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쉐보레, 콜로라도 3.6 4X4


수년 동안 국내 자동차 판매 1위를 유지하는 모델이 있다. 다름 아닌 현대 포터. 지난 2004년 등장한 후 무려 15년 동안 수명을 이어왔다. 별다른 대안이 없는 터라 포터는 지금도 월평균 1만 대씩 팔린다.

그리고 대안이 없는 차가 또 있으니 쌍용 렉스턴 스포츠다. 현대 포터는 기아 봉고라는 대안이라도 있지만 렉스턴 스포츠는 유일무이한 모델이었다. 때문에 이 차가 좋은지 나쁜지도 알기 어렵다. 애초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픽업트럭 시장에 경쟁자가 등장했다. 쉐보레가 콜로라도를 출시한 것.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쉐보레가 국내 소비자들의 니즈를 읽고 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현실화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아쉬울 뿐.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한두 가지 특기를 갖췄다. 메르세데스-벤츠는 S-클래스 같은 고급차를 잘 만든다. 토요타는 내구성 좋은 차 만들기로 유명하며, 페라리는 슈퍼카에 특화됐다. 현대 기아차는 실내 공간을 넓게 만들고 HMI(Human Machine Interface) 부분, 그리고 가성비 좋은 차 만들기의 실력자다.

그리고 넓은 영토에서 성장한 포드와 GM은 큰 차를 만드는데 특화됐다. 미국 문화를 기반에 둔 미국식 자동차를 가장 잘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드는 포드 F-150이나 캐딜락 에스컬레이드가 대표 모델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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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은 미국적인 문화가 짙게 묻은 모델이다. 여기서 포드 F-150, 쉐보레 실버라도, 램 픽업 3개 모델의 2018년 판매량을 보자. 지난 한 해 동안 200만 대가 넘게 팔렸다. 1달에 16만 대꼴로 팔린 셈이다. 국내 시장에서는 월 1만 대가 그 차의 인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통 신차 출시 초기에만 이 수치를 기록하는 것이 보통. 그리고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 팔린 모든 차량의 합이 155만 대 규모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팔리는 픽업 세 모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3개 모델은 정말 크다. 땅이 넓은 미국 환경에 맞춰진 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장에서는 부담되는 사이즈이다. 이에 이들보다 작지만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고, 해외 시장까지 겨냥할 수 있는 모델들이 존재한다. 바로 중형 픽업트럭이다.

그럼 중형 트럭 시장에는 어떤 모델들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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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도 제법 있다. 이중 포드 레인저와 지프 글래디에이터가 국내시장에 출시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는 쌍용 렉스턴 스포츠 칸이 이 등급에 해당한다. 참고로 칸이 아닌 일반 모델은 적재 중량이 400kg에 불과해 이들과 직접 비교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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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콜로라도를 보자. 디자인이 투박하다. 부드러움보다 각진 인상을 강조했다. 번호판도 과거 우리 시장에서 쓰던 좁은 형태인데, 미국형이기 때문이다. 전면 그릴의 굵은 금속 장식도 미국차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보타이 엠블럼은 어두울 때 빛이 들어오게 꾸몄다. 미국 사양에서는 옵션으로 제공되는 내용이다. 앞 범퍼에 견인고리가 2개 달려 있는데, 다목적 활용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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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부도 전형적인 픽업트럭의 모습이다. 오버 펜더를 부각한 특징도 눈에 띈다. 승객이 타고 내리기 쉽게 발판도 달았는데, 탑승할 때 왼발을 먼저 올려놓으면 더 편안한 승차가 가능하다. 머플러도 후방이 아닌, 측면으로 빠져나온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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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면은 일반 트럭하고 큰 차이 없다. 테일게이트에 댐퍼가 달리며 손으로 잡지 않아도 부드럽게 열린다. 뒷범퍼 모서리에 발판을 장착한 것도 좋다. 이는 적재함에 올라가는 데 도움이 된다. 상급 모델인 실버라도와 같은 구성이다. 여기에 적재함을 비춰주는 별도의 조명도 있다.

이제 픽업트럭에서 중요한 적재함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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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사양은 크루캡 숏박스 사양이다. 적재함 공간 자체는 렉스턴 스포츠 칸보다 작다. 대신 적재 중량은 700kg 수준이다. 바닥 부분에 미끄러짐과 부식을 방지하기 위한 코팅도 더했다. 렉스턴 스포츠 칸의 플라스틱 소재와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다만 렉스턴 스포츠에 있던 전원 아울렛이 콜로라도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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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업트럭이 익숙하지 않은 국내 시장의 소비자들 중 일부는 어느 정도로 넓고 마감이 어떻게 됐네 정도만 생각한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적재함의 내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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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쉐보레의 적재함 내구 테스트 장면이다. 돌덩이를 위에서 쏟아버리니 경쟁사 트럭은 적재함에 구멍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다. 신차일 때는 비슷해 보여도 시간이 갈수록 가치를 더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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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베드 벤드(Bed Bend) 테스트다. 프레임 구조는 특성상 뒤틀림에 제한이 생긴다. 그래서 얼마나 견고하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이것은 주행감각에도 영향을 준다. 사진자료로 봐도 경쟁사 모델 대비 뒤틀림이 적다는 것이 확인된다. 당시 경쟁사 모델은 테일게이트가 열리지 않았고 찌그러짐이 발생한 반면 쉐보레 픽업트럭은 문제없이 열렸다.

위 테스트는 모두 GM이 진행한 실험이다. 때문에 자사에 유리한 부분만 강조하고 불리한 부분은 삭제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경쟁사 포드 트럭은 알루미늄을 사용했기에 더 가볍다. 또한 뒤틀림이 발생해도 크랙이 발생하지 않는 유연한 차체를 갖는 것이 포드 트럭의 특징이다. 또 이것은 기술력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반면 쉐보레 트럭은 견고하고 튼튼하다는 점을 내세운다. 대신 더 무겁고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이것은 차체가 받는 스트레스로 연결될 수 있다. 즉, 각각의 장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한쪽이 무조건 우세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쉐보레 픽업이 견고하고 내구성에 강한, 쉽게 뒤틀리지 않는 튼튼한 차체를 갖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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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픽업트럭의 특징을 파악했다면 이제 콜로라도에 집중해보자. 현재의 콜로라도는 지난 2015년에 나온 모델이다. 아무래도 인테리어의 세련미가 떨어진다. 시동도 열쇠로 건다. 또 국내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통풍시트가 없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견고한 차체 덕분에 남다른 주행 감각이 살아난다. 기본적으로 프레임 구조는 하중 지지력은 높지만 뒤틀림이나 진동에 취약하다. 그래서 프레임 차량 운전자들은 약간의 잡소리나 허술한 주행 질감과 타협해야 한다. 쌍용 G4 렉스턴이나 렉스턴 스포츠, 기아 모하비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하지만 콜로라도는 달랐다. 내부 잡소리도 나지 않았고 차체에서 발생하는 진동도 깔끔하게 잡아냈다. 자세한 것은 뒤에서 더 설명하겠다.

일반적으로 모노코크 차량은 비틀림 강성으로 차체의 견고함을 얘기한다. 강직도와 연관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프레임 기반 차량은 수치적으로 강성을 따지기 보다 탄력적이면서 프레임에 크랙이 발생하지 않는데 기술적 가치를 부여한다. 유연성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여기에 주행 감각까지 고급스럽게 만들려면 정말 많은 노하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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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또 다른 장점은 제대로 된 오프로더와 트랙터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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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오프로드 구성을 보자. 순정 사양으로 험로 대응 타이어가 장착된다. 구동방식은 파트타임 4륜 방식을 쓴다. 후륜과 고속 4륜, 로 기어를 갖춘 4륜에 자동으로 후륜과 4륜으로 오가는 AWD 기능도 있다.

여기에 이튼(Eaton)사의 G80 락킹 디퍼렌셜을 순정 사양으로 달았다. 쉽게 말하면 뒷바퀴 중 하나가 헛돌 때 자동으로 양쪽 바퀴에 걸리는 동력을 똑같이 나눠주는 장치다. 약 120rpm의 회전차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데, 4륜 구동으로도 갈 수 없는 험로를 후륜 구동으로만 갈 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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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쌍용 렉스턴 스포츠도 이 구성은 갖췄다. 하지만 콜로라도는 여기에 트랙터로서 기능성까지 갖췄다.

최근 캠핑용 트레일러를 도로 위에서 종종 본다. 400급이랑 500급도 종종 보이고 이제는 600급 트레일러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600급이면 최소 길이가 6m 이상인 풀 사이즈급 트레일러다. 내부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무게도 3톤 가까이 된다.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3톤 넘는 무게를 제대로 끌 수 있는 자동차가 없었다. 카니발 같은 차로 끌면 차체가 찢어진다. 그래서 프레임 바디 차량이 종종 사용됐는데, 쌍용 G4 렉스턴이나 렉스턴 스포츠는 제한적인 엔진(2.2리터 디젤) 탑재로 힘 부족 현상을 겪는다.

그래서 모하비가 아직도 인기를 누린다. 프레임 바디 차체 구조와 3리터 급 디젤엔진을 갖췄기 때문이다. 몇 대 팔리지 않았지만 4.6리터 가솔린 엔진이 탑재된 모하비 460에는 미션 쿨러도 달려있어 별도 보강 작업이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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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장점은 여기에서 나온다. 국내 사양은 순정 상태에서 견인 중량만 3.2톤이다. 단순히 차체가 버티는 무게가 아니라 언제든지 끌고 이동할 수 있는 무게를 뜻한다.

옵션으로 장착할 수 있는 트레일러 히치 리시버도 있고 커넥터도 7핀과 4핀 다 갖춰졌다. 토우/홀(Tow/Haul) 버튼을 누르면 무거운 하중에 맞춰 변속 패턴도 달리한다.

트레일러가 흔들리지 않게 도와주는 기능도 있다. 브레이크를 사용하는 토크 벡터링 기능처럼 브레이를 적절하게 사용해 직진 안정성을 높여주는 기술이 더해진 것.

여기에 트레일러 무게에 따라 트레일러 제동력을 설정할 수 있는 트레일러 브레이크 기능도 있다. 만약 견인봉이 달려 있다면 후진 주차 시 견인봉까지 차량으로 인식해서 센서가 알려주거나 후방카메라에 가이드라인을 표시해주는 소소한 기능도 제공된다.

이 모든 것이 콜로라도에 탑재된다. 비슷하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확실한 컨셉과 성능의 픽업트럭인 것.

여기까지 본다면 정말 대단한 트럭, 마치 이 모든 것이 광고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 기준으로 바라보면 별로 신기할 것 없다. 동급 경쟁 모델들 대부분이 갖춘 사양이기 때문이다. 그저 국내에 이런 픽업트럭이 없었을 뿐이다. 아마추어들이 프로인 것처럼 코스프레하는 마을에 중간 실력의 프로선수 한 명 왔다고 보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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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실내를 보자. 정말 투박하다. 스티어링 휠은 트래버스와 동일한 형태지만 계기판이나 센터페시아 디자인 등의 세련미가 떨어진다. 최상급 모델도 키를 꽂아 시동을 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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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센터페시아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최신 버전을 쓴다. 덕분에 반응이 빠르고 애플 카플레이와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한다. 일부 기능들은 공조장치 하단에 있는 피아노 건반 타입의 버튼을 통해 조작한다. 투박해도 조작성이 직관적인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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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는 전동식이지만 시트백은 직접 조작한다. 시트백의 미세한 조절이 안된다는 점이 아쉽다. 통풍 없이 열선 기능만 지원한다는 점도 조금 섭섭한 부분. 그래도 럼버 서포트 기능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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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좌석 공간 자체는 어느 정도 넉넉하다. 하지만 픽업트럭의 구조적 특성상 승용차 같은 편안함을 누리기는 어렵다. 시트백 각도도 제한적인데, 픽업트럭의 뒷좌석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대신 뒷좌석 밑에 수납공간을 둔 것과 뒷 유리에 개폐 기능을 추가한 창문을 넣었다는 점이 좋다.

안전장비도 제한적이다. 보행자까지 인식하는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시스템을 갖췄고 차선이탈 경고는 소리로만 알려준다. 사각 경고나 후측방 경고 기능도 빠진다.

대신 픽업트럭의 순수 능력이 강조된다. 파트타임뿐 아니라 자동으로 후륜과 4륜을 오가는 오토 모드가 추가된 4륜 시스템, 후륜의 오토 디퍼렌셜 락 기능이나 견인을 대비한 토우/홀 모드, 이때 변속기 부하 정도를 알 수 있도록 변속기 온도 정보도 알려준다.

브레이크 디스크도 다르다. GM이 독자 개발한 부식 방지 코팅 기술이 더해졌다. 적재함을 비롯해 브레이크에도 부식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됐다는 점은 칭찬하고 싶다.

국내에는 익숙하지 않는 픽업트럭. 그래도 그 장르 특성에 맞춰 기본 틀을 잘 갖췄다는 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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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을 위해 ‘키를 꽂고 돌려’ 시동을 건다. 키가 참 못생겼다. 물론 여기에도 배경이 있다. 지난 2014년, GM은 점화 스위치 결함으로 전 세계 리콜을 실시했다. 당시 쉐보레의 시동키는 접혀 있는 상태에서 버튼을 눌러 펴는 방식이었다. 이것이 길고 덩치가 크다 보니 종종 운전자의 다리에 걸려 시동을 꺼트리는 문제가 생긴 것. 그래서 점화 스위치 교체와 함께 시동키 디자인을 바꿨다. 그래서 접이식이 아닌 일반 열쇠 형태가 됐다.

아무리 미국 감성이라지만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 느낌이 크다. 하루빨리 버튼식으로 변경해 주길 희망한다.

시동이 걸리면 제법 멋진 배기음을 토한다. 트럭에서 이런 소리가 나니 어색하다. 실내에도 6기통 3.6리터 대배기량 엔진 사운드가 잔잔하게 깔린다. 중저음에 가까운 듣기 좋은 사운드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36.5 dBA로 확인됐다. 메르세데스-벤츠 E300, 쉐보레 임팔라 2.5 등 고급 승용차와 동일한 수치다.

주행을 해도 정숙한 환경이 유지된다. 타이어가 오프로드 주행까지 겸하는 올 터레인 사양이지만 노면 소음이 크지 않았다. 80km/h 속도로 주행 중인 환경에서 보여준 수치는 59.0 dBA. 참고로 렉스턴 스포츠와 렉스턴 스포츠 칸이 각각 44.0 dBA과 59.5 dBA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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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V6 3.6리터 가솔린 자연흡기 방식을 쓴다. 2017년부터 적용된 GM의 최신 사양이며, 픽업트럭 용도에 맞춰 성격을 바꿨다. 코드명은 LGZ 엔진, 312마력과 38.0kgf·m의 토크를 낸다. 주행 환경에 따라 6기통과 4기통을 오갈 수 있는 가변 실린더 기술도 더해졌다.

계기판의 트립 컴퓨터를 연비 확인 모드로 설정하면 현재 몇 기통으로 구동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어지간해서 4기통으로 바뀌는 것을 목격하기 어렵다. 하지만 요령을 파악하면 된다. 평지 또는 살짝 내리막길에서 가속 페달을 정말 조금만 밟으면 된다. 하지만 약간의 오르막이나 크루즈 컨트롤을 쓸 때도 4기통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획기적으로 연비를 높인 다기보다 기술적 가치에 의미를 두는 것이 좋겠다. 참고로 카마로 SS 등에 쓰인 8기통 엔진에도 이처럼 기통 휴면 기능이 탑재된 바 있다.

눈앞에 뻥 뚫린 도로가 펼쳐진다. 가속 페달을 깊이 밟자 적극적인 쉬프트 다운과 더불어 본격 가속이 이뤄진다. 배기량에 여유가 있는 만큼 시원스럽다. 발진 가속 성능을 떠나 재 가속 때의 여유로움이 운전의 편안함을 지향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배기량 엔진, 국내 시장에서는 선호도가 낮지만 한 번 익숙해지면 그 편안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속도계 바늘 상승도 제법 빠르다. 그렇게 약 160km를 전후하는 시점이 되면 가속이 멈춘다. 속도 제한에 들어가는 것. GPS 기준 실제 속도는 158km/h 전후가 된다. 경차들도 넘나들 수 있는 속도다. 실망? 이 차의 컨셉을 알고 나면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만약 더 높은 속도를 원한다면 조금 더 예산을 늘려 카마로 SS를 구입하기 바란다. 최고 속도를 100km/h 이상 높여줄 것이며, 1억 원대 유럽산 스포츠카와 맞먹는 성능까지 제공해 줄 테니까.

중요한 것은 고속 안정감이 좋았다는 사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쌍용 렉스턴 스포츠 칸은 모든 면에서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크게 탓하기는 어려웠다. 유일무이한 모델이었으니까. 그렇다 보니 기준도 모호했다. 다양한 비교 대상이 있어야 기준이 생긴다. 그 기준을 놓고 좋고 나쁨을 가를 수 있기에 렉스턴 스포츠 시리즈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질타를 하기 어려웠던 것도 현실이었다. 하지만 아마추어 리그에 프로가 들어왔고, 그 프로는 우리들이 알고 있던 현실이 동네 운동 모임 정도의 수준이었다는 것을 실력으로 알려줬다.

콜로라도를 시작으로 미국 브랜드들이 픽업 수입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다. 즉, 우리 기준은 상승하게 된다. 90년대에서 2000년 대 초반으로 넘어가던 시절, 티뷰론을 스포츠카라 부르며 튜닝에 튜닝을 더해 고작 20마력 내외 성능을 올려 열심히 드래그 레이스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산 중고 스포츠카들이 들어오며 신세계를 보여줬다. 더 씁쓸했던 것은 10년도 지난 중고차의 성능이 당시 국산 신차를 수배 이상 압도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20년 정도 지난 지금, 우리는 픽업 문화를 통해 한 번 더 같은 것들을 체험하고 있다.

팀 내 김기태 PD는 시트백 각도가 맞지 않다고 말한다. 시트백을 다소 세우는 자세를 좋아하는데, 5mm 정도만 더 세우면 좋겠다고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차이가 불편함을 만들고 있단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시트가 전하는 편안함은 좋았다. 여기에 승차감은 또 다른 신세계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다리 이음매를 지나도 승용차처럼 부드럽게 넘나든다. 거친 노면을 만나도 부담이 없다. 렉스턴 스포츠 시리즈를 타고 거친 노면을 만날 때면 스티어링 휠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곤 했다. 이후 ‘우당탕탕’하는 쇼크를 즐기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야 했던 것이 현실.

그리고 감속 구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일명 ‘빨래판 도로’ 조차 여유롭게 헤쳐 나간다. 퉁탕퉁탕 꾸준하게 전해지던 진동을 부드럽게 처리해 내고 있는 것.

그동안 우린 속았다!

기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우리 시장에서는 경험의 중요성을 신경 쓰지 않는다. 어제 입사한 신입 기자가 아무 배경지식 없이 시승기도 쓴다. 하지만 자동차 하나를 바라보기 위해, 더욱이 평가하려면 기준의 필요성이 더 크게 부각된다. 적어도 동급 모델에 대한 경험은 기본, 해당 차의 세대 간 변화까지 함께해 왔다면 그 차의 실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시승기를 쓴다면 어떨까? 가장 최근에 타본, 또는 자신에게 익숙한 차를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 아반떼를 기준에 두고 수입 컴팩트 세단 이상으로 접근하면? 편의 장비를 제외한 주행 감각 모두가 칭찬 대상일 뿐이다. 반면 슈퍼카를 기준에 놓고 프리미엄 승용차를 바라본다면? 이런저런 성능 모두가 아쉽다 표하게 된다. 때문에 수년에 걸쳐 수백여 대의 차를 만나고, 각각의 구체적 데이터를 쌓아 비교해야 비로소 최소한의 기준이란 것이 생기게 된다.

우리 시장에서 프레임 차체에 대한 기준. 그것을 쌍용차의 일부 모델들이 제시했고, 기아 모하비 정도가 기준에 보탬이 됐다. 그나마 정식 수입된 닷지 다코다가 있었지만 너무 오래된 얘기다.

하지만 프레임 차체를 쓰는 차가 많은 미국 시장에서 뛰다 온 콜로라도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프레임 차체니까 승차감이 나쁘다고? 잡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우린 속고 살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이 같은 모델들을 통해 기준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콜로라도의 운전석이다. 코너링 성능도 무난하다. 큰 차체를 가졌지만 제법 유연한 모습으로 코너를 돌아 나간다. 스티어링 휠을 돌릴 때 승용차 같은 날카로움은 없지만 제법 안정감 있는 성능을 구현한다는 점이 좋다.

마일드하게 코너를 돌아갈 때 부각되는 특성은 가벼운 언더스티어. 하지만 조금 빠르게 스티어링 휠을 감거나 한계에 들어서면 리어 휠이 움찔거리는 약한 오버스티어를 경험하게 된다. 물론 자세제어장치(ESC)의 보수적 설정이 차체를 쉽게 안정화 시키긴 한다. 이 차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 특성이 그러하다는 정도만 참고하면 된다. 타이어는 굿이어 제품이다. 미국산 제품에 맞춰 미국산 타이어가 제 성능을 내주는 것. 규격은 255 / 65 R17이다. 패턴을 봐도 투박한 모습인데 험로를 쉽게 달리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춘다. 모델명은 Wrangler All terrain Adventure.

재 가속 때의 여유로운 힘이 좋다. 저속에서 치고 나갈 때 토크감이 인상적인데, 상당히 잘 나간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이제 콜라라도의 발진 가속 성능을 보자. 테스트는 2WD(후륜) 및 4륜 구동 모드에서 각각 진행했다. 그 결과 4륜 쪽이 조금 더 빠른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7.64초. 팰리세이드 3.8보다 빠른 기록이다. 우리 팀이 보유한 가속 기록을 보면, 혼다 파일럿 다음으로 빠른 기록이다. 그럼 2WD(후륜) 모드에서의 성능은 어떻냐고? 고작 0.12초 늦을 뿐이다. 1초가 아닌 0.1초다. 이 차이는 체감으로 느끼기 힘든 수준. 즉, 어떤 모드라도 좋은 성능을 내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여유로운 엔진의 힘이 속도제한 영역까지 콜로라도를 밀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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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제동 능력은 어떨까? 시속 100km로 달리던 콜로라도는 최단거리 기준 40.12m 안에 멈췄다. 그리고 시험 막바지에서 최대 41.92m까지 밀렸다. 모든 테스트 이후의 평균 제동거리는 40.86m 수준. 전천후 타이어를 장착한 모델 치곤 좋은 성능이었다. 항상 말하는 얘기지만 브레이크에서 중시할 것은 단발적 성능이 아니다. 딱 한 번 잘 서고 이후 밀려나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과거엔 최단 거리만 언급했지만 최근엔 평균 거리도 얘기한다. 중요성이 강조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콜로라도의 성능은 무난한 수준에 속했다. 또한 온로드 중심 타이어가 장착될 경우 보다 나은 제동거리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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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콜로라도에서 가속이니 제동이니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견인 환경을 감안하면 부가적인, 아니 여유로운 성능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특히나 생계가 아닌, 레저를 위해 구입하는 수요층이라면 여유로운 성능이 주는 편안함이 장점으로 부각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콜로라도는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 만족감을 줬다. 쉽게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해 줬다는 것이다. 다만 향후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같은 장비가 채용되면 좋겠다. 아직 미국 사양에도 제공되지 않는다지만 장거리 투어를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포드 F150, 쉐보레 실버라도 같은 상급 모델에는 ACC가 채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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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정리를 해보자. 편의 장비 측면으로 보면 쌍용 렉스턴 스포츠 시리즈가 낫다. 편의성, 맞다 일부 기능성을 통한 편의성 증대다. 하지만 순수한 운전 환경, 탑승자 입장에서의 편안함으로 보면 어떨까? 비교 대상이 아니다. 팀 내 기자는 두 모델의 승차감에 대해 현대 포터와 메르세데스 벤츠 모델의 차이가 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팀 내 스텝들 대부분 그 말에 공감했다. 쌍용차에게 당장 위협은 안될 것이다. 배기량 적은 디젤 수요가 큰 시장이니까. 하지만 세컨드카 개념으로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여기서 잠시 연비를 볼까? 콜로라도는 고속도로 정속 주행에서 11.5km/L 수준의 연비를 보였다. 렉스턴 스포츠 칸이 보인 13.5km/L 대비 부족한 수치다. 연간 2~3만 km 이상 달리는 소비자라면 이 수치에 큰 의미가 부여된다. 하지만 주말 레저를 즐기는 소비자라면 상황이 다르다. 애초 레저로 접근하는 수요층이 중시하는 것은 연료비 보다 편안함이다. 그리고 그런 가치에 투자할 수 있는 수요가 늘어가는 추세다.

대배기량 엔진에 따른 자동차세? 국내법상 화물차로 분류되기에 배기량과 관계없이 연간 2만 8500원의 자동차세만 내면 된다. 취득세도 일반 승용차의 7%가 아닌 5%로 낮다. 개별 소비세와 교육세도 면제되고, 개인 사업자라면 부가세 10%도 환급받는다.

물론 매년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아야 하고 보험료가 조금 비싸다는 공통된 약점이 있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기에 앞으로의 시장성이 기대된다. 더욱이 GM답지 않게(?) 제법 좋은 가격에 들여왔다는 점도 의외였다. 미국 가격이 중심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자동차 가격 낮기로 소문난 미국 가격 대비 경쟁력 있는 가격이란 점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한국지엠은 최근 트래버스도 내놨다. 이 차의 가격도 적정 수준이었다. 적어도 이런 가격 정책은 떨어진 신뢰도 회복에 도움을 줄 것이다.

한편, 한국지엠 노조가 임금 인상을 중심에 두고 파업을 벌일 것이란 소식이 들렸다. 국내에서는 정치권 손짓 한 번에 기업 총수들이 장단을 맞춘다. 반면 미국 GM을 보자. 대통령의 반 협박에도 공장을 접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파업이라니. 연간 몇 만대 규모의 한국 내수시장. 미국에서 팔리는 실버라도 한 달 판매량에 불과하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가격만 좋다면 미국산 말리부, 트랙스, 이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냉정히 말해 국내산 쉐보레를 원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오히려 좋은 가격에 더 많은 수입차들이 왔으면 바라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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