd에 이른다. 이는 역대 재규어 모델 중 가장 낮은 저항지수다. 하지만 이미 3시리즈가 0.26Cd, C-클래스도 0.24Cd 정도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동급 최고 수준은 아니다.

참고로 XE의 차체는 길이, 너비, 높이 기준 각각 4,670x1,850x1,415mm의 수치를 갖고 있다. 휠베이스는 2,835mm로 완성됐다. 차체는 BMW 3시리즈보다 46mm 길고 39mm 넓은 크기다. 휠베이스도 25mm 가량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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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간결하다. F-타입의 연장선에 위치한 디자인을 가지며, 이러한 디자인 특징 역시 향후 출시될 신형 모델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F-타입을 연상시키는 스티어링휠 디자인도 상당히 멋스럽다. 두툼한 그립감도 수준급. 역시 F-타입을 연상시키는 계기판의 디자인도 좋다. 속도계와 타코미터, 중앙에 컬러 디스플레이를 갖춘 간결한 구성이다. 하지만 센터 디스플레이의 한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서두에 언급했듯 이 급의 시장은 치열하다. 이러한 작은 부분도 감점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센터페시아에는 8인치의 터치스크린을 갖춘 인 컨트롤(InControl)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된다. 내비게이션은 지니맵을 사용하지만 재규어의 시스템에 맞춰 개발됐다. 렉서스처럼 본사 개발맵은 아니지만 완성도를 높인 케이스로 볼 수 있다.

모니터 하단에는 공조장치와 오디오 컨트롤 버튼들이 나열된다. 버튼 조작감이 부위별로 다르다는 점도 독특하다. 스티어링휠의 버튼들은 부드럽고 깊게 눌리며, 센터페시아 부분 버튼은 아우디와 같이 쫀득한 느낌이다. 하지만 다이얼 조작감은 거칠고 투박하다.

센터콘솔은 재규어 랜드로버의 로터리 시프트 셀렉터(Rotary shift selector)를 갖췄다. 이제는 익숙한 디자인이지만 넓은 면적에 로터리 셀렉터만 덩그러니 있어 심심해 보인다. 반면 하단의 드라이브 모드 셀렉트 버튼을 비롯해 주행안전장치 관련 버튼들의 크기가 작게 느껴진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부분을 아이콘으로 모드를 표시했지만 막상 조작 때는 좌우 버튼을 눌러야 한다. 아이콘을 직접 눌러 주행모드를 설정하는 것이 보다 직관적일 듯 하다.

시트는 2가지로 나뉜다. 일반형은 약간 헐겁지만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졌고, R-Sport 모델은 한층 타이트한 느낌이다. 두 시트 모두 가죽의 질감과 쿠션, 럼버 서포트 등 구성면에서 부족함 없다.

운전석에 앉아 전방을 바라보니 의외로 대시보드가 낮다. 최근 신차들의 대시보드의 높이가 높아진다는 것과 반대다. 그만큼 시야도 넓다. 반면 A-필러가 꽤나 두꺼워 시야가 부족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대시보드를 시작으로 욕조 형상으로 도어패널까지 감싸도록 디자인한 점도 최근 추세를 반영한 결과다. 단점은 실내가 좁아 보인다는 것. 실제 실내도 넓지 않다. 시트백을 세워 운전하는 기자의 취향에 맞추면 헤드룸이 부족하다. 기자보다 작은 사람이 앉아도 답답할 것이다. 폭도 좁다. 센터 터널이 필요 이상으로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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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도 좁다. 레그룸과 헤드룸도 부족하다. 헤드룸은 쿠페 스타일의 루프라인 때문임을 감안할 수 있다. 하지만 레그룸은 다르다. 3시리즈보다 긴 휠베이스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ATS만큼 좁다. C-클래스의 뒷좌석은 물론 향후 출시될 신형 A4와 3시리즈를 생각해도 새로 출시된 XE 공간 경쟁력은 부족하다.

이유를 살펴보자. XE는 전 후 무게 배분률 50:50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엔진 높이를 낮춰 낮은 무게중심을 갖도록 했다. 엔진이 낮고 중심 쪽으로 깊게 들어오니 8단 변속기 역시 더욱 안쪽으로 밀려들어오게 된다. 향후 추가될 4륜 시스템도 대비해야 한다. 결국 센터 터널이 넓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후륜 서스펜션도 인테그럴 링크라는 새로운 구조를 적용했다. 발군의 성능을 발휘하지만 그만큼 부피가 커 트렁크 공간과 실내 공간 활용에 불리하다. 여기에 쿠페 라인을 통한 낮은 헤드룸까지 갖췄다. 때문에 공간에서는 아쉬움이 크다.

다양한 편의장비는 XE의 강점이다. 오디오 시스템도 동일 최초로 메리디안(Meridian) 사운드 시스템을 사용했다.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 All Surface Progress Control)이라는 시스템도 탑재된다. 쉽게 말해 미끄러운 노면 탈출용 주행보조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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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러운 XE와 함께 주행을 시작할 시간이다. 재규어 측에서 준비한 코스는 대관령을 넘어가는 와인딩코스와 고속도로, 국도 등이었다. 기자 시승회에서 와인딩 코스라니… 이 부분만으로도 재규어의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정말 아쉬운 점은 당시 태풍이 왔다는 것이다.

먼저 탑승한 차량은 2.0리터 배기량의 가솔린 터보다. XF와 XJ에 탑재됐던 엔진으로, 포드의 에코부스트 엔진을 기초로 한다. 참고로 200마력과 28.6kg.m의 토크를 발휘하도록 소폭 디튠된 사양이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관계로 소음 정도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진동부분의 만족도는 충분했다. 주행을 시작한다. 기존 재규어와 다른 스티어링 감각이 느껴진다. XF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전달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면 XE는 독일차, 특히 BMW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3시리즈 벤치마크에 상당한 공을 들였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확인해보니 BMW와 동일한 ZF 스티어링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셋업 능력도 뛰어났다.

와인딩 코스로 향했다. 오늘따라 태풍이 야속하다. 하지만 앞서 출발한 인스트럭터가 속도를 내며 어느 정도 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XE 퍼포먼스에 대해 자신감이 남달라 보인다.

적당한 속도로 코너를 돌아나간다. 노면이 미끄럽기 때문에 주행안전장치가 일찍부터 개입한다. 최근 신차들처럼 코너를 부드럽고 안전하게 돌아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스티어링휠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상당히 세련됐다. 부드럽지만 살짝 묵직한 느낌이다. 무엇보다 전륜에서 보여주는 즉각적인 감각이 반응이 인상적이다. 소비자들 역시 ‘고급스럽다’라고 느낄 감각이다.

서스펜션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우선 프리미엄 세단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승차감도 기본이다. 차체 강성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작은 요철의 충격도 부드럽게 걸러준다. 고급 세단을 타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코너를 돌아나갈 때의 하체 반응도 놀랍다. 우선 차체를 지지하는 능력이 좋다. 차량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상황에서도 매우 안정적으로 자세를 유지시켜줬다.

무엇보다 노면이 깔끔하지 못한 코너를 돌아나갈 때에도 안정적으로 잡아준다. 서스펜션의 움직임은 정말 좋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차체가 위아래, 그리고 좌우로 흔들리며 운전자를 불안하게 한다. 하지만 XE에서 이런 느낌을 받지 않았다. 이것이 재규어가 강조한 ‘인테그럴 링크’ 서스펜션의 이점일까?

주행 환경이 빗길에서 진행됐다는 점이 아쉽다. 전체적인 주행 속도도 낮았다. 정상 컨디션에서 XE의 잠재된 주행성능이 어느 정도일지 우리팀의 정식 테스트가 궁금해진다.

변속기는 ZF의 8단 자동변속기다. ‘ZF’의 명성 때문에 기대치가 높았을까? 변속 반응은 좋지만 속도 자체가 빠르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스포츠 8단 변속기가 ‘매우 빠름’에 속한다면 XE의 8단 변속기는 ‘빠름’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BMW의 스포츠 변속기가 빠를 뿐 대부분의 자동 변속기보다는 빠르다.

고속도로에 오르자 인스트럭터가 속도를 올리라 권유한다. 엔진의 회전질감은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하지만 5천rpm을 이후 조금 거친 면이 있는 듯 하다. 렉서스의 2.0리터 터보엔진과 비교하면 세련미에서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고속 안정감도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다.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음에도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스티어링 감각부터 서스펜션의 움직임, 여기에 고속 안정감까지… XE는 분명하게 독일차와 같은 느낌을 전해주고 있다. 오히려 최근 BMW를 능가한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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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난 후 차량을 바꿔 탔다. 이번에는 20d R-Sport 사양이다. 재규어 랜드로버가 새롭게 개발한 인제니움 엔진이 탑재돼 출시 전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다. 180마력과 43.9kg.m를 발휘하는 만큼 수치에 따른 경쟁력도 충분하다.

시동을 걸자 시트를 통해 진동이 넘어온다. 스티어링휠 역시 진동이 느껴지지만 디젤 모델로써는 좋은 수준의 억제 능력이다. 최신 기술이 집약된 엔진이라지만 디젤은 디젤이다.

R-Sport 모델인 만큼 일반적인 주행서도 한층 단단해진 서스펜션이 먼저 부각진다. 앞서 시승한 모델보다 스프링 스트로크도 짧고 댐퍼도 강하다 느껴지지만 고급스러운 승차감 만은 잃지 않았다. 이 정도면 일반소비자들도 R-Sport 모델을 선택해도 될 듯 싶다.

디젤 모델을 타고 있으니 더더욱 독일 차량을 타는 느낌이다. 디젤 특유의 살짝 무딘 반응 이후에는 토크를 기반으로 한 여유로운 가속성능이 발휘된다. 4,000rpm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밀어주는 느낌도 좋다. 터보랙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균적인 수준이다.

다시 고속도로에 오르자 가솔린모델보다 한결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가솔린 엔진대비 엔진 회전수를 낮게 사용하고 토크가 높기 때문이다. 고속 안정성 역시 좋다.

와인딩코스로 들어선다. 스티어링 감각도 좋다. 특히 스포츠 서스펜션은 일반형보다 좋은 감각을 전달한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정확하고 뒤끝 없어 명쾌한 모습을 보여준다. ‘R-Sport’배지를 달고 있는 만큼 조금 더 단단해도 좋을 것같지만 XE를 서킷 용도로 구입할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많은 비로 인해 가솔린 모델과 디젤 모델의 차이를 느낄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디젤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무겁고 이 차이로 인한 움직임이나 스티어 특성 등에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팀의 테스트가 기대된다. 과연 나머지 패널들은 어떤 의견을 내놓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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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XE는 좋은 차다. 재규어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기에도 충분하다. 짧은 시간의 체험이었지만 재규어가 XE를 위해 노력한 흔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주행감각은 이제 독일차가 됐다. 여기에 영국만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느껴진다. 실내의 경쟁력만 풀어나가면 될 것 같다.

출시 타이밍도 적절하다. 시장의 최고 인기 모델인 3시리즈는 모델체인지가 아니라 페이스리프트를 한다. 너무 흔해진 모델이기도 하다. 완전히 바뀐 신형 A4 역시 국내 출시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여기에 IS와 ATS는 뛰어난 상품성과는 별개로 판매량이 저조하다. C-클래스를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가격을 내세우면 된다.

이처럼 XE가 빛을 볼 수 있는 시점이 또 있을까? 절호의 기회다. 그렇다고 시간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재규어는 6개월 안에 XE에 총력을 기울이고 결과를 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이 시장은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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